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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급하게 하는 것은, 미련한 자입니다 잠29:20 출처Part3 中文
Zac Poonen
◑1. 급하게 말하거나, 악을 쏟아내는 자는.. 미래 소망(전망)이 없습니다.
▲잠29:20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Do you see a man who speaks in haste? There is more hope for a fool than for him.
잠언은 총 31장인데, 그 중에 솔로몬이 29장까지 썼습니다.
30장은 아굴이 썼고, 31장은 르무엘 왕이 썼습니다.
(르무엘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볼 때,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본문 잠언29:20절은, 어쩌면 솔로몬의 잠언의 ‘마지막 말’(결론)과 같습니다.
29장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되어 있으니까요. 어쨌든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본문을 보면, 세상에 어리석은 자(바보)를 보고서,
그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에 조급한 사람은, 그 fool 보다 더 희망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기 마음과 생각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다 말하지 말고,
좀 신중하고, 사려 깊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잠15:28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The heart of the righteous weighs its answers, but the mouth of the wicked gushes evil.
공동번역을 봅니다. “마음이 올바른 사람은 깊이 생각하고 대답하지만,
나쁜 사람은 악담을 함부로 퍼붓는다.”
사람의 본능은, 악한 말을, 마치 홍수 때 하수구가 역류해서 쏟아져 나오듯이,
자기 악한 마음에서, 마구 여과없이 다 콸콸 솟구쳐 냅니다.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라 하더라도, 내면과 성품이 변화된 성도의 증거는,
자기 입을 제어할 줄 아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한꺼번에 쏟아내지 않습니다.
그의 보복을 두려워해서, 자기 입을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말을 마꾸 쏟아내는 것 자체가, 자기에게 악이요, 죄이기 때문에,
그것을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간혹 우리 주위에, 악한 말을 마구 쏟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얼른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자기도, 맞받아쳐서, 악한 말을 막 쏟아내는, 어리석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 본문에 ‘의인은, 말을 깊이 생각해서 말한다’고 했습니다. 15:28
그렇습니다. 잠언이 말하는 지혜로은 자는, 다시 말하면 언어를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인데,
‘그는 말을 깊이 신중하게 생각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성령이 우리를 도와주시지만,
자기 삶에 self-control이 있어야 합니다. 훈련 없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훈련이 없이는, 우리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말을 급하게 쏟아내는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가 되고 맙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헨리 나우웬은 ‘비즉응성’이란 말을 만들어서, 가르쳤는데요..
그 ‘비즉응성의 원리’로 살아본 사람들은.. 그게 훌륭한 원리라고 말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주님의 사역자들에게는 '비즉응성 unavailability'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즉시 응답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나우웬은, 목회 활동이 아무리 하나님 나라 건설에 관련된 것이라 해도,
즉시 응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대신 그 요구를 주님 앞에 갖고 가서, 기도로 아뢰어야 합니다.
만약 무슨 부탁이든, 그때 그때 기도 없이 즉각적으로 응답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내일로 만들어 버리고,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주님으로부터 파견 받은 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비즉응성을 따라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목회자 고든 맥도날드의 경험담입니다.
한 번은 그가 주일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자 힘없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금 급히 상담을 하고 싶은데요?"
그래서 고든은 먼저 이름과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고든이었다면,
상대가 누구인지 확인하지도 않고 즉시 만나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닙니다.
고든은 '파견받아 활동하는 시간'이, '주님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앞서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고든은 면담을 요청한 여인을 즉시 만나주는 대신
무슨 일로 급히 만나려고 하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결혼생활이 파탄 지경에 이르렀어요.'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렇게 느끼신 지가 얼마나 되는지요?"
"4일 전부터예요.”
"언제부터 부부간에 어려움이 시작되었습니까?"
"한 5년 됩니다."
"부부 사이의 어려움이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면
지금 당장 저를 만나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하도 마음이 답답하고 마침 시간도 있고 해서
상담을 받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아서요."
고든 목사님은 인내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부간의 어려움이 이미 5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면
그 동안 그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셨겠지요.
그리고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 날 문제도 아닌 것 같고요.
죄송합니다만 지금 저는 주일 설교를 세 개나 준비해야 되기 때문에
온 신경이 그 쪽에 쏠려 있어서
부인을 만난다고 해도 제대로 도와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월요일에 다시 전화해 주시겠습니까?
그러면 마음에 여유를 갖고 만나,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런데 며칠 지나면, 부인은 전화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그게 별 일 아니었거든요.)
*윗단락 출처/ http://blog.daum.net/ygbhygbh/5408708 (강추)
◑2. 철저한 원고준비 없는 설교도, 어리석은 자입니다.
‘말을 급하게 하는 것’, ‘신중하지 않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을 적용하면,
설교를 그렇게 하기 쉬운데,
그것은 잠언이 말하는 바,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 a fool’임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단 후배 목사들에게, 설교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늘 당부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설교 준비를, 시간에 쫓겨서, 30분 만에 대충 하고 강단에 올라가면,
결국은 이 말, 저 말.. 횡설수설 하게 되는데요,
그때는 본문 잠29:20절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이 말씀이 그에게 적용됩니다.
