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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무궁한 사랑 / 中文

LNCK 2013. 9. 26. 14:30

영원무궁한 사랑                   31:3                출처                 中文

 

 

    

 

서론

 

신약성경에서 가장 보석과 같은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반지의 다이아몬드 같은 부분이 8장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이 보석 같은 부분은 예레미야 30장에서 33장으로

주석가들이 "위로의 작은 책(The little book of comfort)"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도 예레미야 31장은

반지의 다이아몬드 같은 부분으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본문 렘31:3절에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반지의 다이아몬드 같은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하신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처럼 놀라운 사랑을 고백하신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옷을 잘 입혀놓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대접하면서 이런 상황을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신 상황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군인들이 사람을 죽이고 아녀자들은 통곡하며

높은 자나 낮은 자, 왕이나 방백이나 다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포로 되어

(굴비처럼 엮여) 1,100Km나 되는 먼 길을 끌려가고 있는 괴로운 상황입니다.

 

괴로움 중에서도 최고로 괴로운 상황에서 하나님은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가장 아름다운 보석 같은 사랑의 고백을 우리에게 하신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사랑의 개념은 오염되어 있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랑받는 느낌(feel)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21세기의 사랑은 감정과 느낌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사랑받는 대상의 소원이 중심 되어 있습니다.

자기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랑의 느낌을 받지 못하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랑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사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 때문에, 미디안의 손에 7년 동안이나 핍박당했습니다.

토지의 소산을 다 빼앗겼습니다. 소와 양과 나귀도 모두 약탈당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Angel of the Lord)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612절에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이 들을 때, 속으로 내가 무슨 큰 용사냐? 작은 용사도 안되는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하니,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사사기 613절에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그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이게 무슨 사랑입니까?

7년 동안 이렇게 저희를 고난 받게 만드신 것이 사랑입니까?

우리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사랑입니까?”

이렇게 기드온이 질문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찌하여 내게 이런 어려움을 주실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어찌하여 나는 이렇게 슬픔과 고통이 왔는가?

이것이 과연 하나님이 나를 진실로 사랑하시는 것인가?

하나님, 진실로 나를 사랑하십니까?”하는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대답을 하십니다.

물론이다. 내가 옛적, 전에도 네게 나타났었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되

영원무궁한 사랑으로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인자함으로 너를 내게로 가까이 오도록 이끌었느니라.”

 

이것이 예레미야 313절의 하나님 대답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우리의 세속적인 사랑의 개념과, 하나님 사랑의 개념은 무엇이 다른가?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인가? .. 하는 바른 이해를 갖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의로운 사랑(righteous love)입니다.

 

유다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단은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 30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나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도다라고 기록되었고,

 

이사야 선지자도 16절 전반에서 동일한 진단을 내렸습니다.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어떤 사람이 새끼발가락이 가려워서 계속 긁었습니다. 약을 발라도 낳지 않더니

그것이 그만 악성 종양으로 번졌습니다. 그래서 몇몇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는데

그거 괜찮은 것입니다. 그냥 두고 사십시오.”라는 의사에게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암이니까 잘라냅시다.”하는 의사에게 가시겠습니까?

 

어떤 것이 사랑입니까? 자르는 의사에게 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고통스러워도 수술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수술입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죽을 것이 틀림없고, 망할 것이 틀림없으므로

살리시고자 행하시는 고통스러운 수술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 부부 사이에도 씻어야 할 허물이 있으면 씻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아내는 남편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525절로 26절에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실 때에도,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 사랑하신 것입니다.

 

죄가 있는 것을 그 피로 씻어 주시고 사랑하신 것이지

죄가 있는 것을 그대로 씻어주지도 않고 받아주신 것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도, 씻을 필요가 있으면, 씻기는 것이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아내가 나가서 바람피우는데 남편이 잘했다고 한다면 그것이 무슨 사랑입니까?

 

또 아내가 남편이 잘못하는데 당신 원하는 대로 하시오.”

그러면 무슨 사랑이냐는 것입니다.

 

남편이 교회에 안 나오려고 하는데 아내가 자꾸 교회에 나가자고 울고 그러면

그것은 진실로 그 아내가 자기를 사랑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편이 교회를 나오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2009년도에는 혼자 나오시는 분들은

모두 남편을 전도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부흥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교회를 나오지 않고 이기적이며 탐욕스럽고 비뚤어지는데도

부모가 그냥 놔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잠언 13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공부 못하는 것이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 안 나오는 것은 고칠 수 있습니다.

억지로라도 교회에 나오게 하면, 처음에는 설교를 들으며 졸고 성질을 내도

자꾸 나오다보면 말씀 듣는 중에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자꾸 나오다 보면 세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 결국은 다시 교회를 찾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의로운 사랑이 돼야 됩니다.

