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개인적 예언에 관하여 P2 / 스티븐 램버트

LNCK 2013. 2. 21. 11:41

www.youtube.com/watch?v=8Q_pIGBHCrk

◈개인적 예언에 관하여 P2       딤전1:18, 벧후1:16~21, 대하20:20     ☞출처, 영어대강번역

About Personal Prophecy                                      내적음성, 예언 관련글

 스티븐 램버트  Steven Lambert

  

◑예언의 시제

 

예언자가 ‘개인적 예언’을 하지만,

그 예언이, 지목하는 대상(수혜자)의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느 시점을 가리켜 예언하는 것인지.. 예언자 자신이 모르고 예언할 수 있습니다.

 

예언자는, 당신이 과거에 겪었던 일인데, 그는 현재 시제로 예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당신이 미래에 겪을 일을, 그는 현재 시제로 예언할 수 있습니다.

 

예언에 있어서, 시제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언의 내용, 그 자체가 중요하지요.

 

예언의 메시지가 주어질 때는, 어떤 영적인 영역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제가 모호한 4차원의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언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것이 과거에 대한 예언인지,

현재에 대한 예언인지, 미래에 대한 예언인지.. 자연히 분변될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런 예가 나옵니다.

*삼상13:8‑14절에, 사울 왕이, 성급하게 자기가 집전해서 제사를 드림으로 말미암아,

유대 왕권을 상실하게 될 것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그 구절에 나오는 ‘지금 now’이라는 말은,

사실은 38년 이후에 되어질 미래 일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삼상15:28절에는, (사울왕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불순종을 계기로)

왕권이 다윗에게 넘겨질 것에 관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구절에 나오는 “오늘 this day”은, 그 예언이 떨어진 그 날을 뜻하기도 하지만,

실제 실현은 24년이 지난 이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볼 때,

‘개인적 예언’에서 ‘시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언이 되어져도, 그것은 미래에 어떤 시점에 성취될 일이며,

그 기간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단축될 수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계시록에도 보면 “내가 속히 오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언자 사도요한을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계22:20.

 

그 예언에서 “속히 quickly”라는 말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말은, 1천 년 전에도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여러 여건과 상황에 따라서, 2천년 가까이 된 지금까지, 연기되어졌습니다.

 

예언은,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지,

대개의 경우는, 그 어떤 정확한 시간을 지칭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특징이 있습니다.

 

◑개인적 예언은 수혜자의 반응에 따라 그 성취에 변수가 있습니다.

Personal Prophecy Is Fulfilled By Appropriate Responses

 

위에서, ‘개인적 예언’은, 그 성취에 있어서,

시간의 변수가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또 다른 한 가지 변수는, 수혜자의 반응에 따른, 변수가 있어집니다.

 

어떤 예언이 A에게 주어졌다고 할 때,

그가 고의적으로 그 예언을 무시하고, 그 예언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나온 예언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성취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A를 아프리카 선교사로 부르셨다고 합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A는 그것을 자기가 거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1차, 2차, 3차에 걸쳐서, 시련을 주시고, 다시 그를 부르실 것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늦게라도(3차 기회에라도) 그 부르심을 깨닫고, 순종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혹자는, 자기가 계속 죄 가운데 거하면서, 그 부르심을 분변하지 못하고,

또는 세상 유혹이 너무나 커서, 그 부르심을 자기가 고의로 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무리 주님이 예언을 주시고, 그를 부르셔도,

그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변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예언을 잘 분변하고, 잘 순종하기 위해서

몇 가지 기억해야 될 사항이 있습니다.

 

▲1. 내게 주어진 예언을 잘 분변하고, 선한 싸움을 잘 싸우기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예언을 수첩에 기록하고, 수첩을 보면서 계속 기억하고 묵상하십시오.

