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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귀 사역의 중요성 마10:1, 고전15:57 Derek Prince 영어설교 번역, 맨 하단에 있음
※‘귀신 들린’은 영어로 demon possessed 인데
설교자 데렉 프린스는, demonized 로 번역해야 옳다고 주장합니다.
신약에 많은 ‘귀신들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중에 소수는 demon possessed 이고,
그들 중 대부분은 demonized 로 이해하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전자 demon possessed 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미친 사람’이고,
후자 demonized 는 ‘겉으로 표시는 안 나지만, 귀신에 일부분 붙잡힌 사람’입니다./편.
▲‘어떻게 귀신 또는 악한 영들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이런 주제로 제가 설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신자들에게 ‘당신은 귀신의 영향을 받고 있다. 악한 영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설교를 하면,
그런 말을 듣기 싫어하는 신자도, 일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귀신이나 악한 영이, 오늘날 현재에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에, 제가 이런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 보면 ‘귀신 demon’과 ‘악한 영들 evil spirits’은 같은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 설교에서 어떤 표현을 쓰든지, 여러분은 같은 뜻으로 알아들으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용어 정의가 아니라
‘어떻게 악한 영들로부터, 자유함 받는가?’ 하는 그 방법의 문제인데요,
이 주제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교회들에서는, 거의 가르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다루기 꺼려하는 면도 있지만요..)
귀신 또는 악한 영에 대해서, 거의 가르치지 않는 그것이,
바로 귀신의 역사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중요한 주제를 피해 가는 그것이 바로, 성령충만하지 못하고
악한 영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볼 수도 있다는 것이죠.
◑1. 예수님의 공생애 첫 사역
▲막1: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위 구절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첫 번째로 행하신 기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대단히 의미심장한 구절입니다. 첫 번째 기적이니까요.
위에서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는데, unclean spirit
우리는 이것을 ‘악한 귀신’으로 통칭해서 부르겠습니다. evil spirit.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고 했는데,
사실은 그 속에 있는 귀신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소리를 지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귀신이 소리 질렀다는 뜻입니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참 놀랍습니다. 더러운 귀신은, 즉시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봤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본 것은,
적어도 공생애 1년 반이 지나서였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공생에 시작 때부터 예수님을 알아본 것입니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잠잠하고’라는 말의 헬라어 뜻은 ‘입마개가 씌워지다’입니다. Be muzzled.
예수님께서 지금 단호하게 명령하시는 것은,
‘그 사람’에게라기보다는 ‘그 속에 있는 귀신’에게입니다.
축귀사역을 반대하시는 분들은, 그 방식이 비인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존중해야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더러운 귀신>을 향해서는, 단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예수님은, 그 귀신들린 <사람>을, 회당 밖으로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그 <귀신>을, 그 사람으로부터 쫓아내셨습니다.
오늘날, <사람>을 ‘회당’ 밖으로 쫓아내서는 안 됩니다.
그 귀신을, 그 사람 속에 그대로 둔 채로, 괜히 사람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대 영으로써, Spirit 對 spirit으로
그 사람을 상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종종 그렇게 하지 못하고 ‘사람’을 상대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하고 싸우려 드는데.. 그건 잘못입니다. 그의 ‘영’을 상대하십시오.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여러분, 예수님이 첫 번째로 행하신 기적이, ‘더러운 귀신을 쫓아냄’임을 명심하십시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리셨느냐 하면,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사방에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런 예수님의 사역을
너무 무시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날에는, 악한 영, 더러운 영에 의해, 고통 받는 사람이 없다는 뜻인가요?
◑2. 말씀사역과 축귀사역은 병행되어야 합니다.
▲막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왜 ‘해 질 때에’ 모든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왔을까요?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21
안식일에는, 유대인들은 멀리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의 사람들은
예수님께 올 수 없었던 것이지요.