자식 원하는 대로만 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바르게 가도록 해주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처럼 의로운 사랑입니다. 죄를 교정해주는 사랑이요

옳은 방향으로, 의로운 방향으로, 바른 것을 따르도록 인도하시는 사랑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로운 사랑은 때로 아플 수도 있습니다. 수술해 잘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이라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단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장기적인 사랑(everlasting love)입니다.

 

예레미야 3014절에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 애인이 배신 때린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사랑하던 우상들, 정치적으로 사랑했던 애굽, 이들은

유다백성이 어려움을 겪으니까.. 다 버리고 떠나버립니다.

 

유다백성들이 마치 창기를 사랑하듯이 찾고 사랑했던 그 사랑은

잠깐 잊고 버리는 단기적인 사랑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창기와의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쓸데없는 단기적인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아무리 격렬했고 뜨거웠을지라도

쉽게 끓는 냄비가 빨리 식는다.”는 속담처럼

그것은 잠시 잠간의 불륜의 사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창기와의 사랑은 단기적인 사랑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원무궁한 사랑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과거현재미래도 포함하고, 시간도 넘어서 영원까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본문 3절에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옛적에를 다른 말로하면 과거에입니다.

하나님이 과거에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예레미야 312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칼에서 벗어나게 하셨습니다. 바로왕의 칼입니다.

바로왕의 칼은 죽이는 칼입니다. 장자가 나오면 죽이고

또 가까스로 출애굽을 하니까 출애굽한 사람들을 홍해에서 다 죽이려고 쫓아온 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의 칼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40년 동안 은혜를 주셨습니다. 먹을 것이 없는데

날마다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시고, 마실 물이 없는데 반석을 치니 생수가 나와

40년간 마시며, 옷과 신발이 헤어지지도 않고,

원수가 공격해 와도 무기가 없으므로.. 손만 들고 기도하면, 다 이기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과거에 광야에서 베풀어주신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안식을 얻게 하셨습니다. 칼에서는 벗어나게 하시고

광야인생에서는 은혜를 주시며 미래에는 안식을 주신다는 것이

과거 출애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은 현재 하나님 사랑의 예표요, 미래 하나님 사랑의 보증인 것입니다.

 

현재도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갖가지 칼에서 벗어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광야 같은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인생은 광야입니다. 광야 같은 인생에서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걱정하는 미래에는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무궁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나님 마음속에는 우리 이름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이름이 하나님 마음속에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손바닥에 여러분 각자의 이름이 다 새겨져 있었습니다.

영원 전, 창세전에 새겨지고 마음속에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저 하늘에 태양이 뜨기도 전에, 저 하늘에 별이 반짝이기도 전에,

저 하늘에 달빛이 요상한 빛을 내며 우리를 유혹하기도 전에,

저 하늘에 구름이 뜨기도 전에, 이 땅에 아지랑이가 피기도 전에,

이 땅에 강물이 흐르기도 전에, 이 땅에 산이 솟아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 이름을 하나님 마음속에 두어 손바닥에 새겨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이것은 성경이 문자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유의지로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줄로 믿으십시오.

 

요한일서 419절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은 우연한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계획된 사랑(designed love)이요, 목적있는 사랑(purposed love)이요,

변함없는 사랑(unchanging love)입니다.

 

지금 우리가 혹 고난 속에,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속에 있을지라도

재산은 날아가고, 가정에는 환란이 있고, 육신에는 병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랑은 변함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갖가지 칼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은혜로 채워주실 것이며,

미래에 안식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어 주시는 사랑(drawing love)입니다.

 

본문 렘31:3b절에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with loving-kindness) 너를 인도하였다

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랑과 인자가 결합된 방식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인도하신다'는 것은 우리를 데리고 어디 놀러가신다는 얘기가 아니라

영어로 "draw" , 자기에게 가까이 이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er을 붙여 drawer 하면 서랍이 되는 것입니다.

서랍을 열 때 자기 쪽으로 잡아 당겨서 열지, 밀어서 열지 않습니다.

인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 쪽으로, 우리를 가까이 잡아당기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람의 죄는 하나님이 싫다며 멀어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빛에서 떠나 어두움으로 가는 것이요,

축복에서 떠나 저주로 가는 것이요, 영생에서 떠나 영벌로 가는 것이요,

천국에서 떠나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사망과 지옥과 저주와 어두움과 멸망과

고통과 환란과 영원한 패배 같은 것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고통을 주시더라도

당신에게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유다백성들이 바벨론포로 돼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영히 멀어졌구나.”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벨론포로라는 수술을 통하여 가까이 이끄신 것입니다.

