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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개인적 예언에 관하여 P1 / 스티븐 램버트

LNCK 2013. 2. 20. 12:33

www.youtube.com/watch?v=iVyWAp9uEzg

◈개인적 예언에 관하여 P1                 고전13:9                 ☞출처, 영어대강번역

About Personal Prophecy                                         내적음성, 예언 관련글 모음

스티븐 램버트  Steven Lambert

   

‘개인적 예언’(Personal Prophecy, 개인적으로 예언을 위로부터 받는 것)은

성령 사역에 있어서, 또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성도에게 있어서,

비록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큰 관심의 영역 중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예언’은 아직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못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언사역운동 Prophetic Movement 이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신학을 정립할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개인적 예언’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우리의 배움을 필요로 합니다.

    (많은 부작용이 있지만, 그렇다고 예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 예언’에 대해 간단한 개관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신학적 연구가 충분치 못한 이 주제에 대해,

그나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리라 봅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고전13:9

 

1. 위 말씀처럼, 예언은 언제나 부분적인 정보를 제공해 줍니다.

하나님의 뜻과 경륜과 섭리의 전체를 말씀해 주지 않고,

그 중에 일부분만이 예언 은사를 통해 알려집니다.

 

그래서 예언보다, 그 해석이 더 어렵습니다.

전체가 아니라, 부분적으로 알려 주시니까요!

 

2. 위 말씀은 또한 이렇게 약간 달리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자기의 유한한 지식을 가지고, 예언을 통해 제시된,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가 받은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정확한 것이라 해도,

그 예언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우리들 유한한 인간들은

정확하게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석을 엉뚱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한다’라고 말씀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보이거나 알려주시지 않기도 하시거니와

설령 다 보이거나 알려주시더라도,

우리가 해석을 완벽하게, 정확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사역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은, 그 예언의 진위보다도

어쩌면 그 해석의 진위(옳고 그름)입니다.

예언은 옳지만, 우리가 해석을 틀리게 잘못 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언은사를 통해 주어진 예언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우리의 지혜, 일반 상식, 성경 지식, 삶의 경험, 해석 경험, 예언사역에 대한 이해 등

이런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총동원되어서, 그 예언에 대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종종 보면, 그 해석이 틀렸다는 것이,

어떤 사실이 이루어지고 나서, 뒤늦게 비로소 발견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A를 말씀하셨는데, B로 해석/이해하고 있다가,

A라는 사실이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이 주신 예언의 의미를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은 맞았지만, 우리가 해석을 잘 못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2001년 911때, 미국 맨허튼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 때,

그것은 바로 ‘미국의 경제 붕괴 및 세계 경제 붕괴’를 의미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그때 즉시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예언적 싸인’이 주어진지, 거의 10년이나 지나서, (*2008 써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제 사람들은 차츰 깨닫기 시작합니다.

2001년의 그것은, 세계경제붕괴에 대한, 하나님이 주신 ‘예언적 싸인’이었음을!

(물론 사태의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그것을 올바로 해석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이슬람 강경주의의 적대적 공격’ 정도로만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이 처음 주어질 때,

예언자나 그 예언의 수혜자(대상자)가 해석을 잘못해서 당황하다가,

실제로 그 예언대로 사건이 이루어지고 나서,

‘아, 그때 그 예언이 이런 내용이었구나!’하고 뒤늦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예언자가 꼭 해석까지 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언자는, 그냥 예언을 받아서 전달하는 의무까지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해석까지 해 주면 더 좋겠지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예언을 주시고, 해석까지 곁들여 주시기도 하셨고,

어떤 예언만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예언자는, 자기가 보는 환상, 꿈, 음성 등을 면밀하게 기록해서,

그 속에 어떤 패턴을 발견해서, 그 패턴에 따라 해석합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밖에 예언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두로에서, 빌립 집사의 딸들을 통해,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될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 예언은 정확했습니다.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간 바울은, 결박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석은 달랐습니다.

1. 결박될 것이니까, 올라가지 말라는 해석과

2. 결박될 것이니까, 마음을 단단히 하고 올라가라.. 는 해석이 서로 달랐습니다.

 

바울은 2번을 택했고, 지나고 보면 바울이 옳았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그를 옹호해 주셨습니다. 행23:11.

 

▲예언은 상세히 설명되어질 필요가 ‘굳이 없습니다.’

