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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목회자의 기도생활2 / 찰스 스펄전

LNCK 2013. 7. 13. 14:09

https://www.youtube.com/watch?v=ORM-is_jyhE 

◈3장, 목회자의 기도생활2              렘13:17, 잠26:7,  히13:17     도서 스크랩  

스펄전의 책 「Lecture to My Students」

3장, The Preacher's Private Prayer 2   

찰스 스펄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크리스천다이제스트사 pp. 69~76 정리.

 

◑기도는 설교를 하는 동안에도 특별한 도움을 줍니다.

 

사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산에서

곧바로 내려와서 사람들에게 말(설교)하는 것처럼

그렇게 영광스러운 설교가 없습니다.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씨름한 사람들만큼

성도들에게 강하게 호소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엘린에 대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와 설교에 그의 마음 자체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의 간구와 그의 권면은 너무나 호소력이 있었고

거룩한 열심과 생명과 열정이 가득하여

완악하기 이를 데 없는 심령들을 녹이고, 감동시킬 정도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은밀한 교제(기도)를 통하여

그의 마음이 먼저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뜨거운 빛을 받지 않았다면,

이처럼 심령을 녹이는 거룩한 역사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전혀 꾸밈이 없이

열정이 넘치는 진정 감동적인 설교는

오로지 기도의 열매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처럼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연설법도 아니고,

그것을 배울 수 있는 학교도 없습니다.

오직 기도로, 십자가 밑에 나아가는 것만이, 그것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설교자의 언변을 좋게 해 줍니다.

기도할 때, 그의 마음이 먼저 준비됩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진정 우러나와서, 말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준비한 제물 위에,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여, 하나님께 받으시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기도의 응답으로, 새로운 통찰력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설교하는 중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에 의지하는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내용입니다만,

설교를 통해서 전달되는 가장 신선한 통찰력들은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도 통찰력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양질은)

설교를 하는 중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임하는 통찰력입니다.

 

설교하는 중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임하는 통찰력은,

평소의 설교자의 기도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평소에 기도에 성실한 설교자에게, 하나님이 그 통찰력의 선물을, 더 많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설교를 준비하기는 했는데,

무슨 연고인지.. 설교단에 올라가서 버벅거리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그 날은, 설교가 잘 풀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집에서 주님과 씨름한 설교자는,

그런 순간에서도 태연합니다. 당황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집에서 주님과 씨름한 일을 기억하고,

주님이 자기를 도와주실 줄을 믿는 것입니다.

굳이 예를 들면, 예금해 둔 것을, 급할 때 인출해서 쓰는 식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버려두지 않은 이상

하나님께서도 그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그날 그 시간에 필요한 힘을 보장해 주는 것이

바로 평소의 기도입니다.

 

 

◑설교자가 기도하는 이유는, 영혼의 구원/ 회심 때문입니다.

 

공적인 집회에서는, 설교자가, 자기 마음의 사랑을

전부 다 우리의 양떼들에게 쏟아 붓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항상 준비 한만큼 다 표현하지는 못하고,

70~80% 표현한다면, 성공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자기 감정이나, 마음의 진정성을.. 마음놓고 다 풀어놓을 수도 없습니다.

설교단은 공식적인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사랑이 많은 목사는,

요셉처럼, 어디서 울어야 할지를 생각하고, 그곳을 찾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처음 만났을 때, 다른 방으로 가서, 혼자 거기서 울었습니다.

 

이와 같이 강단에서는, 자기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은밀한 기도 가운데서는,

자기 속에서 솟아 나오는 감정을 다 토로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도 인간입니다. 자기 인간의 힘으로는,

한 사람이라도 압도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여,

하나님이, 직접 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힘쓸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설득하여 구원 받도록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그들의 비참한 처지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며

주님의 개입을 간구할 수는 있습니다.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며,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렘13:17

 

이렇게 은밀한 곳에서 울은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우리도 그렇게 결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간절한 호소에 대해서, 주님의 마음이 무관심하실 수 없습니다.

