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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감동시키시는 하나님

LNCK 2013. 8. 19. 13:46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하나님               에스라1장                           출처보기

                                                                                  

 

 

서론                                                                                           에스라서 설교모음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40년이나 90년이 아닌 70년을 포로생활 한 이유가

역대하 362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었으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6년간 토지를 쓰면, 1년은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490년 동안 한 번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490년을 7로 나누면 70년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지키지 않은 안식년을 한꺼번에 다 지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땅은 70년 동안 안식을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한데 대한 형벌(punishment)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다백성이 70년 포로 생활한 것은 형벌의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의 훈련(discipline)이라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70년 포로생활을 통해 유다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은혜를 주셨고 여러 가지를 훈련하셨습니다.

 

첫째,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을 때에는 가나안 일곱 족속들이 섬기는 우상숭배에 끊임없이 미혹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라 해도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우상을 섬기니 결국은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된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우상을 섬기면 안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우상의 본거지인 바벨론에 가서 우상을 보니 우상이 지겨워지고

이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돌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간절히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는 우상을 섬겼으나 바벨론에 포로 되어가니

하나님을 그리워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쳤을 때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대로 결국 나라가 망해 포로가 되자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떤 세력도 그들을 포로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포로생활 가운데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약속뿐이었습니다.

 

포로생활은 70년이 될 것이고 70년 후에는 해방될 것이라는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보통 때는 하나님 말씀의

귀중함을 모르다가 어려움에 처하니 말씀의 귀중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셋째, 성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1371절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시온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는 성전이 있고 자유스러운 예배가 있었어도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 줄 몰랐는데

이제 그것을 잃고 나니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립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일체감과 책임감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열두지파로 나뉘어 서로 미워하고 싸웠으나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 공통의 고통을 겪다보니까 미움이 사라지고

그들은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부싸움이 해결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가 옆집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맞아서 얼굴에 코피라도 흘린 것을 보게 되면 부부간의 싸움은

자동적으로 멈추게 되고 옆집 부모와의 싸움을 위해 힘을 합치게 됩니다.

 

유다백성은 공통의 고통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일체감도 겪게 되었고

그들의 시각도 넓어졌습니다.

그동안 유다백성 대부분은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서 거기서 죽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활을 했으나, 이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바벨론 문화와 문물을 보고 세상이 넓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넓은 세계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책임감과 정체감과 일체감을 확고하게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고통이 삶 가운데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편 119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고난당하면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게 됩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는 과정은 3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끌려갈 때도 3단계로 끌려갔고 돌아올 때도 3단계로 돌아왔습니다.

주전 605년 여호야김 왕 때 1차포로,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 때에 2차포로,

주전 587년 시드기야 왕 때에 완전히 멸망해 3차로 끌려갔습니다.

 

그리고 귀환도 3단계입니다.

1차 귀환은 주전 538년에 이루어졌습니다.

페르시아 왕인 고레스는 고레스 칙령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유다백성들은 스룹바벨의 인도를 받아서 예루살렘에 귀환했습니다.

이것이 1차 귀환입니다.

 

에스라 264절로 65절에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 이천 삼백 육십명이요 그 외에

노비가 칠천 삼백 삼십 칠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명이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차 귀환 때 돌아온 합이 49,897명입니다.

1차 귀환의 목적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건축하지 않고 2년 동안 미적거리다

주전 536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에 반대 진영 사람들도 진영을 갖추어 가지고 공격을 해

16년 동안 성전건축이 중단되어 유다백성들은 허송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학개와 스가랴 두 선지자를 일으켜 백성들을 야단치십니다.

너희는 집을 지어 잘살면서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잘하는 짓이냐?

너희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옳은 짓인지 살펴보고

산에 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빨리 지어라.”고 야단치셔서

결국 5년 만에 건축해 주전 515년에 건축된 성전을 우리는 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릅니다.

이런 스토리가 에스라서 1장으로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백성들은 성전을 지었지만 율법을 가르쳐줄 스승이 없었으므로

예배드리는 법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전 458년에 율법에 익숙한

학사 에스라를 중심으로 1,754명이 2차로 귀환하도록 했습니다.

그 목적은 율법재건입니다.

 

그 내용이 에스라 7장으로 1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에스라서 전반부는 1차 귀환의 스토리요

후반부는 2차 귀환의 스토리인 것입니다.

 

1차 귀환은 주전 538, 2차는 주전 458년으로

두 귀환 사이에 80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가 주도한 3차 귀환의 목적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지어놓고 하나님 말씀대로 예배를 드리는데

성벽이 없으니 자꾸 적들이 쳐들어와 예배를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그 문제를 안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

성벽을 건축했습니다. 이것이 3차 귀환입니다.

 

이처럼 포로 귀환은 성전건축, 율법재건, 성벽재건의 순서로 이루어졌습니다.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놀라운 역사입니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망해 국민들이 중국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만에 돌아와서

다시 국가를 세운다고 상상해 볼 때,

70년 만에 다시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유다백성에게 이런 전무후무한 역사가 가능했던 원동력은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 시키신 것입니다.

 

 

1. 하나님은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고레스 왕은 페르시아 사람입니다. 페르시아의 일곱 종족 가운데

매우 작은 종족의 지도자였으나, 일곱 종족을 통일해 버리고

페르시아의 단일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전 539년에 메대와 연합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전 세계 최고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통치하게 되자 그는 유다백성을 향해서 두 가지 선한 일을 행했습니다.

하나는 고레스 칙령을 발표해 유다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솔로몬 성전을 파괴하면서 빼앗아 온

모든 성전 기명들을 그대로, 지도자인 스룹바벨에게 가져가지고 돌려준 것입니다.

