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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영성 신34장 1~8절 출처 中文
◑서론
▲소위 ‘믿음장’이라고 알려진 신약성서의 히브리서 11장에는
구약시대에 살았던 믿음이 좋은 16명의 신앙 위인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구절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
11:32절 한 구절에, 다윗과 사무엘을 포함한 6명의 위인들이 소개되고 있는 반면에,
모세는 무려 여섯 구절에 걸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모세가 구약시대의 최고 신앙의 거성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즘은 모든 것을 ‘수치’로 평가하는 시대입니다.
대학교수의 업적도 수치로 평가하고,
교원 평가제도 역시 교사의 능력을 수치로 평가하는 방법입니다.
앞으로는 결혼정보회사에서도 신랑과 신부의 조건을 수치로 결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이 잘 생기면 10점, 아니면 5점, 박사는 10점, 석사는 7점,
소유하고 있는 집의 평당 1점. 이런 식으로 평가하여 점수가 비슷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는 우려도 듭니다.
어떤 것을 평가하기 위한 모든 수치는 표준적인 지수를 기준으로 매겨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성의 점수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어떤 표준을 가져야 할까요?
바로 모세가 우리의 영성에 있어서 표준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나 훌륭한 영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파악하려면
모세의 영성지수와 비교해보면 됩니다. 우리의 영성을 평가하기 위해서
모세의 생애와 영성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보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영성의 표준이 되는 모세의 영성은, 다섯 가지 지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1. 포기지수가 높다
모세는 하나님을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했기 때문에, 포기지수가 매우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11:24-26).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실컷 쾌락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모든 쾌락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하는 것이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고, 복만 받으려는 생각은 욕심입니다.
실컷 놀고 실컷 즐기면서도, 복 주시리라고 기도하면, 아마 하나님께서
“이미 받았느니라. 다 놀고 다 즐겼는데 무엇이 더 필요하냐?”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복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를 포기하면 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포기한 만큼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백배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호주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은퇴하신 김윤기 목사님께서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새로 예배당을 짓는 동안 목사님 집에 있는 냉장고는
항상 텅 비어 있을 정도로 먹을 것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배당을 짓다가 못에 발이 찔려서 곪는 바람에
깁스를 하고 여러 달 동안을 통증으로 고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사람들이 계속 무엇인가를 가지고 목사님을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발이 그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아프시냐고, 마음이 아프다면서
과일도 가져오고 먹을 것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냉장고에 음식이 떨어지는 법이 없었고
물질의 부족함도 느끼지 않으며 살아오고 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못 한 번만 찔려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신학교 1학년 때, 한미전도대회에 참여하여 통역으로 봉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충주에서 미국 사람들과 함께 무당집에 전도하러 갔다가 구정물도 뒤집어쓰는 등
일주일 동안 그렇게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런데 전도대회를 마치고 충주에서 대전으로 돌아오는 중에
그만 철로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오른쪽 다리가 철로에 부딪혀서 뼈가 보일 정도로 피부가 상했습니다.
러닝셔츠를 벗어서 간신히 응급조치를 하고 대전에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상처로 몇 달을 고생했지만, 인권(만남)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치료하는 기간은 물론이고 그 이후로 목회를 하는 동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 주변으로 몰려왔고,
교수로 학교에서 가르칠 때에도,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함께 식사하고 교제를 나누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에게 무슨 매력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때 전도하면서 다쳤던 상처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복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다음 주 18일부터 열흘 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특별 새벽기도회가 진행됩니다.
인터넷으로 생중계도 할 예정입니다. 다섯 시 반에 시작하니까 참석하셔서
뜨겁게 기도하시고 아침도 드신 후에 직장으로 출근하십시오.
원하는 만큼 잠자고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잠을 포기하고 새벽을 깨우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물질도 포기하고, 쾌락도 포기할 줄 알아야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포기지수가 높은 사람에게는 큰 상급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포기한 것이 많을수록
금세와 내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포기지수가 큰 사람이, 좋은 영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온유지수가 높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온유했습니다.
불타는 가시떨기 앞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때 모세는 “나 같은 사람이 마땅히 그 일을 감당해야지. 하나님께서 사람 제대로 보셨군”
하는 교만한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라고 고백했을 뿐만 아니라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출 4:13)라고 사양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씀만 가지고 모세가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이 모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 7:22).
▲모세는 40년 동안 애굽의 궁중에서 생활하면서 애굽 사람의 모든 학문을 다 터득했습니다.
모세는 무식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에 최고의 학위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선지자들 가운데는 글은 많이 남겼지만, 기적을 행하지 않았거나,
행사가 능하고 기적은 많이 행했지만, 글은 하나도 남기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기적을 많이 행했지만, 글은 남기지 않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말과 행사에 다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는 모세의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겸손과 온유함을 드러낸 모습이었습니다.
