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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예수님이 가지셨던 삶의 자세 P1 / 잭 푸닌

LNCK 2013. 4. 13. 21:09

www.youtube.com/watch?v=fjF7QsOS_pY&feature=youtu.be

www.youtube.com/watch?v=h3V4bW905eU&feature=youtu.be

◈예수님이 가지셨던 삶의 자세 P1  고전1:25, 빌2:5     P2    P3      설교녹취  

 Zac Poonen  "The Attitude Christ Had "                    Русский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헤롯 대왕은, 동방박사들로부터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뇨?’라는 말을 듣고,

아기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 혹시라도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안전하게, 그 즈음, 그 지경에서 태어난 2살 이내의 아이들을 다 도살했습니다.

 

아기 예수와 그 가족은,

애굽으로 피하라는 천사의 지시를 받고.. 겨우 애굽으로 피할 수 있었습니다.

 

저 푸닌 목사는 이 성경 대목을 읽을 때.. 참 의아합니다.

이해가 쉽게 되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길은, 우리 인간의 길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제 어리석은 인간적 생각으로는

그냥 헤롯을 죽여 버리시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기를 데리고, 요셉의 가족이

베들레헴에서 애굽까지 피난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습니까?

 

비교적 길이 평탄하다는 ‘해변 길’로 갔는지,

아니면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길이 험하고 찜통인 ‘시내 광야길’로 갔는지

우리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요셉과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 일가족이..

애굽으로 피신가는 길은.. 등골이 오싹하며, 여정도 피곤의 연속이었을 것입니다.

여행을 위한 노잣돈이 넉넉했을 리도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습니다.

‘아기 예수님 출생을 계기로, 왜 그 수많은 당대의 아기들이 죽어야 했었는지..’

‘그런 하나님이, 과연 정의로우신가?’ 하고 의문을 품습니다.

 

제 인간적인 생각에는, 그냥 그 악의 화신, 심판 받아도 마땅할

헤롯 대왕 한 사람만 하나님이 데려가시면.. 모든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될 터인데 말입니다.

 

예수님 일가족도, 그 고생을 하면서 애굽으로 피신할 필요 없고,

또한 억울한 수 백 ~ 수천의 아기들도,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 헤롯 한 명을.. 안 데려가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의 가장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가장 지혜로운 것보다.. 더 낫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의 강함보다 더 강합니다.’ 고전1:25

 

우리가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장차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고, 저 천국에 가서.. 다 알게 될 것이고,

 

그때,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완전한 것임을, ‘아멘! 아멘!’하고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다 선하십니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미스터리입니다.

그 만왕의 왕,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정말 세상에, 남의 도움이 없이는 전혀 살아갈 수 없는

helpless infant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비참하게, 마구간에, 구유 위에 태어나셨습니다.

혹시 여러분 부모가 아주 가난하다 하더라도,

여러분을, 마구간, 구유위에서 출산할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우주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하나뿐인 외아들을, 그 가장 낮고 낮은 자리에서 태어나게 하셨는지..

그것도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하기 전에,

왜 여관의 모든 방을, 다 꽉 차게 하셨는지..

왜 방 한 칸 정도도, 비워놓으실 수 없으셨는지..

그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그 쉬운 걸, 하나님은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 인간이 계획했더라면,

아기 예수님을, 오늘날로 치면 가장 비싼 병원에서 태어나도록 계획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의적으로,

아기 예수님을, 마구간 구유위에서 태어나도록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만약 베들레헴에, 그 날 빈방이 있었어도,

하나님은 나귀의 걸음걸이를 늦추셔서라도, 다른 손님이 그 방을 다 차지하게 하고,

하나님은 요셉과 마리아를, 마구간에서 자고, 거기서 출산하도록 섭리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다 알 수 없지만,

장차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고, 저 천국에 가서.. 다 알게 될 것이고,

 

그때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그것이 완전한 것임을, ‘아멘! 아멘!’하고 시인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은.. 다 선하시다!’ 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리는 이유를 아시지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것을, 해 주시지 않나?’

