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Z-D7uqf2Vgw
◈당신의 통근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살전5:17 출처보기
Don’t Undersell Your Commute by Jonathan Parnell, 대강 번역
▲1. 플레이벨
Flavel은 묵상과, 자기를 돌아봄과, 기도의 시간을 오래 가진 사람인데,
하루는 그가 특별히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말안장 위에서 조용히 묵상을 하다가,
(물론 말을 빨리 달리진 않았겠죠? 아마 말이 걷는 속도였겠지요. 어쨌거나)
그는 마치 ‘에스겔이 생수의 강의 환상’처럼,
처음에는 발목까지, 그 다음에는 무릎까지, 허리까지,
그 다음에 헤엄할 정도로 깊은 물이 되었듯이
플레이벨은, 말을 타고 가다가.. 깊은 은혜의 강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플레이벨은, 자기 마음이 점점 더 하나님께 집중되어지고,
그러면서 천상의 황홀한 기쁨을 더욱 더 넘치게 맛보게 되고,
그래서 이 세상의 시각과 감각과 염려를 다 잃어버리고,
오직 자기 관심이, 하나님께만 집중되어졌던.. 그 은혜의 시간!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플레이벨이 말을 타고 가면서..
주님과 깊은 친밀함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식으로 말하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깊은 기도의 골방에서나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주님과의 친밀함, 주님의 깊은 임재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당신의 통근시간을 허비하지 마시라>인데,
영어로 Don’t Undersell Your Commute입니다.
통근시간이 값없는 것으로 여기고, 헐값에 팔아넘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통근시간도 소중히 쓰면,
주님과 친밀한 교제, 주님의 깊은 임재 속으로,
우리가 빠져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꼭 말을 타야 된다는 뜻은 아니고요, 걸어가면서도 가능합니다.
어떤 일을 보기 위해, 길을 가면서도.. 그들은 ‘신앙의 고삐’를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그랬잖아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이, 말을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서도,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을 대면한 그 소중한 경험을
그들이 글로써 남겨 놓았습니다.
위에서 플레이벨의 예를 들었는데, 두 사람의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2. 조나단 에드워즈
말을 타고 가다가, 주님의 임재를 경험한 또 중요한 사례가 있지요?
우리가 다 들어본 적이 있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1737년, 조나단 에드워즈는 말을 타고 숲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적한 숲속에서 말에서 내렸습니다.
자기에게 은혜가 임하면서, 기도와 묵상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 숲속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환상을 보고서,
완전히 압도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내가 그날 숲속에서 한 환상을 보았는데, 그것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천상의 하나님의 아들의 찬란한 영광이, 제 눈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저는 그 분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이시며,
기묘자이시며, 위대하시고, 충만하시며, 순결하시며,
부드러우시고, 은혜스러우시고, 사랑이 가득하며,
그러면서도 온유하시면서 겸손하신.. 그 그리스도의 영광을 제가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가, 모든 생각과 정신을 다 잃어버리고
멍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극치의 존귀함이었습니다.
그 환상이 계속되었는데, 제가 정확히 시간을 재지는 않았지만
약 1시간 가량, 그 숲속에서, 그 환상 가운데서, 제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 환상이 사라지고, 저는 계속해서 오래도록,
눈물이 홍수를 이루었고, 큰 소리를 지르며 울면서, 그 숲속에서 기도했습니다.”
A Personal Narrative, “A Jonathan Edwards Reader, 293”
▲3. 디 엘 무디
무디는, 시카고에 대 화재가 발생해서, 교회와 사역지가 다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가 희생자들을 돕기 위한 헌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말이나 마차를 탔겠지요.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길을 가는 동안 내내,
하나님께서 내게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기를 기도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뉴욕에 다다른 날, 오 정말 놀라운 날이었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인데요,
(제가 이 경험을 여러분께 자주 나누지도 않고, 제 혼자 간직하고 있던 경험입니다.)
뭐라고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신비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굳이 말로 설명을 드리자면,
하나님이 제게,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나타나 주신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사랑을 놀랍게 경험했으며,
그래서 저는 주님께, 주님의 장중에 (손안에)
제가 계속 더 머물러 있게 해 달라고, 저도 모르게 부탁드렸습니다.
(어떤 능력에 압도 되었던 것이지요.)”
William Revell Moody, 1900, The Life of Dwight L. Moody, 149
▲일상 가운데서, 경이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위 3가지 놀라운 사례의 공통된 특징은,
일상 가운데서, 주님과 깊은 교제, 임재의 체험 가운데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특별 기도의 시간을 낸 것도 아니고,
특별히 기도하러 깊은 산 속으로 찾아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슨 업무를 보기 위해서, 말을 타고 가거나 걸어가면서,
평범한 날에, 자투리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시간에,
주님을 특별히 체험하는 경험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제게 있어서, 출퇴근으로 보내는 시간은, 일주일에 대략 4시간 정도입니다.
그 시간은 제가, 제 혼자 있는 시간입니다.
출퇴근하면서 자가용을 타든지, 전철을 타든지.. 제 의식은 ‘혼자’있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비슷한 시간을, 출퇴근 하느라 사용하시겠지요?
그런데 우리가, 신앙이 깨어있지 못하면, 영적 긴장이 풀려 있으면,
그 출근, 퇴근 시간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30분간을, 멍하니 창문 밖을 응시하다가.. 허비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된 세 분들은, 비록 매일이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길을 걸어가면서도, 말을 타고 가면서도,
주님께 집중하고, 기도한 결과.. 갑자기 놀라운 은혜의 체험이 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서, 길에서, 노상에서, 압도 되었던 것입니다.
평소에 주님을 사모하는 삶을 살던 중에,
주님을 간절히 바라던 가운데,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찾던 주님,
그 주님은, 그들을 “노상에서” 놀랍게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출퇴근 시간이나, 기타 다른 일을 보기 위해서
걸어가거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 시간을, 허비하거나, 헛되게 낭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깨어있는 신앙인은, 그 시간에도 쉬지 말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저 멍하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적어도 오늘은, 깨어 있는 신앙이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정리하면, 특히 출퇴근 시간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될 때,
하나님도 우리 각자를 또한 친밀히 만나 주실 줄 믿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꼭 라디오 뉴스.. 그거 안 들어도 됩니다.
그 음악.. 그거 꼭 안 들어도 됩니다.
-자기 기도수첩을 꺼내보면서, 조목 조목 기도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적혀진, 말씀을 깊이 묵상할 수 있습니다.
-찬양의 시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 안이라면, 큰 소리로 찬양을 불러도 됩니다.
-전국 인터넷 시대이니, 핸드폰으로 설교를 연결해서 들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 전 날의 업무, 또는 그 날의 업무를
기도로 되새김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의 업무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자동차 안에서, 주님과 의논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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