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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전해야 부흥 온다 2 / 케이쓰 다니엘

LNCK 2013. 2. 25. 13:31

 

 

◈심판 전해야 부흥 온다 2       욘3:1~10          출처보기, 편역

 

◑1. 조나단 에드워즈가 전한 메시지는 <심판>

      (1703~1758)                        *1차 대각성 운동 시기.

 

만약 하나님이 한 사람을 발견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이 전달하기 원하시는 심판과 경고의 메시지를 타협하지 않고 전달하되,

그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할 때,

그 한 사람을 통해, 듣는 청중들의 마음은 완전히 깨어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 그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요나 같은 그 한 사람만 준비시키셔도,

오늘날 세상으로 나아가던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니느웨 도성이 하나님께로 그 방향을 돌이킨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을 향해, 그 방향을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미국 역사 가운데, 니느웨를 회개시킨 요나 같은 한 사람을 찾는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를 들 수 있습니다.

에드워즈는, 당시 미국의 사회적 상황에 대해, 너무나 마음이 상했습니다.

 

※당시 사회는, 술중독자가 득실거리고, 범죄가 만연하고, 무법 천지였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집 바깥출입을 일절 못했다고 합니다.

미국 초기 사회가 대단히 살벌하고, 위험했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회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회와 신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마음대로 죄를 짓고, 그 가운데 사람들은 점점 삶의 희망을 잃어 갔습니다.

죄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교회는 있으나마나 했습니다. 교회가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건국 초기의 당시 불안한 사회적 상황에서,

교회마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두려워하면서도,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습니다.

 

그래서 홀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는 너무 절망한 나머지, 사흘 동안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역사가 그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는 절박한 현실을 보면서

사흘 동안 잠도 한 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그는 사흘 동안이나

그저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하며 보냈습니다.

흐느끼며, 탄식하며, 절망하며 또한 부르짖기도 하면서.. 그렇게 밤낮 사흘을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 제게 뉴잉글랜드를 주시옵소서! 뉴잉글랜드를 제게 주시옵소서!”

                                                             *뉴잉글랜드: 미국 북동부지방, 초기 미국 이민자들의 정착지.

 

▲그렇게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하던 중, 그의 곁에는 종이와 펜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성경책도 펴져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눈에서 흐른 눈물은, 종이와 성경책 위로 떨어져 번졌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간절히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이 백성들을 주께로 돌이킬 메시지를 제게 주시옵소서!”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백성들을,

하나님께 돌이키게 하려면,

강력한 설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에드워즈 목사는 철저히 인식하고,

그 계시적인 말씀을 위로부터 부어주시기를,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에드워즈 목사의 손은 바쁘게 성경의 책장들을 넘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눈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하셨고,

그는 성령으로 깨달아진 말씀들을, 종이 위에 바쁘게 적어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깊이 빠져서, 회개하고 중보기도하고 있던 에드워즈 목사는,

그러던 중에 말씀을 받아서 바쁘게 설교문을 작성한 그는, 이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설교단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자기 입술을 열어 말씀을 전하기도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먼저 그 예배 자리에 임재하셨습니다.

설교도 시작하기 전에, 벌써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보통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들어오면, 자리에 앉아야 되는데,

그들은 회중석에 앉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에드워즈 목사는, 성격상 은사적이지 못합니다. 반대로 대단히 이성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타고난 성격이 은사주의적이라서,

자기 성격적인 뜨거움과 열정으로 밀어붙이면,

오히려 그게 성령사역에 도움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드워즈 목사는, 성격적으로 은사주의와 오히려 정반대적입니다.

 

또한 그는, 뭐 어떤 은사적인 분위기를 연출할만한 재간도 없었던 분입니다.

심지어 그는, 그 날 설교하면서, 손을 위로 한 번도 쳐들어 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꼿꼿이 서서 설교했다는 뜻입니다. 은사적 분위기를 임의로 연출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날 회중들은 에드워즈 목사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작성한 설교원고를 눈앞에 당겨서 읽고 있었기 때문에,

회중들이 강대상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강대상과 그 위에 놓은 촛불과

그 침침한 불빛에 비치는 그의 설교원고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날 저녁, 성령은 놀랍게 그곳에 역사하셨습니다.

그는 설교문을 그냥 또박또박 읽었을 뿐인데도,

하나님은 그곳에 모인 회중에게, 놀라운 부흥과 영적 각성을 부어주셨습니다.

 

저 Keith Daniel은, 개인적으로 이런 에드워즈 목사의 태도를 좋아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간절히 기대하면서도, 그 영광을 촉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도 하나님처럼,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높이지 않았습니다.

음성이나 제스처로 자기를 과장하거나, 분위기를 연출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그저 보통 사람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간절히 바랐는데..

하나님은 그를 통해, 나타나 주셨습니다. 그 영광을 드러내시고, 임재하셨습니다.

