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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세족국의 백성들

LNCK 2013. 3. 3. 22:08

◈세족국의 백성들                  요13:1~24                 출처보기

 

 

▲여러분,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다 아실 것입니다.

어릴 적에, 다들 재미있게 읽으셨을 것입니다.

 

걸리버 여행기는 총 4부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즉, 걸리버는 네 나라를 여행합니다.

걸리버가 바다에서 난파를 당해 물결에 떠다니다가,

우연히 이상한 나라 여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결에 떠다니다가 정신을 잃고 도착한 첫 번째 나라가 바로 <소인국>이에요.

사람들이 15cm 정도 크기입니다.

그 소인국에서 아주 정말 왕처럼 대우를 받고 살아가는데,

2천명분의 식사를 할당을 받습니다.

하아~ 그 나라가 재정이 휘청거렸을 거 같아요.

 

그리고 그 다음에 여행을 하게 되는 나라가 <대인국>입니다.

이 대인국은 또 사람들의 키가 종탑만 해요.

그래서 걸리버를 보살펴주는 소년의 키만 해도 12m가 됩니다.

 

세 번째 나라는 <공중에 떠다니는 섬나라>입니다.

공중에 떠다니는 섬나라를 여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네 번째 나라는,

정말 작가의 상상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게끔 할 정도로 기이한 나라입니다.

소위 <마인국>인데, 말과 사람의 역할이 뒤바뀐 나라입니다.

 

말馬이 이성을 가지고, 사람처럼 세상을 다스리는데,

그 곳에서는 사람을 가축으로 키웁니다. 그 사람 같은 가축을 ‘야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야후라고 불리는 종족들이, 얼마나 추잡하고 악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성을 갖고 있는 말들이 얼마나 신사적이고 관대한지 모릅니다.

 

▲이런 이상한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데,

오늘 본문을 대하다 보면, <걸리버 여행기>의 후속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런 5편 <세족국>이란 소설이 있다는 뜻은 아니고요,

본문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장면은

마치 <걸리버 여행기>의 5편 <세족국>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 정도로

‘이상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소인국도 아니고, 거인국도 아니고, 말의 나라도 아닌 <세족국>이라는 거예요.

 

이 <세족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모~든 백성이 유일한 하나의 관심사에 다 빠져있습니다.

 

그 유일한 관심사가 뭐냐 하면, 전부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에,

온 백성의 관심이 다 쏟아져 기울어져 있는 그런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에요.

 

아침에 눈 뜨면 관심이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겁니다.

저녁에 잘 때까지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것이 삶의 내용이고, 그것이 관심거리입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말의 나라보다 더 이상하고, 소인국보다도 더 기이하고,

거인국보다도 더 괴상한 이유는 뭐냐 하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동안에,

이 <세족국>의 백성들은, 아무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의 관심 바깥에 있는 거예요.

자기가 절대로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 겁니다.

정말 이상한 나라 아닙니까?

 

내가 나한테 관심거리가 되지 않는 그런 나라.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33년을 사시고 떠나신

그 예수님이 계시던 그 뒷자리에 생겨나게 되는 나라의 모습입니다.

 

<세족국!>

온 백성의 관심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것이에요.

 

그리고 전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그런 나라.

 

아! 내가 나한테 갖고 싶어 하는 것도 없고,

내가 나한테 주려고 하는 것도 없고,

내가 나한테 무엇인가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소원하는 바도 없고,

무엇을 더 나 자신에게 보태려고 하지도 않고,

나 자신에게 끌어당기려 하지도 않고,

 

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이 다른 사람에게만 관심을 쏟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 데만, 나의 온 관심이 다 기울어져 있는 그 나라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33년을 사시다가 하늘로 돌아가신 뒤에,

예수님이 계시던 그 뒷자리에 남아 있게 될 나라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족식의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 십자가를 바로 앞두고,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발을 씻어주신 이유가 뭐냐 하면 15절에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본을 보이시려고 입니다!

 

이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입니다.

이제 당신 없이 제자들만 살아야 됩니다, 제자들만 이 땅에 남아서 살게 됩니다.

 

그렇게 제자들만 이 땅에 남아서 살게 될 때에,

제자들의 삶의 내용, 제자들의 모든 하루하루 삶을 규정하는 내용이 무엇이냐,

바로 발 씻기라고 하는 것을 본을 보여주시고 제시하시려고

앞서 세족식을 거행하셨다 이겁니다.

