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LNCK 2012. 9. 19. 19:27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사2:1~22     10.09.12.설교스크랩

                                                                               

이사야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이사야서는 심판과 소망의 메시지가 반복해서 나타나는 예언서입니다.

1장의 주 내용이 심판에 관한 것이라면, 2장은 소망이 주 내용입니다.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황폐케 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딸 시온이, 포도원의 망대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성전이 불타고 성벽은 허물어지게 될 것입니다.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서, 모진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스라엘은 정말 소망이 없는 나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놀라운 소망을 보여 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 말일에 여호와의 산이 뛰어나리니 (1~5절)

 

다같이 2절을 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말일에” In the last days, 이는 종말의 때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 메시야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때를 가리킵니다.

 

말일이 되면,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고,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가장 우뚝 솟은 산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강대국 앗수르나 바벨론, 애굽의 산들이 훨씬 높게 보였습니다.

그 산들이 높기 때문에,  

그들의 신도 위대하고, 그들의 군사력과 경제력도 막강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야 36장에 보면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예루살렘을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합니다.

입에 차마 담을 수 없는 욕을 해가며 멸시합니다.

심지어 “자기 대변을 먹으며 소변을 마실 놈들아(12)” 그런 말까지 합니다.

 

앗수르는 당시에 최강국이었기 때문에 기고만장이었습니다.

마치 에베레스트 산이, 동네 뒷동산 바라보고 깔보는 것처럼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나 말일이 되면, 즉, 여호와께서 일어나셔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날이 되면

    어떻게 됩니까? 전세가 완전히 역전 됩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37장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나가서 앗수르 병사 18만5천명을

한 순간에 죽게 하셨습니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패하여 고국에 돌아갔다가

자기들의 신전에서 자기의 두 아들에 의해서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 하나님은

온 세상위에 뛰어나신 참 신이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말일, 종말 사상이 곳곳에 나타납니다.

 

노아시대를 생각해 봅시다. 노아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서로서로 자기들의 힘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때는 네피림 족속들, 용사들이 최고로 높은 산처럼 보였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노아는, 작고 낮은 민둥산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노아가 짖고 있던 방주를 무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어이. 노아양반, 돈벌이를 할려면 산 위에 별장을 지어야지,

골짜기에다가 방주는 지어서 뭐 할려고 그러나?”

 

그러나 말일이 되었을 때에, 홍수심판이 시작되었을 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상에서 힘 자랑하고, 권세와 부를 자랑하던 산들은 다 물 속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방주는 점점 높아져서 온 세상 위에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의 바로는 당시에 최고로 높고 높은 산이었습니다.

그는 태양신의 아들을 자처하며, 코가 하늘에 붙을 만큼 교만했습니다.

“여호와 그가 누군데, 그가 누군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거야?”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모세를 깔보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말일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10재앙사건과 홍해사건을 통해서, 바로의 코를 납작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애굽의 산은 낮아지고, 여호와의 산이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출15:11~12에서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

 

사람들은 평소에 애굽의 바로처럼, 앗수르의 랍사게처럼

자신들의 높음을 자랑하고 교만을 떱니다.

그러나 말일에, 하나님께서 그 강하신 오른손을 드시게 되면

세상에 높아진 산들은 다 낮아지고, 여호와의 산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됩니다.

 

예수님을 생각해 봅시다. 로마의 헤롯왕은 태산처럼 높고

마굿간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낮고 천한 골짜기처럼 보였습니다.

사람들도 예수님을 멸시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나 말일에, 하나님께서 그를 무덤에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빌2:9-11).

 

이 예수님은 또 말일에마지막 날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주와 복음을 위해서 믿음으로 산 자들,

주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산 자들은

다 불 못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 말일이 개인적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국가적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주적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일이 반드시 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그날에 비로소 영적인 눈을 떠서 무엇이 가장 높은 산인가?

어떤 산에 올라야 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고 무엇을 소망해야 하는가? 깨닫게 됩니다.

 

어제는 9.11테러가 일어났던 9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2010년 설교

어떤 분이 9.11 테러당시 바로 옆 건물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세계무역센타를 바라보며 ‘나도 언제 저 세계 최고 높은 빌딩에 올라가

세계최고의 엘리트 그룹에 끼어 일을 해보나’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일에, 갑자기 테러가 나서 거대한 두 건물이 무너지는데

뉴욕의 맨하탄 빌딩 숲에서 가장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러워했던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사회적 지위, 통장에 남아있는 자산, 외모, 몸무게, 직장, 학벌.

그런 것들은 아무 의미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서 대피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말일에 자기가 과연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가?

아니면 영원한 지옥불에 던져지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회개하고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말일이 되면 세상에서 높아졌던 산들이 한순간에 다 와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목숨을 걸고 올라야 할 산은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전의 산” “하나님의 산”인 줄 믿습니다.