 

▲에드워즈 목사는 “뉴잉글랜드를 제게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본문의 요나 선지자가 외친 메시지와 똑 같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 설교 제목은 “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죄인”인데, (1741년, 밑줄 클릭)

그 설교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설교 이후, 가장 훌륭한 설교로 역사에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여러분들은 지금 미끄러운 곳에 서 있고, 계곡 사이에 걸쳐 있는

다 부서지고 낡은 다리 위에 서 있는데,

아직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손이 여러분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나 하나님이 그 붙드신 손을 놔 버리는 날이 부지불식간에 닥칠 터인데,

그러면 여러분들은, 다 심판과 지옥의 불 가운데 떨어지게 된다’는,

임박한 <심판>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에드워즈 목사님이 설교문을 한 줄씩 또박또박 원고를 보며 읽어 내려가자,

회중들은 막 자기 얼굴을 떨구기 시작했습니다.

회중석에 편안히 앉지도 못하고, 의자 끝에 걸치고 겨우 앉았습니다.

어떤 이는, 교회 기둥을 붙잡고 겨우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함께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평생 교회를 다녔으나, 한 번도 동요된 적이 없었던 신자들이,

그날 저녁에, 다들 마음이 동요되고, 깨어지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심판>에 대한 메시지가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회중들은, 그 심판이 자기에게 그대로 임할 것이라 생각하니,

자리에 가만히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모두가 몸을 비틀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애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그날 에드워즈 목사의 설교 내용은, 어떤 협박이 아니었고요,

또한 그 설교는, 18세기 미국 그 지방 회중들에게만 적용되는 내용도 아니고요,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다만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해 있기 때문에,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그저 편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편하게 산다고, 그 진노가 임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1’. 조지 휘필드가 전한 메시지도 <심판> 

       (1714~1770)                                 *에드워즈와 더불어 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역.

 

조나단 에드워즈로 점화된 부흥과 영적 각성의 불길은

삽시간에 뉴잉글랜드 지방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에드워즈 목사의 불길을 이어받아,

뉴잉글랜드 지방을 넘어서, 미국의 더 넓은 지역으로 확산시킨 사람은

11년 아래 젊은 부흥사 조지 휫필드였습니다. ☞조지 휫필드

 

 

휫필드가 전파한 메시지의 주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심판>이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휫필드는, 지역을 순회하면서, 강단에 올라서자마자 외친 메시지는 한결같이

그 주제가 <심판>이었습니다.

휫필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강단에 올라가기도 전에,

벌써 회중들은 뒹굴면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휫필드도, 하나님의 사람이라서, 하나님의 임재가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2. 찰스 피니가 전한 메시지도 <심판> 

      1792-1875                                       *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의 주역.

 

에드워즈 목사가 최초로 점화시킨 부흥과 영적 대각성의 불길은,

부흥사 휫필드를 통해서, 중원의 불길처럼 미국 대륙의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약 50년쯤 지나서, 찰스 피니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지적하고, 강력한 회심을 촉구하는 피니의 부흥 방식을 두고서

당시 기독교계 일각에서는, 극단적이라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피니만큼, 수많은 영혼을 회심시킨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피니가 설교한 주제가 무엇일까요?

그것도 바로 <심판>이었습니다.

 

물론 피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그 주제는 항상 하나로 귀결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메시지인데,

그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구령의 열정으로 그 메시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미국에는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휫필드, 찰스 피니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마치 요나가 니느웨 성에 가서 <심판>을 외친 것처럼,

당시 미국 사회에서 <회개치 않으면 심판이 온다!>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은, 그런 소수의 요나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8세기 중엽, 에드워즈와 휫필드를 통해 일어난 부흥을 <1차 영적 대각성운동>,

19세기 중엽, 찰스 피니를 통해 일어난 부흥과 영적각성을 <2차 영적 대각성 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통해서, 미국의 (일부) 대중이, 주께로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찰스 피니의 부흥운동은, 그의 서적을 통해서, 남아공과 앤드류 머레이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남아공의 화란개혁교회에서, 피니의 글이 읽혀지던 시절에,

당시 젊은 청년이었던 엔드류 머레이가 울면서 자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시작된 부흥은, 2주 후에, 남아공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그 나라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남아공뿐만 아니라, 미국의 부흥운동이 다른 여러 나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별히 19세기 말~20세기 초는, 미국에서 <학생자발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미국에서, 해외선교자 자원자의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나서,

미국에서 일어난 부흥을, 온 세상으로 전파하는, 한 알의 밀알들이 되었습니다.

 

 

◑3. 무디의 부흥 운동 (3차 영적 대각성 운동)

       (1837~1899)

 

피니의 부흥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기도의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흥운동의 유산은, 또 약 50년을 지나서, 무디에게로 바통이 넘겨졌습니다.

*참고로, 동시대에 영국에서는 찰스 스펄전이 활동했습니다. (1834~1892)

 

무디의 부흥운동에 대해서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분분합니다.

다만, 과거에 부흥의 메시지는 ‘격렬한 어조의 심판의 메시지’,

그래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었다면,

 

무디의 부흥운동 때부터, 그 강도가 차츰 희석되기 시작했습니다.

