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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바벨탑 vs 소아마비 백신 계발

LNCK 2013. 4. 28. 20:32

◈바벨탑 vs 소아마비 백신 계발        창11:1-26               출처보기

 

 

 

 

창10장은 노아의 후손들의 족보입니다. 다른 사람은 이름만 기록되었는데

8절에 보면 함의 후손 가운데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10:8,9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니므롯’은 ‘대적자, 반항아’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용감한 사냥꾼이라고 했는데,

짐승만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잡아다가 노예로 만들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니므롯이 주동이 되어서 바벨탑을 쌓았을 것이다고 말합니다.

10절에 그의 나라가 시날 땅 바벨이라고 하였고, 12절에 큰 성읍을 쌓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함이 아버지 노아의 허물을 흉보고 반항적으로 나오더니

그 자손 가운데 강포한 인물 느므롯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의 인격은 후손과 후배들에게 반드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함의 후손 가운데 느므롯이 나오고,

셈의 후손 가운데 아브람과 인류의 구원자 예수님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가문을 일으키고, 영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인간의 본성은, 바벨탑을 쌓으려 합니다.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게 된 계기가 무엇입니까? 창11장3, 4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서 벽돌을 구워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돌과 흙 밖에 없었기 때문에 큰 성을 쌓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흙을 불에다 구우면, 견고한 벽돌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벽돌의 개발, 이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기술이었습니다.

이 기술만 계속 발전시키면

건물을 하늘 끝까지라도 쌓아 올릴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층 한 층 벽돌을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하늘에까지 닿을 것을 기대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신들의 이름을 온 세상에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또 거대한 성을 쌓으면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아성을 구축하리라 믿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을 간섭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이상국가, 유토피아를 건설하리라 믿었습니다.


▲얼른 보면, 기술을 개발해서 불가능에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에..

‘좋은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문제입니다.

본래 창조 목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인간의 기술로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고 도전하고자 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며 개척하기를 원하시는 데

(생육하고 번성한다 하더라도)

자기들의 아성을 쌓고.. 안주하고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아무리 위대한 과학과 기술을 발명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일부분을 알아낸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발명하든 개발하든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죠.


▲감동 일화

제가 얼마 전에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분이 Jonas Edward Salk 박사인데

그는 그 엄청만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혀 자신의 이름을 내거나

그 기술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를 저는 아이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수고로 소아마비가 거의 퇴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1984년 이후로, 단 한 명도 소아마비 환자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소크 박사가 이 백신을 개발하자

수많은 제약회사들이, 자신들과 특허 계약을 하자고, 그에게 제안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잖습니까?”

우리가 태양에게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지만

그 태양에, 특허를 내는 사람은 없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도 하나님이 주신 이 백신을

그냥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어야지.. 돈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소아마비 백신 1개의 값이, 100원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훌륭합니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뭐 좀 하나만 발견해도, 혁명적인 개발이니, 세계가 깜짝 놀랄 발명이니,

세계역사를 뒤바꾸어 놓을 역사적 사건 하면서.. 자기 이름 내기를 좋아합니다.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자기 이름 내기 좋아합니다.

파리에 에펠탑, 이집트의 스핑크스, 미국에 그랜드 캐니언.

그 어디를 가도 한국 사람들이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써 놓습니다.


무슨 시험만 합격해도, 아파트 입구에 프랭카드로 써서 붙여 놓습니다.

북한에는 김일성 동상이 35000개나 있다고 합니다. 그 크기도 어마어마합니다.


북한은 전기가 없어서 밤에도 불을 잘 켜지 못하는데

김일성 동상에다가는 항상 밝은 조명을 비추어 둡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져서 바벨탑을 쌓는 이 나라가 오래 가겠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상이나, 기술이나, 이데올로기,

그 어떤 운동도 두고 보시지 않습니다.


◑2. 인간의 바벨탑은 실패하고 맙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바벨탑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서로 소통이 가능해서, 이 일이 이루어진 것임을 아셨습니다.