 

아무래도 수첩에 적어서, 그 수첩을 계속 휴대하고 다닌다면,

그냥 머리로 기억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리고 예언은, 꼭 예언자를 통하지 않고도, 자기가 직접 주님께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꿈을 꾼 것, 바울이 마게도냐의 환상을 받은 것 등,

자기가 직접, 주님으로부터 예언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는, 꼭 수첩에 기록해서,

그 받은 예언을 더욱 자세히 분변하기 위해서, 계속 기도하며,

오랜 시간 묵상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받은 그 예언이 속히 성취될 것입니다. 그저 잊어버리고 사는 것 보다는요!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1:18

 

▲2. 주님의 말씀, 로고스와 레마에 모두 순종하십시다.

여기서 ‘로고스’는 기록된 일반적인 성경 말씀이고,

‘레마’는 예언에 가까운 말씀, 특별히 내게 주신 말씀을 뜻합니다.

 

성경말씀(로고스)는 당연히 순종해야 되고요, 

성도가 주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주님의 내적음성(레마)도

아예 귀를 꽉 막은 채 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물론 여기에 너무 극단적으로 빠져서는 안 되지만요.

 

▲3. 너무 안절부절 하지 마시고, 주님 안에서 늘 안식하십시오.

어떤 예언을 받았다고 할 때, 혹자는, 자기가 인위적인 열심으로,

그 예언을 이루려고 동분서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이 속여서 장자권을 빼앗은 경우처럼요.)

 

그런데 하나님은, 대개의 경우, 그러한 예언을 주신 다음에,

먼저 당신을 신앙적으로 성숙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미래에 대해 주어진 예언이, 대개는 시간이 길게 걸려서 성취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즉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신앙적, 영적 성숙을 먼저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의 미래에 대해서, 예언을 주셨을 지라도,

당신의 영적 성숙의 과정과 기간에 대해서는,

그렇게 구체적으로까지는 예언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또한 다윗이

자기가 받은 예언을 성취하기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던 것처럼,

너무 다급하거나, 초조해 하지 마시고, 주님 안에서 늘 안식하십시오.

 

그리고 꼭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예언은, 당신의 영적 성숙과 병행해서 이루어집니다.

 

만약에, 당신의 영적 성숙이 없이, 주님의 예언만 이루어진다면,

(그런 예언은 이루어지지도 않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당신에게 ‘독’이 될 것입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사울 왕의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예언을 받았다고 할 때,

그냥 자신이 하루아침에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마음속으로) 으스대다가는,

교만으로 꽈당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특별한 예언이나, 환상을 받았다고 칩시다.

그래도 그냥 평범하게 일상을 사십시오. 어제와 똑같이 말입니다.

 

그 예언이나 환상은, 성취되는데, 당신의 영적성숙과 같이 가야 하니까,

앞으로 오랜 세월이 걸릴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당신이, 오랜 세월 후에, 그런 영적 성숙의 단계에 도달하면,

당신은 정말 ‘일상을 평범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성숙에 도달했으니까요!

자신이 큰 사명자라고, 스스로 으스대지 않을 것입니다.

 

▲4.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예언의 선포 시점과, 그것의 성취 시점 사이에는

그 예언의 무게에 따라, 상당히 긴 시간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취의 시간까지

인내하시고, 고난을 참고 견디시며, 끝까지 이를 악물고 버티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예언이, 그 환상과 비전이, 정말 감동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라면,

지금 내 현실은, 지금 그 예언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과 환상과 비전이,

나의 인내심 부족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성취의 변수는 ‘내 순종, 내 인내’에 달린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2~4.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약5:10~11.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4:5,

  

▲5. 신실한 예언 또는 그 선지자를 신뢰하면..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그 예언이나 예언자는,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이 서서 가로되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찌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대하20:20.

 

▲6. 당신에게 주어진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예언을 너무 무시하지 마시고, 예언을 옳게 분면해서,

그 주어진 예언을 따라, 위엄있게 행동하십시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딤전1:18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16-21.

 

▲7. 어떤 예언은, 명확히 다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벧후1:20에, 예언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때는, 주님이 그 예언을 명확하게 이해시켜 주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어떤 예언은 ‘때가 차기까지’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예언을 다 알려고 하지는 마십시오.

 

성경에도 그런 예가 종종 나옵니다. 전혀 그 예언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그 일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아, 그것이 그 내용의 예언이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닫는(해석하는) 것입니다.

 

 

▲8. 건초는 먹고, 막대기는 뱉어내십시오.

