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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은, 말씀으로 지어지고, 완성된다

LNCK 2013. 8. 17. 22:24
◈성전은, 말씀으로 지어지고, 완성된다          에스라5:1~2                    출처보기

                                                                          *원제목 : 모든 문제 위에 계신 하나님

 

※1차 포로귀환 후에 짓게 된 '성전건축'이 15년 가량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가 일어나서, 말씀으로 독려해서, 결국 완성하게 되었다는 주제. 

 

◑서론

 

유다백성들이 고레스 칙령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때는 주전 538년입니다.

그리고 2년 후인 주전 536년에 예물을 모아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이 방해를 시작합니다.

이들은 하나님도 섬기고 자기들이 믿는 이방신도 섬기는 종교혼합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함께 협력해서 성전을 짓자고 요청했지만 지도자들이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방해가 시작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약 16년 동안이나 성전건축이 중단되었습니다.

 

에스라 4장 마지막 절에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페르시아는 고레스가 첫 왕이고 몇 명의 왕을 거친 후,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주전 521년에 즉위했기 때문에 다리오 왕 제 이년이라 함은 주전 520년을 의미합니다.

주전 536년에 성전건축이 중단되어, 16년이 흘러 주전 520년이 되었습니다.

 

 

◑1. 성전 재건이 중단된 기간 동안 백성들의 상태

 

▲그러면 성전건축이 중단되었던 16년 동안에 유다백성들의 상태는 어떠했느냐?

그들의 상태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었습니다.

 

좋은 면은 하나님께 단을 쌓고 희생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전에는 안하던 단을 쌓고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피가 있어야 된다며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가지고 나아가는 번제를 실시했습니다.

 

명하신대로 조석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모든 거룩한 절기를 다 지켰습니다.

이 내용이 에스라 3장 3절로 5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16년 동안 그들의 문제는 (성전, 교회,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통해서 감동을 주어 “너희는 성전을 건축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무런 건설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중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아무런 상이 없고 고통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서 건설을 할 만한 적극적인 신앙이 부족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신앙은 있었어도 어려움을 뚫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 헌신하는 적극적인 신앙이 부족했습니다.

 

신약적으로 해석하면, 그들은 예수는 믿기로 입교는 했지만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제자로, 성숙된 신앙인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밖에서 사마리아 사람들의 핍박이 왔고, 안으로도 여러 가지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당시에 유다백성들이 겪은 국내적인 문제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먼저 핍절과 가난이 왔습니다. 학개 1장 6절에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찌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찌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군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사람마다 만족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연재해가 극심했습니다. 학개 1장 10절로 11절에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한재는 가뭄입니다. 한재를 불러 농사가 해마다 흉년이 들고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갖가지 재앙이 들이닥쳤습니다. 학개 2장 15절로 17절에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그 때에는 이십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석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집에다 먹을 것을 잔뜩 쌓아놓고 나중에 먹으려보니 다 곰팡이가 나버려 못 먹게 되었으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또 집에 크게 농사를 지어서 다 쌓아놓았더니 폭풍우가 와서 농작물이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푹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습니다.

 

이처럼 가난과 자연재해와 재앙이 국내적으로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그 원인은 신앙생활의 실패가 삶을 곤고하게 했다는 한 가지입니다.

기본구원으로 만족하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지 아니한 것이

그들에게 이런 국내적인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지으라고 하나님이 바벨론에서 해방시켜 고토로 돌아가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건만, 그들은 여호와의 전은 짓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집을 먼저 짓는 이기주의에 빠졌습니다.

 

학개 1장 9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렇게, 자기 구원의 완성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계발, 자기 성공, 자기 업적 쌓기로 나아가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전은 기초만 놔놓고 하나도 짓지 아니하고, 자기 집을 짓는 데는 빨랐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선지자가 “너희는 몸만 고토로 돌아왔지 마음은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다.”

라며 유다백성들을 책망했습니다.