정하신 때가 되면, 슬피 우는 목회자는,

청중들의 영혼을 얻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끈질긴 고뇌의 기도와, 영혼의 구원 사이에는 분명한 관련이 있습니다.

임산부에게 진통이 있으면, 출산이 있게 마련이듯이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거두게 됩니다.

 

‘아니, 어떻게 하셨기에 씨앗이 이렇게 빨리 싹을 냅니까?’ 라고

어느 농부가, 옆집 농부에게 물었더니

‘씨앗을 물에 담가 두었지요’ 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우리의 모든 설교와 가르침들을

눈물 속에 미리 담가두어야 하겠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1718~1747, 이 분은 직접 사역해서 거둔 열매보다,

그가 남긴 책/일기를 통해서, 많은 목회자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그래서 18세기에서 21세기 지금까지, 사후에 더 많은 열매를 거두고 있는 분입니다.)

 

“4월25일 주일/ 오전에 경건의 임무에 2시간을 소비하였고,

보통 때보다 더 영혼들을 위해 고뇌하였다.

이른 아침이었고, 태양이 아직 뜨지 않았는데도

나의 몸이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마르틴 루터의 비결도, 같은 데 있었습니다.

테오도루스는, 루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는 내가 우연히, 그의 기도를 엿들었는데,

그의 기도가 어찌나 생명과 영혼이 가득했는지!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그렇게도 경건이 충만했고,

또한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확신이 넘쳤다.”

 

형제 여러분,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위대한 재능은 전혀 없더라도, 간구가 풍성하면,

그런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스펄전이 최근에 故 Faber 가톨릭 신부의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 한 가지 전설이 눈에 띄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설교로 회심시킨 한 설교자가 있었는데

그에게 하늘로부터 계시가 와서 이르기를

그 설교자의 재능이나 실력 때문에 회심한 경우는 단 하나도 없고

 

그의 교회에서 회심이 일어난 모두가

강단에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있는

글도 쓰지 못하는 한 평신도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항상 거기에 앉아서, 설교의 열매를 위해서 간구했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회심이, 그 설교자를 통해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전설입니다만

저 스펄전은, 그 내용을 읽으면서, 경각심을 느꼈습니다.

 

모든 일이 밝히 드러나는 그 날이 올 때,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목회자가 오랜 세월동안 설교로 수고하고 난 후

금이요, 은이요, 고귀한 보석과 같은 기도를 드려온 다른 건축자(중보기도자)에게

모든 영광이 돌아가고

기도 없이 행한 설교자들은

그저 지푸라기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날지도 모릅니다.

 

 

◑기도의 필요가 얼마나 많습니까!

 

회중들가운데는 언제나 병든 사람이 있고

더 심각한 병은, 영혼이 병든 환자인데,

영혼이 병든 사람이, 육신이 병든 사람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녀도, 아직 회심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회심은 했지만, 영적 침체에 빠진 사람들도 많습니다.

침체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영혼이 나태해져서, 위태위태한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필요들을 본다면

목회자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필요들을 만약 보지 못하면,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사역자라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는 제사장으로 설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12지파 이름을 새긴 흉패(보석)를, 에봇 위에 입었습니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이름을 새긴 옷을, 영적으로 입어야 합니다.

그 옷을 입고서, 휘장 안으로 나아가서, 그들을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형제는,

특별히 위해서 기도해야할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서

항상 자기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혹시 기도에, 잊어버리고 빠뜨릴 수 있는 위험을

최대한 방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회중들만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도, 영적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용사는,

그 나라를 지키는, 불의 성곽과도 같고,

마치 그 교회의 수호천사처럼 소중한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객기와 만용에서가 아니라,

정말 주님이 그에게 감동을 주셔서

‘주여, 스코틀랜드를 제게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단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정말 자기 마음에 사명감으로 충만해서

‘이 지역을 제게 주시옵소서. 이 나라를 제게 주시겠습니까.’

하고 꾸준히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영적지도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날의 영적지도자는,

무슨 단체의 장으로 선출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서, 제사장의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그 기도가 날마다 나오고, 쉬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그가 지도자입니다.

