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때 언제나 존재하는 도움 시편46:1-9, 살전2:18, 요8:44 출처
Ever Present Help in Time of Need English
By David Wilkerson June 21, 2004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고난 중에 즉시 도우시는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움직이든지 산들이 이동하여 바다 한 가운데 빠지든지
바다의 물들이 큰 소리를 내며 뛰놀든지
그것들이 넘쳐서 산들이 흔들이든지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한 강이 있으매 그 강의 시내들이
하나님의 도시 곧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장막들이 있는 거룩한 처소를 즐겁게 하리로다.
하나님께서 그 도시 한가운데 계시매 그 도시가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요,
하나님께서 그 도시를 도우시되 이른 새벽에 도우시리로다.
이교도들이 격노하여 왕국들이 흔들렸으며
그분께서 자신의 음성을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그분께서 전쟁을 그치게 하시나니” (시편46:1~9)
▲이 얼마나 놀라운 말입니까? 저는 이 단락을 수십 번은 거듭 읽어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이 말씀에 압도당하고 맙니다.
여기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도 강력하고 확고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든 세계가 혼란에 빠진대도 문제없다.
땅은 흔들릴지도, 바다는 넘칠지도, 산은 바다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너희 주변의 모든 것이 완전한 혼란과 혼돈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의 말씀 때문에, 너희는 강과 같은 평화를 누릴 것이다.
모든 나라가 격노할 때에도,
강력한 기쁨의 물줄기가 나의 백성에게 흐를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마음을 즐거움으로 채울 것이다.”
지금, 모든 세계는 두려운 때에 처해 있습니다.
국가들은 어떤 지역도 위협의 면제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테러리즘에 떨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문제와 고난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서,
시편46편은 세계의 하나님의 백성을 향해 울립니다.
‘내가 너희 안에 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통해 너와 함께 있다.
나의 백성은 파괴되거나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교회에게 항상 존재하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시편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을 붙드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밤이나 낮이나 언제나 뵐 수 있습니다.
그분은 계속해서 우리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기꺼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주심으로써 이를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그 자신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가 그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그리스도인도
이 진리를 충만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추정합니다.
만일 우리가 정직하다면, 하나님의 변치 않는 임재에 관한,
우리의 개념은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우리 중 많은 자들은 성령님을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지으신 어떤 예배당에 거하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그분이 필요할 때,
우리는 그 예배당으로 달려가서, 그분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문을 두드립니다.
이런 개념은 별로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저는 주님께서 이 시편을 통해 우리를 위해
그 개념을 깨닫게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영혼을 뒤흔드는 혼란, 유혹, 혼돈의 시기와 마주칩니다.
우리를 위한 시편46편의 메시지는 그러한 때를 위한 것입니다.
그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이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굴복한다면,
-우리가 풀이 죽어 절망으로 가득 찬다면,
우리는 우리 삶 속에 그분의 현존하는 진리에 완전 반대로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을 우리에게 주사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벧후1:4
초자연적인 평화는 하나님의 신성의 일부입니다.
또 그분의 놀라운 모든 약속 중에서도, 시편46편은
그의 강 같은 평화를 얻기 위하여 필요한 말씀인데요..
제가 이 주제에 대해 묵상한 것을, 지금부터 여러분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악은 항상 존재합니다. ever-present evil
바울은 증언합니다.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로마서7:21).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에베소서6:12)
우리 영혼의 실제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적은 밤이나 낮이나 우리를 대적해 일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것을 확실히 이해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즉, 우리가 우리의 전쟁이 무엇이며, 누구와 싸우는지 무시한다면,
우리가 패배할 것은 뻔합니다.
서신서부터 계시록에 이르는 복음서, 즉 온 신약은
우리에게 사탄의 간계에 무지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악한 세력을 크게 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사탄은 여전히 “공중에 권세 잡은 통치자”(에베소서2:2)입니다.
그는 마귀적인 권세로 악한 제국을 다스립니다.
이 주권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그의 지속적인 명령을 행합니다.
▲사탄의 방법에 대해 무지한 것은 극도로 위험합니다.
우리는 단지 현재 우리의 싸움이, 인간적인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직면한 싸움이 무엇인지,
우리가 씨름하고 있는 끊임없는 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 성품의 어떤 약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육체에서 쫓아내야 할 어떤 습관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 지위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전투와도 마찬가지 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원수는 항상 존재하는 대적입니다.