 

▲본을 보이시려고 하는 그 의도 속에 담겨져 있는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발을 씻기신 상황을 이해를 하면 좋습니다.

 

유대에는 풍습이 있습니다, 관습이 있어요.

만찬에 사람들이 옵니다.

주인과 초대받은 손님들이 앉게 됩니다.

 

그러면 꼭 있어야 될 절차가 뭐냐 하면, 그 집에서 가장 낮은 자,

종들 중에서도 가장 아래에 속한 종이, 주인과 손님의 발을 씻어주게 되어있습니다.

 

자, 이러한 관습이 있는 유대 땅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 참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따로 주인이 없고, 주인이 부리는 종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발을 씻어 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끼리는 몰라도 적어도

예수님의 발은 누군가가 씻어 드려야 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아무도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관습상 그 집에서 가장 낮은 자,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 발을 씻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다가 일어나셔서, 갑자기 뜬금없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신 뒤에 대야에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기 시작 하십니다.

 

▲자, 그러면서 하신 말씀은 뭐냐 하면,

‘너희들이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주라고 부른다, 맞다! 내가 선생이고 주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나의 제자이고 내가 너희들의 상전이고 너희들은 나의 종이다.

 

그런데 내가 종인 너희들의 발을 씻어 주었고,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까,

내가 이 땅을 떠난 뒤에 내가 없는 상태에 너희끼리 살아 갈 때에,

 

분명히 제자가 선생보다 나을 수는 없고,

종이 상전보다 나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서,

 

삶의 내용이 반드시 발을 씻는다는 내용,

다른 사람의 발을 씻는다는 내용 이외의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발을 씻는 자의 위치 그 이상의 위치로 올라가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발 씻는 것이 데드라인이다. 너희가 나의 제자 되고,

너희가 나를 주라고 부르며 따르는, 나를 믿는 자들로서의 데드라인이 바로 발 씻음이다.’

 

‘발 씻는 자리를 벗어나면 너희는 나의 제자도 아니고, 나를 믿는 자들도 아니고,

나를 추종하는 자들도 아니다!’라고 아예 못 박아 버립니다.

 

분위기는 섬김과 사랑과 희생의 덕목을 권면하고 가르치시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데드라인을 정하셨어요, 데드라인을. 16~17절.

 

‘이 선을 넘어가면,

내가 분명히 선생으로서 상전으로서 너희들의 발을 씻었기 때문에,

이 선을 넘어가서 너희가 발 씻는다는 마음가짐과, 발 씻는 자의 위치를 벗어나게 되면,

너희는 나의 제자도 아니고, 너희는 나를 추종하고 나를 믿는 자들도 아니다’

라는 것을, 아예 못 박아 버리시는 그런 분위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 그러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선생이고, 주님이 되는 내가 발을 씻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너희도 절대 그 이상의 위치를 넘보지 않고 살아간다면, 복이 있으리라.’

 

요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발 씻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신 것이에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발만 씻어 주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그 뒷자리에 남은 결과가, 바로 이 세족국입니다.

발 씻는 자들이 모여 사는 나라가 형성이 된 것이에요.

 

자, 세족국의 백성이 하나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될 까요?

 

그리고 왜 세족의, 다른 사람의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복되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건 운명이에요.

왜냐하면 선생이면서 주님이신 분께서 우리의 발을 씻어 주셨기 때문에,

제자인 우리가, 그분 이상을 넘어갈 수가 없다는 게 운명이라는 겁니다. 요13:16

 

▲그럼 어떤 과정을 통해서, 세족국의 백성이 한 사람 태어날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갑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게 될 때,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제시해 주시는 우리의 자리가 있습니다.

 

대기업의 총수 회장님께서, 나에게 지명해 주는 자리가 사장자리일 수 있습니다.

이사회와 교수회에서 결정해서 나에게 교수자리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나에게 제시해 주시는 자리는 십자가 자리입니다,

 

CEO도 아니고, 사장자리도 아니고, 학장자리도 아니고, 사업가의 자리도 아니고,

바로 십자가의 자리를 주님께서 내게 제시해 주시면서,

‘이게 바로 네 자리이다, 네 몫의 자리다’ 라고 제시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님은, 십자가의 자리로 우리를 스카우트하시고,

발령 내시고, 임명하십니다.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 대해 주님과 함께 죽는 자리가, 우리의 자립니다.