 

스가랴 1장 3절에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는 것이 두 번 겹쳐 나오면서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성전건축을 완성할 만큼, 마음이 담긴 성숙한 신앙을 갖지 못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마음을 얹어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왕 예수 믿으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믿어야 됩니다. 마음을 얹혀서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게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얹혀서 믿는 것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은 이렇게 마음을 얹은 신앙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핍박이요 내적으로는 핍절이라고 하는 이중고를 겪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모든 문제들 위에서 여전히 통치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계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위에 계신 분이지 아래계신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많아도 위에 계신 분입니다. 이사야 6장 1절에

“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사도바울도 에베소서 4장 6절에 보니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 위에(over everything) 계십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핍박보다도, 경제적인 핍절보다도 우리의 연약함보다도 위에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온갖 어려운 문제에 눌려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나보다 위에 계시고 내 문제보다 위에 계셔서

나를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시다.”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내 모든 문제위에 계십니다.

 

 

◑2. 성전은 말씀으로 지어진다.

 

▲정체된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과의 새로운 만남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둘이 상면하는 것(meet)가 아니고, 맞부닥친다(encounter)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과 부닥치는 것입니다.

 

에스라 5장 1절에 하나님이 학개와 스가랴 두 명의 선지자를 일으키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사람들에게 예언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예언(預言)”은 미래 일을 말한다는 뜻인데 “예(預)”자에는 맡긴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증거했는데

두 선지자는 각각 성격도 사역도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많은 유다백성들과 한 편이 되어서 도와주었습니다.

2절에 보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같은 편이 되어

그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 가운데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선지자들이 “아니다. 지을 때는 벌써 지났고 지금이 바로 그때다.

늦었다고 할 때가 그 때가 바로 맞는 때다.”라며 격려합니다.

 

또 성전 짓는 일보다 자기 집 짓는 일에 빠른 사람에게 가서

“너희가 하는 짓이 지금 바르냐? 너희 소위를 살펴봐라.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너희가 너희 가정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가하냐?”라며 꾸짖습니다.

 

또 연세 드신 어르신 중에는 새로 짓는 성전이 옛날 솔로몬 성전에 비해

너무나 작고 초라하다고 탄식하고 불평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더 적극적인 말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쇠하다보니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의식적으로라도 자꾸 적극적인 말을 하셔야 힘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과거의 솔로몬 성전은 영화로운데 지금 이것이 무엇이냐며

탄식하고 불평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선지자가

“그런 말씀하지 마시오.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클 것입니다.

그리고 만국의 보배 되신 그리스도가 이 성전에 서실 것입니다.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더 중요하지 그곳의 크고 작음이 뭐가 중요합니까?

이 성전에 여호와가 함께 하십니다.”라며 격려합니다.

 

또 가난과 자연재해와 재앙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백성들에게는

“너희가 성전 짓기를 시작만 하면 그날부터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

그러니 좌절하지 말고 성전 짓기를 시작하라. 그러면 그날부터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기 싫은데 누가 떠밀어서 억지로 해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가 성전 지을 힘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스가랴가

4장 6절 후반으로 7절 전반에서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고 말합니다. 성신이 함께하면 이 일은 된다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의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되자

백성들 사이에서 새로운 태도가 일어났습니다.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과거에는 “하지말자”라고 하다가 “하자”라고 하는 새로운 에너지가 일어났습니다.

과거에는 “안된다”고 하다가 “될 것 같다”는 새로운 에너지가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감동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5년 만에 성전건축이 완공되었고

주전 515년에 완공된 이 성전을 가리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합니다.

솔로몬 성전이 제1성전이요, 스룹바벨 성전이 제2성전이요,

이것을 나중에 헤롯대왕이 고쳐서 헤롯 성전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제3성전이 되었습니다.

이 헤롯성전에 그리스도 예수, 만국의 보배가 서신 줄로 믿습니다.

 

인류역사의 새 시대는 언제나 하나님의 종들이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때 일어났습니다.

캄캄한 구약시대에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증거하자 사람들이

“우리는 지금까지 이처럼 말씀하신 분을 만나뵙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신약시대가 시작되고 인류역사는 BC와 AD가 갈리는

위대한 전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도들이 말씀을 증거할 때도 사람들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그들로 인해 새시대가 일어났습니다.

 

루터와 칼빈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자 어두운 중세기가 끝나고

종교개혁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바른 하나님 말씀이라며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과학과 경제도 발전시켜 근대기도 오고 현대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청교도가 신대륙으로 가서 미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런데 청교도의 2대, 3대, 4대로 가면서 그들의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고

이신론(deism)에 빠졌습니다.

