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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값싼 은혜 P2

LNCK 2013. 3. 1. 10:04

 

 

◈나를 변화시키신 하나님의 은혜                 고전15:9~10                   출처보기                  

 

*직전 회 값싼 은혜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   출처의 동영상 설교 의 19분부터 녹취)

 

◑1. 자기를 변화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바울

 

저는 제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 말씀의 의미가 남달리 제게 다가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 고전15:10

 

여러분, 이 말씀을 이해하시려면, 사도바울을 좀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는, 사도가 되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앞 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던 사람이고,

나는 사도라는 칭함을 받기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고전15:9

 

이게 무슨 뜻입니까?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그 일을 보란 듯이,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일에 목숨을 건 사람이요, 예수를 핍박한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의 인생에 있어서, 그가 바울이 될 수 있었던 놀라운 터닝 포인트는

그가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까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그렇게 경멸하고,

그렇게 핍박하고, 그렇게 감옥에 넘겼는데,

 

정작 그 핍박당함의 당사자 예수님은,

그런 사울을,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가 사실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요, 저를 사랑하는 사람을, 저도 잘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를 핍박하고 미워하면요, 그를 사랑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그 원수를 사랑하려고 해 봤는데, 그게 정말 쉽지 않고, 정말 어렵더라고요.

여러분도, 그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자기가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은,

‘나는 당신을 그렇게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이제까지 쫓아다녔는데,

어찌하여 당신은 나를 사랑하십니까?’

 

지금까지 사도바울은, 자기가 행한 일을 생각해 볼 때,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대해주시면 안 됩니다.

 

적어도 당신은 제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하시든지, 뺨을 한 대라도 때리시든지 ..

어떻게 당신은 저를 그렇게 대하실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완전히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레미제라블'이 생각납니다.)

 

 

◑2. ‘그 은혜가 헛되지 않게’ 충성한 바울

 

뿐만 아니라, 사도바울은 여기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

 

▲여러분 이 말씀을 이해하시려면, 제 설명을 들어보십시오.

사도바울은, 다른 예수님의 제자들을 봤을 때, 자기는 사도라고 부르면 안 됩니다.

이것은 기본 양심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불러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과 함께 배웠던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울 자신은, 그들과 입장이 전혀 다릅니다.

자기는 예수님을 모르기도 했지만,

예수님께 행한 자기 자신의 소행을 생각할 때, 나를 사도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12사도들이 알면, 정말 큰일 날 일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에 12사도 중에 한 사람이라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예수님 그러실 수 있습니까? 저 자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습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저 자가 사도라고요? 그러면 우리는 뭡니까?’

그렇게 따졌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도라고 그렇게 부르기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니,

그냥 종이라고 부르셔도, 그것도 감지덕지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사도바울이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내가 더 많이 수고하고, 더 열심히 예수님을 증거한 이유는,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나는 헛되게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어떤 은혜인데, 내가 그 은혜를 헛되게 받을 수 있겠느냐?

나는 이 은혜를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평생 사역의 원동력이요, 원천적인 힘의 근원이었습니다.

평생 그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으로..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예를 하나 듭니다.

 

한 번은 박보영 목사님이, 이제 육신이 너무 쇠약하셔서,

정말 건강이 그야말로 악화된 상태인데도, 그렇게 계속 집회를 나가시고,

그렇게 사역을 왕성하게 계속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제부터는 정말 쉬시고, 정말 건강을 돌보시지 않으면,

형님을 따르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형님이, ‘그렇다면 이제부터 내가 좀 쉬어야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박목사님은, 제 마음을 더 부서지게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자민 목사는, 일찍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가장 젊은 나이에

하나님을 섬겼잖아.

그런데 나는, 가장 인생의 황금기에,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나는 세상에서 죄와 어울려 살면서, 낭비해 버렸어.

 

내가 39세가 되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가장 억울했던 것은,

나의 인생의 황금기를, 세상에서 낭비해 버렸다는 사실이야.