이 세상에서 대단한 거 하겠다고 애쓸 것 없어요.

 

주님께서 지명한 대로 십자가에서 죽는 자리, 그게 내 사명입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자리를 지키는 것이 내 사명이에요.

 

돈 잘 벌고 사업 잘 하는 거 아니에요, 공부 열심히 하는 거 아닙니다.

살림 잘 사는 거 아니라는 얘기에요. 그것도 필요하지만, 언제까지나 부차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사명은, ‘십자가에서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리,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자리는

십자가에서 이 세상에 대해 죽는 자리를 허락해 주십니다.

이게 바로, 내 위치에요.

 

우리가 명함을 갖고 다닌다 그러면 내 명함에 새겨야 될 것이,

‘십자가에서 죽은 자’라야 된다는 얘기에요.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을 때에,

우리 마음이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연합해서 죽을 때에,

주님이 부활하시면서 우리가 부활이 됩니다.

 

우리 마음이 부활하게 됩니다.

그 ‘부활의 증거’가, 여러분 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은 나를 부활시켜 주신 증거가 뭐냐 하면,

내 마음에 내가 세상에 대해서 죽었는데,

세상과는 관계가 없는 만족이 주어지고 기쁨이 주어지는 것,

이게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살리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세상과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돈이 있기 때문도 아니고, 높은 자리에 올랐기 때문도 아니고,

돈은 없는데도 기쁘고, 높은 자리도 아닌데도 만족하게 되는,

이상한 부활의 경험이 있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랬잖아요.

요13:20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우리를 보내십니다, 보내서 이 세상을 다시 살게 하십니다.

이 세상을 다시 살 때, 마치 걸리버 여행기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이 되느냐?

도대체 이 세상 안에서, 내가 나를 위해서 갖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 세상 안에서, 내가 나를 위해서 이루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왜요?

 

세상에 대해서 죽었다가 부활을 시키시면서,

하나님께서 천국으로, 하나님 자신으로 만족시켜 주시고

배부르게 해주시고, 기쁘게 해주시고, 평강 가운데 거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늘로 배불러서 이 땅에 나와서 살다 보니까,

내가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나에게 가졌으면 하고 소원하는 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상전이시고 주님이시고, 스승이셨는데, ‘스승과 같으면 족하다,

주인과 같으면 족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면 복이 있으리라.’ 16~17절.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국의 아버지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오신 주님께서,

천국을 알고 계시고 천국을 느끼고 계신 주님께서,

이 땅에서 이 세상 안에서 당신 자신을 위하여 이루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당신 자신을 위하여 갖고 싶어 하셨던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아무 것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예수님이 제시하는 십자가의 자리가

이 세상에서 궁극적으로 내가 올라서야 될 자리인 것을 알고,

주님과 함께 죽은 자를, 하나님께서 부활 시키셔서,

하늘로 만족하게 돼서 이 땅에 나와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나를 위해서,

내가 가져야 되고 이루어야 될 일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면서,

이들의 관심은 오직 다른 사람만이 관심이 됩니다.

 

어떻게 다른 사람을

내가 느끼는 이 기쁨의 자리로 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가

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겁니다.

 

이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이게 바로 <세족국의 백성들>이라는 거예요.

 

▲이 세상 안에서는, 내가 더 이상 관심이 될 필요가 없는 것은,

이 세상 안에서 아무리 나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도, 나의 기쁨을 더 할 수도 없고,

내가 더 갖고 싶은 것이 있을 수도 없고,

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도 없는 세상일이 되는 거예요.

 

어차피 나는 이 세상 어떤 것으로도,

내가 마음 안에 갖고 있는 만족과 기쁨과 감사를 더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관심은, 주님을 본받아, 내가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일입니다.

그것만이 관심이 되는 <세족국의 백성들>로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문 제목

 

‘이렇게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은 것처럼,

선생이며 주인인 내가 너희들의 발을 씻을 것을 알고 기억하면서,

그 백성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족국의 백성들이 되어서, 내가 나의 관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이 기막힌 기이한 나라의 백성들로서,

행복지수가 하늘을 찌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을 믿음으로 십자가의 자리가

이 세상에서 내가 얻을 궁극적인 자리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서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셔서 하늘의 평강 가운데 거하는 가운데,

이 세상에 나가 살며 오직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는 것만이 나의 관심일 수 있는,

세족국의 백성으로서 지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