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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하나님은 테스트하십니다 P2 / 잭 푸닌

LNCK 2013. 1. 11. 13:45

www.youtube.com/watch?v=U6o9HqVc3ts

◈하나님은 테스트하십니다 P2         사55:11, 롬2:15          출처보기

하나님은 테스트 하십니다 P1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만나는 하늘에서 매일 내렸습니다. 그것을 이틀 분량을 거두어들이면, 먹고 남은 분량은 상하고 말았습니다.

그 의미는, 우리는 하늘 양식, 생명의 양식을

매일 새롭게 거두어들이고, 매일 새 만나를 섭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1주일에 한 번, 만나를 거두어서, 먹고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먹은 만나로..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까요? 안 됩니다. 만나는.. 그 다음 날에는 반드시 부패해 버립니다.

 

 

우리는, 어제 받은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없습니다.

만나는 매일 새롭게 거두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만나를 거두고, 매일 만나를 새롭게 먹는 삶을 살게 되시기 바랍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만나를 거두는 훈련을, 40년이나 계속했습니다. 매일 거두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철저히 훈련했던 것입니다.

 

만나를 먹는 것.. 저는 이것이 그저 단순히 성경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들어 보세요.

 

광야 백성들은, 그 당시에, 각자가 성경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세를 통해서

귀로 들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신자가 개인적으로 성경을 갖게 된 것이,

      지난 6천년 역사로 보면,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영어나 독일어 등 일상적 언어로 번역하고,

      또한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어서, 성경을 대량 인쇄해서 책으로 보급했던 때는       약 16세기 때부터였습니다.

 

그러니까 신약교회 시대에서도,

무려 1500년 동안, 신자들은, 자기 소유의 성경 없이 신앙생활 했습니다.

 

지금처럼 각자가 성경책을 소유하며 신앙생활 한 것은,

5백년 기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본문의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지난 15세기 동안의 신약교회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자기 성경 없이, 자기 성경이 없어서, 성경을 못 읽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이 기억력이 좋아서, 성경을 죄다 머리로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고, 과연 그들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왔던 것일까요?

 

 

제 생각으로는.. 그들은 <자기 양심의 음성>에 따라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일주일에 한 번이나, 또는 더 자주

교회나 모임에 나가서, 거기서 낭독되는 성경말씀을 듣거나,

또는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성경이 없으니까, 집에 오면, 더 이상 성경말씀을

개인적으로 읽거나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성경도 없이, 성경도 읽지 않고, 어떻게 신앙생활 했을까요.. 생각해 볼 때.. 그들은 자기 양심의 음성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기 양심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서, 그 음성에 순종하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제 추측입니다만, 우리처럼 매일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때가 못 되었으니까, 아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가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지만,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신앙생활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아니고,

 

성경을 읽든지, 설교를 듣든지,

우리가 일상의 삶을 살아가면서, 어떤 선택과 유혹의 갈림길에 부딪히게 될 때,

성경말씀이 생각이 나든지,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든지.. 그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날 신자들이,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그냥 책 읽듯이 하고,

제가 보기에는, 그 성경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 실제적 삶에서는, 그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일상의 삶에서,

언제나 성경의 말씀이.. 늘 생각이 나야하고,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 늘 내 귀에 들려져야 하고,

우리는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설교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성경공부 과정을 아무리 많이 이수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평소의 삶에서,

시험을 이기는 훈련,

내가 늘 시험을 보고 있다는 훈련,

시험이 올 때, 내 양심의 음성이나, 성경말씀을 기억하면서, 거기에 내 스스로 순종하는 훈련..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성경공부, 성경읽기, 설교듣기만으로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여러분, 성경지식만 놓고 따지면, 아마 마귀가, 여러분보다, 성경지식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마귀가 성경을 인용해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을 보십시오. 그는 성경구절을 귀신처럼 많이 알고 있는, 성경박사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구절에 따라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마귀에 순종해서, 마귀가 해석하는 식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엉뚱한 일을 추진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죄를 지었으면, 두렵고 떨어야 할 시기인데,

어떤 사람은, 그 성경말씀을 잘못 적용해서, 자기 마음에 평안을 누립니다. 성경에 ‘평안하라’는 구절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반대로, 그때는 평안해야 될 때인데도,

말씀을 거꾸로 적용해서, 평안하지 못하고, 늘 벌벌 떨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맞지만,

다만 ‘문자로 기록된 성경책’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 그것이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그냥 문자와 문장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내가 읽을 수 있어야..