 

이제 내가 이렇게 뒤늦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어찌 내 몸을 돌보며 쉴 수 있겠는가?”

 

제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그 뒤로는 쉬라는 말씀을 못 드렸습니다.

‘이렇게 귀한 마음을 갖고 계시는구나...’

 

▲사도바울은, 어찌 보면 그의 인생의 황금기에 가장 예수를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고 섬기고 있었을 때,

그는 가장 원수의 입장에 서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에 가담했던 사람입니다.

 

이제 그가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어찌 그가 그 은혜를 헛되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박목사님처럼) 사도바울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저 12사도들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되겠는가!’

여러분, 이제 이 본문 말씀이 좀 이해가 되실 줄 압니다.

 

◑3. 바울의 ‘은혜 신학’

 

▲사도바울은, 늘 핍박과 고난과 환란이, 그를 따라 다녔습니다.

성경을 보면, 모진 고통과 환란을 그는 다 겪었습니다.

죽음의 고비도 셀 수 없이 넘겼습니다.

 

그런 과정마다 사도바울이 고백했던 것은,

‘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이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로, 이 핍박을 감당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나의 나된 것도 주님의 은혜이지만,

지금까지 내가 다른 사도들보다 열심히 주님을 섬길 수 있었던 것조차도,

내 열심히 아니고, 내 노력이 아니고,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결론으로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했다>..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진짜 하나님의 은혜가 값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가 어떤 은혜인가요?

그는 결코 그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20:22절부터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내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

 

나를 변화시켰던 그 은혜의 복음,

오늘 나를 나 되게 한 그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는 데는,

내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나는 이 은혜의 복음을 전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은혜가 오늘의 나를 일으켰기 때문에

나는 이 은혜에 빚진 자요, 나는 이 <은혜를 헛되게 받을 수 없다>.

나는 이 은혜를 반드시 전해야 하는 자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모든 서신서를 통해서,

그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택함을 받은 것, 그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그가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적용

 

▲사실 저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사람이지만,

이 은혜에 대해서, 이렇게 제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번에 본회퍼의 책에서 ‘값싼 은혜’라는 단어가 제 시선을 사로잡고,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제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정말 세상에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학벌도 없고, 저는 가진 것도 없고,

정말 사람들에게 내놓을만한 것이, 진짜 아무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셔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토요일) 하루 종일,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바울처럼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할만한 그런 수준도 안 되고

자격도 안 되고,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께 죄송할지도 모르는,

그런 비천한 나이지만,

 

내가 이 말씀을 돌아보며, 제 자신을 돌아보니, 이게 정말 너무나 놀라운 것입니다.

진짜 저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오늘의 제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저를 건져주셨습니다.

 

정말 모든 상황에서, 저는 완전히 밑바닥,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이었는데,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구원해 주시고, 높여 주셨는지, 저는 잘 압니다.

 

그리고 목회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저를 미국으로 불러주셔서, 미국에서 어떠한 교육을 받게 하시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하시고, 어떤 영향을 받게 하시고,

그리고 정말 준비도 안 된 저에게, 하나님께서 교회를 시작하라고 그러셔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을 돌아보면,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또한 저는, 저만 아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저는 하나님을 무척 실망시켜 드렸습니다.

그건 하나님과 저만 압니다.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은, 이렇게 제게 은혜를 베푸실 수 있으실까요.

정말 하나님의 은혜는 제가 너무나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저를 그나마 이만큼 되게 한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만약에 제가 정말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제가 생명을 다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내가 하나님을 섬겼으니까, 하나님이 이 정도는 제게 해 주셔야죠.’

그럴 수 있는 입장이라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그러나 저는, 그럴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은혜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바울을 변화시키셨습니다.

그 바울을 변화시킨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 베드로도, 그 은혜로 변화된 것입니다.

베드로를 변화시켜서 베드로가 되게 하고,

궁극적으로 그가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는 누구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언제요?

그가 주님을 가장 어렵게 했을 때, 배신했을 때..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으십니까?

