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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설교에 집중하게 만드는 설교 / 찰스 스펄전

LNCK 2013. 8. 9. 13:24

www.youtube.com/watch?v=bqy1CJI1KRQ

◈9장, 설교에 집중하게 만드는 설교         잠언10:19, 슥4:6        도서 스크랩, English text

 

잠언10:19,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Lecture to My Students」 9장,              *7장, 8장은 정리 생략했습니다.

찰스 스펄전, 「목회자 후보생들에게」크리스천다이제스트사 pp. 200~220 정리 편집.

 

영국 군대 장교들은, 말하기에 앞서 “주목! ”이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어쩌면 설교자들도 설교할 때마다, “주목”이란 말을 먼저 해야 할 만큼,

회중들이 아예 설교에 집중하지 않는 교회당도 여럿 있습니다.

어떻게 설교에 저절로 집중하게 만들고,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1. 설교에 주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부’ 탓입니다.

 

▲저 스펄전은, 예민해서 그런지,

눈먼 맹인이라도, 설교 시간에 나를 향하여 얼굴을 들고 바라보지 않으면

아주 신경이 거슬립니다.

 

제 설교 시간에

청중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가,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본다든가,

또는 주위 사람과 속삭인다든가, 졸고 있다든가, 시계를 꺼내본다든가 하면,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최대한 설교에 집중시키는 방식을

제가 연구하고, 계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설교시간에는, 어린아이들도, 제 설교에 집중하게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예배드리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시간에, 종종 어린아이들에게 눈길을 줍니다.

그들을 쳐다볼 때, 그들은 제게 집중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서라도,

설교 중에, 아이들도 재미있게 알아들을 수 있는 예화를, 꼭 집어넣습니다.

 

▲여러분, 낚시 가서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으면,

그건 낚시꾼을 탓해야 합니다. 물고기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낚시꾼은, 낚싯바늘에 물고기가 반응하도록,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강가에서 두 사람이 곁에 서서, 같이 낚시를 해도,

한 사람은 많이 잡아도, 다른 한 사람은 거의 못 잡습니다.

그건 물고기 탓이 아니라, 어부 탓인 것입니다.

 

설교자는.. 회중들이 졸든지, 산만하든지..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내려온다면

그는 훌륭한 일류 설교자는 아닙니다.

 

훌륭한 설교자는, 비록 회중이 산만하고, 피곤하며 존다고 해도,

눈과 귀가 번쩍 뜨일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설교자가.. 전문가입니다.

물고기 탓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교시간에 바알세불이 역사합니다.

여기서 바알세불을, 그냥 우화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신학적이 아니라 마12:22~24

그는 ‘파리의 신’인데

다름 아니라, 설교 시간에 ‘파리’가 웽웽 하고 날아다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파리들인가 하면,

-어떤 농부는, 설교시간에, 밭 갈고 씨 뿌리는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날씨가 궂으면, 말린 농작물 거둬드릴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합니다.

-상인은, 결제하지 못한 수표가 눈 앞에 맴돕니다.

-가게 주인은, 어떤 물건을 어떻게 팔까 하는 생각으로.. 눈 앞에 파리가 웽웽 거립니다.

 

-심지어는 여자 교인의 리본이나 드레스에 한 눈이 팔리기도 하고,

-남자 교인의 구두에서 나는 삐꺽대는 소리가, 주위를 산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교인이 설교시간에, 예배당에 들어오면.. 모든 주위가 그의 구둣소리에 쏠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배시간에는, 아주 성가신 파리들이 무수히 날아다닙니다.

복음의 잔치가 있는 곳에, 파리들이 날아와서,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중의 주목과 주의집중을 빼앗아 버립니다.

 

제가 이 시간에, <설교의 주의 집중>을 주제로 말씀드리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영국의 많은 교회들에서, 설교에 집중하는 설교자,

또한 설교에 집중하는 회중들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예배나 설교는, 그저 ‘행사로, 치르기’ 식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지금 우리 영국에는, 회중들의 태도 자체가,

설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습관이요, 관행이 된 것 같습니다.

 

교회당에는 출석해서 예배에 참석은 하지만,

설교자의 말에는, 아예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지요.

 

대신에 자꾸 고개를 사방으로 기웃거리면서

‘누가 왔나, 안 왔나?’ 이렇게 사방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교회마다 여럿 있습니다.

 

때로는 늦게 들어오면서, (삐그덕거리는 마루가 있었던 시절에)

발소리를 내기도 하며, 문 받는 소리가 쾅하고 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설교에 집중하기 보다는,

‘누가 들어오나?’에 더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들어오기만 하면, 다들 고개를 돌려서 그를 한 번 슬쩍 쳐다봅니다.

