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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인의 일을 다하라

LNCK 2013. 7. 22. 01:24

◈전도인의 일을 다하라               마5:16, 행11:24, 딤후4:5                    출처보기

 

 

▲마치는 말

오늘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로서 가장 적임자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착한 사람을 귀하게 쓰신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의 사명을 다하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비결 두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착한 사람이셨던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따라서 착한 삶을 사셨던 믿음의 선배들을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일입니다.

 

착한 삶을 살았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과

도르가와 고넬료와 바나바를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과 한경직 목사님들을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착한 사람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설교 시작)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오산초대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인생 칠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고

오후 시간에는 이 지역에 있는 몇몇 교회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전도인의 일을 다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7년 전인 1983년 7월 12일부터 10일 동안 화란 암스테르담에서

“국제 전도대회”가 개최되었었는데, 그 전도대회가 정한 주제가 바로

"전도인의 일을 다하라" 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지도아래 세계 132개국으로부터 온 4천여 명의 목회자들과

전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전도대회를 가졌는데 은혜와 감동이 충만한 대회였습니다.

 

암스테르담 대회가 정한 성구가 바로 딤후4:5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4:5).

 

암스테르담 전도대회 때 빌리 그래함 박사는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전도는 변화된 사람의 삶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입니다.

 

“전도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다.” 빌리 그래함 박사는

전도자가 전도자로서의 성결한 삶을 잃으면 전도자로서의 삶은 끝장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저는 그 때 너무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아 마루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사도행전에 나타난 전도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전도는 주로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전도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 보다,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도 교회와 신자들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 나타난 전도의 모습과 전도의 비결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 전도는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힘써서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행2:42 이하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2-47).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일에 힘썼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일에 힘썼고,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길게 나열한 것은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하는 일을 힘썼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웃에게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와 성장의 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전도가 계속해서 이루어졌는데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이 박해 중에서도 기도하며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데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2_37).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와 성장의 비결은 말씀과 교제와 기도와 함께

무엇보다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욥바와 가이사랴에서의 전도도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행9:42은 욥바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42).

그리고 그 배경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그 배경 이야기란

다비다 또는 도르가란 여인이 욥바에 살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고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행9:36-42).

 

욥바에서 이루어진 전도의 비결도 도르가가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데 있었습니다.

결국 전도가 힘있게 이루어졌고 욥바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더라.”

 

어느 교회든지 전도를 많이 하고 성장을 많이 하기 위해서는

선행과 구제가 많아야 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나팔 부는 선행과 구제가 아닌

도르가처럼 조용히 하는 선행과 구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기록된 가이사랴에서의 전도도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가이사랴에 복음이 전해진 배경의 이야기는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 백부장이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를 힘썼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그런데 고넬료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시고 베드로를 보내셔서

전도의 사역을 이루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펴는 것이 전도의 필수 조건임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방인 전도와 선교에 있어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고넬료는 또한 인간관계가 원만한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도는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베드로에게 보낸 후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자기 집에 다 불러 모으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행10:24).

 

고넬료는 참으로 인격과 성품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가 원만한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도 들었고

하인들과 일가와 친구들과 이웃들의 마음에도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이 전도를 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가이사랴에 가는 것을 싫어하며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 강제로 베드로로 하여금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 가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항복하고 가이사랴로 달려 갔습니다.

고넬료 집에 모여있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열려 있었을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의 친절한 초대와 따뜻한 대접에 저들의 마음이 많이 열려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의 씨앗은 열려 있는 마음에 뿌려집니다. 성령은 열려 있는 마음에 임하십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34-43).

 

베드로가 이렇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께서 모든 사람 위에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곳에 모여있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이사랴에 구원의 역사가 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가이사랴에 전도가 이루어졌습니다.

 

고넬료라는 로마 군인 백부장의 사랑과 구제와 친절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전도는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부드럽고 친절한 인간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안디옥에서의 전도도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방인 안디옥에서 이루어진 전도도 착한 일 즉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 11장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24,29,30).