비로소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매일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절대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것으로 자기가 크리스천의 삶을 잘 살고 있다고, 자고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는 것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앞서, 개인적인 성경이 없던 시절에,

성도들은, 자기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우리가 성경을 매일 못 읽는다 하더라도,

우리 각자의 양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

매일 성경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최고의 목표 달성이 아니고,       성경을 읽는 목적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매일 만나를 먹는다는 뜻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성경을 읽는 것 그 자체는..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매일 읽는다 해도,

그 말씀을 엉뚱하게, 마귀적으로, 잘못 적용할 수 있는 위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반드시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자기 의, 자기 공로에 만족하지 말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고,

 

 

우리 매일을 삶에서, 여러 선택과 유혹의 상황에 맞딱뜨릴 때, 그 성경말씀이 기억나든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가 기억나든지 해서,

그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그 유혹을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 시험을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설교가 쎄고,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우리 교인들이,

그렇지 못한 다른 교회 교우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고 말씀드린 것도,

‘자기 삶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 그렇게 됩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지만, 늘 현실에서 유혹과 시험에 낙방할 때, 그렇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각자 성경을 갖고서, 또한 읽으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각자 개인소유의 성경이 없었던 지난 5천년 동안의 성도들보다 신앙생활을 훨씬 더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과거에 그들은 ‘양심을 통한 주님의 음성’에 민감했고,

거기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해 왔고,

 

 

오늘날 우리는 성경을 무수히 배우고 읽어도,

‘그 주님의 음성’에 둔감하게 살고 있다면,

 

성경을 가진 우리의 신앙생활이,

성경을 못 가진 그들의 신앙생활보다, 더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체 주제를 알아채셨지요?

설교를 듣든지, 성경을 읽든지.. 그것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반드시 평소의 삶에서.. 그 음성에 순종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훈련을 하는 것! 일상의 삶에서.. 그 내면의 음성에 따라 시험을 이기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에 내린 만나가, 하루가 지나면 변질되어, 거기서 냄새가 났다고 했는데,

      저는 이 말씀에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 성경말씀이, 우리 삶에 적용되지 못하고, 순종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저 들은 말씀, 읽은 말씀, 배운 말씀은.. 다 냄새나는 것으로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즉 만나를 주십니다. 그렇게 날마다 말씀하시는 (즉, 만나를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저 성경을 무슨 책 읽듯이 매일 읽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55:11,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이 매일 주시는 음성을 받아서, 그 음성에 순종해 보십시오. 그 말씀을 주시는 것은, 위 구절에 의하면, 반드시 그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목적이 매일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 보십시오.

그런 삶이 1년 365일 쌓이고, 3년, 5년이 쌓인다면,

얼마나 풍성한 열매가, 즉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겠습니까!

 

여러분 창세기 1장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무슨 놀라운 창조가 매일 일어났습니다.

 

비록 그렇게 거창한 천지창조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매일 말씀하시고, 내가 거기에 순종하면,

      내 삶에도 놀라운 창조의 역사가.. 오늘도 매일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매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또한 성경을 읽어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니까,

또 듣기는 들어도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역사가,

내 삶에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테스트하십니다. 하나님은 매일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우리가.. 귀로 듣는지 아니 듣는지.. -그 말씀을.. 우리가.. 순종의 삶으로 듣는지 아니 듣는지..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를 테스트 하십니다.

 

단순히 성경을 눈으로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마시고, 그 하나님의 음성이 반드시 내 양심에, 내적인 음성으로 들려져야 합니다.