 

그런데 제 스펄전에게는, 그런 여러분의 두리번거림이, 얼마나 거슬리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설교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아시겠지요?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설교는 별로 들을 게 없다’는 의식이,

매우 오랜 세월동안, 그들의 정신 속에 고착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별로 들을 만한 내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회들에서, 설교시간이 산만하고, ‘파리’들이 막 공중에 날아다니는 것입니다.

 

‘말, 말, 말뿐인 설교’, 도대체 말 이외에는 없는 설교에

회중들은 오래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시중에, ‘감사’에 관한 설교를, 가장 잘 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평소에, 늘 감사하는 삶을.. 자기가 실천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중에 ‘기도’에 관한 설교를, 가장 잘 하는 분이 있다면,

그는 평소에, 자기가 늘 쉬지 않고 기도하는 습관으로 사는 분입니다.

 

그런데 시중에 ‘전도’에 관한 설교를, 잘 하는 분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에 ‘전도’를 잘 하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설교는 이와 같이 ‘말, 말, 말’이 아니라,

‘삶, 삶, 삶’인 것입니다.

 

성경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삶이 없는 말만 풍성한 설교자는.. 허물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에 ‘내용’이 있어 보십시오.

사람들은 50마일을 걸어서라도, 그 설교를 들으러 나올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설교에 대한 기대’가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교회에 가면 하나님이 내게 무슨 말씀을 주실까?’

성도들이 그런 기대를 가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면서도, 성도들이

말씀에 대한 아무 기대감도 없이, 그저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니고 있다면,

그건 물고기 탓을 해야 되지 않고, 어부 탓을 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심각하게 점검해 보십시다.

오늘날 우리 교우들이, 교회에 나올 때, 어떤 기대감을 갖고 나오는가?

아니면 그저 때우기 식으로 나오는가?

 

아예 설교에 대한 아무 기대감도 갖지 않고, 교회에 나오는데,

설교 시간에 집중하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정직하고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2. 실제적 지침

 

▲1. 설교에 집중케 하기 위해서는, 내용을 잘 구분해서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 스펄전은, 어려서부터, 이것의 중요성을 크게 체험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바구니를 들고, 상점에 심부름을 갔습니다.

차 1파운드와, 겨자 가루 반 파운드, 그리고 쌀 3파운드를 사서, 집으로 돌아올 때

저는 사나운 개들을 피해서

산길과 웅덩이를 지나서 삥 둘러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바구니 속의 찻잎, 겨자가루, 쌀이

모두 한데 뒤섞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찻잎도, 겨자가루도, 쌀도.. 아무 것도 건질 수가 없었고, 다 내버려야 했습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락 별로, 주제가 비슷한 내용끼리, 잘 포장해서

구분을 잘 해서,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내용이 있어도, 중언부언이 되고 맙니다.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설교가 산만해 지는 것이지요.

 

설교에 원고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고를 작성하지 않고, 그저 머릿속에 기억만 갖고서 강단에 올라가면,

이말 저말, 횡설수설.. 중언부언 하게 됩니다.

 

그것보다는, 설교가

단정하고 가지런하게, 잘 정돈되어 있고,

흐름과 뼈대와 주제가 명확한 것이 좋습니다.

 

회중에게 ‘겨자가 섞인 차’를 마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즉 뒤죽박죽인 설교를 하지 마십시오.

 

▲2. 같은 말을 반복하면 안 됩니다.

또 설교를 지루하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은,

한 설교에서, 설교자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원고를 작성하지 않을 때, 특히 그렇습니다.

 

설교자 자신은, 말하기에 바빠서, 자기가 말을 계속 반복하는 줄 모릅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했던 말 또 하네’ 하면서, 귀가 거슬리는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는, 중간 중간에, 이제까지 했던 설교 내용을 <요약, 중간 정리>해 주느라,

했던 설교를 또 반복하기도 하는 데요..

그 <요약, 중간 정리>가, 한 두 문장으로 간단히 끝나야지,

한 단락이 되고, 5분이 경과하면.. 설교 내용이 반복이 되어서, 지루합니다.

 

▲3. 설교를 길게 하면 지루합니다.

스펄전은, 편당 약 40분의 설교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는 약 1시간의 설교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원고 작성이 철저하면 할수록.. 설교가 길지 않습니다.

반대로 원고 작성이 흐릿할수록.. 실제 설교가 길어집니다.

 

이상합니다. 원고 작성을 안 하면, 설교가 할 말이 없어서 더 짧아질 것 같은데

오히려 반대로 길어집니다.