Prophecy Need Not Be Explicit (Detailed) To Be Valid Or Accurate

 

성경에서 보더라도, 예언이 주어질 때는

항상 어떤 상징, 묵시, 코드 형태로 주어집니다. 어렴풋하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1. 예수님은 공생애 때,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도,

비유와 상징으로 종종 말씀하셨다면 (복음서를 보세요.

제자들은 퍼뜩 깨닫지 못해서, 나중에 개인적으로 그 뜻을 예수님께 묻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날, 예언 은사를 통해 말씀하실 때도, 그 방식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즉 오늘날에도 예수님은, 보통의 경우 상징, 묵시를 통해, 어렴풋하게 말씀하십니다.

 

해석은 우리 몫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예수님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매우 다급한 경우에요!)

 

그래서 일반 사람들이 보면, 뭐 ‘개인적 예언’이라는 것이,

어떤 때는 너무 상징적이고 묵시적이니까,

‘이거 뭐 예언이 너무 두루뭉실 하다, 그래서 그건 예언이 아니다’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루뭉실한 예언이라도,

그 예언이 주어진 주인공에게는 ‘명확하게’ 이해됩니다.

 

 

 

 ※예를 들면 ‘양복을 집에서 다려 입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생긴다’라고 예언할 때,

 다른 사람들은 뭐 황당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그 예언이 주어진 당사자,

 즉, 양복을 집에서 다려 입는 바로 그 사람은, 그 뜻을 확연히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점은,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우리가 버려야 할 죄에 대해서,

-먼저 그 나라와 그 의에 대해서.. ‘개인적 예언’을 주십니다.

 

-반면에, 개인 사업이 잘 되기 위해서

-자녀가 잘 되기 위해서.. 족집게 예언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기복적 목적으로 예언사역을 기웃거리다가는,

반드시 잘못된 예언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개인 사업에 대해서, 특별한 경우에, 예언을 주실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의 개인 사업이, 하나님 나라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또 하나님이 너무 세밀하고 자세하게 예언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 예언의 수혜자를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예배 같은 공적 모임에서,

A라는 사람에 대해, 너무 자세하게 예언이 주어지면,

혹시 그가 너무 낯부끄러워할 내용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언을 통해, 두루뭉실하게 예언하십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그 예언이 뭐가 뭔지, 전혀 깨닫지 못하지만,

 

그 예언이 지시하는 바로 그 사람은,

‘아, 이게 내게 대한, 바로 그 말씀이구나!’ 하면서

분명히 깨닫고, 주님의 경고/ 지시/ 인도/ 위로/ 책망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예언시간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설교를 통해,

자기가 이렇게 예언적 말씀을 듣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저 듣고 넘겨버리는데, 그 사람 A는,

그 설교 내용 중 일부를 ‘하나님의 개인적 음성, 즉 자기를 향한 예언’으로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꿈과 환상, 음성, 또한 말씀 등을 통해 예언을 받아서 전달하는 사람, 즉 예언자는,

가급적 정확하게 예언을 전달해야 합니다.

 

자기 상식과 판단으로 각색해서 전달하면.. 그에게 예언 은사가 소멸될 것입니다.

사명 감당을 제대로 못 하니까, 하나님이 빼앗으시는 것입니다.

 

전달자는, 자기 상식과 이성에 틀리더라도, 자기가 받은 것을 그대로 가감 없이 전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예언하고도, 자기가 이해/해석을 명확히 못 하지만

그 예언이 지시하는 그 사람은, 즉 예언의 수혜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언자가 이해가 되는, 그런 예언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 또한 하나님은, 사역자나, 그 사역의 미래에 대해서

정확하고 명확하게 예언하지 않으시고, 어렴풋이 보여주시는 이유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보는데요...

신자는 ‘믿음으로 살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신자의 가장 기본 원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뭐 복사판처럼 100% 환히 보여주신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 필요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흐릿한 ‘밑그림’만 보여주시고, 나머지 세부 사항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믿음이 더욱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그 예언으로 주어지는 큰그림/밑그림의 세부 사항 또는 각론은,

내가 믿음으로 매일매일 살아내야 하니까.

우리는 믿음의 삶으로, 그 예언(큰 그림)을 이루어 나갑니다.

