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못과 리워야단 욥40:15~24, 41장 출처, 정리
*요약: 하나님이 암흑과 혼돈과 악의 상징물로 여겨진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언급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런 세력들, 즉 악의 세계까지도 장악하고 또 허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 하나님의 주권에, 겸손히 순복해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약 2주간 동안, 작심하고 ◈욥기 -클릭- 를 다 읽고, 정리해 보았습니다.
욥기.. 이제까지 항상 수밖 겉핥기로 읽다가, 이번에는 한 절, 한 절, 내용을 파악하며 읽어 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가서, 제 신앙의 깊이와 넓이를 한층 더 확장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욥기 -클릭- 를 강력하게 추천해 드립니다. 좋은 여름휴가가 될 것입니다. /편.
▶40장 전반부 1~14절에서 ☞ 욥아, 네가 하나님이 돼볼래?
욥의 하나님 인식이 잘못 인식되었다는 사실을 풍자적으로 책망하셨습니다.
욥이 생각했던 하나님의 공의는
선에는 무조건 보상을, 악에는 무조건 징벌을 내려야 한다는
인과응보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욥이 하나님 자리에 올라가 교만하고 사악한 자들을 뿌리 뽑아서
하나님으로서의 공의를 입증해보라고 빈정거리십니다.
▶그런 뒤 이제 하나님은, 본문에서, 대단히 기괴하기 짝이 없는 신비의 동물들,
즉 육지 짐승 베헤못(하마)와, 바다짐승 리워야단(큰 악어, 공룡)의 생태 습성에 대해서
세밀하게 묘사하십니다.
베헤못과 리워야단은 교만과 악, 혼돈과 허무의 대명사로 간주되었는데
욥이 하나님이 되더라도 악을 뿌리 뽑지 못하거늘,
이런 짐승들 앞에서 더더욱 왜소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다시 말해 ‘가공할만한 괴력을 가진 이 짐승들’과
‘욥의 무지와 무능’을 날카롭게 대조시키는 동시에
이런 짐승들까지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당신의 전적인 통제 아래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지요.
사실 욥이 끊임없이 제기했던 질문 중에 하나가
자기와 같은 선인은 고통을 받고 거꾸로 악인은 번성하기에
세상이 암흑과 허무로 가득찬 혼돈에 처해 있다는 탄식이 아닙니까?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이 암흑과 혼돈과 악의 상징물로 여겨진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언급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런 세력들, 즉 악의 세계까지도 장악하고 또 허용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39장도 열 가지 야생 짐승들의 본능과 습성에 대한 치밀한 묘사로 끝났는데,
40~41장도 훨씬 더 야생적이고 무시무시한 짐승 두 마리에 대한
정밀 묘사로 끝을 맺습니다.
먼저 거론된 열 가지 짐승들은
단순히 인간에 의해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데 반하여
본문 40~41장의 두 짐승들은, 길들일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에 대하여 철저히 적대적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인간에게 적대감과 공포심만 안겨주는 짐승들까지도 만드셨고(40:15),
쉽게 길들여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41:5) 분이십니다.
그런데 욥은 절대 그렇게 하나님처럼 못한다는 것이지요!
욥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뒤흔들어서, 하나님 앞에 낮추게 하시려는 의도입니다!
◑1. 육지 짐승 베헤못의 세계 40:15~24
'베헤못'이라는 히브리어는 '짐승'을 뜻하는 '베헤마'의 복수형이라고 합니다.
베헤못은 하마나 코끼리로 해석하거나 하마나 코끼리의 중간 형태,
혹은 아예 신화적인 가공의 짐승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의 세밀한 묘사로 보건대 하마로 보아서 무리가 없을 듯싶습니다.
일단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하마’로 상상하면서, 해석을 해 나가려고 합니다.
하마는 몸길이가 3.7~4.6미터나 되고 몸무게는 2.7톤이나 된다고 합니다.
육중하기로 말한다면 코끼리와 더불어 따를 자가 없는 짐승이지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베헤못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십니까?
