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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경주하겠느냐

LNCK 2013. 10. 3. 20:37

◈말과 경주하겠느냐              렘11:18-12:6                 출처보기

 

◑본문의 배경

 

▲예레미야 11장 18절 이하의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종(예레미야)을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 특히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거부했습니다.

이로 인해 예레미야는 두려워하고 고통하며 좌절했습니다. 왜냐하면 19절에

“그들이 나를 해하려고 꾀하기를, 우리가 그 나무와 과실을 함께 박멸하자.

그를 산 자의 땅에서 끊어서 그 이름으로 다시 기억되지 못하게 하자.”라고

그들이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고향사람들이 나무와 과실, 즉 예레미야 뿐 아니라 그 자식까지 같이 죽이자,

일족을 멸하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레미야는 고향 사람들의 그러한 음모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8절에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알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그들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음모를 세운 것입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나돗 사람들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네 생명을 취하려고 찾아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

두렵건대 우리 손에 죽을까 하노라 하도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었기’ 때문에 이 일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해서, 설교를 계속하면 목사와 그 가족, 자녀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레미야는

자기 고민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예레미야는 12장 1-4절에서 하나님께 3가지를 간구하고 1가지를 질문합니다.

12장 1절에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와 쟁변할 때에는 주는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첫째 질문은 12:1절에 나타납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패역한 자가 다 안락함은 무슨 연고니이까”.

 

악한 자들이 잘 먹고 잘사는 이유는 무슨 이유입니까?

하나님은 악인들을 축복하는 하나님입니까?

 

이 질문은 시편 73편의 아삽이 질문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시편 73편에서의 하나님의 대답은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라. 지금은 형통한 듯 보여도

결국에는 영원히 멸망 받는 지옥에 떨어질 존재라’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4절에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언제까지(How long) 하나님이 인내하시겠습니까?

언제까지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은 12:4절 중반에

‘악인들로 인해서 짐승과 새들도 멸절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가만두고 보십니까?’

 

악인들의 죄로 인해 의인들과 짐승들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라고 묻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 질문을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가져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간구를 합니다. 12:3절 중반에

“양을 잡으려고 끌어냄과 같이 그들을 끌어내시되, 죽일 날을 위하여 그들을 예비하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양을 도살하듯 악인들을 죽여 달라고 하는 기도입니다.

 

참 기도가 끔찍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런 끔찍한 기도를 하는가 싶지만,

예레미야는 지금 이기적인 동기와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의로운 마음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간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이 12:5~6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네 형제와 아비의 집이라도 너를 속이며 네 뒤에서 크게 외치나니

그들이 네게 좋은 말을 할지라도 너는 믿지 말지니라”

 

많은 묵상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언뜻 보면 더 좌절케 하는 대답 같습니다.

참 이상한 대답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사실은 고차원적인 격려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에서 격려가 되는 말씀입니다.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1. 하나님의 정직성을 볼 수 있습니다. (Honesty of GOD)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지금 고통스러워한다고 해서 거짓된 위로를 하지 않으십니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은 ‘요단강변 수풀에서 말과 경주하는 정도의 고통이 될 것이니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격려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을 정직하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지금은 고향사람들이 너를 죽이려하느냐?

앞으로는 네 형제와 아비 집이 너를 속이며 너를 죽이라고 소리 지를 것이다’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렘12:6

 

‘앞으로는 바벨론에 끌려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시는 것입니다.

어려워도 진실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사실을 직시하고 준비하라’는 경고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정직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정직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정직해야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따르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면 번영하고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건강복음, 축복의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오면 너희에게 십자가가 따라올 것이다’라고 정직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6:24절

믿음의 길을 따르다 보면, 어려움도 있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고난은 장차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로마서 8장 18절에서 사도바울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8장 20절에서도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려면

고생도 각오하고, 자기 십자가도 지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 어렵고 고단하고 피곤하십니까?

앞으로 10년 후 늙고 약해지고 다리에 힘 빠지면 그때 삶이 더 행복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앞으로 내 삶이 더 행복해지고 강건해지겠다는 생각보다,

현재의 삶이 피곤해도 그래도 덜 피곤한 것이요,

현재가 행복한 순간이라고 믿으시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행복한 영원한 세계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는 작은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단단히 먹고, 감당하고, 현재를 누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가 묻겠습니다.

