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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드리기

LNCK 2013. 5. 3. 16:01

◈시선 드리기               신31:1-13                 출처보기

 

내 시선만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모든 가나안 복지를, 내게 다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의 원래 뜻이

‘하나님께 시선을 떼지 말고, 하나님만 굳세게 쳐다보라’는 뜻이라고

아래 설교문은, "해석"(의미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크랩 해 둡니다.

 

 

◑서론/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드시며 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선을 드시며 사십니다.’

이런 표현은, 성경에 안 나오지만, 유추해서 이런 표현을 만들어 봅니다.

 

‘이슬을 먹고 산다.’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실지로 반딧불이의 성충이나 하루살이, 매미 등

이런 곤충들은 이슬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비가 몇 달 동안 계속 내리지 않는 사막에도, 이슬은 매일 내립니다.

그러니 사막의 생물들이, 그 열기를 버티며 살아가려면, 이슬을 먹는 일이 필수적입니다.

 

그런 비유를 빌려와서,

하나님도.. 

우리의 시선을 드시며, 살아가기를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시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뜻을

‘하나님이 우리의 시선을, 이슬처럼 드시며 사신다’는 시적인 표현으로 표현해 봅니다.

 

▲여러분! 곤충들이 이슬을 먹고 살듯, 하나님은 우리들의 시선을 먹고 사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원하신 분이, 우리의 시선을 (이슬처럼) 드시지 않으면,

그러면 하나님은 죽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말의 뜻은,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의 삶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 사이에 머무시기를 원하십니다. 요1:14

 

우리의 삶에 오셔서,

복지(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실 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시선을 먹으면서 활동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의 삶에서 없어지고 마십니다. 하나님은 그 임재가 사라지고 마십니다.

우리가 시선을 드리지 않으면

우리의 삶에서 복지를 직접 수행해나가시는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내 곁에 안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내 시선을 드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라..’ 는 말의 뜻

 

본문에 120살이 된 모세가,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되는 때에

자기의 지도자적 자리를 물러나고 그 자리에 여호수아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신31:6

 

본문 신31장 6절과, 7~8절에서

같은 말씀을 두 번 반복하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하는 말들이 나와요. 여호수아 1장에도 반복적으로 나오지요?

 

▲이 말의 뜻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강하고  Be Strong

이 말(하자크)의 의미 중에는

‘꽉 잡다, 달라붙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나를 어떻게 힘세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무언가에 꽉 달라붙는다는 얘기에요. 꽉 붙잡는다는 얘기에요.

 

그러니까 사자가 사바나 들판에서 먹이를 가로채서 꽉 쥐듯이

그렇게 꽉 쥐는 그런 마음가짐을 강하게 하라는 '하자크' 라고 말합니다.

 

-담대하라  Take Courage

마음을 풀어놓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주의를 집중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강하게 하라와 붙여서 얘기하면

뭔가에 마음이 꽉 달라붙어 있는 상태에서

거기서 절대로 마음을 풀지 않고, 잔뜩 긴장한 상태.. 이런 뜻도 됩니다.

 

-두려워 말라  Do not fear

히브리어 '야레' 라는 말인데

상대방의 위세와 권위에 눌려서 위압감을 느끼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렇게 상대의 위세에 눌리지 말라는 뜻이죠.

 

-놀라지 말라  Not be afraid of them

‘놀라다’는 말은,

그러니까 패망이나 파괴 따위가 내게 올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마음.

 

그런데 단어 뜻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넷 다 비슷비슷한 뜻입니다.

 

이 설교문은, 위 네 단어를

<하나님께 시선을 떼지 말라>에 연결시킵니다.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말고, 놀라지 말아야.. 하나님을 집중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만 집중해서 바라보게 될 때..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말게 됩니다.

 

반대로, 자꾸 대적을 바라보고,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워 떨게 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지도자되는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하는 말이

너무 심리학적인 차원에 머무는 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가나안 땅의 지형이 산이 있고 이렇기 때문에

‘그 산의 지형을 네가 잘 이용하라 그래야 전쟁에 이길 수 있다.’ 이런 말이 아니고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나 맥 빠지고

너무나 의례적이고, 상투적으로 보이는 권고입니다.

 

지금 당장 전쟁을 치러야 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이게 다 뭐예요?

그런 생각 들지 않습니까, 여러분?

