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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 (숙련된 자) 의 혀 사50:4 출처보기
The Tongue of a Disciple / 잭 푸닌, 정리
사50:4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이 구절에 '학자'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그 단어의 히브리어는 '리무드'인데요,
*배운 자, 익숙한 자, 공부하는 자, 숙달된 자(렘2:24, 13:23) '학자'라고 할 때, 우리가 익히 아는 '교수님, 박사님'과는 약간 뉘앙스가 다릅니다. 즉, '가르치는 자' 라기 보다는, '배우는 자, 학습해서 숙달된 자'라는 의미입니다.
Isa.50:4 / NASB. The Lord GOD has given Me the tongue of disciples.
That I may know how to sustain the weary one with a word.
He awakens Me morning by morning, He awakens My ear to listen as a disciple.
KJV : the tongue of the learned
히. 리무드. taughted, learned, discipled or accustomed. 배우다, 알다, 익숙하다
사54: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리무드, 교훈을 받다
그 외 같은 단어가 쓰인 렘2:24, 13:23에도,
'가르치는 자'라는 뜻이 아니라, 숙달해서 숙련된, 배워서 숙련된.. 그런 의미로 쓰였습니다.
◑1, 하나님은 예수님께 ‘숙련된 자의 혀’를 주셨습니다.
The Lord God has given Me the tongue of disciples
이사야50장 4절에, 특별히 우리 혀의 사용과 관련하여, 매우 교훈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매우 교훈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구절을 간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 제가 이 말씀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가급적 이 말씀을, 본문 그대로 암송하시면 더 좋겠습니다.
이 말씀은, 원래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사야의 예언인데요,
작은 예수들인, 우리 각자가 그대로 받아도, 좋은 교훈입니다.
▲한글개역은 ‘학자의 혀’를 내게 주셨다고 번역했는데요,
‘배우는 자, 학습자의 혀’라는 뜻입니다.
저 푸닌은, 이 구절의 표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르치는 자’이기 이전에, ‘배우는 자’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안 쓰는 ‘혀’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옛날에는 공부할 때, 주로 혀로 소리 내어 암송하는 식으로 공부했잖아요.
(지금도 중동에 가면, 히브리인 또는 아랍인들이 혀로 소리내어 암송하면서 공부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께 먼저 ‘배우는 자의 혀’를 주셨습니다.
뭘 '가르치는 자의 혀'를 주시기 이전에요!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의 혀도, 이렇게 ‘tongue of disciples’
즉 ‘배우는 자의 혀’가, 먼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저 푸닌도, 이 성경구절을 읽고 묵상하다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예수님께 주신 ‘‘tongue of disciples’를 제게도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뭘 가르치기 이전에, 먼저 배우는, 겸손한 혀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응답은,
‘네가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그런 고난과 희생의 길을 갈 수 있겠니?
그러면 내가 네게 똑같은 것을 주마!’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은총을 받으려면,
예수님과 같은 고난도 받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어찌 내가 원하는 것(단물)만,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처럼, 겸손한 길을 갈 수만 있다면,
예수님이 받으셨던 그 ‘tongue of disciples’도, 우리도 기꺼이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놀라운 권세있는 말씀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은,
예수님이 먼저 ‘학습자의 혀’를 가지시고, 겸손히 배우는 학생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철저히 겸손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자가 되려면,
‘학습자의 혀’를 받아야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겸손’입니다.
자신을 배우는 자처럼 낮추고, 철저히 겸손해진 사람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울 수 있고, 그래서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가 많이 배웠다는 교만의식,
자기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자만의식
이런 것들이... 우리를 ‘잘 가르치지 못 하는 자’로 만듭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겸손하셨느냐 하면,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신 모든 사역은 ‘내가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예수님의 겸손하신 삶이었습니다.
대장이신 예수님이 겸손하셨는데, 우리가 자기를 스스로 높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예수님의 제자로서, 겸손하십니까?
‘제자의 혀’를 가지실 수 있을 만큼, 예수님처럼 겸손하십니까?
내가 진짜 겸손한 사람인지, 아닌지.. 그걸 알 수 있는 한 가지 증거가 있는데,
그것은 <형제를 판단하고, 비방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는 형제를 보고서,
혹독하게 비난하거나, 깎아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런 실족을 당하지는 않아’ 하는 교만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교만한 사람은, 곧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인간 그 자체로,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큰 탈 없이 사는 것이지..