 

지난 5천5백 년 동안, (최근 5백년을 제외하고)

개인적 성경이 없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 양심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각자가 성경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또한 각자가 성경을 읽는다는 이유로,

      양심을 통해 내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나요?

 

그래서 말씀을 늘 읽고, 듣고, 배우지만,

      실제로 성도들의 신앙은, 늘 제자리걸음을 맴돌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우리가 늘 승리하지 못하고, 그 음성에 불순종해서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듣는 성도는,

진실하게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면서, 그 죄를, 그 다음 번에는, 이기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성도는,

      한 번 죄를 짓고도,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계속 짓고, 계속 넘어집니다.

 

성경을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그  속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의 내면적 음성을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사람은,

그 다음번에 하나님의 음성을 예민하게 더욱 잘 알아듣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그래서 불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마치 귓밥이 쌓여서, 소리를 잘 듣지 못하듯이,

그 다음번에 하나님의 음성을 더욱 듣지 못하고, 그래서 더욱 무감각한 신자가 되고 맙니다. 계속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아프게 받고서, 돌이키게 되겠지요.

 

정리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 설교를 듣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성령으로 변화된) 양심에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대체해 버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어느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그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여러분께, 내 지난 신앙여정의 비결 하나를 나누고 싶소.

나는, 내 양심에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항상 들으려 했고,

그 음성에 순종하려고 애쓰며.. 지금까지 살아왔소.”

 

그것이 바로, 사람들에게 성자로 추앙 받는,

그의 신앙적 삶의 성공의 비밀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의 말이, 맞다고 봅니다.

 

오늘 신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불순종하는 이유는,

      첫째는, 그것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것에 불순종해도, 당장 무슨 재앙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무슨 문둥병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집에 불이 나는 것도 아니고,       직장을 잃는다든지.. 무슨 재앙이 보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험에 낙방해도, 실패해도,

      자기 삶은, 어제와 거의 똑같이 살아가고 있으니까.. 아무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관련글/ 하나님의 진노(의 성격)

 

 

어떤 사람은, 4년 과정의 의대를 무려 15년에 걸쳐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매년 졸업시업에 낙방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 얼마나 가련한 인생입니까.

그렇게 희희낙락하며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어떤 크리스천들은, 매년 그렇게 수없이 낙방하면서도, 희희낙락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전혀 부끄러운 줄도 모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가 가만히 관찰해 보았더니

신자들에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치르고 있다’는 개념 자체가

아예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제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들은 우리는,

1. 하나님의 시험이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고,

시험을 즐거워하고, 시험을 이겨서,

하나님께 승진의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는,

신자들이 설교를 듣고, 성경도 읽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 양심에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도 못하고, 듣지 못하니까, 순종도 못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절대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성경말씀을 통해서, 내 양심에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반드시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음성에 순종해 나가는 삶을 꾸준히 살아가면서, 내 삶이, 그 음성을 분변하는 일에, 더 민감해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이,

내 삶을 통해서 모두 다 이루어져서,

하나님의 뜻이, 내 삶을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지고, 

또한 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쓰임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더 읽으실 분 ..............

 

여러분,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앞에 두고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인간에게 시험은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죄를 짓지 않았고, 아직 타락하기 전이어서,

오늘날 우리처럼 ‘부패한 양심, 전적 타락한 양심’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소곤거리는 소리 정도로 듣는다면, 그들은 아마 그 음성을 트럼펫 소리처럼 크게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 이전에, 아직 그들의 양심이 살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마귀의 달콤한 유혹의 음성에 넘어간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시험이 그만큼 교묘하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의 양심은,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아서, 부패한 양심이고, 전적 타락한 양심이라서, 양심 자체가 잘못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란 쉽지 않습니다.


 

 

일례를 들면,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는 것도,

그 속 양심은, 자기 명예를 위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부패하고 타락한 양심의 본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듣고, 예수 믿고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속에 부어졌습니다. 우리는 타락 이전의 상태로, 회복된 것입니다. 완전한 회복은 아직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는, 어쨌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순종하며, 시험을 이기는, 그런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 나갑시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는, 절대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