 

예언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너무 물리치지도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당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 당신을 돕는 도구로, 은사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언의 은사를, 우리가 내 이기적/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할 때는,

즉, 예언을 점집에서 점 보듯이 사용하려 할 때는,

우리는 쉽게 오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예언에 대한 신자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개인적 예언’은 언제나 성취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성취는 반드시 ‘받는 사람’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예언자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닙니다.

그 예언을 받는 사람이 협력하고 순종할 때,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예언을 받고도, 무시하고 살면,

그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신자의 반응’에 관계없이 성취되는, 큰 예언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

이스라엘이 70년을 마치고 귀환하리라는 예언 등,

그런 국가적인 큰 예언,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적 예언은

신자의 반응에 관계없이, 예언된 그대로 성취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개인적 예언 personal prophecy’에 대해 말씀드리는 중입니다.

‘개인적 예언’은, 반드시 예언의 당사자인 신자가,

그 예언에 협력하고 순종할 때.. 그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개인적 예언’은, 이루어질 수도 있고, 안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예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별하기 위해서는,

<예언자>를 분별하려 하지 마시고, <예언>을 분별하십시오.

Judge the Prophecy, Not the Prophet, To Determine the Validity of the Prophecy

 

많은 신자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는 설교를 자주 들었기 때문에,

선지자나 예언 사역에 대해, 보통은 부정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언이나 예언자를 분별하려면,

그가 전달하는 예언의 <내용, 컨텐츠>를 보시고,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즉, <예언자>를 보고, 예언의 진위 여부를 분변하는 것 보다는,

그 <예언의 내용>을 보고, 예언의 진위 여부를 분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더 안전합니다.

 

참 예언, 주님으로부터 온 예언은,

성경에 합치될 뿐 아니라, 예수님을 높이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합니다.

 

또한 예언자가 아직 초보수준인 경우

즉, 그는 예언의 은사를 받았지만, 아직 계발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 성숙도, 아직 미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예언의 내용>은 정확한데,

그의 단어 선택, 표현력 등이 부족해서,

사람들은 그 <예언자>를 보고서, <그 예언>을 무시할 수 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자기만 손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예언자(선지자)뿐만 아닙니다.

사도,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도,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처음에는 미숙할 수 있으며, 미성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일이 지나면서, 점점 자라가며, 성숙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언은, 때로는 전혀 의외의 인물을 통해서, 주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예가 얼마든지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언을 분변할 때는, 예, 반드시 분변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예언자>가 누구인가를 분변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것보다는 <그 예언의 내용>을.. 면밀히 기도하며 분별해야 합니다.

 

물론 <예언자>가 잘못 되어서, 잘못된 예언을 전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언자>가 엉뚱해도, 참된 예언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예언은, 반드시 ‘공명’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예언이 주어진 대상자, 그 수혜자는

반드시 그 예언에 공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의 감화로, 그 예언을 들을 때 ‘아멘!’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가 받은 예언은, 성령으로 받아서 확실한 것인데,

-그가 평소에 거친 말을 쓰는 인격자라서 ‘말을 거칠게’ 전달할 수도 있고,

-그가 평소에 말을 더듬는 사람이라서 ‘말을 더듬을’ 수도 있고,

-그가 평소에 화를 잘 내는 사람이라서 ‘막 화를 내면서’ 예언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이 말하는 스타일을 보면서 ‘아, 저건 아니야!’ 라고 하기 쉽지만,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예언의 전달자, 즉 예언자>를 보지 않고,

그 <예언의 내용, 컨텐츠>를 봅니다. 그리고 분변합니다.

 

그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메시지이면,

깨어있는 신자는, 반드시 공명을 일으키며, 공감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코 무시하지 않게 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가 완벽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만, 예언자에게 돌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그 예언자가 혹시 실족해서, 틀린 예언을 말할 때 말입니다.

 

그리고 예언의 은사를 받은 신자도, 자기가 혹시 틀릴까봐

그 은사를 땅에 파묻어 두지 마시고,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시고, 자기를 감동하시면,

반드시 예언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감동이 없으면, 절대 예언하지 마십시오.

오직 성령의 감동이 주어질 때만, 예언하십시오.

 

그 은사를 자꾸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더욱 성숙한 은사자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 경험 중에는, 그의 예언이 어쩌다가 ‘틀린’ 경우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할 때도 본의 아니게 틀리게 할 때도 간혹 있습니다. 늘 바른 말만 하지는 않습니다)

틀리면서 성장해 간다는 뜻입니다.

 

(P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