사탄의 권세와 주권은 결코 잠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 거짓말하기, 공모하기 그리고 우리를 대적해 일하기를 쉬지 않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목표는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여 우리를 멸망으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주장한 이유입니다.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9)
베드로는 이를 직접 경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laf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눅22:31).
그리스도께서는 악마가 이 사도를 원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올 것에 대한 충분한 경고를 주셨습니다.
▲성도는, 항상 존재하는 악에게 습격을 당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한 순간도 쉴 새 없이 공격당한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생각지도 않았던 때에, 마귀가 기습하는 때가 있습니다.)
만일 이것이 여러분을 설명해 준다면,
사탄과 그의 통치자들은 핍박과 훼방과 여러분의 생각을 범람시키는 거짓말들로
여러분을 뒤쫓아 올 곳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에서 여러분은 유혹당하고 핍박 받고, 훼방 당합니다.
그것들은 모두 여러분들의 믿음을 곧바로 저격하는 음모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어떤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주님의 헌신된 예언자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항상 이 사람을 대단히 존경했습니다.
그는 제가 아는 가장 겸손한 사람들 중에 하나였고,
거의 설교하지 않는 소박한 목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을 할 때면, 하나님의 영이 너무나도 강하게 내려와서
제가 경험했던 그 어떤 때보다도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일은 정확히 나의 모임에서 그가 말했던 그 날 밤에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그의 메시지 도중에 그는 멈추었습니다.
그는 강단으로부터 물러나 저에게 넘겼습니다.
조용한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속삭였습니다.
“데이빗, 기도가 필요해요, 제발,
지금 당장 나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주세요. 사악한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어요.
나는 몇 년간 이런 것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요.
그것들이 내 마음에 범람하고 있고,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처음 내 생각은. “아마도, 내가 이 사람을 잘못 봤나 보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 반대입니다.
그는 드물게 예수님을 위하여 헌신된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가장 예기치 못했던 때,
그가 강력한 영적 사역을 하는 가운데 그에게 찾아왔습니다.
이 겸손한 사람은 애원했습니다.
“나를 아시잖아요, 데이빗. 이것들이 내 생각이 아닌 걸 아시죠.
우리는 그것들에 권위를 행사해야 해요, 아니면 나는 계속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기도했고, 곧 그 습격은 끝났습니다.
예배가 계속되었으며, 저는 항상 존재하는 대적이
얼마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여 공격하는가에 대해 떠올렸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이해했습니다.
그의 삶의 매일매일, 사탄은
지옥으로부터의 괴롭히는 공격으로 이 헌신된 사도를 끝없이 따라다녔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 그 자신의 서신서에 이 기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모든 국면에서,
몸과 마음과 영에 시달림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때에 바울은 매우 확실히 말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막았도다”(살전2:18)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통해 바울은
하나님께서 더욱 흡족한 은혜를 공급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탄은 일부러 그 자신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과는 다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
아니, 악마의 무기는 선택된 소수를 겨누고 있습니다.
그는 마음을 그리스도를 구하기로 정한 자들을 쫓습니다.
이 성도들은 예수님을 향한 열정적인 사랑을 가지고,
은밀한 기도의 골방에서 그분을 좇습니다.
그들은 성령 안에서 걷고 그분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신자라면,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절대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은 마음에 한 가지를 가졌는데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손상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심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분들에게 문제와 시험을 퍼붓습니다.
마침내 여러분이 이렇게 의심할 때까지 말입니다.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어떻게 주님께서 나와 함께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를 평생 동안 섬긴 종이라도,
그들의 시험 한 가운데서 주님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이 무엇을 겪게 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금식과 기도로 며칠을 보내고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넘칠 뿐인, 여러 목사님들과 이야기 해 봤습니다.
이들은, 자기가 영적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대적의 공격은 이 마지막 날에 특별히 맹렬한 것입니다.