이 위험한 도모를 막기 위해서는, 언어를 혼잡하게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어를 흩어 버리셨습니다.


언어가 같아야 서로 소통이 될 텐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위에서 망치 달라고 하는데, 톱을 가져 오고,

물 가져 오라고 하는데, 불 가지고 달려오고.

결국 의견대립만 하다가 싸우고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의 실패

성경에도 보면 순수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야망을 위한 시도들은 반드시 실패했습니다.


사무엘하 15장에 보면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을 대적해서 반란을 일으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훔쳐서 스스로 왕이 됩니다.


이때 압살롬을 도와서 음모를 꾸미고 책사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히도벨입니다.

그들이 처음에 정권을 잡고 다윗을 쫓아내는 데까지는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다윗을 추격하는 작전을 두고, 의견대립이 일어납니다.

결국 아히도벨은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자, 자살해 버립니다.

압살롬도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가룟유다도 보십시오.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은 삼십을 받고 대제사장들과 모의를 꾸밉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 데까지는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후에 유다가 양심의 고통 때문에 절망하여 자살하고 맙니다(마27:5).


악한 일을 도모하는 자들이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합니다. 죽이 잘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흩으시기 때문에, 나중에 자중지란이 일어나서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면 반드시 흩으십니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바벨탑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도 다 바벨탑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무한경쟁시대에 나의 스펙을 열심히 쌓아서, 내 이름을 내고,

속히 안정되고, 안락한 삶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캠퍼스에 올라가서 힘들게 개척하고 도전하며, 양들 섬기기보다는

편하고 안락한 스위트 홈을 꾸미고 그 안에서 아기자기하게 살고 싶습니다.


6b절에서 그랬죠.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세상적인 욕심이 한번 자리를 잡으면, 막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치시고 흩으셔야 깨닫고 후회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마음에 바벨탑을 쌓고 있는지,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고 있는지.. 다 아십니다.


그러나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시련을 무릎 쓰고 열심히 방주를 짓는 사람은

결정적인 순간에 노아와 같이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영광을 위해 바벨탑을 쌓는 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게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줄달음치고 있는지,

무슨 목적을 가지고 달려가고 있는지.. 진지하게 스스로를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그 사람의 의도와 목적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높이만 쌓으면 최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높은 지위, 높은 명성, 높은 인기.

그러나 정상은 낭떠러지와 가장 가깝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의 표적이 되었던 세계무역센타 빌딩은

미국의 자존심이요, 부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부와 명성을 쌓는데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과 시간을 쏟아 부었겠습니까?

세계무역센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 브레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건물이 무너지는 데는 불과 몇 초가 걸리지 않았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911테러 사건 때

‘이것은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라고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바벨탑은 겉으로 볼 때 크고 멋있고 화려한 인간문명의 금자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풍요, 하나님 없는 성공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3. 그러면 이제 하나님은 바벨탑을 흩으시고, 무슨 역사를 이루십니까?


▲창11:10절 부터는 셈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셈의 족보는 누구에게로 향하고 있습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람입니다.


아브람의 인간조건이 어떠합니까?

30절에 보면 그의 아내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그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12:4).

인간적으로 보면 아브람은 아무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니므롯처럼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사냥기술을 가진 것도, 벽돌을 잘 굽는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멀리 내다보시고

아브람 한 사람을 키우는데서 부터 구원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과 아브람의 긴긴 일대일, 한 사람 키우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벽돌을 구워 높이 쌓은 바벨탑 역사에 비하면

아브람 한 사람을 키우는 하나님 역사는..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집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거기에 소망을 두셨습니다.

사람의 숫자가 꼭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을 때

그것은 저주의 길이었습니다.


반면에 몇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모임일 때

하나님은 이를 크게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120명의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을 썼습니다.


당시 거대한 로마제국의 아성에 비하면,

이 120명의 작은 공동체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하층민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바람처럼, 불처럼 임하여서

복음의 불똥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벨탑 사건 때는 하나님이 일부러 언어를 흩으셨는데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때는, 오히려 언어가 통일되었습니다.