여기 나오는 ‘귀신들린 자’란, *헬, daimonizomai
보통 성경엔 ‘demon possessed, 귀신에 완전히 점령된’ 이라고 번역하지만
저는 ‘demonized 귀신에게 고통당하는’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demonized’라는 말의 정의를, ‘귀신에게 고통당하는’ 이라는 뜻임을 꼭 기억하십시오.
‘demon possessed, 귀신에 점령되었다’는 뜻은,
완전히 정신을 잃고,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하는,
그의 마음과 정신이 100% 귀신의 조종을 받는 사람을 뜻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들도, 귀신에게 고통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신자들이, 귀신에 의해 완전히 점령당한 것은 아니지만,
즉 demon possessed 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인격 중의 일부 분야에서, 귀신에 의해서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즉 demonized 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서두에서, 예수님은
회당에 들어가셔서, 귀신들린 자를, 그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막1:23
보십시오. 그 ‘더러운 귀신 들린 자’는, 겉으로 보기엔 정상인이었습니다.
그는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본문의 정황상, 그는 정기적으로 회당에 다니던 신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속에 ‘더러운 귀신’을 보셨고, 그 귀신을 내쫓아 주셨습니다.
여러분, 심지어 그 당사자 자신도,
예수님이 그 귀신을 내쫓아 주기 전까지는,
자기가 더러운 귀신에 demonized 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속의 ‘더러운 귀신’은, 회당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회당에, 계속 정기적으로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더러운 귀신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즉시로 알아봤습니다. :24
그리고 쫓겨나갔습니다.
▲귀신들림과 질병이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질병이, 귀신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질병은, 귀신으로 인해 발병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보십시오.
: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많은 병자’와 ‘많은 귀신’을 동격, 또는 반복어법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여러분, 예수님의 ‘축귀사역’이
어떤 비상시에, 또는 이따금 한 번 하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하십시오.
예수님의 사역 중에 ‘축귀사역’은
평상시에, 일상적인 사역 중 하나이었습니다.
매일, 또는 매 번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말씀 사역’을 주로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 사역만 하신 것이 아니라, 축귀(+신유) 사역을 늘 병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혹시 은사중지론의 오랜 영향 때문인지
말씀사역과, 축귀(신유)사역을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와서, 말씀은 듣고 가는데,
귀신에 의한 괴롭힘 당함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귀신으로 인한 질병에서.. 치료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눅4:40 “해가 질 때에 사람들이 온갖 병으로 앓는 사람들을 다 예수께로 데려왔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주셨다.
: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마가복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가의 기록에도 보면,
앞서 예수님은 회당에서 말씀사역을 하셨습니다. :32
그리고 저녁에, 축귀사역을 병행하셨던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이 병든 자,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스스로 찾아서 예수님께 나아오니까,
어쩔 수 없이 축귀사역을 병행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직간접적으로 이런 축귀신유사역을 반대하는 것은
성경적인 태도라 볼 수 없습니다.
▲눅13:11. 십팔 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보십시오. 위 구절에는
여인의 질병의 원인이 ‘귀신들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질병은 그렇지 않더라도, 일부 질병은
귀신에 의해서 발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겸허히 인정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고침을 받자,
회당장이, 안식일에는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그러면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다시금 예수님은 명시하십니다.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딸’
즉 그의 질병이, 사단이 매어서 준 것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그의 질병은, 귀신을 내어쫓으심으로써, 자동적으로 치료되었습니다.
▲축귀신유사역은, 예수님의 사역의 목표였습니다.
눅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헤롯)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는 구절은
NIV, NASB 성경에 ‘I will reach my goal’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위 구절을 다시 읽어보면
예수님은 첫째 날에도(즉 사역의 시작에도) 축귀신유사역을 하시며
둘째 날에도(즉 사역의 과정에도) 축귀신유사역을 하시며
셋째 날에도(즉 사역의 마침도) 축귀신유사역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인 시종일관, 축귀신유사역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3.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서, 축귀신유사역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시지 않고서, 내 보내신 적이 없으십니다.
