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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에 문 두드리기 눅11;5~8 출처보기
Beating Doors At Midnight by Jentezen Franklin
오늘 저는 ‘자정 Midnight에 문 두드리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지금은 ‘자정’의 시간.
확실히 지금 우리는, 자정의 시대 Midnight Hour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자정이라고 하면, 예언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자정’ 또는 ‘깊은 밤’은, 주님의 오실 때가 이르렀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를 알고 있습니다.
신랑은 자정에(깊은 밤에) 오셔서, 신부들을 데려가려고 부르신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정 시간에, 자신의 신부들을 데려가시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자정 Midnight에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하여, 자신의 재림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정이라는 시기에 교회를 데리러 온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자정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교회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어야 할까 라는 것입니다.
▲2. 지금은,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자정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꼭 신학자가 아니더라도
예수님이 이제 곧 오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정치적으로 자정입니다.
경제적으로 자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의 화폐, 하나의 정부를 항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일어나리라고 전하는 일을 향하여, 우리가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접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지금은, 영적으로도, 자정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자정 뿐만 아니라
도덕적, 영적인 자정 Midnight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지금 자정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심한 미혹과 가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영적인 Midnight 시간은,
하나님의 부흥과 성령의 부으심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할 시간입니다.
◑자정의 시간에는.. 떡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러한 때에
중보기도를 통하여, 자정에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정의 시간이 이르렀을 때
교회는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벗들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눅11:5절에 보면
우리를 찾아오는 벗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자정 시간에, 벗들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떡을 달라고 요청할 것입니다.
‘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떡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자정의 때에, 세상이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양식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났던 벗들이,
자정의 시간에, 우리 집 앞에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바로 그때, 교회가 양식을 얻기 위하여, 문을 두드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본문 눅11장을 보면, <주기도문>으로 이 비유의 말씀이 시작됩니다.
주기도문에는 ‘자신을 위하여’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눅11:3
하나님은, 이런 우리의 개인적 기도도, 기쁘게 들어주십니다만
그러나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기도는,
초등학생 수준의 기도입니다.
‘이것을 주시고, 저것도 주십시오’ 하면서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고 해도,
그것은 초등학교 수준의 기도입니다.
본문 눅11장에 ‘떡을 구하라’가 두 번 연이어 나옵니다
먼저 3절,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어지는 5절부터 여행 중에 먼길을 찾아온 친구를 위해서
밤 중에 자기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떡을 빌려달라’고 간구하는 본문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 두 단락을 따로 떼서 생각하지만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눅11장에서 예수님은 <기도에 관한 교훈>을
1절부터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2가지 방면으로 양식을 구해야 하는데요
먼저는, 자기와 자기 공동체를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지만
그것만 하면 안 되고, 또 한 가지 더 구해야 하는데
‘여행 중에 주린 벗을 위해서,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흔히 ‘강청하는 기도’로 잘 알려져 있는 비유입니다
잘 보십시오 ‘강청하는 기도’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강청하는 기도’를 해야지요!
다만 주의할 것은 ‘자신을 위하여’ 강청한 것이 아니라
본문은 ‘여행하다 지친 벗, 친구, 형제’를 위하여
강청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해
이웃에게 떡을 구하는 것은
<중보기도>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보기도가 어떤 것인지, 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벗이 있는데, 여행을 떠났다가, 갑자기 한 밤 중에 여러분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은, 그때 집에, 벗에게 필요한 양식이 없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하십시오. 지금 이 타이밍은 ‘자정’인데,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여 오실 시간, 또는 그 직전을 뜻합니다.
그때 주인(여러분)은, 이웃의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지금 친한 친구가 찾아왔는데, 여행으로 주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먹일 떡이 필요해요. 떡이 필요해요’ :5절.
주기도문에서는 자신을 위해 떡을 구하다가
이어지는 본문의 비유에서는 이제 벗을 위하여 떡을 구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떡이 충분한가요?’
이것이 자정이 이르렀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질문입니다.
(떡은 ‘말씀, 또는 예수님 자신’을 뜻합니다.)
저는 그들이, 자정의 시간에, 우리 크리스천을 찾아오리라고 믿습니다.
벗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굶주려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예수님이 있다면,
우리만 천국에 갈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으로 충만하면
그들이 찾아왔을 때, 우리에게 넘쳐나는 양식(예수님)으로
그들 또한 생명의 양식을 얻어먹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은, 오직 중보기도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생명의 양식을 준비한 데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정의 시간’이 다가올 때, 우리가 갖추어야할 자세입니다.