제 생각에 우리 세대는
그 어떤 때보다도 하나님의 지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가 가장 예수님이 갈급하게 필요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실 것이라고.. 우리로 하여금 확신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사탄의 공격은 단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중단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자비하신 주님으로 은혜의 때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끊임없는 전투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의 문제의 시기에- 네가 항상 존재하는 끈질긴 악과 마주칠 때,
내가 너의 항상 존재하는 도움 ever-present help 이 되겠노라.' 시46:1
‘언제나 존재한다’는 말은
제한 없는 접근으로 항상 여기에, 항상 만날 수 있는 이라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해, 주님의 변치 않는 임재가 항상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항상 우리 안에 존재하신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와 지속적인 대화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와 함께 이야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일을 하고 있든지, 가족과 있든지, 친구와 있든지,
심지어 불신자와 함께 있을 때도 말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너무나도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이에 퍼뜨린 거짓말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시기를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저 윌커슨은, 그 거짓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적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힘과 영향이 증대하도록 허락하셨지만
그분의 백성들에게는, 더 큰 권세를 주지 않으신 것처럼 생각하기를 원합니다.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원수가 홍수같이 올 때에 주의 영께서 군기를 들어올리사 그를 치시리로다.”(사59:19)
마귀가 우리를 대적하여 무엇을 갖고 오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백성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은, 언제나 사탄의 공격보다도 더욱 클 것입니다.
이사야의 이 구절은, 실제로 이스라엘 군대의 군기 드는 자(공격 신호)를 나타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그분 자신의 전능한 군기 뒤에
이스라엘의 군대를 전투로 이끄십니다.
오늘날도 그와 같이 하나님은 그분의 깃발 아래 전진하며,
우리를 위하여 그분의 전쟁계획을 실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영광스러운 하늘의 군대를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문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도움을 주시나요?”
그분의 도움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 삶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그분의 성령의 선물로 옵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이 성령님의 성전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주님의 거하시는 처소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찬양과 간증에서 이 진리를 자주 반복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자들은
여전히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 진리 안에 있는 권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붙들고 신뢰했다면,
우리는 절대로 다시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교훈을 완전히 붙들지 못했습니다.
목사로서의 저의 모든 세월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듣기 위하여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유혹을 받습니다.
아뇨,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기다리느라 몇 시간이나 들일 필요가 없다.
나는 너 안에 거한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너를 위해 여기 있다.”
다윗의 증언을 들어보십시오.
“나를 권고하시는 주를 내가 찬송하리니
내 속 중심도 밤에 나를 훈계하는도다.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시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편16:7-8)
다윗은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내 앞에 계신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 속에 그분의 임재를 지키기로 결심했다.
그분께서는 밤낮으로 신실하게 나를 인도하신다. 나는 전혀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저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절대 말씀하시지 않아요. 저는 그분의 음성을 들은 적이 없어요.”
그러나 저는 이것을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도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 살며 일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고 걷는다고 말한다면,
즉 만일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계시고, 항상 우리 오른쪽에 계시며,
기꺼이 우리의 삶을 지도하신다면,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대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듣고 우리의 삶에 말씀하시는 대화를 갈망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내적 음성을 듣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너무나도 자주, 그러한 두려움은, 자신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그리고 이 두려움은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막습니다.
성령님이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하는 것을 막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자가 자기 양들을 내놓은 뒤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알므로 따라오되…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4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발을 내딛지 않는다면
즉,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시는 임재를 신뢰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속임수에 빠질 것이 분명합니다. 왜요?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영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음성은, 육의 음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약 내내 우리는 이런 말씀들을 읽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마다, 듣는 자들은
실수 없이 그것이 그분의 목소리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분명하고도 정확하며 자세한 지시로 말씀하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임한 성령님의 지시를 생각해 봅시다.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부르라.
그가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와 함께 묶고 있으니 그의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행10:5-6)
그 동안,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도 동일하게 자세한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오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그러므로 일어나 내려가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10:19-20)
▲성령님은 또한 바울의 삶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일하셨습니다. 사도행전 9장,
그가 여전히 사울이라고 불렸을 때, 그는 다메섹에서 3일 동안 시력을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야라는 사람에게
바울에게로 가서 그를 위헤 기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기 그분의 자세한 명령이 있습니다.
“일어나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 하는 다소 사람을 찾으라.
이는,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가 환상 중에 아나니야 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시력을 받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9:11-12)
▲사도행전 27장에서 성령님께서 더욱 자세한 지시를 내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러 날 동안 폭풍 속에 요동치던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선원들이 포기하려 했을 때,
바울은 이러한 세부적인 메시지로 그들을 격려하도록 감동 받았습니다.
“기운을 내라. 이 배만 잃을 뿐 너희 중 한 사람도 생명을 잃지 아니하리라.
이는 나를 소유하신 하나님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이르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반드시 카이사르 앞에 서야 하겠고, 보라,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음이니”(27:22-24)
과연 모든 것은 바울이 말한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반대자들은, 말씀해 보십시오.