사도들이 갈릴리 사투리로 복음을 전했는데

전 세계에서 몰려온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듣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동시 통역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전혀 어려움 없이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영접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벨탑 사건 때 흩어졌던 언어가, 하나로 통일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적용 


▲자기 영광과 자기명예를 위해서 바벨탑을 쌓고자 하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흩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사람이

좀 부족해도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지난 주일에 오신 다니엘 & 드보라 김 선교사님이나

지난 금요일에 오신 데이빗 김 선교사님은

한국에 있을 때,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 미국 양들을 돕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열심히 도전해서 일대일을 하니까

하나님이 유창한 영어를 하게 하시고 현지 양들과 소통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만하고 똑똑한 미국 대학생들이

뭐가 부족해서 콩글리쉬 하는 한국 선교사들에게 순종하고

그 밑에서 훈련받고, 믿음의 결혼을 하고, 헌신적인 목자의 인생을 살겠습니까?


우리 선교사님들이 무슨 노벨상이라도 받은 실력자입니까?

노래를 잘해서 빌보드 차트에 올랐다거나, 골프 PGA 대회에서 우승을 했습니까?

사업에 성공해서 미국 맨하탄에 무슨 빌딩이라도 세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주의, 육신주의로 무너진 이방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힘쓰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신 것입니다.


죄로 병든 한 사람을 복음의 언어, 생명의 언어로 도우니까

사람들이 유창한 영어가 아니어도 감동을 받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역자, 실패한 사역자.

초창기 미국으로 건너간 선교사님들 중에

사업에 성공해서 거부가 되신 분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나름대로 논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 모임의 지명도도 높이고, 선교자금도 풍족해서

효과적으로 선교역사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이론적으로는 맞는 것 같죠?


그러나 그런 분들이, 복음역사를 잘 섬긴 케이스는 듣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기 때문에

더 큰 사업의 바벨탑을 쌓고자 하기 때문에

한 영혼을 돕고 섬기는 복음역사에는 마음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 본인의 개인 신앙마저도 무너지고

용광로와 같은 이방문화에 동화되어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데이빗 김 선교사님은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12팀 일대일을 절대적으로 감당하고,

십이지장에 구멍이 나기까지 식사도 거르며, 양들을 섬기기에 힘썼습니다.


그때 제레미 목자같은 훌륭한 목자들을 키우고

기둥 같은 현지인 목자들이 세우게 되었습니다.


불모지에서 시작하여 미국 땅에서

이방양 역사 30명을 이뤘으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이제 그곳에서 손자 손녀들이나 보며, 잘 자라는 현지인 양들을 키워서

자기 왕국을 만들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바벨탑이 되는거죠.


그런데 다 내려놓고 또 새로운 도시로 부부가 개척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모험입니까?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마음에 순수하게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고

한 영혼의 믿음의 사람을 세우는 것을 목적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 우리 마음을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에 편하고 안락한 나의 아성, 바벨탑을 꿈꾸고 있는가?

힘들고 어려워도 도전하며 개척하는 사명인의 삶,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열망하고 있는가?


우리 마음에는 바벨탑의 길과 십자가의 길, 이 두 길이 항상 싸우고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나타나서 바벨탑의 길을 가도록 부추겼습니다.


“나에게 절만 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다 주겠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외치시며,

힘들고 어려운 십자가의 길을 가고자 결단하셨습니다.


그 많은 능력이면 얼마든지 영웅이 되시고 온 세상을 지배하실 수 있을 텐데,

오히려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결연하게 십자가의 길을 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마음에 세속주의, 물질주의, 출세지향주의, 영웅주의의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십자가 정신을 따라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캠퍼스에서 싫은 소리 들어가며 전도하고,

한 양과 일대일 양육 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명의 길이기에

우리가 묵묵히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일생 자기 영광을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되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