 

상을 당해서 아주 슬퍼하는 가족들에게 ‘울지마세요, 울지마세요!’

그런 것과 똑같은 거,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아무 영양가 없는 말로 들립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지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여러분?

 

▲헨리 블랙가비(Henry T. Blackaby) 목사님이 <영적 리더십>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4장에 보면 ‘리더의 비전’이라고 하는 제목의 글이 있어요.

 

그 주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영적 리더는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가 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니다>입니다.

 

우리는, ‘리더’와 ‘비전’을.. 자꾸 연결시켜서 생각하지 않습니까?

 

근데 블랙가비가 지적하는 말은, 영적 리더들이 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스스로 어떤 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세계선교를 이루어야지’ 이런 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인 이 목회를 위하여 내가 일년 안에 금년이 끝날 때까지

5천명 교인을 모아야지’ 이런 비전이 이것이 영적 리더들의 몫이 아니라

 

블랙가비 목사님이 하는 얘기는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는데 선봉에 서야한다는 뜻 깊은 말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설교문의 주제입니다.

리더가, 목회자가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계시 / 뜻 / 방향성 / 목적성이 이해되면서,

결국 자기 눈에 그게 보이니까, 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을 쳐다보지 않고, 앙망하지 않고,

자기 개인적 비전, 야망을 만들어내지 말라는 겁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말라, 떨지 말라’고 말씀한 것도, 일맥상통합니다.

 

하나님만 간절히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시 / 뜻 / 방향성/ 목적성이 보이면서

강하게 되고, 담대하게 되고, 두려워 하지 않게 되고, 떨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좀 더 확실하게

오늘 이 여호수아에게 리더적 자리에 서있는 그에게 모세가 주는 말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 기도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고, 쫓아간다는 겁니다.

 

또한 하나님이 그것을 간절히 원하십니다.

서두에 그것을 ‘하나님이 이슬 드시듯이, 성도의 시선을 원하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뭐 두려워 말고, 놀라지 말고,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이런 말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이게 바로 앞에서 행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행하실 수밖에 없어요.

앞에서 행하시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시선을 떼지 말라는 거예요.

 

 

◑적용

 

▲여러분, ‘강하게 하라.’

이게 맹수가 자기의 먹이를 채듯이 아주 강하고 집요하게.

실수가 없게 하기 위해서 표범 같은 거 보면 살금살금 기어가지 않습니까?

 

사슴이 있을 때 못 알아채게 살금살금 기어가다가

사슴이 알아채고 막 도망가면 막 뛰어가서

그냥 발로 물고 입으로 꽉 물어서 확 잡아채지 않습니까?

 

이 확 잡아챌 때에 이 다부진 마음으로

앞에 가신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쫙 주라.

시선으로 하나님을 꽉 움켜쥐라는 겁니다.

 

‘담대하라’

여기서 담대히 하라는 말.

방심하지 말라. 이 시선을 절대 하나님에게서 떼지말라는 겁니다.

마음을 풀어놓지 말라는 겁니다. 시선을 딴 데를 보지 말라는 거지요.

 

‘두려워말라’는 것도

상대방의 위세와 권위에 눌려 위압당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이 말을 거꾸로 얘기하면, 상대방을 보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 상대방을 계속 보고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사느냐 하는 문제를 계속 보고 있어요.

남편을 계속 보고 있고, 자식을 계속 보고 있고, 아내를 계속 보고 있으면

그 자식이 나가서 사는 세상을 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식으로 인해서 마음에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근데 앞에 가신 하나님을 쫓아가면서 두려워하지 말라는 얘기는

다시 말하면 앞에 가신 하나님을 맹수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꽉 붙잡고

이 시선으로 꽉 붙잡고 절대로 놓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자꾸 자식을 보지 말고 남편을 보지 말고

이 세상의 경제 형편을 보면서 사업을 하지 말고,

사업장에서 복지를 얻으려면 가정에서 복지를 얻으려면

자식과의 관계에서 복지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든지 그 경제 형편 보거나 이러지 말고, 그것에 위압당하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맹수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하나님을 움켜쥐어야 된다는 겁니다.

내 시선으로 하나님을..

 

▲그래서 여러분,

내가 가나안 복지(신약적 표현으론,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데 원수가 누군지 아십니까?

 

돈 뺏어가는 자가 원수가 아니에요.