왜냐하면 원고가 없으니까,

했던 말 또 하고, 이말 저말 중구난방 식으로 하니까, 설교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대개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스펄전의 설교는, 그 원고가 오늘날 대부분 내려오는데,

한 편의 설교 분량의 원고가.. 대단히 깁니다.

40분짜리 설교라고 하지만, 그 원고는 정말 두 시간짜리라고 해도 될 만큼

한편의 설교가, 방대한 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설교에 비교해 보면 그렇습니다.

내용도 많고, 인용하는 성경구절도 풍부합니다. 예화도 마찬가지이고요.

한 마디로, 설교 내용이, 대체로 대단히 풍성합니다. 먹거리가 많습니다.

 

설교가, 평소보다 길어지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농부는, 예배 후에 돌아가서 소의 젖을 짜야 하고,

엄마는, 빨리 집에 돌아가서 아기 젖을 먹여야 합니다.

 

그렇게 다들 예상하는 시간이 있는데, 갑자기 그날 설교가 10~20분 더 길어지면,

그 전에 받았던 은혜를.. 다 까먹어 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기 젖을 먹이는 일에 노심초사하게 되어서, 안정을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4. 설교를 지루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음성도 단조로우면 안 됩니다.

톤의 높낮이가 없는 것보다는.. 높낮이가 있는 것이 더 낫고

스피치의 속도가 천편일률적이기 보다는.. 말을 빨리 했다가, 느리게 했다가..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래야 듣는 사람들이, 더 집중합니다.

 

물론 이런 테크닉들은, 일단 설교 내용이 충실한 바탕에서.. 시도해 볼만 합니다.설교 내용이 빈약한데.. 커뮤니케이션 스킬만 발달하면.. 오히려 더 듣기 싫습니다.

 

또한 회중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서,

설교 중에 2~3초 동안 잠시 끊는 것입니다. pause 시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래를 쳐다보던 사람도, 고개를 들게 되고,

딴 생각 하던 사람도, 스스로 다시 주위를 환기합니다.

갑자기 들리던 설교 소리가, 뚝 끊기니까.. 잠깐 다시 집중이 되는 것입니다.

 

▲5. 뼈대가 있으면, 살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설교를 ‘뼈대’ 중심으로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교리, 본문내용분석.. 이렇게 뼈대는 잘 세우는데.. 살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뼈’를 먹지 않습니다.

설교의 뼈대를 잘 세웠으면, 살을 거기에 붙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살(즉 설교의 내용)도

생 것으로, 날 것으로 먹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생 것은 사람들이 안 먹습니다.

 

설교 준비라는 것은.. 다른 말로 요리 준비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된 재료를, 오랜 시간에 수고하여,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6. 그리고 설교의 <서두>를 너무 길게 하지 마십시오.

집을 지으면서, 그 ‘현관’만 크고 요란하게 만든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또 어떤 식당에 가면, 손님을 위해

식탁보를 깔고, 테이블을 세팅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을 허비해서

손님을 기다리다가 지치게 만든다면, 고객은 화를 낼 게 분명합니다.

 

설교의 서두는 필요하지만, 전채요리(에피타이저)는 간단히 하고,

식사의 메인 코스가 빨리 나올수록 좋습니다.

 

저 스펄전은, 설교의 서론을 마치 ‘포고원’(관가의 칙령을 읽는 사람)의 서론처럼

아주 간결하게 하려고 늘 노력합니다.

 

그들은 먼저 종을 울려서, 사람들을 광장에 불러 모은 후에

“여러분, 공지사항입니다.”이라고 운을 띠운 후에

막바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설교 서론에, 사람들의 주위를 끌만한, 신선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서론을 너무 길게 하지는 마십시오.

첫 머리는 화려한데.. 본론이 부실하면.. 듣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입니다.

 

▲정리하면,

 

여러분, 영국 왕이, 먼지가 뽀얗게 앉은 마차를 탈 수는 없습니다.

영국 왕이 마차를 탈 때는, 언제나 마부가 먼저 청소를 깨끗이 하고, 말도 잘 정돈합니다.

 

주님이, 성령님이, 만왕의 왕이, 우리 설교 시간에 임재하시려면,

그 설교내용이, 정갈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작성된 설교.. 거기에 주님이 임하시게 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산만한 설교에.. 주님 스스로도 임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위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원고를 철저히, 풍성하게 준비해야 한다>입니다.

 

 

◑3. 설교에 주목하게 만드는, 내용 있는 설교

 

▲회중들로 하여금, 설교에 집중하게 만들려면

당연한 말입니다만, 회중으로 하여금 귀에 들리는 설교,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즉 내용(컨텐츠)가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 과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만한 내용인 것입니까?