이생의 삶이 어렵고 고통스러우십니까? 그래서 죽고 난 후에는 더 행복한 세상이 오겠습니까?

예수 믿지 않고 죽으면 행복해지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없이 죽음의 세계로 간다면

지금보다도 억만 배 고통스러운 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시고

예수 믿고 침례 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정직한 말씀이요 하나님은 정직한 분이십니다.

미래에 다가올 현실을 정직하게 직면하는 것이 살 길이고 바른 길입니다.

 

▲저는 교수 시절에 학생들이 유학을 못가는 이유를 살펴보니까

토플시험 치는 원서를 어디서 사고 어떻게 쓰는지 몰라서,

그리고 가고 싶은 대학의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두 가지를 몰라서 못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생들 유학 준비하는 이 부분을 많이 도와줬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유학을 준비하며 토플준비를 하는데

550점을 맞지 못해서 어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정직하게 야단을 쳤습니다.

 

‘이 사람아 제일 쉬운 일을 하면서 무엇을 어려워하나,

앞으로 박사학위 공부하려면 100배는 어려울텐데 제일 쉬운 일을 하면서 왜 그러나.’

 

그 말을 들은 학생이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해서

박사학위도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아주 훌륭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정직하게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격려와 용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런 요법을 쓰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정직성을 볼 수 있습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도전을 볼 수 있습니다. (Challenge of GOD)

 

렘12:5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도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레미야야 앞으로 더 어려운 일이 온다. 너 자신을 훈련해라.

지금의 어려움은 앞으로 더 큰 일을 감당하기 위한, 사전 훈련에 불과한 것이다.

이 작은 훈련에 좌절하지 말고 넘어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말과 달리기를 하려면, 먼저 더 쉬운 상대인 사람하고 경주하는 훈련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도전이요 우리를 향하신 소명인 것입니다.

 

실전전투 전에 기본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듯,

이것은 더 크고 귀한 일을 맡기시려는 하나님의 훈련입니다.

 

‘그러니 예레미야, 너 불평하지 말고, 입 꾹 다물고 있어라.

장차 네가 닥칠 일은,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지금 당하는 일을, 훈련으로 여기고, 잠잠하라’ .. 라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현재 여러분의 돈을 빌려가고 갚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숙달된 조교입니다.

그 괴롭히는 사람을 미워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숙달된 조교가 왔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큰일에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쉬운 스파링 상대를 보내서..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투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피 값을 치루셨습니다. 우리는 싸구려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 생명 값입니다. 우리는 고귀한, 비싼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투자하신 것이 많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큰 일에 쓰시기를 원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린 큰 일을 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더 높은 기대감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3. 이 응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Love of GOD)

 

▲12장 5절의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레미야가 무엇이라 대답할 말이 있겠습니까?

 

사실 이런 경주는 올림픽 출전 선수라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말과 경주해서 이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 혼자라면 불가능하지만

그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내려올 때, 병거보다 더 빨리 달려 내려왔던 것처럼,

사도행전의 빌립 집사님이 축지법 같은 ‘흔연히’ 갔다는 기록을 볼 때,

하나님이 동행하실 때 참으로 놀라운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렘1:6에서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할 때,

하나님은 거듭거듭 말하십니다.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이기는 것입니다.

렘1장 18-19절에서는 “보라 내가 오늘날 너로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족장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격려대로 예레미야는 요단의 험한 곳에서

40년 동안 말과 경주하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는 결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벌주셨습니다.

청년들은 칼에 죽고, 자녀들은 기근에 죽고, 아나돗 사람들은 재앙을 받았습니다.

 

▲마치는 말.

세상은 지금도 어렵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우리가 승리를 경험할 줄 확신합니다.

 

막연한 미래에 기대감을 버리십니다.

미래는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지금보다 더 강건하게 성숙해서, 그 미래를 헤쳐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말과 경주해도 이기는 것입니다. 피곤치 않습니다.

 

앞으로 닥쳐올 갖가지 도전과 난관들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턱대고 자기를 신뢰하는 자기신뢰(Self-confidence)는 버려야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합니다. 시편 44편 5절에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승리하는 비결은 오직 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과 우리 앞에 놓여진 시간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치, 경제, 외교 모든 것이 쉽지 않습니다. 대적이 많습니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도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힘으로 안 된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안 되지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 어려워하지 맙시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우리는 승리합니다.

그 은혜를 체험하는 일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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