상식적으로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나의 소원과 기도에 응답해주셔야 하는데,

‘왜 하나님은 나의 이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시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섭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위에서 예로 들은, 예수님 출생 때의 <하나님의 섭리>를 보면서

우리가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헤롯을 단숨에 죽이지 않으시고, 복잡한 일이 다 벌어지도록 하신 섭리,

-출생하는 자기 외아들에게, 방 한 칸 내어주지 않으신 하나님의 섭리!

(이게 예수님에게 출생 선물이었다니까요! 참 기가 막히는 일이지요.)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비슷하게 아리송하고, 모호한 일이 생길 때는

무조건 ‘하나님의 가장 어리석음이, 사람의 가장 뛰어난 지혜보다 더 지혜롭다’

는 것을, 믿는 도리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지셨던 삶의 자세

 

이 설교의 제목은, <예수님이 가지셨던 삶의 자세>입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이 하늘에서 다 스스로 계획하셨던 일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단독으로 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추진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의논하셔서, 예수님이 아기로 태어나시고,

그것도 마구간 구유 위에 태어나도록.. 예수님이 다 동의하시고, 스스로 계획하셨습니다.

 

제 포인트는,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식은,

-돈을 많이 모아서, 돈의 힘으로 구원하는 방식도 아니요,

-권력과 군대를 많이 규합해서, 권력과 군대의 힘으로 구원하는 방식도 아니요,

 

예수님께 무슨 방식이나 전략이 있었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자신을 비우시고,

남들에게 지시는 방식으로, 십자가 지는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평소 삶의 방식, 삶의 태도>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출생 때부터, ‘완전한 인간’으로서 어떤 본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완전히 무능력한 아기, 즉 helpless infant로서

갓난아기 때부터,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사는 본입니다.

 

빌2:7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비웠다’는 말씀에 유의하십시오.

갓난아기 때부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다 버리셨습니다. 즉, 비우셨습니다.

 

그건,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만,

간절히 의지하는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helpless infant가 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늘 받으시면서, 공생애 내내 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크리스천 지도자들은, 이 예수님의 정신을 자꾸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를 비워서, helpless infant가 되어서

하나님의 능력만 간절히 의지하는 대신에,

 

반대로 오늘날 크리스천 지도자들은,

자꾸 자기 스스로 힘을 축적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위대함을, 자기의 강력함을..

사람들에게 자꾸 드러내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의 권위를 높이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건 인간적인 생각입니다.

인간의 본능에서 나오는 리더십이지, 성경적이 아닙니다.

 

그런 ‘자기 힘’을 축적하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능력으로, 그와 함께 해 주실 리는.. 전혀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움으로써

예수님과 같은 능력을 가지는 지도자가 될 것인지/ 아닌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각자에게, 크나큰 도전이 됩니다.

 

지금 크리스마스 시즌인데,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즐거워하고, 서로 축하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늘의 하나님께서

아기로, helpless infant로 이 세상에 오신 가장 기본적인 그 태도, 그 정신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은, 달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무기력한 아기로 태어나셔서,

(가난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또한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시면서,

강력하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사셨다는 것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딱 깨놓고, 노골적으로 논의해 봅시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 지도자들은,

자기가 뭘 좀 상당히 가져야.. 영향력 있고, 능력 있고, 유능한 지도자라고 여깁니다.

 

자기 은행통장에, 잔고도 두둑하게 있어야 하고..

세상에서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과 친분관계가 있어서, 그들이 나를 밀어줘야 하고..

또는 수많은 성도들이 형성하는 숫자의 힘..

이런 빽이 자기 뒤에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을 추구해서도 안 되고, 그것을 계속 움켜쥐고 있으려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그 세상적 힘들을.. 자꾸 비워내야 합니다.

내 스스로 helpless infant의 자리로, 계속 되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강력하게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몇 년이 지나도, 그의 믿음과 영적 상태는 그대로입니다.

퇴보 안 하면,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지만..