예수께서 죽으셨다는 것이, 과연 여러분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까?

 

여러분, 모세도 입이 어눌하다고 말했고,

신약의 바울도, 스스로 말에 능하지 못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우리 가운데는 ‘언변, 스피치’가 좋은, 그런 은사를 타고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입이 어눌한 것, 말주변이 능하지 못한 것..

이런 것은 결점이 될 수는 있어도, 큰 결점은 아닙니다.

 

큰 결점은, 그 설교에 내용, 컨텐츠가 없는 것입니다.

복음이 없는 것입니다.

또는 성령의 불이 싸늘하게 꺼져버린 설교입니다.

 

▲그리고 설교자는, <듣는 회중을 위해서도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회중들이, 설교자를 위해서도 중보기도해야 하지만,

쌍방향으로, 설교자도,

듣는 회중들을 위해서, 사전에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설교 준비의 일환이 됩니다.

‘오직 성령께서 회중을 인도하사, 고상하고도 경건한 마음의 상태에 이르게 하시고..’

이렇게 회중을 위해서, 사전에 또는 평소에 기도하는 설교자가

훌륭한 설교를 전하는 법입니다.

 

다른 교회에 초청 받아 갈 때도, 그 전에 간절히 기도로

그 교회 회중들의 영적 상태를 위해서 오래 중보기도할 때

더 능력 있는 설교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로 인정받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저 스펄전은, 저희 교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이, 제게는 비교적 더 쉽습니다.

제 교인들은 무언가를 듣고자 하는 목적으로 교회에 나아오고,

그들의 그런 기대가, 제 설교에, 그들 스스로가 더욱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런 상호 신뢰, 인정은.. 단 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어느 교회에 처음 부임하면,

그렇게 엄숙한 존경을, 당장 처음부터는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그 교회에서, 계속적으로 무게 있는 말씀을 전할 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른 후에,

설교자는 회중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물론 그 기간 중에는, 설교뿐만 아니라, 목회자의 성품까지도

회중들에게 인정을 받게 됩니다.

 

서두에 제가,

<회중들이 교회에 나올 때, 설교에 대한 기대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렇게 일정한 오랜 기간 동안, 회중들이 무게 있는 말씀에 계속 감동될 때,

비로소 <회중들이 교회에 나올 때, 설교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오늘 만약, 여러분의 회중이

<교회에 나올 때, 설교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이 나온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심한 책망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먼저 ‘뭔가 중요한 것(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대성을 절박하게 깨닫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숨기지 못합니다. 반드시 겉으로 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회중들에게, 반드시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회중들이

<교회에 나올 때, 설교에 대한 아무런 기대가 없이 나온다면>

그리고 설교 시간에도 <계속 주위만 두리번거리거나, 천정만 멍하니 쳐다보거나> 한다면

 

설교자의 영혼 속에 ‘뭔가 중대한 것(복음)’이 아예 없거나

과거에는 있었어도, 지금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경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곧잘 말합니다.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별것 아니로군!’

 

지방에서 도시로 다니러온 한 성도가, A교회를 방문해서 하는 말입니다.

‘뭔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별것 아니로군!’

 

▲전문 설교자들은, 예화나 일화도, 독창적으로 준비합니다.

자기 스스로 수집하는 <예화 창고>가 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책을 읽으면서 발견한 예화,

아니면 자기 삶에서 깨달은 일화들을, 그 창고에 잘 보관해 두었다가

결정적인 때에, 꺼내서 쓸 줄 압니다.

 

그런데 비전문가들은, 자기 <예화 창고>가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남의 설교에서 들은 예화,

아니면 시중에 회자되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이런 예화만 꺼내서 말합니다.

그러니까, 회중들이, 설교를 지루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예화나 일화를 들려면, 신선하고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몇 번 사용된 예화, 남들이 다 아는 예화는..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정리하면,

설교를 들리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용 있는 설교> <복음적인 설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50마일 바깥에서도, 걸어서 오든지, 말을 타고 오든지

사람들이 설교를 들으러 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용 있는 설교> <복음적인 설교>도

원고를 써서, 내용을 잘 다듬어야 합니다.

 

<내용 있는 설교> <복음적인 설교>도, 말을 잘 다듬지 않고, 원고가 없으면

-길어서 지루하거나,

-서론이 길어서 지루하거나,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서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와 여러분은,

물고기가 안 잡힌다고, 남 탓을 그만 하시고

어디를 가든지 물고기를 능숙하게 잡아 올리는

사람 낚는 어부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