마음이 겸손하면 성품의 온유함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민수기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온유점수를 매기면 모세가 단연 일등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세의 온유함이 극적으로 드러난 곳은 바로 본문 신34:6절 입니다.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모세의 묘를 아는 자가 없다는 말씀의 의미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두 가지 견해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견해는 모세가 죽어서 땅에 묻히고 나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관심해져서 모세의 묘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는 타당한 해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모세는 죽은 후에 더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모세가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30일 동안 애곡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견해는 모세의 온유함을 잘 드러내는 해석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무덤을 알았다면
그 곳을 성역으로 만들어서 순례하는 등 자칫 우상숭배의 장소로 만들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서 땅에 파 묻혀 장사되는 것을 택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미가엘 천사를 통해 그 시신을 그대로 하늘로 옮겨갔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의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섭리를 발휘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죽은 후에도, 자신의 공적을 미화하지 않는 온유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교만에 빠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돈이 있으면 재물 교만,
지식이 많으면 학식 교만, 가문이 좋으면 가문 교만,
또 영적인 체험을 많이 하면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다”(행 20:19)고 고백했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다는 고백입니다. 모세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우리는 겸손지수, 온유지수가 높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인내지수가 높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서 끊임없이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칭찬하고 감사했다는 말은
단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기록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17장을 보면 무려 일곱 구절에서 모세를 향한 원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마라에서는 쓴 물 때문에, 광야에서는 고기와 떡을 먹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르비딤에서는 부족한 물 때문에 모세를 원망하였습니다.
가히 ‘원망장’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또한 민수기를 보면 무려 열 한 구절에서 모세를 향한 원망이 나타납니다.
광야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가나안 백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총회 위에 높이 섰다는 이유 때문에 모세를 원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들이 반역하다가 심판을 받아 죽어가면서도
모세와 아론이 자신들을 죽였다고 끊임없이 원망합니다.
아마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이 정도로 원망을 들었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냥 사표를 내고 말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끝까지 인내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기자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모두 진멸하고 모세를 인하여
큰 민족을 다시 이루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사십 주야를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노를 그치시기를,
뜻을 돌이키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 32:32).
자신을 원망했던 백성들이지만 설령 자신을 지옥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그 백성만큼은 진멸시키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던 사람이 바로 모세였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인내지수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인내로 결실을 맺은 인생이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인내하지 못해서 폭발 직전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인내하십시오. 인내하는 사람이 승리하고, 결실을 맺으며, 영혼을 얻게 됩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9). 여러분의 인내지수는 어떻습니까?
인내지수가 높을수록 훌륭한 영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4. 정직지수가 높다
무엇보다 모세는 영적으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모세의 신명기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에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홉 번째 계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신명기에서도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 19:18-19)고 명하였습니다.
거짓말로 남을 죽이려하는 사람은 죽이고,
거짓말로 남의 재산을 빼앗으려는 사람의 재산은, 빼앗는 것이 공의라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영적인 거짓말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한 태도를 보입니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신 18:20)고 경고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천국, 혹은 지옥을 다녀왔다는 간증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간증을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다녀왔다고 주장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어떻게 증거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영적인 일이든, 인간관계의 일이든 간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격언처럼
우리는 모세와 같이 높은 정직지수를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정직지수를 정확하게 아십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의 정직지수가 백 점이라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은 이와 같이 정직해야 합니다.
택한 백성의 특징은 정직지수가 높다는 것입니다.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할지라도 잘못했다고 고백하면 됩니다.
아무리 자녀들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부모님께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부모는 자녀의 잘못을 용서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정직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친밀지수가 높다
마지막으로 모세는 하나님과의 친밀지수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모세가 40일 기도를 최소한 세 번 이상은 했을 것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십계명 두 돌판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십계명 두 돌판을 가지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분노한 모세는 두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려버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3천명을 죽이는 심판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40일 기도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진멸하지 말아주시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이스라엘을 더 이상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다시 한 번 40일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두 번째 돌비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이와 같은 기록을 볼 때, 모세는
그의 생애 동안 최소한 40일 기도를 세 번 이상 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만큼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렸습니다.
신명기 34장 10절에도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친밀하게 대화하고
말씀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하나님과의 친밀지수가 얼마나 높습니까?
혹시라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멀리하면 복이 도망갑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우리의 복이며,
하나님과의 친밀지수가 높은 사람이 영성이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복 받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친밀지수를 높여야 합니다.
◑결론.
신명기 34장에는 모세를 지칭하는 이름이 두 가지로 등장합니다.
하나는 5절에 나와 있는 “여호와의 종 모세”(the servant of the Lord)이고,
또 다른 하나는 10절에 나와 있는 “선지자 모세”(prophet)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종이라고 불렸습니다.
또한 모세는 자기의 사상이나 철학을 백성에게 강요하거나 주입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가르쳤기 때문에 선지자라고 불렸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사람이 위대해지는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로, 태어나면서부터 유명한 위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왕의 자녀로, 혹은 고귀한 귀족의 자녀로 태어나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존귀하게 여김을 받기 마련입니다.
둘째로, 노력해서 위인이 되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만들어주셔서 위인이 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위대하게 만들어주신 사람입니다. 위의 세 번째 부류입니다.
모세는 포기와 온유와 인내와 정직과 친밀도의 다섯 가지 지수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위대한 영성을 가진 진정한 신앙의 위인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영성점수는 어떻습니까?
모세가 표준이 된 다섯 가지 지수를 가지고 우리의 영성을 비교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영성점수를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점수가 높다라면 다행이지만,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이제부터라도 매일 매일 우리의 영성이 향상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위해 포기하는 신앙인, 온유하고 겸손한 신앙인,
인내하는 신앙인, 정직한 신앙인, 하나님과의 친밀도가 높은
훌륭한 신앙의 위인들로, 모세와 같은 영적 지도자로
날마다 성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