 

다같이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임이니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이는 “자, 이제 하나님께로 나아가자”

“예수님께로 가자” 그런 뜻입니다.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예수님을 향해서 몰려오는 것입니까?

거기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참된 진리가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3b절을 봅시다.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임이니라”

 

사람을 바르게 하는 율법이,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곳을 향해서 몰려오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나아왔습니다.

모든 앓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 뿐만 아니라

니고데모같은 엘리트 출신들, 삭개오나 레위같은 세리들,

사마리아여인, 고기잡던 어부들, 열혈당원까지

각종 부류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향해서 나아왔습니다.

 

왜 그들이 앞 다투어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님께로 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말씀, 진리의 말씀, 구원의 말씀, 어두움을 몰아내는 빛의 말씀,

귀신을 제압하는 능력의 말씀, 죄를 용서하는 사죄의 말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천국의 말씀,

참 평안과 위로를 주는 은혜의 말씀이 예수님으로부터 흘러 나왔기 때문에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온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예수님께로 가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서 나올 것임이니라”

예수님은 말일에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성전이십니다.

 

행2장과 4장에 보면 한꺼번에 3천 명, 5천 명이 사도들에게 나아와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향해서 나아왔습니까?

 

그들에게 무슨 은금이 있었습니까? 그들이 무슨 좋은 취직자리를 보장해 주었습니까?

그들이 배운 것이 많아서 말을 잘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것은 없었지만 말씀이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말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2:21)”

 

그들에게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복음진리가 있었습니다.

심령골수를 찔러 쪼개는 권세있는 말씀,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하늘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그 말씀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구름떼와 같이 몰려온 것입니다.

 

저는 내년 UBF 50주년 행사를 앞두고, 요즘 초기 개척사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초기역사를 정리하면서, 과연 무엇이,

그 가난하고 암울했던 60년대 대학생들로 하여금

구름떼와 같이 UBF로 몰려오게 했을까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혹자는 그 이유가 당시 영어를 가르쳐주는 별다른 학원도 없고, 원어민이 없던 시대에,

배사라 선교사님이 영어성경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도 작은 이유는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진짜 핵심은 故이 사무엘선교사님과, 배사라 선교사님에게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사무엘 선교사님은 줄기차게 성경을 연구해서

말씀의 샘을 퍼서 젊은이들에게 공급했습니다.

그는 항상 말씀을 기초로 시대를 진단하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마치 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와 같았습니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불덩어리와 같았습니다.

 

배사라 선교사님은 빼어난 1대1 성경선생이셨습니다.

그녀는 슬픔 많고 상처 많은 한국 대학생들을 부둥켜안고

말씀으로 치료하고 위로하는 영적 간호사요, 어머니였습니다.

 

당시에 대학생들은, 이 두 분을 통해서 공급되는 말씀의 맛을 보고

말구유와 같은 대인동 UBF센타에 꾸역꾸역 몰려 든 것입니다.

 

이들이 점점 더 많아져서 1966년에는 전남대와 조선대에만 Group

성경공부 팀 수가 100개가 넘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공부 운동이 전주로, 대전으로, 대구로, 서울로, 독일로, 미국으로,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서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지난 라틴아메리카 여름 수양회에는 양들이 너무 많이 와서

멕시코, 볼리비아, 베네주엘라 등 세 군데로 나누어서 했습니다.

 

베네주엘라는 선교사가 한 가정밖에 없는데, 양들이 120명이나 왔다고 합니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양들이 몰려드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가 본국에서도 다시 한 번 일어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역사가 우리에서 부터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새로운 50년 역사에 주역들이 됩시다.

 

저는 요즘 말씀사역에, 내 자신을 온전히 불살라 드려야 하겠다고

다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만이 사람을 살리고 바르게 하는 신적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전베드로 선교사와 전화로 1대1을 했는데

큰 은혜를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1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말씀을 공부하고 나니까, 방향이 잡히고 소망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요즘 김믿음 목자를 보면 얼마나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장래문제에 대한 걱정근심 때문에 얼굴이 시컴하였습니다.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공무원의 산에 오를 것인가?

공무원 시험의 산에 꽉 막혀서, 전혀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분이 세상욕심을 좇던 것을 회개하고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확 피었습니다.

열정적으로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는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믿음목자를 보면서 말씀의 위력이 얼마나 놀라운가 보게 되었습니다.

잠언 29:18절에 (계시의) 말씀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있으면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게 됩니다.

그 마음에 거룩한 불이 타올라서 놀라운 역사를 창조하게 됩니다.

 

요즘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강권하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하고 있습니다.

전도에 불이 붙으니까, 전도가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르자”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사2:3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얼마든지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마4:4).

 

사람들의 눈에 명예의 산, 부의 산, 권력의 산,

지식의 산, 쾌락의 산이 크고 높고 환상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말일이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말씀의 산이 가장 높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멕시코에 블라스 목자라고 있습니다. 이분은 어마어마한 부자입니다.