베헤못의 생김새나 습성은 생략하고
베헤못과 관련해서 하나님께서 유독 강조하시는 특징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40: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욥을 만드신 것처럼
베헤못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40:15 베헤못을 보아라. 내가 너를 만든 것처럼,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그것이 소처럼 풀을 뜯지만,
16 허리에서 나오는 저 억센 힘과, 배에서 뻗쳐 나오는 저 놀라운 기운을 보아라.
17 꼬리는 백향목처럼 뻗고, 넓적다리는 힘줄로 단단하게 감쌌다.
18 뼈대는 놋처럼 강하고, 갈비뼈는 쇠빗장과 같다.
이렇게 욥과 베헤못이 함께 나누는 공유적 속성은 피조성입니다.
베헤못이 아무리 육중하고 기괴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베헤못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가운데 으뜸가는 짐승이요,
하나님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무기 당번병이라고까지 했습니다.
19 그것은, 내가 만든 피조물 가운데서 으뜸가는 것, 내 무기를 들고 다니라고 만든 것이다.
20 모든 들짐승이 즐겁게 뛰노는 푸른 산에서 자라는 푸른 풀은 그것의 먹이다.
21 그것은 연꽃잎 아래에 눕고, 갈대밭 그늘진 곳이나 늪 속에다가 몸을 숨긴다.
22 연꽃잎 그늘이 그것을 가리고, 냇가의 버드나무들이 그것을 둘러싼다.
23 강물이 넘쳐도 놀라지 않으며, 요단강의 물이 불어서 입에 차도 태연하다.
베헤못이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은 23절 말씀을 통하여서 다시 확인됩니다.
강물이 넘쳐도 놀라지 않으며, 요단 강의 물이 불어서 입에 차도 태연하기만 합니다.
느긋하고도 의연한 하마를 연상하면 이 말씀은 금방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하마의 이처럼 태연자약한 성격을
욥의 성 마르고 조급한 모습과 대조시키는 듯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24절 말씀입니다.
24 누가 그것의 눈을 감겨서 잡을 수 있으며, 누가 그 코에 갈고리를 꿸 수 있느냐?
지금이야 인간이 하마를 비교적 포획할 수 있지만, 욥의 시대에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시 욥의 할 수 없음, 무능이 폭로됩니다!
◑2. 바다 짐승 리워야단의 세계 41:1~34
성경에서 한 짐승에 대한 묘사 치고 가장 길고 정확하게 묘사된 짐승이
리워야단이라고 합니다. 리워야단은 영어로 'leviathan'으로 음역이 되는데
물속에 사는 바다괴물을 일컫는 말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악어로 번역되었는데, 비슷한 짐승들로는 용이나 고래가 있습니다.
리워야단은 혼돈과 허무, 암흑, 악을 상징하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세력의 대명사입니다.
그렇다면 베헤못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욥을 깨우치시려는 목적과 관련된 리워야단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41:1~11절에서 하나님은 리워야단이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동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지금이야 악어 사냥이 어렵지 않지만, 욥의 시대에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리워야단을 낚시로 낚거나 끈으로 그 혀를 매거나, 코를 줄로 꿰거나,
갈고리로 그 턱을 꿰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으며, 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느냐?
2 그 코를 줄로 꿸 수 있으며, 갈고리로 그 턱을 꿸 수 있느냐?
3 그것이 네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것 같으냐? 그것이 네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빌 것 같으냐?
4 그것이 너와 언약을 맺기라도 하여, 영원히 네 종이 되겠다고 약속이라도 할 것 같으냐?
더욱이 리워야단을 잡아서 애완용으로 길들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어렵습니다.
5 "네가 그것을 새처럼 길들여서 데리고 놀 수 있겠으며,
또 그것을 끈으로 매어서 여종들의 노리개로 삼을 수 있느냐?"
6 어부들이 그것을 가지고 흥정하고, 그것을 토막 내어 상인들에게 팔 수 있겠느냐?
7 네가 창으로 그것의 가죽을 꿰뚫을 수 있으며, 작살로 그 머리를 찌를 수 있겠느냐?
