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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 윌커슨

LNCK 2013. 2. 26. 14:40

www.youtube.com/watch?v=d1yYZWZ-fSM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                  시27:1~8                         출처보기

 

David Wilkerson - Seeking the Face of God - Part one

 

 

오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으라’입니다.

시편 27편 7~8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8절이 제 메시지의 주제입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이 말씀을 축복하시고 기름 부어 주십시오

마음을 열고 이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시편 27편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7

 

다윗은 단 한 가지를 추구하는데 전부를 바쳤습니다.

4절에는 그가 무엇에 전부를 바쳤는지 나옵니다.

 

그는 삶을 돌아보고 단 한 가지 문제, 한 가지 열망에 집중합니다.

 

자신의 미래에서 이보다. 더 원하는 것은 없고

그의 삶에서 이보다. 더 원하는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생에 한 가지 목적, 생에 한 가지 열정이 무엇인가 질문했을 때

이런 대답을 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유럽에 한 선교사가, 제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기도해 드릴까요?”

 

“저는 천만인의 영혼을 주님께로 돌이키고 싶습니다.”

 

멋진 생각이지만, 다윗이 가진 소원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남은 생에 성취하기 위하여 추구할 한 가지 목적은 무엇입니까?

시27:4절은 이렇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그는 왕좌와 소명을 버리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으로 옮겨 살겠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영적인 무엇인가를 보고 있습니다.

그의 영 깊은 곳에 갈망이 있습니다.

 

그는 금욕주의자도 은둔자도 아닙니다.

그는 전사였고,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폐쇄적인 삶을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처럼 영적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그는 인간이 생애에서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어 본 사람입니다.

그는 권력과 지위와 명예를 경험했고, 그는 군중의 환호를 맛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은 수만의 적을 죽였다고 칭송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고, 하나님을 향해 목말라했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었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가 아직 갖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대군이 그를 치러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시편 27편을 썼습니다.

 

적군은 침략해 오며, 그를 삼켜버리겠다고 맹세 했습니다. 시27:2

적들은 ‘우리는 너를 삼켜버리겠다, 너를 사로잡아 먹어버리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진정으로 만족시키는 것,

주님을 그전보다 더 깊이 알기 원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끊임없는 주님과의 연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주님과 연합하지 않는 인생은

다윗처럼 왕이 되어도, 많은 인기와 명성을 얻어도..

결국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 인기와 명성을 얻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으로 옮겨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주의 장막이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이며, 기도의 집이라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장막, 성소)에 갔고, 거기서 불만족스러운 무엇인가를 봤습니다.

 

그는 제단과 희생제물을 봤지만, 그런 것들보다

더 심오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윗이 적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그는 ‘주는 나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27:1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고

여호와가 자신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수백만 명의 경건한 기독교인들이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내적으로 만족되지 않는 갈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해갈되지 않는 영적 갈망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더 깊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영광, 열정 등

남은 생을 다. 바쳐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저 Wilkerson의 유일한 목적이며, 유일한 야망입니다.

 

제 목표는 단 한 가지로 좁혀집니다.

저는 완전한 주님과의 연합이 어떤 것인지 알기를 원하며

주님을 언제든지 부를 수 있고, 제 삶이 기도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집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싶습니다.

제 삶 자체가 기도가 되길 원합니다.

 

저는 승리도 알고 승리를 위해서 기도도 해왔고, 하나님의 손도 경험했지만

제가 경험한 이 모든 기름부음과 구원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견고한 것, 흔들리지 않는 것,

방해받지 않는 하나님과의 동행-그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제가 믿기로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죽은 의식들과 세리머니 들에 지쳤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에 대해 말하지만

다윗은 그 양이 누구인지 알기를 원했습니다.

 

타오르는 성전 등불의 의미와 제단에 피워진 불들이 무엇이며

그 뒤에 진정한 실제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 이렇게 간구했고, 하나님의 집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죽어있기에,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합니다.

성전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와서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그것들은 죽은 문자이며

제사장들이 선포해도 그것은 단순히 ‘지식’으로, 생명은 없었습니다.