마10:1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그게 사실이라면, 축귀신유사역의 권세가 없이
사역에 나서는 것은, 성경적이 아닙니다.
▲마10: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이것은 말씀사역을 가리킵니다.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이 하신 사역, 제자들이 하신 (축귀신유) 사역을,
오늘날 현대를 사는 여러분, “개선 improve”시키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우리는, 초대교회의 사역, 예수님과 제자들의 사역을
개선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서 계승해야지, 인간적으로 뜯어고치려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70제자를 파송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눅10:1 “이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70제자를 파송하실 때,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을 보면,
70인도 그 축귀신유권세를 받고서, 파송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눅10: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저와 여러분이, 신약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신다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라는 말씀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됨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를 따라서 한번 큰 소리로 외쳐 보십시오.
“주여! 주의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4. 승천하기 직전 ‘지상명령’을 주실 때에도
<축귀신유사역>을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막16:15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여러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선교사역에,
15절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사역입니다.
17~18절은, 5가지 능력사역이 나옵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귀신을 쫓아내며’입니다.
방언을 말하며는 두 번째 라는 사실을 유의하십시오.
신유는 다섯 번째입니다.
어쨌거나 ‘귀신을 쫓아내며’가, 말씀사역과 더불어
선교사역 가운데 행해야 하는 첫 번째 표적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의 지상명령에도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마18:20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에는
여기서 ‘분부’란 명령 command 입니다.
예수님이 명령하신 것 중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라’는 명령이
아주 중요한 핵심을 차지합니다!
마태복음의 지상명령의 특징은 ‘제자를 삼아라’입니다.
그렇게 너희가 제자를 삼을 때는,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낫게 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명심하십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교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개선 improve 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어떤 상황적 필요는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때부터 기독교가 이상해지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요!
◑5.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표시입니다.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다시 말하면, 귀신이 쫓겨나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둠의 나라와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빛이 몰려오면, 어둠이 밀려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충돌이 일어날 때, 귀신이 쫓겨나가는 것입니다.
서두에 제가 ‘귀신 들림’을
demon possessed가 아니라, demonized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께 possessed 되어 있으면서도,
귀신의 영향을 받고, 귀신에게 고통을 당하는
즉 demonized 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것을 방치하고, 그 강도가 점점 세어지면,
막5장의 거라사 광인처럼, 완전히 possessed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모든 경우를 possessed로 볼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두 가지를 싫어합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귀신/ 악령/ 사탄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그는 가급적 자기 자신을 숨기기 원합니다. 그래야 활동하기가 편하거든요.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사탄을 대적하고,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를 주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를.. 사탄은 원치 않습니다.
‘그런 권세가, 신자에게는 없다’는 식으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지난 오랜 세기동안, 사탄은, 교회와 신자로 하여금, 그것을 믿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귀신이 활동하지도 않는다’고까지 믿게 했습니다.
▲여러분, 신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은, 구약에 이미 행해진 것들이었습니다.
5병2어로 수천명을 먹이신 사건도, 떡반죽 그릇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기적으로 미리 나타났고,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도, 선지자들이 앞서 다 행했습니다.
그런데, 신약에 나타난 기적들 중에,
구약에 미리 보여지지 않은 기적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축귀 사역>입니다.
구약의 선지자 누구도, <축귀 사역>을 행한 적은 없습니다. 영적 전쟁은 있었지만요.
요지는 <축귀 사역>은 신약시대의 한 표적이라는 것입니다.
<축귀 사역>이 나타난 곳은.. 신약시대의 언약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 것과도, 같은 뜻입니다.
그러나 <축귀 사역>이 행해지지 않고 있다면,
어쩌면 거기는, 아직 구약시대를 헤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아직 임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래 동영상 설교를 0:00~17분30초까지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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