 

초대교회에 있어서 전도는 착한 사람들의 사랑과 구제의 손길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전도는 모두 착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전도는 착한 사람들의 착한 행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제가 70 평생을 살고 나서 할 수 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능력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얼굴이 예쁜 사람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착한 목사, 착한 장로, 착한 권사, 착한 집사,

착한 신자가 제일 좋은 사람들이고, 제일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착한 사람 바나바

 

아마 사도행전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사람은 바나바라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 바울이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바나바의 착한 역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디옥교회가 세계 선교의 기지가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바나바의 착한 역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아시아와 유럽 선교가 이루어진 것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지만

동시에 바나바의 착한 역할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나바를 묘사하면서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말하기 전에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착한 사람이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추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돈이나 물질에 집착하는 대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돈과 물질을 기꺼이 바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자기를 내 세우는 대신 다른 사람을 내 세우면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착한 사람이란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대신

사람들의 인정과 신뢰와 칭찬을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제 사도행전이 묘사한 전도인 바나바의 착한 모습 일곱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바나바는 무엇보다 먼저 돈과 물질에 인색하지 않은

마음이 너그러운 착한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6,37).

 

바나바는 돈이나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돈과 물질을 기꺼이 바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돈에 인색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 프랜시스처럼 손양원 목사님처럼 장기려 박사님처럼 한경직 목사님처럼

돈과 물질에 대한 애착을 버릴 때 착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돈과 물질에 대한 애착을 버린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2. 바나바는 둘째로 어려움에 처한 사울을 변호하고 격려한

마음이 따뜻한 착한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행9:26,27).

 

과거가 있는 사람, 사람들의 오해와 불신과 비판을 받는 사람을 변호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오해와 불신과 비판을 받고 있던 사울을

예루살렘의 사도들 앞에서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사실 바나바란 이름의 뜻은 ‘위로자’ 또는 ‘격려자’란 뜻입니다.

바나바는 어려움에 처한 사울을 변호하고 격려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3. 바나바는 안디옥에 복음이 전해졌을 때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으로 파송한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행11:22).

 

바나바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교회와 성도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웃 전도와 이방 선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해심과 포용심이 많은 착한 사람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이방선교에 적임자로 인정을 받아서 예루살렘 교회의 파송을 받은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4. 바나바는 안디옥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을 때 자기 혼자서 목회를 하려고 하지 않고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그를 데려다가 협력 목회자로 세운

협력과 동역의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5,25)

 

오늘날 한국교회는 개 교회적으로나 개 교단적으로 협력과 동역 보다는

자기가 장이 되어서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려다가 협력 목회자로 내 세운 협력과 동역의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5. 바나바는 유대에 흉년이 들었을 때,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바친 구제 헌금을 가지고

사울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왔다고 묘사했습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행11:29,30).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행12:25).

 

교회의 첫째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만

둘째 사명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펴는 착한 일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그 일을 했습니다. 바나바는 사랑과 구제의 손길을 편

그리고 그 일을 몸소 수행한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6.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파송을 받아서 소아시아의 선교사가 되었다고 묘사했습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2,3)

 

안디옥교회의 목회는 너무너무 재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발전하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회를 시작한지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교회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안디옥교회는 바나바를 절대로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의 다섯 명 지도자들 가운데 바나바는 제일 존경을 받는 대표적인 지도자였습니다.

 

다섯 명 지도자들 이름들 중에 바나바의 이름이 제일 먼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보통 목회자였다면 존경을 받고 있는 터에 교회당을 좀 더 크게 짓고

70세 정년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성공한 목회자로 평생 눌러 앉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를 떠났습니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지만

착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성령의 지시를 받지 않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착하지 않은 사람은 선교지를 향해서 달려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교회를 떠나 선교지로 달려간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7. 바나바는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핍박과 고난의 길로 달려간 핍박과 고난의 사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행14:5).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밖에 끌어 내치니라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행14:19-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행15:25,26).

 

착하지 않은 이기적인 사람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지 못합니다.

착한 사람만이 누군가를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는 복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고

고난의 길로 달려간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중에 이렇게 고백한 것은 바나바의 모범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착한 사람 바나바의 착한 모습 일곱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바나바가 전도의 사람이 된 비결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나바 때문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한 비결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그 비결을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행11:24).

 

제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와 중국연변지역과 아프가니스탄에

조그만 사랑과 도움의 손길 즉 착한 손길을 편 일이 있었는데

설교 한번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놀랍고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눈으로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서 가장 좋은 사람과 가장 필요한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자로서 가장 적임자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음이 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착한 사람을 귀하게 쓰신다고 생각합니다.

 

전도의 사명을 다하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먼저 착한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할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비결 두 가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착한 사람이셨던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따라서 착한 삶을 사셨던 믿음의 선배들을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일입니다.

 

착한 삶을 살았던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과 도르가와 고넬료와 바나바를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장기려 박사님과 한경직 목사님들을 항상 바라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씩, 조금씩 착한 사람들이 되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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