하나님은 이렇게 리워야단의 포획과 조련이 불가능함은 물론이고
아예 인간이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 손으로 한 번 만져만 보아도, 그것과 싸울 생각은 못할 것이다.
9 리워야단을 보는 사람은, 쳐다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땅에 고꾸라진다.
10 그것이 흥분하면 얼마나 난폭하겠느냐? 누가 그것과 맞서겠느냐?
11 그것에게 덤벼 들고 그 어느 누가 무사하겠느냐? 이 세상에서 그럴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리워야단을 당해내지 못하는 인간이
리워야단을 만드신 하나님께 대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41:12~34절에서 계속해서 리워야단의 기괴하고 웅장한 자태를 세밀하게 묘사합니다.
리워야단의 튼튼한 다리, 늠름한 체구, 아무도 뚫을 수 없는 가죽,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이빨, 돌처럼 단단한 등비늘 등을 묘사하면서
누가 감히 리워야단에게 대항할 수 있는가를 거듭 묻습니다. (12~17)
12 리워야단의 다리 이야기를 어찌 빼놓을 수 있겠느냐?
그 용맹을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 늠름한 체구를 어찌 말하지 않고 지나겠느냐?
13 누가 그것의 가죽을 벗길 수 있겠느냐? 누가 두 겹 갑옷 같은 비늘 사이를 뚫을 수 있겠느냐?
14 누가 그것의 턱을 벌릴 수 있겠느냐? 빙 둘러 돋아 있는 이빨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15 등비늘은, 그것이 자랑할 만한 것, 빽빽하게 짜여 있어서 돌처럼 단단하다.
16 그 비늘 하나하나가 서로 이어 있어서, 그 틈으로는 바람도 들어가지 못한다.
17 비늘이 서로 연결되어 꽉 달라붙어서, 그 얽힌 데가 떨어지지도 않는다.
리워야단, 즉 악어가 물 속을 헤집고 다니며 재채기 할 때마다
불빛이 휘번쩍거리고 입에서 횃불이 나오고 콧김을 내뿜을 때마다
쏟아지는 연기하며 장관입니다(18~21).
18 재채기를 하면 불빛이 번쩍거리고, 눈을 뜨면 그 눈꺼풀이 치켜 올라가는 모양이 동이 트는 것과 같다.
19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똥이 튄다.
20 콧구멍에서 펑펑 쏟아지는 연기는, 끓는 가마 밑에서 타는 갈대 연기와 같다.
21 그 숨결은 숯불을 피울 만하고, 입에서는 불꽃이 나온다.
그리하여 리워야단을 보는 사람마다 겁에 질리고 맙니다(22절).
22 목에는 억센 힘이 들어 있어서, 보는 사람마다 겁에 질리고 만다.
23 살갗은 쇠로 입힌 듯이, 약한 곳이 전혀 없다.
24 심장이 돌처럼 단단하니, 그 단단하기가 맷돌 아래짝과 같다.
어느 정도인고 하면, 동방불패요, 천하무적이라는 것이지요!
25 일어나기만 하면 아무리 힘센 자도 벌벌 떨며, 그 몸부림 치는 소리에 기가 꺾인다.
26 칼을 들이댄다 하여도 소용이 없고, 창이나 화살이나 표창도 맥을 쓰지 못한다.
27 쇠도 지푸라기로 여기고, 놋은 썩은 나무 정도로 생각하니,
28 그것을 쏘아서 도망 치게 할 화살도 없고, 무릿매 돌도 아예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
29 몽둥이는 지푸라기쯤으로 생각하며, 창이 날아오는 소리에는 코웃음만 친다.
30 뱃가죽은 날카로운 질그릇 조각과 같아서, 타작기가 할퀸 진흙 바닥처럼, 지나간 흔적을 남긴다.
31 물에 뛰어들면, 깊은 물을 가마솥의 물처럼 끓게 하고, 바다를 기름 가마처럼 휘젓는다.
32 한 번 지나가면 그 자취가 번쩍번쩍 빛을 내니, 깊은 바다가 백발을 휘날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하나님의 결론은 예상할 수 있는 그대로입니다.