그런데 만약 그가 교만하다면, 그 교만으로 인하여, 곧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우는 학생의 혀’를 가진 사람은, 결코 남을 함부로 판단, 비방하지 않습니다.
그는 ‘배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판단, 비방은 ‘교만한 자’의 자세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가르치는 자>가 되려면,
<학자의 혀, 배우는 자의 혀, 제자의 혀>를 받아야 되는데,
그것은 겸손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이며,
특별히 남을 함부로 비방하는 자에게는, 그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2. 그래서 피곤한 자를 말씀으로 어떻게 도와줄 줄 알게 하시고
That I may know how to sustain the weary one with a word
▲위 구절도, 참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배우는 자의 혀’를 가진 사람은 ‘피곤한 자를 말씀으로 도와주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 먼저 ‘배우는 자의 혀’를 허락해 주신 것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세상 사람들을,
말씀으로 도와주고, 붙잡아주고, 힘을 주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겸손한 제자의 혀’를 가진 사람만,
지치고 피곤한 사람에게, 말씀으로 도와줄 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교만한 선생의 혀’를 가진 사람은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을, 말씀으로 전혀 도와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이 세파에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에 와서
이 생수의 말씀을 먹고 마시고, 힘을 얻고 돌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는 ‘학생의 혀’를 가진 설교자입니다.
그러나 만약 피곤한 심령들이, 말씀으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는 ‘학생의 혀’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혹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수 백~수 천 명이 나오는데,
그들을 어떻게 다 일일이 말씀으로 족하게 먹일 수 있느냐,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모두 다 만족하게 말씀으로 먹이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런 부담감을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을 대면하실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예수님은,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또는 우연히 만난
한 심령, 한 영혼만을 상대하셨습니다.
여러분, 수 천 명을 상대하려 하지 마시고,
그저 오늘 내가 만나는, 하나님이 내 앞에 데려다 주시는
한 영혼만 상대하십시오. 그 지쳐서 쓰러지는 영혼을, 말씀으로 붙잡아 주십시오.
-그는 최근에 자살을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는 최근에 가정파탄으로, 엄청난 심적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앞에 다가온 한 피곤한 심령을,
하나님 말씀으로 그를 잘 붙들어 주었을 때,
나머지는 그냥 묻어오는 것입니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내 앞에 다가온 한 피곤한 심령을,
하나님 말씀으로 그를 잘 붙들어 주지 못할 때는,
나머지도 그냥 흩어지는 것입니다. 항상 원리가 그렇습니다.
◑3. 그래서 ‘학생의 혀’를 가진 자는, 매일 말씀을 듣습니다. 듣는 귀를 가집니다.
He awakens Me morning by morning, He awakens My ear to listen as a disciple.
▲이렇게 듣는 귀를 가지고, ‘학생의 혀’를 가진 자는,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데,
실제로 이런 역사가 나타나려면,
여러분, 바쁘면 안 됩니다.
왜 우리가 ‘학생의 혀’를 가지지 못합니까?
그것은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아침마다 겸손히 배우지 못해서 그런데,
그 실제적인 이유는,
교만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너무 바빠서 그렇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배울 시간을, 만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 설교의 큰 흐름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자기 혀를 잘 컨트롤 할 수 있느냐?’는 주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탄이 내 혀를 틈타서 역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는 주제입니다.
그 첫 번째 큰 대지로,
‘학생의 혀’를 가지는 것이, 자기 혀를 잘 컨트롤 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먼저는 배우는 학생처럼 겸손해야 하고,
-두 번째로, 아침마다 귀를 열어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침마다 말씀을 배우지 못하면,
그 결과, 우리는 그날 혀를 잘못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 혀에, 사탄이 틈타서, 우리는 혀로써, 여러 가지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혀의 사용’에 대해서, 성경 66권 중에, 특별히 잠언에 많은 교훈적 말씀이 나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도, 잠언 말씀을 집중적으로 살필 것입니다.
잠언에는, ‘혀의 사용’ 말고도
‘무엇이 지혜이고, 무엇이 어리석음이냐..’
이런 내용을 항상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혀의 사용’과 ‘지혜/ 또는 어리석음’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혀를 잘 컨트롤 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자기 혀를 잘 컨트롤 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면서,
자기 혀를 잘 사용하는 훈련을 늘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내가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으로 전락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머리가 얼마나 현명하냐?’ 보다는 ‘혀를 얼마나 잘 컨트롤 하느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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