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은혜 P1 마13:44 ☞ 출처
◑값싼 은혜
제가 이번에 한국에 가서 집회하는 동안에, 거기서 한 신학생이
독일 신학자요, 목회자인 <디트리히 본회퍼 전집 7권>이 새로 나왔다고 소개를 해 줬습니다.
특별히 이 책은, 독일어를 그대로 한글로 번역한 것이어서,
원문의 의미를 더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책이라고 소개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전집 7권>을, 당장 구입해서, 미국에 올 때, 갖고 왔습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제가 주로 한 일은, 그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 책 가운데, 제5권의 제목이 <나를 따르라>입니다.
5권 <나를 따르라>의 1장은, ‘값싼 은혜 cheap grace’입니다.
그 제목이 제 눈길을 끌었고, 그래서 저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그 책을 읽었습니다.
이 시간에, 제가, 그 내용을, 여러분께 소개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최대의 적이다.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철천지원수다.
오늘날 기독교계에 가장 오해받고 있는 신학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은혜이다. 소위 ‘값싼 은혜’라고 불려지는 가르침이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무방비상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은혜를 매우 값싸게 취급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은혜를, 단순히 어떤 교리나 이론으로서 받아들인다.
그들이 받아들인 은혜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재창조의 능력이나 생명력이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은혜를 ‘죄의 용서’에만 국한시켜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께서 베푸시는 용서하시는 은혜를
자기가 정신적으로 인정하고 동의하기만 하면,
그 은혜는, 자신의 죄를 용서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에 대한 매우 위험한 오해이다.
은혜에 대해서 이러한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 죄를, 값싼 은혜로, 거침없이 덮어씌우기 때문에
깊은 회개의 경험을 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이러한 상태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죄와 세속으로부터 구원받고자하는
간절한 마음도 솟아나올 수 없으며, 가난한 마음으로 의를 사모하지 않게 된다.
정말 은혜가 값싼 것이라면, 우리는 깊은 자기 기만 속에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된다.
‘값싼 은혜’가 그대를 덮어주고 있으므로, 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구태여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값싼 은혜’아래에서는, 경건한 삶을 살기 원하는 척 할 필요도 없다.
은혜가 그대를 덮어주고 있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필요도 없다.
하나님의 은혜가 온 세상을 덮어주고 있으므로, 그대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도 된다.
어차피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부흥이 뭐가 필요하며, 개혁이 뭐가 필요한가?
구태여 세상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것을 하거나, 조금 다른 길을 가는 척 하지 말아라.
십자가에서 베풀어주신 은혜가 그대를 구원하기에 넉넉하지 않은가?
세상에서 오는 유혹과 시험을 극복하기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인내해야 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애쓰는 대신에,
그 분의 은혜가 주는 위로와 위안을 즐기라고 말하라.
바로 그것이 ‘값싼 은혜’가 의미하는 바가 아닌가!
죄를 버리고, 통회하는 죄인을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 자체를 의롭다(은혜 아래서 죄는 별 거 아니다)고 여기는 은혜를 가리켜
‘값싼 은혜’라고 부르고 있지 않는가.
진정으로 회개한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그대로 품고 있는 죄인에게도, 은혜가 구원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치는 것은
‘값싼 은혜’가 아닌가?
물론 ‘값싼 은혜’도 죄의 용서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죄의 올가미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지 못하는 기만이다.
‘값싼 은혜’는 우리의 마음을 경건하고 은혜스럽게 변화시킬 수 없으며,
마음속에 자기 죄와 이기심을 그대로 다 붙잡고 있는 죄인들 위에
흰색 보자기를 뒤집어씌움으로써,
회개하지 않은 죄인을, 의인으로 위조하는 허무한 포장지에 불과하다.
‘값싼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의를 부여하게 하는
자기 기만이다.
오늘날 이 ‘값싼 은혜’에 대한 가르침은,
기독교가 당면하고 있는 각종 참상을 만들어내는 장본인이다.
‘값싼 은혜’는 참된 회개 없이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진리에 대한 확신과, 자기 행동에 대한 개혁이 없이도,
세례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고,
아무런 고백도 없이, 성만찬 예식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값싼 은혜’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요구하지 않는 은혜이다.
‘값싼 은혜’는 십자가 없는 은혜이다.
그리고 ‘값싼 은혜’는,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의 의미와, 그 (값비싼) 가치를,
값싼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면 <값비싼 은혜>는 무엇일까요?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공로, 그 희생의 대가가 너무 고귀하고 값비싸기 때문에
그 희생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된 우리에게.. 값비싼 은혜가.. 정말 값없이, 즉 값싼 은혜처럼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값비싼 은혜를 받은 사람은, 아래와 같은 증거가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 ‘값비싼 은혜’는
그것은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은 것을 말한다.
그것을 진정으로 사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팔게 된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춰진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하고 숨겨두고
기쁨으로 돌아가서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느니라.
은혜의 참된 가치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물질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뜻함)
나아가서 자기 자신마저도 버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값비싼 은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두가 다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은혜가 ‘값싼 은혜’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은혜가 ‘값비싼 은혜’가 되는가요?
그것에 대해, 이 설교 시간에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이 내용은 다음 호에 나옵니다.)
◑‘값싼 은혜’가 가져온 재앙들
※<값없이 주신 은혜>, 더 줄여서 <값 없는 은혜>를, 우리가 <값싼 은혜>로 잘못 적용했습니다.
원래는 <값비싼 은혜> 인데, 그것을 <값 없이>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값싼 은혜>로 잘못 적용했습니다.