 

 

◑기도를 소홀히 하는 목회자는, 자기 소명감을 점검해야 합니다.

 

기도하기를 소홀히 하는 설교자는,

자기 목회나 사역에 대해.. 진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고,

결국은 소명감이 없는 사역자입니다.

 

자기의 소명이 분명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이며,

지옥으로 달려가는 영혼들의 심각성을 철저히 깨닫는 사람이라면,

어찌 기도나 설교에,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제사장이 받는 존경심이 좋아보여서

또는 제사장이 받는 떡조각이나 분깃에 마음이 끌려서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외식자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쟁기로 (말씀과 기도로 영혼들의 밭을) 깊이 파고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입니다.

 

    그는, 틈만 나면 빈둥거리고 노는데 관심이 있을 뿐

    결코 주님에 부름 받은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설교자로서 그는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잠언에 두 다리가 서로 똑같지 않아서 절뚝거리는 절름발이가 나옵니다.

만약 강단에서 설교는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보지 않는데서 은밀한 기도가 없는 사람이라면,

그가 바로 영혼의 절름발이인 셈입니다.

그의 기도가, 그의 설교보다도 더 짧으니 말입니다.

 

잠언 26:7

“미련한 사람이 입에 담는 잠언은, 저는 사람의 다리처럼 힘이 없다.” (새번역)

 

“미련한 자의 입에서 나오는 격언은, 절름발이에게 덜렁덜렁 달려 있는 다리처럼

아무 쓸모가 없다.” (현대인의 성경)

 

▲물론 저 스펄전을 포함해서, 아무도,

자기가 기도생활에 충실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기도생활에 게으른

주변 목회자들을 보면서, 위로를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래도 되나 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상인가보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간에

기도생활에 충실한 목회자 두 분을 예로 들면서,

그 분들의 기도생활을 본받으려 합니다.

 

▲먼저는 이 강의에서 종종 언급했던 조셉 엘린입니다.

 

건강하던 시절, 그는 언제나 새벽 4시나 혹은 그 이전에 잠자리에서 일어났고

그가 하나님과 교제 시간을 갖기 전에

대장장이나 다른 직공들이 먼저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그 소리가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지 모르겠소.

나의 주님이 저 사람들의 주인보다 더 고귀한 분이 아니신가 말이요’

라고 제게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새벽 4시부터 8시까지, 그는 기도와 거룩한 묵상과 시편들을 노래하며 시간을 보냈고,

그 일을 크게 즐거워했고, 날마다 그렇게 했고,

가족들과도 종종 그런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때로 교회의 일상적인 약속들을 뒤로 미루고

며칠을 이러한 은밀한 일에 다 쏟아 붓기도 했는데,

그 일을 위해서 그는 빈집이나, 아니면 넓은 골짜기의 한적한 곳에서

홀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에 대해서 묘사한 것을 소개해 드립니다.

정말 우리 얼굴이 부끄러워서 붉어지게 만드는 글입니다.

 

그의 (기도)생활이, 사역의 성공을 향하여 나아가는 올바른 길을 보여줍니다.

그는 마치 군인이 전투를 앞두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그날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아침에 준비하고 애쓰는 것처럼,

 

혹은 달리기 경주를 하는 자가, 큰 상을 바라보고 열심히 준비하고 달리는 것처럼,

그렇게 기도와 묵상으로 준비하고 수고하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다른 영혼들을 향한 사랑에 고무되어

언제나 열심을 다해 수고하되,

공적으로 사적으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서는 물론이고,

 

밤낮으로 은밀한 중에 <하나님과 씨름하고>

말할 수 없는 탄식과 고뇌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그가 보내심을 받아 사역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시기> 위해서,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사역에 축복이 임하기를 얼마나 갈망했으며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였습니다.↓>

 

히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그리하여 어둡고 실망스런 모습 가운데서도,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마침내 놀라운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처럼, 그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인내로 기도하며 씨름하였고,

드디어 광명의 새벽을 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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