제가 지난 중남미 지부장 수양회에 갔을 때에, 그 집에 가 보았는데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언덕위에 대저택이 있고 집안에 영화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구업으로 떼돈을 벌어서 부와 명성의 산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특히 멕시코에는 강도들이 많기 때문에

언제 테러를 당해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불면증 때문에 저녁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난 부자이지만 좋은 차도 타고 다니지 못하고

허름한 중고차를 타고 다니며 항상 주변을 살펴야 했습니다.

심장병 때문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염려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황아브라함 선교사님과의 말씀공부를 통해서

이분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씀공부를 통해서 여호와의 산에 오르게 되었을 때에

엄청난 부의 산에서 누릴 수 없었던, 참된 평강과 안식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단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는 이후 온 진심을 드려서 복음역사를 섬기는 열정적인 목자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의 서재를 보고 놀랐습니다.

시카고 영어메시지를 다 카피해서 파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열심히 말씀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지만

이번 멕시코 수양회에서도 온 무대를 새처럼 날라 다니며 메시지를 전해서

아주 큰 은혜를 끼쳤다고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확신을 가집시다. 시대가 어렵다고 탓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파합시다.

 

세상에 높은 산 부러워하지 말고 열심히 말씀의 실력을 쌓아서

말씀의 태산이 됩시다. 그러면 양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 올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으로 가자. 거기 가면 생명의 말씀이 있대”

“세계적인 1대1성경선생이 있데”

“답답한 내면을 뻥 뚫어주는 신령한 말씀이 있대”

“우리 더 이상 후문 술집으로 가지 말고, 월드마트를 지나서 선교회로 올라가자”

양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오는 환상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요즘 모든 파트, 요회들이 어찌하든지 양들을 먹이고자 전도를 나가고,

합심기도 모임을 하는 것을 보고, 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는데도, 차 네 대가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음 주에 출산하는 최민주 사모님도 점심모임을 섬기고,

캠퍼스에 올라가서 전도를 합니다.

 

어제는 구안나 사모님이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보고,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밖에서 숨어서 가만히 들어 보니

선교지 뉴질랜드에서 불태웠던 그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우리라..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양들이 막 몰려 올 것입니다. 국내 양들은 경한 일이요,

전 세계에서 몰려 올 것입니다.  사49:6

 

요즘 캠퍼스에 가보면 각 나라의 유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을 말씀으로 먹일 수 있도록 빼어난 성경선생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4절을 봅시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온 열방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여들게 될 때에

더 이상 각 나라는 무기경쟁을 하지 않고 전쟁을 그치고 세계평화가 오게 됩니다.

 

요즘 보십시오. 아무리 UN에서 핵무기 감축을 주장하고

전쟁하지 말자고 부르짖어도 소용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탐욕과 교만의 칼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소용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개입하셔서 중재하셔야

서로를 용서하고 영접하고 하나될 수 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야곱 족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어두움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상숭배와 각종 죄의 어두움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여호와의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고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하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2.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6~22절)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2:6절 이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놓아버리고 세상 것들을 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잘 먹고 잘사는 동방나라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의 풍습을 흉내 냈습니다.

은금, 보화를 땅에 쌓아두고 마필과 병거로 무장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전하고 행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1,12절을 봅시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는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를 높이는 자를 반드시 낮아지게 하십니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다 무용지물이 되게 하십니다.

레바논의 모든 백향목들,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들,

모든 높은 망대, 견고한 성벽, 다시스의 모든 배,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

이런 것들은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탐하는 우상이요, 사치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암혈과 토굴에 던져버리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은 우상, 금 우상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신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금값이 금값이라고 하죠.

그러나 하나님이 치시면 황금돼지가 무슨 소용이며, 각종 보석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두더지나 박쥐들의 장난감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은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인간이 쌓은 바벨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쌓을 때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입니다.

인생들이 그렇게 의지하고 자랑하는 부와 명예와 권력과 타이틀과 외모.

이런 것들은 셈할 가치가 없습니다.

 

약4:14에 “너희의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이 다 악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들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산이 무엇인가 배웠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이 가장 높아집니다. 말씀의 산이 가장 높은 산이 됩니다.

 

인간이 의지하고 자랑하는 것들은 하나님이 낮추셔서

두더지와 박쥐와 동급이 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산에 오르고자 힘써야 하겠습니까?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힘써 여호와의 전의 산에 오릅시다. 성전에 와서 열심히 말씀의 샘을 팝시다.

힘써 1대1 성경공부를 해서, 세상 가운데 여호와의 빛을 비춥시다.

 

말세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와 우리모임을

이만큼 영화롭게 하신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치고,

말씀을 전하고자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소중한 말씀의 횃불을 높이 들어서

만방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므로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는 새 역사의 주역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도인의 일을 다하라  (0) 2013.07.22
성령을 따라 행하라  (0) 2012.10.10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0) 2012.09.17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0) 2012.09.08
하나님의 마음.. 탄식, 초청, 경고  (0) 2012.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