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음성을 듣자 당황했던 엘리야 왕상19:11-13 출처
A LESSON on LISTENING by David Wilkerson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그를 호렙산 꼭대기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예화설교 방식처럼, 엘리야의 기억에 길이 남을 설교를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 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왕상19:11-13.
▶크고 강한 바람 이 휘잉거리며 불어와서 소리를 울릴 때
엘리야는 아마 이렇게 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여, 이제야 때가 되었군요. 저 강한 바람이 불어서
나를 죽이려고 찾는 이세벨을, 그 보좌에서 확 날려버리소서!
이왕 날리시는 김에, 그 조력자들도 한꺼번에 다, 저 강한 바람에 확 날려 보내소서!”
그러나 하나님은, 그 강한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바람으로, 응답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번에는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야는 ‘옳거니! 드디어 기다리던 것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지진으로 역사하소서!
하나님, 대적들을 지진으로 치셔서, 제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증명해 주소서.
그들이 신발이 벗어지며 도망할 정도로, 두려워하게 하소서!”
그런데 그 지진도, 그냥 보통 지진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응답, 하나님의 심판의 지진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또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자기의 원수를 갚아 줄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불이 일어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드디어 하나님이, 자기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불이 어디에서 보였는지, 성경에 확실히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과거에 하늘에서 불을 내린 엘리야의 경험을 볼 때,
이번에도 하늘이 붉게 물들면서, 하늘에서 불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리야는 아마 감격하며 이렇게 기도했을 것입니다.
“주님, 그들은 갈멜산에서 제단 위에,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 사르는 것을 보고서도,
주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주여, 이제 다시 한 번 더 불을 내리셔서, 저들을 불살라 버리소서.
악한 아합을 불사르시고, 사악한 이세벨을 불로 심판하소서!
악한 자의 편에 선 모든 이들에게, 불로 심판을 내리소서!”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입니까?
하나님은, 불로도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나타나긴 했지만, 그건 ‘심판의 불’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제 거의 지치고, 실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간절한 산상기도에, 전혀 묵묵부답, 응답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불 후에, 세미한 음성이 있어” *a still small voice
여러분, 정말 뜻밖의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엘리야의 반응입니다.
허리케인 같은 강한 바람이 나타나도 끄떡도 하지 않았고,
지축을 뒤흔드는 지진이 일어나도, 하늘에서 불이 보여도
전혀 겁내지 않던 대 선지자 엘리야가,
작고 세미한 음성이 들리자.. 잔뜩 겁을 내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자기 겉옷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2~13
아마 ‘하나님을 뵈면 죽는다’는.. 그런 의식이 있으니까,
엘리야가, 그 세미한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줄은, 확실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엘리야는,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나아갔습니다.
▶엘리야는, 이전에도 하나님께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과 많이 교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하늘에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그는 두려워서, 겉옷으로 자기 얼굴을 가립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려워서 그랬을 수도 있고,
하나님이 진짜 친 음성으로 응답하시자, 어쩌면 당황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의 응답이었으니까요.
저 윌커슨은,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엘리야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식에, 좀 서투르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봅니다.
엘리야가 겉옷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 것을 볼 때,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함/ 경배함으로 자기를 가렸다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갑자기 당황하고, 어색해서, 자기를 가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기대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친 음성으로, 작고 세미한 소리로,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도,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가시적인 역사를 기대하면서도,
즉, 강한 바람/ 지진/ 불꽃 같은, 가시적인 눈에 보이는 큰 역사를 기대하면서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막상 그것이 나타나면.. 심지어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길은.. 하나님 앞에서, 오래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드릴 때, 한 번 아무 간구도 하지 말아 보십시오.
그저 한 시간, 두 시간.. 아니면 더 오래동안
그저 하나님이 무슨 음성을 주시기를.. 기다려만 보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세미한 ‘내적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진짜 친 음성은 예외적인 경우고요,
보통은 ‘내적 음성 inner voice’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그 음성을 들으려면, 오래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세미한 음성은, 주위가 시끄러우면.. 안 들리잖아요.
작은 음성은, 주위가 조용하고 고요할 때.. 비로소 들리는 법입니다.
그러면 ‘내가 들은 세미한 음성’을, 그게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확신할 수 있나요?
혹시 내 마음의 생각을.. 내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착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게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강한 내적 확신이 듭니다. 내 마음에 믿음이 생깁니다.
확신이 생기고,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강한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은.. 그저 내 마음의 생각일 뿐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사역에 다들 바쁩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분주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명분도 거창합니다. 위대합니다.
여러 행사, 집회, 컨퍼런스, 컨벤션..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그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엉뚱한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주인이 시키지 않은,
자기 생각대로, 자기 마음대로.. 무슨 (쓸데 없는)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 윌커슨은, 88억짜리 사역을 추진하다가,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좋은 발상’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를 보십시오.
그 세미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왕상19:15-16
하나님의 음성은, 전혀 ‘좋은 발상’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야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미한 음성을 들은 엘리야는.. 주인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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