(포도는 먹고, 씨는 뱉어 내십시오.)

 

신약시대에서는, 또 다른 시대에도, 예수님이 부르신 제자들을 보면,

모두가 다 불완전한 그릇 들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하시지만, 그 분이 불러서 쓰시는 제자들은,

세상에서 다 깨어지고, 불완전하고, 자기를 내세울 수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더욱이 신약, 새언약의 본질 자체가 ‘은혜, 긍휼, 사랑’입니다.

구약의 언약의 본질이 ‘법과 그에 따른 보복’이었다면, 신약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하나님께 예언적 사역으로 쓰임받기 원하는 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성령의 은사 가운데서 은혜를 받아서, 내가 먼저 자라가고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그런 여러분 자신의 올챙이적 모습을 보시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대단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간혹 보면, 인간적으로는 너무 미성숙하고 부족한 사람인데,

100% 정확한 하나님의 예언을 전달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가 직관이 너무 발달된 나머지, 인간관계 기술 등

보통 사람들이 가진 자질을, 좀 덜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너무 심하게 판단하거나, 그들의 사역을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예언 사역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라면,

성경에 ‘덕을 세운다’고 했는데, 집을 건축하여 올린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예언 사역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집을 건축하는데 보탬이 된다면,

오히려 내가 그들의 사역을 훼방하는 자가 될까봐 조심해야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된 예언사역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허물거나,

우리가 미숙해서, 그들의 참된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질식시키거나..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몸을 해치는 자는, 그래서 마귀와 짝하는 자는

주님의 엄한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거짓 선지자들이 훼방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참 선지자들을 훼방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거짓을 예언해서 심판 받는 것과 똑같이,

우리가 참 선지자의 사역을 훼방해서, 주님께 심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전14:3~4

 

성령을 소멸치 말며.. 당신은 예언사역을 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고.. 당신은 예언을 멸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그 예언을 기도하며, 분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헤아려 좋은 것은 취하십시오. 살전5:19~21

포도는 드시고, 씨는 내버리십시오!

 

 

◑남을 ‘거짓 선지자’라고 함부로 부르는 것을 조심하십시다.

   Beware of Calling Someone A “False Prophet!”

 

예수님이 마7:15에서 ‘거짓선지자’라고 부르신 것은,

그들의 마음의 동기motive, 의도intent가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야망의 성취,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는 등

그 동기와 마음의 근본 목적이 잘못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장로교 신학을 가진 사람은, 알미니안 신학을 가진 사람을

‘거짓 선지자’로 매도 할 수 있는데,

(장로교 관점이 성경의 주류이지만, 같은 성경에는 비주류로 알미니안 관점도 반드시 나옵니다.)

그런 신학적 차이에 따라, 상대편을 ‘거짓선지자’로 함부로 매도하지 맙시다.

 

또한 성령운동에 관한 입장과 신학의 차이 때문에,

신자들은 쉽게 서로를 ‘거짓 선지자’로 매도할 수 있는데, 그런 표현을 쓰지 맙시다.

왜냐하면 마7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짓 선지자’는

마음 근본 동기가, ‘자기 영광을 구하는’ 사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언사역을 하는 예언자가 혹시 한 번 틀리게 예언했다 하더라도

‘거짓 선지자, 거짓 예언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짓 사도’, ‘거짓 복음전하는자’, ‘거짓 목사’, ‘거짓 교사’도

‘거짓 선지자’와 함께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예수님 말고는 없으니까요.

 

.........................................

 

 

*이 글에서 ‘예언자’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예언자를 지칭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요,

신약시대에 성령의 9가지 은사 중에서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

또는 엡4:11에 나오는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의 5직임 중에 나오는 ‘선지자’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런 은사자, 직임자들은 (초대교회에는 오늘날의 목사, 장로처럼,

사도, 선지자.. 이렇게 어떤 직임자가 있었다고 봅니다) 자주, 빈번하게 예언하겠지만,

그러나 일반 신자들도 가끔은 예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종종, 자주 전도하겠지만,

일반 신자들은 가끔 전도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언’이란 말의 정의에 관하여 보완할 내용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