 

이방 나라 왕인 고레스가 이런 선한 일을 행한 원인은

하나님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왕이 마음에 감동을 받으니

한 국가가 살아나는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2절 후반으로 3절 초반에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는지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저는 두 가지가 분명히 그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는 그의 내적인 확신이요, 다른 하나는 외적인 확신입니다.

이렇게 안팎으로 증거가 일치하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성령께서 고레스 왕의 영혼에 직접 일대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꿈으로 말씀하셨는지 음성으로 말씀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고레스에게 내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레스야 내가 너에게 세계 민족을 지배하는 통치권을 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네가 세계 열방을 지배하게 되면 바벨론에 포로 되어 있는

내 백성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도록 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느브갓네살이 나를 섬기기 위해 두었던 성전 그릇들을 가지고 왔는데

그것을 하나도 건드리지 말고 다돌려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고레스 왕은 하나님의 객관적인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에는 유명한 다니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성경을 읽어 고레스라는 인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시대보다 160년 전에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가 고레스의 이름을 이미 언급했습니다.

 

이사야 4428절에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기록되었고,

451절에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 받은 고레스의 오른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항복하게 하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다니엘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레스가 페르시아를 통일한다 할 때에도,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킬 때에도 그럴 줄 알았다고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이제 유일한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그에게 나아갔을 것입니다.

 

폐하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세계 모든 민족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내 백성인 유다백성을 해방 시키실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으니 당신은 내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성전 기물들을 돌려주셔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라고 고레스에게 말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고레스는 내적인 증거와, 외적인 말씀의 증거를 따라

마음의 감동을 입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성취하게 된 것입니다.

 

잠언 211절에도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제가 정치지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움직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위정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나는 못해도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는 진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위정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나라를 잘 통치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승진이 잘 안되고 윗사람의 마음이 잘 안 움직입니까?

그것을 내가 움직이려하면 오히려 그나마 조금 열리는 것 마저 닫혀버리니

그렇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어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의 마음을 마음대로 움직이신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유다백성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본문 5절에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다백성 49,897명이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남아있고 돌아오지 않은 사람은 약 2백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벨론에서 교육받고 바벨론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70년을 살아와 모국어인 히브리어도 다 잊어버린 유다백성들이

그들의 삶의 모든 터전을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백만 명은 돌아가지 않고 남았는데

그들이 겪은 사건이 바로 에스더서에 나타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49,897명의 마음은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이뤄놓은 모든 삶의 터전을 버리기로 결단했습니다.

 

시편 1375절로 6절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찐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심정입니다. 그들은 이런 심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못해 돌아간 것이 아니라, 일제에서 해방된 한국 사람들의 심정과 같은

기쁨과 감격의 심정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시편 1261절로 3절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유다백성들에게 감동이 있었습니다. 감동이 강도가 세어지면 감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에서 해방되었을 때에 백성들이 거리에 나가

태극기를 휘날리며 감격했습니다.

유다백성들도 이런 감격을 가지고 해방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은 예루살렘을 향한 진정한 갈망, 하나님을 향한 진지한 사랑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약 최고의 신앙부흥이요 두 번째 출애굽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애굽에서 나온 것이요 한 번은 바벨론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부흥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하심으로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흥을 주세요.”라는 기도보다도

하나님, 내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감격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감탄이 일어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3. 하나님은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불신자인 바벨론 사람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셨습니다.

본문 4절에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고레스 칙령 가운데 이런 내용도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유다백성들에게

은과 금과 예물을 주어 돌아가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왕이 주라고 해도 백성들이 마음에 감동이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은 이방사람들이요 불신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입고 은, , 물건, 짐승과 예물을 주었습니다.

 

6절에 그 사면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도 애굽 사람에게 예물을 받았듯이

바벨론에서 나올 때에도 바벨론사람으로부터 예물을 받아 돌아와서

성전을 짓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감동은 불신자들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직장 상사가 불신자일지라도

하나님의 감동은 미칠 수가 있다는 진리를 믿으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하나님의 감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약속이 때가 되어 실현된 것입니다.

70년이 지나면 너희에게 감동을 주어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일으켜주겠다고 하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도 기도했습니다.

다니엘 917절에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취시옵소서라고 기록되었고,

 

예레미야 2912절로 14절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에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덮어놓고 감동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열어놔야 감동이 옵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저는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주일 대예배는 정해진 시간이 있으므로

설교 후 기도할 시간이 짧습니다. 그러므로 수요기도회나 금요철야기도회에 나오십시오.

나오셔서 1주일에 한 시간은 부르짖어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이 우리 영혼에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으로 감동받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점점 화인 맞은 마음처럼 뭘 봐도 감동이 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봐도 그랜드캐니언 협곡을 봐도 큰 감동이 없습니다.

사람은 웃으면 엔돌핀이 나온다고 합니다. 엔돌핀이 나오면 두 가지 일을 하는데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약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엔돌핀보다 4,000배 효과 있는 것이 다이돌핀입니다.

그리고 이 다이돌핀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날 때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영혼에 감동이 있는 사람을 쓰십니다.

 

인생의 목적이 없이 하루 세끼 밥 먹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지내며,

좋은 것을 봐도 웃지 않고 슬픈 것을 봐도 울지 않고 살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영혼에도 하나님의 감동이 오고

하나님의 교회에도 하나님의 새로운 감동의 물결이 오며

심지어는 불신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감동이 오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감동이 와서

이 나라는 다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일어나고

세계를 향하여 선교하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감동을 주시고

감동이 강하여 감격이 되게 하시고

감격이 변하여 감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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