돈 뺏긴다고 해서 복지가 안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뭐가 복지를 못 이루게 하는 원수냐?

 

내 마음의 시선을 뺏어가는 자들이.. 그들이 바로 원수요,

내 복지를 뺏어가는 자들이고, 내놓지 않는 자들입니다.

내 마음의 시선을 뺏어가는 자들이에요.

 

▲주님의 십자가에 내 시선을 드리세요!

언제나 말씀드리지요.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되 지속적으로 바라보라. 우리가 이걸 모르는 거예요.

이 시선의 지속성을 모르면 십자가를 모르는 겁니다.

 

아무리 십자가가 대속의 사건이고 구원의 사건이고

아무리 교리적으로 많이 알고 있어도

이 십자가를 지속적으로 바라봐야 된다는 사실을 모르면 모르는 겁니다.

 

호적상에 한 여자가 내 아내가 돼서 그 여자가 내 아내라는 걸 압니다.

그러나 그 여자에게 지속적인 시선을 주지 않고 자꾸 딴 데를 바라보면

그 여자가 실지로 아내가 아닌 것처럼

(실제로 아내가 아닌 거지요. 호적으로만 아내이지)

하나님을 향해 지속적인 시선을 주고 있지 않은 상태는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어질 때에만

하나님은 신바람이 나셔서 우리에 앞서 가시면서,

내 삶을 통해서, 가나안 복지를 이루어가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하나님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 봐드릴 때, 하나님도 힘이 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그러려면 하나님이 에덴을 이루시고, 복지를 이루시지요.

 

아무리 하나님이 내 삶에 들어오셔서 정말 지옥을 이루시겠습니까?

황폐한 삶을 이루시겠습니까? 슬픔의 삶을 이루시겠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렇게 굉장한 일을 우리 삶 속에 들어와서 하시고, 우리에게 주시려고 하시는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아무 것도 없어요. 지속적인 시선이에요.

 

“아버지! 아버지!”하는 그 시선

그리고 그 아버지를 진짜 만나려면

그 외아들, 하나님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아들에게 다 가 있지요.

 

근데 그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그 아들 십자가에 있는 아들을 보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로 고맙고 황송하고 나 때문에 저렇게 달리신 그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바라보는 겁니다.

 

그 시선만 드리면

아버지가 우리의 삶에서 앞서 가시면서 복지를 다 이루어주시겠다는 거예요.

진짜 아주 복된 삶을 복으로 꽉꽉 찬 삶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근데 우리가 그 시선을 못 드려요.

계속해서 자식을 바라보면서 두려워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겠어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부탁하는 말이 그거에요.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쫓아가면서 너, 두려워하지 마라.

다시 말하면 적들을 보지 마라. 하나님만 봐라.

(우리로 치면, 사업을 보지 말라, 자녀를 보지 말라, 건강을 보지 말라)

 

그리고 놀라지 마라.

그리고 강하게 하라. 강하게 하라가 뭐라고요?

맹수가 먹이를 움켜쥐듯이 하나님만 시선으로 꽉 잡아라.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복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앞서서 쟁취해가십니다.

 

우리의 복지를 이루시는 하나님은

(언제나 이슬을 먹고 사는 매미처럼, 곤충처럼)

오직 우리의 시선만을 먹기를 원하십니다.

 

시선 드리세요. 돈 들어요? 여러분? 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까?

시장에 가든, 학교에 가든, 무엇을 하든지

마음 속으로 주님의 십자가에 시선을 드리는 겁니다.

 

왜요?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와 계시니까.

내 아들이 가 있는 곳에 내 마음이 가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주님이 계신 그곳에 하나님의 마음이 와 있으니까.

 

‘하나님을 본다’함은 다름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를 보는 것이에요.

그냥 십자가를 제해놓고, ‘하나님 하나님’ 찾으면 일반 종교와 다를 게 없잖아요.

 

내가, 주님의 십자가를 계속 바라보면

하나님은, 그 시선을 먹으시고

우리의 삶에서 앞서 가시며 복지를 이루어가십니다.

 

그렇게 여러분이 오늘을 살아가실 때

계속 마음으로 24시간 주님의 십자가에다 시선을 주세요.

 

그러면 마음이 뽀글 뽀글 뽀글 뽀글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것을 경험하시게 될 거예요. (0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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