33 땅 위에는 그것과 겨룰 만한 것이 없으며, 그것은 처음부터 겁이 없는 것으로 지음을 받았다.
34 모든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 보고, 그 거만한 모든 것 앞에서 왕노릇을 한다.
리워야단은 모든 생물계를 우습게 보는, 모든 교만한 것들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리워야단을 홀로 의로운 척 하는 너 욥아 대적할 수 있느냐?"
"네가 나를 의롭지 못하다고 불평하는데 어디 네가 한번 하나님이 되어서
베헤못이나 리워야단 같은 교만과 사악의 왕들을 다스려보겠느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꼼짝도 못하는 베헤못이나 리워야단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 욥아 우주 자연의 신비와 동물 세계의 신비 앞에 잠잠할지어다!"
이것이 하나님의 결론입니다.
◑교훈 및 적용
▶하나님은 38장에서 바람, 바다, 눈, 우박, 천둥 번개, 별자리, 등의
우주 자연의 신비를 말씀하신 뒤,
39장에서 열 가지 야생 동물의 생태 습성을 언급하셨습니다.
40장에서는 욥이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한다는 사실을 질책하시면서
네가 한번 하나님이 되어서 악인들을 추방하고 섬멸해서 공의를 실천해보라고 빈정거리십니다.
41장에서 다시 두 가지 동물들의 기괴한 모습을 묘사하심으로써
욥의 왜소함과 무지, 무능을 또 한 번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콧대를 꺾기 위하여
욥이 피부로 그 두려움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영역으로
점점 더 강도를 높이는 것을 봅니다.
사실 천체 자연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기에
직접 땅이나 공중에서 볼 수 있는 야생 짐승들에 비하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이 야생 짐승들은 하마나 악어와 같이 육중한 짐승들에 비기면
또 신비감이나 두려움이 떨어집니다.
점점 더 소름끼치는 가까운 현실 영역으로 끌어들이면서
욥의 자기의 주장을 흔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욥은 감히 접근조차 못하지만 가장 소름 끼치는 이 짐승들조차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다는 것이지요.
▶구띠에레스는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읽어냅니다.
하나님은 베헤못과 리워야단으로 상징되는
혼돈과 허무와 악의 세계를 통제하고는 계시지만
이와 동시에 그들의 존재를 제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이 짐승들은, 말하자면,
세상 우주가 혼돈으로부터 생겨났던 바로 그 혼돈의 잔존물들이다.
자신의 부당한 고통 때문에 욥은 실존을 혼돈,
즉 본래 있었던 무질서가 계속되는 것으로 본다.
하나님은 당신의 힘이 이와 같은 혼돈의 세력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욥에게 보여주시려고 애쓰는 동시에
이러한 세력들이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신다.
이 짐승들은 하나님께서 방금 말씀하셨던 사악한 자들을 대변한다(40:11~13).
또한 이들은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세력들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욥 자신이 그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다고 느껴왔던 바,
이러한 원초적인 혼돈의 잔여물들을 즉각적으로 끝장내시지는 않지만
이들을 통제하시고는 있다.
이 세상 안에 악은 있지만 세상이 악인 것은 아니다.
우주 내부에 혼돈의 세력들이 있지만 우주가 혼돈인 것은 아니다."
결국 악과 고통의 존재는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로 설명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악과 고통을 제어하고 계시지만
동시에 허용도 하신다는 것이지요.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욥으로 하여금 깨우치시려는 의도도
분명히 하나님은 이 혼돈과 허무와 악을 상징하는 두 짐승의 세계를
손안에 넣고 계시지만.. 그들의 존재를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분명해진 것은 인간이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맞서거나 다스릴 수 없듯이
악과 고통은 인간이 파악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자연악이나 도덕악이나 여하한 종류의 악이나 고통도
다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지만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로
이 세상 안에 허용을 하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적 파악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욥이나 우리 모두에게 요청되는 자세는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고통관을 버리고
신비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주권과 주권적 자유에 겸손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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