도대체 그 ‘값싼 은혜’가 한국교회에 가져온 어떤 재앙들이 있는지,
한 번 들어보십시오.
참고로, 이 말은, 본회퍼가 그 당시 타락한 나치 정권에 무기력했던
독일 교회를 두고 했던 말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 상황에 그대로 적용해도 놀랄 만큼 똑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타락한 독일 교회, 그래서 우리가 비난하는 그 독일 교회와,
오늘날의 우리의 교회의 모습이 얼마나 정확하게 일치하는지요?
“만일 은혜라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한낱 지식에 불과한 것이 된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곳에 가게 되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죄를 범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가
우리의 죄를 덮어준다고 믿게 된다.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설교를 하는 목사나 교회를 좋아하게 되고,
마르틴 루터가 말했던 ‘오직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는 말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을 붙들게 되며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 이전의 상태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가 자기를 덮어주고 있다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살게 된다.
은혜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하여, 교회는 깊은 세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교회와 세상 사이에 차이가 없어졌으며
그리스도인과 세상사람 사이의 극적인 대조가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처럼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세상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에 가는 것으로써
자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충분히 수행했으며,
그것으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았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량으로 생겨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은혜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이요,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가져온 참상이다.
▲그러므로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값싼 은혜’가,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의무와 직분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서 나타나는 필연적인 대가를,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값싼 은혜’가 만들어 놓은 결과들을 보면서,
엄숙한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누가, ‘값싼 은혜’의 가르침 때문에, 멸망으로 들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그 책임을 질 것인가?
누가, 그 멸망 받는 영혼들을 책임질 것인가?
(본회퍼는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내립니다.)
‘값싼 은혜’의 말씀은, 그 어떤 행위의 계명보다도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파멸로 몰아갔다.”
마지막 문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값싼 은혜’에 대한 확신, 가르침, 전파는,
그 어떤 행위의 계명보다도, 즉 자기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율법의 가르침보다도,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파멸로 몰아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를 지금까지 받아왔고,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은혜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은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가 ‘값싼 은혜’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는가? ..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가요?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도저히 돈을 주고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평생을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절대로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냥 주셔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도저히 받을 자격이 안 되고, 받을 형편이 안 되는데,
그래서 그냥 주시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 죄의 결과로 반드시 영원한 형벌로 가야 되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면제해 주시는 자비를 받았습니다.
은혜는, 그 단계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가 아무리 평생을 다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영원한 생명을 그냥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기 때문에
아무런 대가없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값싸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너무나 아무 것도 아니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가서, 집회를 하는데,
어떤 가난한 성도님이, 제게 양말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양말을 특별히 까다롭게 가려서 신는 체질입니다.
아무 양말이나 신으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므로, 면양말로, 제 발에 딱 맞는 것만
어렵사리 시장에서 골라서 신습니다.
그런데 제가 양말을 선물로 받고서, 처음에는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잠시 후에 깨달았습니다. ‘아, 이렇게 목사가 타락할 수 있구나!’
그 양말을 선물하신 분은, 너무나 가난하신 분이신데,
날마다 양말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건건이 생계를 연명해 가시는 분이신데,
자기가 일하는 회사에서 생산한 양말을, 제게 선물로 가져다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제게 양말을 선물한 관계로, 몇 시간이나 노동을 더 해야 했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 양말을, 주위 사람에게 그냥 선물로 줘 버리고,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 분의 성의를 완전 무시하려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제가, 그 선물하신 분의 성의를 알게 되자,
제가 그 양말을, 미국까지 가져와서, 매일 신고 또한 쳐다보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양말 얘기를 드리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우리에게 거저 주어졌지만, (우리가 너무 쉽게 그저 받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 은혜를 그저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불해야 했던 대가는, 그것은 엄청난 대가였다는 것입니다.
제게 양말을 선물하신 성도님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셨다는 것입니다.
본회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비싼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유일한 참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하나님에게서, 그 아들의 목숨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위한 값으로,
자기 아들의 목숨을 아깝지 않다고 여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그 은혜가, 우리에게 그저 주시는 은혜,
아니 우리에게는 값비싼 은혜로 여겨지는 그 은혜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 분은
이 세상에서, 아니 온 우주를 통 털어서
가장 값진 것을 대가로 지불했다는.. 그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요,
가장 사랑하시는 그분의 아들 예수님이
인간이 고안해낸 도구 중에, 가장 고통스럽게 사람을 죽이는 그 십자가에서
고통 중에 죽으시는 그 과정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 고통을 감수하셔야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래야만 그 은혜가 우리에게 그저 주어지기 때문에
안 그러면 그것을 우리가 지불해야 되니까,
우리는 그것을 지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것이, 이 값비싼 은혜를
어떻게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이 은혜가
잘못 전달이 되어서
정말 본 회퍼의 책에 보면,
마치 창고에 무한히 저장이 되어 있어서, 필요하면 아무 때나 갖다 써라
그게 은혜라고, 지금 우리가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널려 있다. 널려 있는게 은혜이다.
필요하면 그냥 갖다 써라!’
그게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럼 참 은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에서 설명했습니다만,
참으로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보화가 숨겨진 밭을 사는 농부처럼,
정말 참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주님께 무한 헌신을 하게 되며, 주님의 뜻과 자기가 받은 구원을
대단히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값싼 은혜’를 받은 사람이 변화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이, 그 은혜로 변화되겠어요?
값싼 은혜는, 절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은<나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여기서부터,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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