 

이사야 41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목사님들이 병원에 환자심방 가서 많이 사용하는 이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된 유다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포로 됐느냐? 두려워 말라. 지금 괴로우냐? 염려 말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붙들고 있느니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내게 가까이 오도록 이끌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하나님이 당신에게로 가까이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예수 믿어 구원받았는데 예수 믿기 전에도 하나님이 이끌어 주셨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도 찬송을 들으면 왠지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면 왠지 마음이 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술에 취해 허랑방탕한 생활을 해도 옆에 교회가 있으면

나도 언젠가는 교회를 나가야지 하는 이끌림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불신자 시절에도 그런 것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 다닐 때, 예수를 안 믿으면서도 성경책은 늘 가방 속에 갖고 다녔습니다.

이처럼 불신자 시절에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인생을 살다보면 여기저기서 좌절하고,

이곳에도 부딪치고, 저곳에도 부딪치고, 여기도 저기도 의지할 것이 없으면

그때는 교회에 나와 울며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울며 하나님을 찾는 것도,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19절에 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내가 내 인생을 잘못 살았습니다.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로 왔습니다.”하고

울면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것이 우리 의지로 알아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끄심입니다.

 

신앙생활 중에도 때로 어려움과 환란이 오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부르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모든 축복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모든 축복이 다 가까이 오는 것입니다.

포로 되어서 다 죽고 다 망한 것 같아도, 사실은 축복이 내게 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4.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오는 축복들을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314절에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과거에 창기 취급받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장식을 해줍니다.

그래서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온다고 합니다.

젊은 처녀들이 명품입고 춤추며 나옵니다. 이것이 기쁨이 아닙니까?

 

5절에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전에는 심어도 엉뚱한 놈이 와서 다 뺏어 갔는데, 이제는 심는 자가 과실을 먹으리라,

풍요로움이 있으리라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렘31:6절에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파수꾼은 보초병이라는 말입니다. 보초병은 적군이 쳐들어오니 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초는 졸면 안 됩니다. 졸면 적군이 와서 밤에 목을 땁니다.

그러므로 보초는 절대 졸지 말아야 됩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보초는 안서고 우리가 교회에 가자. 시온에 올라가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고 외칩니다. 이것이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전쟁이 그치고 예배의 평화가 이루어진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기쁨과 부요와 풍요와 평화가 있습니다.

 

12절에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찌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오면 심령이 물댄 동산 같습니다.

언덕이 있다 해도 물이 없고 나무도 없고 과실도 없으면 그게 무슨 언덕입니까?

그런데 언제나 물이 넘치는 물댄 동산이면 얼마나 그 동산이 비옥하고 아름답겠습니까?

 

여러분 심령이 물댄 동산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금심도 없어집니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양떼와 소떼가 넘칩니다.

영적인 축복, 정신적인 축복, 물질의 축복이 다 온다는 말입니다.

 

25절에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 하시기로

예수 믿기 전에 여러분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심령이 슬펐습니다.

가슴속에서 눈물의 비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이런 슬픈 심령이 기쁨의 심령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기쁨과 풍요와 자유와 풍성함과 참된 예배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지금 내가 뭐가 부족하다, 고통스럽다, 모자라다, 괴롭다,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느냐? 가까이와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므로 하나님께 가까이 오기만 하면

영적인 복, 사람의 복, 물질의 복을 다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2009년도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셔야 됩니다. 멀리하던 분은 가까이 와야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면 할수록 비례해서 망하고 가까이하면 할수록

비례해서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면 누가 도대체 이런 놀라운 사랑의 대상인가?

죄인들이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리새인 같은) ‘의인을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했기 때문에

만약 의인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사랑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은 죄인들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17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온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내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 해도 죄가 많아

무슨 얼굴로 하나님께 나가냐?”고는 말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지 않습니다. 죄인을 불러서 가까이 오게 하시고 용서하시며

은혜 베푸시기를 좋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하나님 아니고서는 기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니고서는 못살겠습니다.”하는 사람들을 맞아주시고 축복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로마서 57절로 8절에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 사랑을 의심하십니까?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대신

죽게까지 증거를 보여주셨는데도 의심하십니까? 뭘 더 원하십니까?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무궁한 사랑을 이미 받은 사람입니다.

 

믿어서 사랑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았기 때문에 믿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주시고 우리로 믿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 혹시나 환란과 고통을 겪는다 할지라도,

과연 하나님이 날 사랑하시는지 나는 느낌(feel)이 없다 할지라도

감정에 이끌리지 마시고, 말씀으로 그 사랑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32절을 올해의 축복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도 아끼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영적인 축복을 주시고, 물댄 동산 같게 하시며, 물질적인 축복도 주십니다.

 

그리고 포도주, 기름, , , 나귀도 다 주시고 인간관계에도

모든 싸움, 다툼이 지나가게 하시며 평안을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축복, 물질의 축복, 사람의 축복 즉, 영권, 물권, 인권(사람 잘 만나는 복)

이 세 가지를 2009년도에 모두다 선물로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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