무디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전파했지만,

그 심판의 근거에 있는 <사랑>에 대해서, 더 강조적으로 전파했습니다.

 

※참고로, 무디의 메시지는, 청교도 전통적 메시지에서 많이 현대화 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디의 메시지는, 에드워즈, 휫필드, 피니의 메시지보다,

오늘날 현대에서 많이 연구되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무디는, 설교가라기 보다는, 열심이 특심한 추진가, CEO형 행정가였습니다.

그래서 무디의 집회가, 과거의 집회와 다른 특징은 ‘대형화’에 있습니다.

사실 무디 이전에는, 대형집회가 거의 없었고,

그저 조그만 교회 안에 꽉 차게 모이는 집회였습니다.

 

그러나 무디 때부터, 대형천막집회, 대형체육관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아마 그 시기에 전기의 발명이, 무디 시대에, 이런 대형집회를 또한 가능하게 해 주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무디의 부흥운동의 공과를 논하자면,

-대형집회 시대의 문을 연 점, 그래서 대량의 ‘결신자’를 얻었다는 점.

-크로스비, 생키 등의 복음성가, 찬양 집회를 시작한 점,

-당시 학생자발운동(SVM)과 맞물려, 많은 해외 선교사를 파송한 점 등이

그의 <공>으로 돌려진다면,

 

-심판, 회개, 회심 메시지의 약화로, 결신자는 많았지만, 회심자는 퀘스천.

-지나친 종말운동(19세기 말에 종말론 흥황)의 강조에 있었다는 것이

그의 <과오>로 돌려집니다. -이 단락 편집자 글

 

▲이제 무디의 부흥운동이 끝나고, 소위 제3차영적 대각성 운동이 끝나고,

20세기 초엽부터는 <성령운동에 의한 부흥운동>이

미국을 위시하여, 인도,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20세기는, 내내 ‘성령운동, 은사운동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후략)

 

▲마치는 말.

오늘날 우리 시대가,

다시 1차, 2차 영적 대각성 시대로 돌아가려면

과거에 우리가 잃어버린 메시지를 다시 회복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관한 메시지이며,

그러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요나와 같은 선지자들이, 오늘날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부흥과 영적 대각성을 진정으로 갈망한다면!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 에드워즈 목사처럼, 부흥을 갈망한다면,

‘오 하나님, 제가 어떠한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저를 부흥의 도구로 써 주소서!’ 라고, 절망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저 Keith Daniel 역시도 부흥을 갈망하는 기도를, 계속 드려왔습니다.

그리고 미국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그런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또한 그 부흥이, 저로부터 시작되기를 기꺼이 바랍니다.

비록 자격이 안 되더라도, 제 삶을 주님의 제단 앞에 기꺼이 드리기 원합니다.

 

*이 메시지를 들어보니, Keith Daniel이 부흥과 영적 각성을 위해,

계속 기도해 왔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이런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편.

 

주님 제가 드리는 이 헌신을 받으시고, 이 제물(자기)을 성결하게 하셔서,

부흥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제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흥의 도구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제가, 오히려 ‘부흥의 방해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당신의 얼굴을 우리로부터 돌리지 마소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 우리의 모든 노력과, 우리의 모든 전도, 우리의 모든 기관과 활동들이

지금 미국과 서구에서 일어나는 마귀의 활발한 역사를 막을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 그러므로 이제 우리 가운데로 행하소서.

우리들을 깨뜨려 주시고, 더 깨뜨려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촉범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를 깨뜨리사, 우리가 겸손한 자세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편견을 가진 자들에 대해서도, 겸손히 말씀을 전파하게 하소서.

 

하나님, 미국을 우리에게 주시든지, 아니면 우리가 죽게 하소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우리의 말과 행실의 불일치와, 우리의 얄팍함과, 우리의 위선과,

특별히 말씀 사역에 있어서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던 모든 죄악들을.. 그 피로 씻어주소서.

말씀을 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보다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 했던 죄들을.. 씻어주소서.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평가를 듣고 싶어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평가를 듣는 것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구미를 맞춘 것을 용서해 주소서.

 

오 하나님, 우리 나라가 망해 가는데, 우리는 금식하지도 않았고,

"부흥을 가져올 메시지를 주시옵소서"라고 간절히 울며, 아픈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고, 밤에 잠만 쿨쿨 잔 것을 용서하소서.

 

주여, 저희를 도우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우리를 좀 더 깊은 곳으로 인도하소서.

우리에게 정결한 마음을 주시고, 주님의 보혈이 우리 몸과 마음속 곳곳을 흐르게 하소서.

 

오 하나님, 우리에게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가 범죄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가르쳐서, 그들이 자기 길을 돌이키고, 주님께 돌아오도록 하게 하소서.

 

우리 마음과 동기를 정결하게 하시고, 깨끗하게 하소서.

주님, 우리에게 임하소서.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오소서.

그 어떤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우리를 준비시키소서.

우리가, 우리나라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여, 우리의 생명을 걸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Break us that we would stand and preach in brokenness and great humility,

even to people we're prejudiced again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