 

그때 미국에서 일어난 조나단 에드워즈와 영국에서 건너간 조지 휫필드가

여호와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증거하고 하나님의 주권(the Sovereignty of God)을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깨어서 대각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 새시대가 일어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이 종들을 일으켜

새로운 말씀으로 인류와 만나게 하심으로 일어나게 된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개인의 인생에도 하나님 말씀과의 새로운 만남은 소망과 빛을 줍니다.

하나님 말씀과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만남 그 자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어찌하여 이렇게 정체(stagnation)되어 지루한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과 새롭게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루에 10분만 성경 읽고 10분만 기도해도 인생이 달라지고

새로운 시대가 올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의 새로운 만남이

우리의 심령에 부흥을 일으키는 첫 번째 원동력입니다.

 

 

◑3. ‘성전 짓는 일’에 대한 새로운 헌신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건물로서의 교회당을 짓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신령한 건축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가 일어나서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일을 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기본구원 받았다고 만족하지 말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일하던 것도 모두 다 중단하고

좌절감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비판과 중상모략이 너무 심해 좌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16세의 어린 나이에 목회를 시작해

시골에 가서 400명으로 부흥시켰습니다. 그러자 18세에 영국 런던의

New Park Street라는 침례교회로부터 담임목사청빙이 왔습니다.

 

당시 그 교회는 예배당은 천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인데

약 50명의 노인들만 교회에 나와 앞에서 예배드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스펄전이 이곳에서 2년 동안 설교해 5천명으로 부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였는데 스펄전은 침례교도였습니다.

 

그래서 국교도들이 공격했습니다.

“그는 잠시 떴다가 사라지는 혜성이다. 그는 사기꾼이다.”

라는 등 온갖 중상모략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도 때로는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믿는 사람의 배반으로 인하여 좌절감과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한대로 응답받지 못한 경우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좌절감과 우울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좌절감과 절망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종종 잘못된 도피처를 찾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십니다. 어떤 사람은 술로는 부족해 약도 먹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불륜관계에 빠집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도박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해봐야 그나마 남은 것마저 잃게 되어 좌절감만 더 깊어질 뿐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잘못된 도피처이므로 그리로 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문제가 다가올 때 하나님의 일에 대한 새로운 헌신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면 새로운 기쁨이 옵니다.

교회에 와서 빗자루를 들고 예배당을 쓸고 설거지를 해보십시오.

그리고 찬양대에 들어가 찬양으로 봉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력보다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면 기쁨이 솟는 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매우 심한 우울증에 걸려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문제를 무려 2시간동안이나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2시간 동안 얘기를 듣고 난 목사님이

“당신은 주님을 위해 무슨 사역을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왜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하느냐며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당신은 주님을 위해 무슨 사역을 하십니까?”라고 다시 물어

이 부인이 의아해 했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님이 “저라도 당신처럼 자신의 문제만 붙들고 하루 종일 생각하고

고민하면 벌써 우울증에 걸려 죽었을 것입니다.

당신의 문제는 너무 자기중심적인(self-focused) 것이니

이제 당신 문제는 놔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보다 불행하고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번이라도 봉사해 보십시오.”

라며 돌려보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좌절감과 우울증 원인의 상당부분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꿔야 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리고 나보다 약한 사람들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라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십시오.

 

그러면 우울증과 어두움은 물러가고 빛이 와서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그리고 자꾸 에너지가 생기고 새로운 태도가 생겨나서

재앙은 물러가고 복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헌신과 봉사를 통해서,

우리 각자는 <구원의 완성,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유다백성들이 성전을 짓지 않고 있을 때는 온갖 문제가 있었지만

성전 돌을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문제는 사라지고 복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문제만 갖고 고민하지 마시고 주의 일에 헌신하십시오.

 

그러면 자기 <구원의 완성>을 이루면서,

동시에 문제가 해결되고 큰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에스라 5장 5절에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 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전건축을 완성하게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이 돌아보신”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기본구원을 받은 유다백성들은 건설구원을 이루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전의 완성, 즉 구원의 완성은 본문에서 두 가지로 이루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새롭게 만나고,

-하나님의 일에 새롭게 헌신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성전의 완성을 이루면, 문제는 해결 받고 다시 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학개 2장 19절 후반에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성전의 완성, 구원의 완성을 시작한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오늘부터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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