악한 세력이 가정에 밀려올 때
재난이 닥쳐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려 할 때,
세상이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고 있을 때
자정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조들이 일어날 때
기독교인,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자정에 이웃집의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내게 양식이 더 필요합니다. 내게 더 많은 양이 필요합니다.
내 벗들이 오고 있어요. 내 가족들에게 먹일 양식이 필요해요.
양식이 더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더 필요해요. 말씀이 더 필요해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필요합니다.
▲<중보기도>는, 교회의 비밀 병기입니다.
여러분의 친구, 친지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 예수쟁이가 싫어. 나를 내버려둬”
그러나 여러분은,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성령의 미사일’입니다.
그것은 믿는 자들의, 비밀 병기입니다.
그들이, 여러분과 함께 교회에 나오지 않더라도
여러분의 중보기도가, 그들을 뒤따라다닐 것입니다.
중보기도가, 그들의 거실에, 따라갈 것입니다.
중보기도가 그들을 따라가면, 재앙이 그들을 떠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중보기도할 때, 그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지금 내 기분이 이상해, 무슨 이유일까?
모르겠어. 그렇지만 기분이 이상해”
이것이 바로, 자정에 문을 두드리는 힘입니다.
계속 문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문을 두드리며, 더 많은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우리가 그들에게, 양식 외에 다른 것을 주려 한다면
그들은 다른 빵집을 찾아갈 것입니다. ☞관련글/ 빵 없는 빵집 Tommy Tenney
그들은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정에, 담대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자정의 시간이 가까워져 옴에 따라
우리는 더 담대히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떡)이 더 커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전보다 더 많이 기도를 해야 합니다.
◑떡을 구하기 위해서는,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눅11:5,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보세요.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문을 두드리며, 떡 세 덩이를 꾸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떡 한 덩이만 있으면, 하루를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밤 중에 친구가 찾아왔으면,
보통의 경우, 떡 한 덩이만 구하면 될 것입니다. 주1)
그리고 찾아온 친구도, 성경에 단수, 즉 1명입니다.
그러니 떡 세 덩이를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정의 시간이 이르러서
주인은, 떡 세 덩이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웃에게, 더 큰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딱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간구하는 것입니다.
▲적은 양의 축복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예수님께 조금만 구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자정 midnight 의 시간입니다.
그저 주일만 다니는 신앙만으로는, 우리가 버틸 수 없습니다.
지금은 ‘떡 세 덩이’가 필요한 때입니다. 한 덩이가 아니라요.
하늘 문을 두드리고, 이렇게 기도할 때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충분히 갈급해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때가 바로 자정의 시간 (잠 자는 시간)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자정은.. 떡 세 덩이를 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옆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해 보십시오.
‘지금은 자정입니다. 떡 세 덩이를 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자정에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떡이 필요합니다.
평소의 업무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제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이제 그만 일어나십시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제외될 것입니다.
눅11: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강청함 importunity, boldness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문을 가볍게 두드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조심스럽게 두드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창문을 서성거리며, 가볍게 두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을 거의 주먹으로 연거푸 치듯이, 강하게 두들기는 것을 뜻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해 보십시다.
작은 마을에서, 한 밤 중에, 이웃 집 문을 마구 두드린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멈추지 않고 문을 계속 두드리면,
개들이 아마 컹컹 대고 짖을 것입니다. 난리가 날 것입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란스럽다고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정의 깊은 시간에, 남의 집 대문을 강하게 두드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기도를 통하여, 마을을 발칵 뒤집기 원합니다.
히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런 고난은 받아도 괜찮습니다.
교회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깨우실 것입니다.
지금은 깨어날 때입니다.
지금은 자정의 시간, 주님이 돌아오실 직전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떡 세 덩이룰 주십니다.
본문은 이렇게 마치고 있습니다.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8
떡 세 덩이를 간청한 집 주인은, 자기 요구대로 받았다는 것입니다.오늘날 우리가, 떡 세 덩이를 간구할 때.. 하나님은 그 요구를 들어주신다고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이 ‘자정의 시간’임을 느낀다면,
우리는 더 절박해 져야 합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식이 필요합니다.
떡 한 덩이가 아니라, 떡 세 덩이가 필요합니다.
야곱은 자신에게 그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천사와 씨름하였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만약 똑같은 강도로, 머리를 쳤더라면, 야곱은 즉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씨름은, 야곱을 당장 죽일 목적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천사와 씨름(레슬링)할 때,
천사가 ‘놓으라. 나로 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천사는 속으로 ‘놓지 마. 더 붙잡아!’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네가 놓지 않고 꼭 붙들면, 네가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중보기도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을 붙들고,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를 축복해 주세요. 구원해 주세요. 양식을 주세요”
그때 천사가 나타나, 마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놓아라. 나로 가게 하라”
그렇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가 놓지 않기를 바란다. 계속 끝까지 붙들어서, 야곱처럼 축복을 받기 바란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절박함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절박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천국 문을 두드린다면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이
하나님의 집에 와서, 양식을 찾게 될 것입니다.