즉, 그의 장래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아주 미련한 자보다, 더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명한 자는, 지혜로운 자는,
말하기 전에 반드시 깊이 생각합니다. 잠15:28↑
설교도, 얼마나 말을 많이 하는 시간입니까.
그렇다면 깊이 생각하고, 설교의 말을 철저히 심사숙고해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지혜로운 사람’의 증거입니다.
잠언에는 ‘게으른 자'를 '미련한 자/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는데
같은 맥락입니다.
게을러서, 설교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미련한 자, a fool’인 것입니다.
▲저 푸닌은, 잘 준비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설교의 예로
‘요리하는 주부’의 예를 종종 듭니다.
저녁에 한 거지가 찾아와서, 밥 좀 달라고 구걸을 했습니다.
그 집 부인은, 오늘 저녁에는 밥이 없으니, 내일 아침에 오라며, 쫓아 보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거지가 정말 또 찾아왔습니다.
부인은 하는 수 없이, 부엌에 가서, 비닐봉지에, <아무 준비 없이>
부엌에 남은 음식을, 이것 저것 다 한꺼번에 한 봉지에 담아서, 거지에게 주었습니다.
그 비닐봉지 안에는,
카레, 밥, 또 다른 반찬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었습니다.
물론 엉망진창이었지요.
저라면, 그런 뒤죽박죽인 뒤섞인 밥은, 먹기를 꺼려할 것입니다.
아무리 위장에 들어가면, 결국 다 뒤죽박죽 뒤섞인다 하더라도,
일단 밥을 맛있게 먹으려면, 밥과 카레와 반찬이, 먹기 쉽게 잘 정돈되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니까, 설교가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어떤 설교자는, <거의 준비 없이> 완전히 뒤죽박죽 뒤섞어서, 그걸 설교라고, 내어 놓습니다.
그것은요, 좀 심한 표현인지 모르지만
‘듣는 회중들을, 거지 취급하는 것’입니다.
‘위장 속에 들어가면 다 뒤섞이게 마련이니까, 그냥 내가 주는 대로 받아 먹으라’는 식의
회중들을 아주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만약에 주지사 Governor가, 어느 집을 방문했다고 칩시다.
그집 부인이, 아무렇게나 잡탕으로 섞어서, 그걸 음식이라고 내어 놓겠습니까?
절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 왜, 정리되지 않은, 뒤죽박죽인 설교를, 내놓고 음식처럼 먹으라고 합니까?
-그건 설교자가 회중을, 거지 취급하고, 무시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가 ‘어리석은 자, 게으른 자, 미련한 자, a fool’이기 때문이고요,
-그러한 자에게서, 어떤 장래성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런 심한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저는 우리 교단 신자들로부터 많은 편지를 받는데,
그 내용은 ‘설교가 너무 지루하다’는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단 5분만 말하면 될 것을, 45분이나 길게 늘여서 한다는 것입니다.
내용이 빈약한 설교를, 길게 한다는 뜻이지요.
설교가 잘 준비되지 못하니, 횡설수설 하면서, 시간만 길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소중한 시간을 다 빼앗기니, 회중들이 화가 날만 하지요.
(여러분, 우리가 설교를 잘못 하면, 남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민폐요, 죄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지난 25년간, 그런 과정이 되풀이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말하고, 교정을 해도, 우리 교단 설교자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그만큼 ‘지혜 없고 미련한 자, a fool’임을 철저히 자각해야 합니다.
여러분, 5~10분 만에 설교 얼렁뚱땅 준비해서, 50분간 오래, 길게 말하는 것은, 죄입니다.
주지사가 여러분 집에 찾아왔는데, 여러분이 5분간 식사를 준비해서, 그를 대접하겠습니까?
그러면서 강단에서 ‘성령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3. 말이 성급하지 않은 사람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잠16:23, 마음이 슬기로운 사람은 말이 어질어서, 그 가르치는 말이 지식을 더해 준다.
The heart of the wise instructs his mouth. And adds persuasiveness to his lips.
위 구절은, 지혜로운 wise한 사람이, 자기 입술을 잘 가르쳐서,
그가 하는 말은, 설득력이 더 한다.. 는 뜻입니다.
즉, 자기 입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성급하지 않은 사람은,
그의 말에, 설득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 이 누구인가를 살펴보고 있는데,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1.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사람, 즉 말을 ‘숨기는’ 사람.
2. 말을 급하게 하지 않는 사람, 즉 말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고 하는 사람.
임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가 지혜로운 사람인데, 그가 하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설득 persuade’이란 말은, 한국말보다 훨씬 더 강한 어감을 갖고 있습니다.
단순히 ‘(상품을 사도록) 뭘 설득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말로써 그에게 강한 확신을 갖게 해 준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설교나 전도는, 다른 말로 ‘설득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지만, 그것이 회중에게 ‘설득’이 되지 않으면,
즉 강한 확신으로 그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설교나 전도는, 정말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위 구절은, 지혜로운 사람만,
즉 자기 입술을 잘 제어하고 다스리는 사람만,
설득력 있는 말, 회중에게 강한 확신을 주는 설교를 전달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바꾸어 말하면,
말을, 아무 준비 없이, 아무렇게나 자기 생각에서 나오는대로 다 쏟아내는 사람은,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듣는 회중에게, 아무런 감화, 확신, 믿음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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