 

저는 성장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의 이유가,

자꾸 그런 세속적 자원들을, 그들이 의지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자기를 비워내야,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실 터인데,

자기를 비워내지 못하고, 세속적 자원들을 더 꽉 움켜쥐고 있으니까,

그는, 그냥 세속적 힘 밖에는 행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도 성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예수 믿음’의 정신, 또는 삶의 태도를

전혀 갖지 못한 것입니다.

 

서두에,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그렇게 도와주시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오늘날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그렇게 도와주시지도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게 그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은 될 수 없지만,

그 중요한 이유는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helpless infant, 즉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가장 무능하고,

하나님 또는 남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그런 무기력한 사람이 되도록.. 그냥 놔두십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냥 그 쉬운,

‘베들레헴의 여관방 한 칸도 마련해 주시지 않는 식’입니다.

 

우리 각자를,

철저하게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간절히 의지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우리를 무능하게, 가만 놔두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수님과 똑같은 강도로, 그런 낮아짐과 그런 고난을 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맞다면,

하나님은, 우리 각자도,

예수님이 걸어가신 그 길과, 비슷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를 낮추시고, 우리를 비우게 하시고,

한 방에 제압하실 수 있는 헤롯도, 그냥 만행을 저지르도록 가만히 놔두시고..

 

그래서 무능하고 무기력한 갓난아기처럼 되어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강력히 의지하고 사는 인간으로.. 나를 훈련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여러분의 그 간절한 기도가

거의 응답되지 않을 때..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인간적 자원의 측면에서는,

당신이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원의 측면에서는, 강력히 하나님의 도우심만 의지하여,

거기서 나오는 능력을 받아서 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일평생 무기력하고, 무능하게 사셨고,

마지막 때도 보십시오.

대제사장들의 부하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칼을 뽑아서, 너무도 억한 심정에서, 그들과 대결하려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만류하셨습니다.

‘베드로야, 칼을 집어넣어라. 나는 열 두 영도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무능하고, 무능력하게 살겠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도우셨을 때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셨지만,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았을 때는,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베드로야, 인간적으로 나를 도우지 마라!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지 않으시면.. 나는 다 당하리라!

그게 다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신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가 인간적으로 도울 힘도 없었지만,

만약 그가 인간적인 힘으로 도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는 길이.. 크게 훼방을 받았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인도뿐만 아니라 온 세계 나라에서

이런 예수님의 태도, 삶의 자세를 가진 지도자를 찾아보기가

오늘날 대단히 어렵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자꾸 베드로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성도들의 도움을.. 직간접적으로 자꾸 의지하려 합니다.

 

지도자 자신이나, 교회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지도자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는 않고,

 

베드로와 제자들을 규합해서, ‘칼을 차고 나를 따르라’는

인간적인 자세로 나아가기가 쉽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에게는, 돈의 도움을 받고,

권세가 있는 사람에게는, 권세의 도움을 받아서,

지도자가 자꾸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힘을 가지고, 휘두르려고 합니다.

 

어떤 신자들은,

자기 일신상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목회자를 찾아옵니다.

그래서 목회자와 그가 가진 자원이나 인맥을 사용해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애원합니다.

 

그가 처한 문제는, 분명히 불쌍하고, 도와주어야 마땅하지만,

그것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고, 도와주는 것은.. 큰일 날 일입니다.

 

그런 문제를 가지고, 목회자를 찾아와서도 안 되지만, (기도부탁은 할 수 있겠죠)

그 문제를 (해결사처럼) 해결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목회자가 세상 자원과 인맥 등으로, 그걸 해결하려고 시도해서도 안 됩니다.

 

그게 크리스천의 힘이고, 능력입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내 모든 세속적 자원들을 자꾸 비워내고,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만을 의지할 것인지.. 아닌지..

 

그래서 그저 세상적인 힘을 가진, 세상의 지도자와 똑같은 바리새인, 사두개인이 될지는..

오늘날 나의 신앙과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겸손히 의지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