자정의 때가 이르면, 여러분의 친구들이 양식을 찾아올 것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다리를 절룩거리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도, 면류관을 얻기 전에, 먼저 절룩이게 될 것입니다.
궁전에 도달하기 전에, 먼저 웅덩이를 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붙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을 때,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창32: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떡 세 덩이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나 자신을 위한 떡만을 구하지 아니하고
친구들을 위한 떡을 구하십시오.
나 자신을 위한 축복만 아니라,
이웃을 위한 축복을 간구하십시오.
‘여행’을 떠났다가, 우리 집으로 찾아올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다가..
참 크리스천에게로 돌아올 친구들이 있다는 뜻도 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 동족을 위하여, 이렇게 단장이 끊어지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롬9:2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 가운데, 이런 절박한 심정이 있다면,
그가 바로, 본문에, 한 밤 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하여,
이웃의 문을 두드리는 자입니다.
그런 절박한 심령이,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움직입니다.
▲자정의 시간이 되면,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올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에게, 그들과 나눌 만큼, 충분한 양식이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구원 받을 것도 확실하지 않을 만큼, 양식이 부족해서, 비틀거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자정의 시간’에
주님의 증인이 되어서, 양식으로 충만하여
자신만 겨우 천국에 들어갈 정도의 양식을 갖고 있지 않고,
친구들을 위한, 떡 세 덩이를, 충분히 갖고 계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의 양식만 준비한 것으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준비하지 못해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자기 양식만 준비하다가는.. 자기 양식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위하고, 친구를 위한 양식까지, 충분히 준비하는 사람은,
결코 그 양식이 모자라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이 자정의 시간에는,
‘여행’을 떠나, 오랜 방황 끝에, 굶주리고 지친 영혼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습니다.
죄악과, 알콜 중독과, 나쁜 생활 습관에서.. 그들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여행’을 끝내고, 방황을 끝내고,
친구인 우리를 찾아오기 원합니다. 도움을 요청하기 원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양식을 나눠줄 만큼, 충분한 떡덩이가 있어야 합니다.
▲아가서 5:2~3절에 보면, 신랑이 문밖에 도착했습니다.
신랑은 신부가 문을 열어주기 원하지만, 어째서인지 신부는 거절합니다.
자기가 발을 씻었고,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어서, 잠잘 준비가 다 되었고,
그래서 문밖에서 기다리는 신랑의 음성을 듣고서도, 문 열어 주기를 거절합니다.
마침내 신부가 다시 감정이 살아나서, 문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침실 문을 열었지만, 문밖에는 아무도 없고,
문의 손잡이에, 신랑의 향기만 약간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과거의 잔재뿐이었습니다.
아가서 성경은, 그때가 깊은 밤 (자정)이었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의 자정과도 매치될 수 있습니다.
자정의 시간이 되면,
여러분의 인생에서, 주님의 과거의 임재의 향기만이 남았을 수도 있고,
반대로, 신선한 떡 세 덩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의 주님의 임재의 향기만을
붙들고 살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떠나버렸을 때.. 말입니다.
예전에 주님과 함께 했던 길,
예전에 있었던 친밀함만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신선한 떡 세 덩이가, 손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정의 시간에, 문을 두드렸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를 듣는 중에, 생각나는 친구가 있으십니까?
‘여행’을 떠난 친구.. 말입니다.
떡을 찾고 있는 친구들에게, 나눠줄 떡을 충분히 갖고 계십니까?
자신이 먹을 떡만 준비했다고.. 결코 만족하지 마십시다.
여러분이 영의 양식으로 충만하다면,
다른 세상의 것들은, 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자정의 시간에는,
더 많은 중보기도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자정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
주1)
여기서 사용된 '떡 덩이’(아르토스)는
예수님의 성찬식 때 사용된 떡 덩이와 같은 말입니다.
마치 피자만큼 큰 떡 덩이입니다. 그러므로 한 덩이면 한 사람은 거뜬히 먹습니다.
참고로, 5병2어 기적 때, 아이가 갖고 온 떡도, 헬라어로 같은 ‘아르토스’입니다.
아주 작은 크기의 ‘아르토스’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보통 크기는 접시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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