여러분이 가장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

하나님을 가장 실망시켜 드렸을 때,

 

‘이번만큼은 도저히 하나님이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것이다.’

여러분은 없습니까? 저는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정말 저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로 헛되게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세월, 우리 교회를 돌아볼 때,

어려운 관문이 많이 있었고, 고비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같이 지내오신 성도님 여러분들도 다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사람에게 그 은혜는 정말 값진 은혜고,

고귀한 은혜, 나를 변화시킨 은혜가 되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그 은혜는 ‘값싼 은혜’요, 널려 있는 은혜요, 있으나마나한 은혜요,

그 까짓 은혜, 다음 주에 가면 또 부어주실 건데..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할 수 없이

값진 은혜를 부어주신 이유는, 그 은혜로 우리가 변화되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없다면, 그 은혜는 가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한 번 솔직하게 돌아보십시다.

 

저희 교회와 교우들도, 우리가 지내온 여정을 돌이켜보면,

정말 어느 교회에 부어주신 은혜에 못 지 않게

우리 교회와 교우들에게도, 많은 은혜를, 지금까지 부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던 사람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요?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이,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요?

 

안타까운 것은,

다수는 쓰러져버리고, 영육간에 피폐된 분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실 것에 대해서 의심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분은 신실하시게, 언제나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문제는 그 은혜를 받은 우리가, 그 은혜가 값진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 가운데,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그 분은 가장 큰, 가장 값진 대가를 지불하셔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은혜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예배 중에 받은 은혜마저도, 교회 문을 나가면서, 잃어버리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나가시기 전에,

다이아몬드 1캐럿 하나씩 나눠드린다면, 그것을 받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시겠습니까?

 

(돈 얘기를 해서 죄송합니다만) 더 현실성 있게, 1백불 지폐를 한 장씩

봉투에 넣어서 나눠드렸다고 가정합시다.

그러면 그것 받아서, 아무렇게나 버릴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1백불만 해도, 어느 정도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값어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는 것이 이것이 보통 가치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고,

그 구원의 감사와 감격을 누릴 수 있고,

마음껏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것이 보통 은혜입니까?

 

북한에 가 보십시오. 회교 나라에 가 보십시오.

또 몸이 아파서 중환자실에 가서 누워 보십시오. 늙어서 저 산속에 요양원에 가 보십시오.

이렇게 교회에 나와서,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 보통은혜입니까?

 

어마어마한 은혜입니다.

지금 우리처럼, 마음껏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은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이 온 세상을 다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지금도 부어주고 계시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은혜인줄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무섭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너무나 익숙 되어져서, 거의 매너리즘에 빠져서

더 이상 새롭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나갔는데, 암환자가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 분의 얼굴이 천사 같아서, 머리카락이 다 빠지지 않았더라면, 암환자인지 모를 뻔 했습니다.

 

보통 암환자는, 굉장히 우울하고, 고통 가운데 기도를 받으러 오는데,

이 분은 얼굴이 해같이 밝았습니다. 암환자 같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이 제게, 자기는 지금이 자기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해가 퍼뜩 안 되어서, 무슨 소린지 물어보니

자기는 이 암 때문에,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이 암 때문에, 그 인생이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게 되었고,

지금 하나님이 내게 부어주신 은혜가 자기는 너무도 크고 족하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지금 죽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불만투성이고, 불평투성이고..

(물론 제가 여러분을 이해합니다. 경제가 어렵고, 살기가 어려운 것 다 이해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경제가 어렵고, 삶의 정황이 팍팍할 때는 역사하지 않고,

오직 내 삶의 환경이 술술 잘 풀릴 때만, 역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값진 은혜라면, 오히려 그 사람처럼,

가장 밑바닥이고, 가장 어려울 때, 그 은혜가 은혜로 여겨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마음에 있는 얘기를 좀 드렸습니다.

여러분, 저희는 요, 늘 은혜의 도가니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한 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우리가 여기서 안주할 수는 없습니다. 더 큰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매 순간순간, 우리에게 주신 은혜, 그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받지 마시고, 그 은혜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다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