 

수만 명이 전 세계에서 제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들이 털어놓는 가장 큰 고민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죽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 젊은 여인은, 설교를 들어보면

그저 연구해서 만든 것인지, 기도를 통해 받은 것인지.. 척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가장 엄하게 성경적인 메시지조차 기도로 준비되지 않았다면

설교가 마른 풀 같을 수 있고.. 성도들은 그런 사실을 느낍니다.

 

▲다윗은 무엇인가 상실되었고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것은 죽음이고,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서 낙담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결단했습니다.

 

‘나는 남은 삶을 이렇게 만족스럽지 않은 영적인 상태로 살지 않겠다.

더 깊은 것이 나를 부르고 있다.

 

저 휘장 뒤에 내가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있다.

나는 내 삶에서의 목표, 열망, 소원을 정했다.

 

그것은 주님의 임재 가운데 머물러 그분을 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는 주님이 누구신지 알며, 그분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

 

그래서 다윗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집, 장막이 기도의 집이라면

내 집을 기도의 집으로 만들고,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찾겠다..라고 결단했습니다.

 

▲이런 것을 당신의 목회자나 그의 설교로부터 얻을 수가 만약 없다면,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의 심오함을 찾으려고 하십시오.

 

계속 같은 의식ritual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삶에 지쳐있지만,

아직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성경읽기를 게을리 하며 기도를 하면

모든 것이 종교의식 ritual이 될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아래 있고 기도하며

언제나 영원한 한 가지 즐거움-주님의 재림 때까지

 

나를 지키며 영원에 이르게 하는 한 가지는

주님과의 장애가 없는 친밀한 관계입니다.

 

▲성경은 모세가, (수 천 년 후에 오실) 그리스도의 날을 보고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관련글/ 모세가 기다린 구원자

 

다윗도 메시아의 날을 바라보고, 그 위대한 메시아의 얼굴을 갈망 했습니다.

모세와 다윗의 신앙 목표는,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집으로 가서 기도합니다. 그것이 7절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

 

하나님, 저는, 당신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은 3가지 단어로 응답했습니다.

 

다윗은 ‘제 안에 굶주림이 있으니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대적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고 무수히 많은 적이 있지만

하나님 한 번만이라도, 당신의 마음을 제게 보여주십시오.

당신을 알고 싶고 보고 싶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렇게 응답하셨습니다.

‘내 얼굴을 구하라’ :8절.

 

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다윗은 하루에도 여러 번 의식적으로 기도 해왔습니다.

 

성경공부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도 좋지만, ‘하나님의 얼굴’은 그분의 부르심입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그분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떻게 인간을 대하시는 지,

그분의 성품은 무엇인지 알아서,

주님과 시간을 보내며 그분을 구하며

주님이 하시는 것처럼 아내와 친구와 동료를 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는 것은, 그저 기도만 하라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당신의 삶에서, 완전히 주님을 반영하는 삶의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형상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다윗은 주님의 얼굴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욥은 하나님의 그분의 얼굴을 숨기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숨기셨으면 가서 찾으라고

친구들은 욥에게 충고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얼굴이 완전히 다 계시된 것이 아니었기에 힘든 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얼굴이며, 하나님의 형상의 표현입니다.

 

조각되고 새겨진, 같은 요소를 가진,

같은 영광을 가진 육을 입으신 하나님입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보고 만지는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주님이 사람의 형상과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당신과 나의 고통을 느끼십니다.

그분도 당신과 저처럼 시험당하셨으며 우리처럼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인간이 하나님께 완전히 의존해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완전히 아버지를 의존하는,

방해 없는 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처럼 살면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천만인의 영혼을 구하는 것도 대단히 소중한 일이지만,

그 어떤 업적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며 살다보면,

천만인의 영혼을 구하는 일은,

또는 왕이 되어서 다스리는 일은,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일차적 목표는,

본문 시 27편에 다윗이 소원했듯이

또한 모세가 소원했듯이,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고, 그분과 함께 거하면서 친밀히 교제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