성경의 어느 곳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자세한 지시를 주기를
멈추셨다는 말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 언제 성령님의 임재를 멈추신 적이 있습니까?
그분의 임재가 우리의 우편을 떠난 적이 있습니까?
심지어 마귀도, 그의 자녀들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이, 그분 자신의 백성들을 외면하시겠습니까?
다만,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는 민감한 걸음은 하룻밤에 오지는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일상에서 그분을 찾는 것을 가르쳐야만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야, 그분께서 우리의 발걸음을 지시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 배움의 과정에 대해 말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 누구냐?
주께서 친히 택하실 길로 그를 가르치시리로다”(시편25:12)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모든 길에 있어서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그분께서는 신실하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잠언3:6)
주님께서는 저에게 여러 번 이렇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이것을 해라, 데이빗, 그것은 하지 말아라”
가끔, 저는 제 마음 속에 그분의 음성을 무시하고
제 자신의 길을 간 적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마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가인 혼란스러운 곤경에 처하도록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가르쳐 유익하게 하고 네가 마땅히 갈 길로 너를 인도하는 주 네 하나님이라.
네가 내 명령들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하였더라면 네 화평이 강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이사야48:17-18)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께서는, 내 실패에서 나를 계속해서 구해주십니다.
그리고 저는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초자연적인 평강이 내 영혼에서 강과 같이 흐르기를 원합니다.
◑3. 성령 안에서 친밀한 걸음을 방해하는 단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항상 존재하는 불신의 문제입니다. ever-present unbelief
▲이스라엘은 절대 하나님의 항상 존재하는 도우심 ever-present help을
신뢰하는 것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의심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낮의 구름으로 밤에 불기둥으로 광야를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이 초자연적인 일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분의 계속적인 임재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매일 모든 때, 그들의 우편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을 온유하고 친절한 양치기처럼 이끄셨습니다.
그들이 그분에게 복종했을 때, 그들은 안전하고 평안했습니다.
그들이 어떤 장애물과 마주치던 간에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인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며 그분의 구원을 신뢰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러나 그분께서 위로부터 구름에게 명령하시며 하늘의 문들을 여시고…
그러므로 그분께서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소멸시키시며
그들의 햇수를 고난 속에서 소멸시키셨도다.”(시편78:22-23,33)
여기서 시편기자가 말하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그는 초자연적인 구름과 불을
하나님의 구원과 연관 짓고 있습니다.
그 표적들을 문자적으로 믿는 것은
이스라엘의 생명을 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남은 삶을, 혼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이제 시편 46편 본문으로 돌아가고자 합니다.
저는 이 시편이, ‘신약의 약속된 땅’을 묘사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과연, 시편 46편은 히브리서에서 언급된 신성한 ‘안식’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 있나니”(히4:9)
시편 46편은 이 하나님의 백성의 안식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항상 존재하는 힘,
고난의 때에 그분의 도움, 혼돈 한 가운데의 그분의 평화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고, 그분의 도움은 언제나 제때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안식을 거절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시편106:24)
슬프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무척이나 이스라엘과 닮았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약속에도 불구하고,
즉 평안과 도움과 완전한 공급의 보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불평합니다.
‘내 고난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 거야? 그분은 나와 함께 있는 건가?
그분의 임재에 대한 어떤 분명한 증거가 있는가?
왜 그분께서는 이 어려움들이 내 위에 계속 쌓이도록 하시는 걸까?’
▲우리의 불신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항상 마음 속으로 잘못하여 내 길들을 알지 못하였다, 하였노라…
그러면 사십 년 동안 하나님께서 누구로 인하여 근심하셨느냐?
범죄하여 그 사체가 광야에 쓰러진 자들이 아니냐?
또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맹세하사 자신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오직 믿지 아니한 자들이 아니냐”(히3:10, 17-19)
이와 같이, 우리도 경고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이는 그분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혹시 너희 중에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하나라도 있을까 염려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쓸지니
이것은 아무도 믿지 아니하던 그 동일한 본을 따라 넘어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1, 11)
▲오늘날, 저는 주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묻는 것을 듣습니다.
“너는 내가 여전히 내 백성에게 말한다는 것을 믿느냐?
너는 내가 너에게 나의 도움과 인도를 내리기를 바란다는 것을 믿느냐?
너는 내가 너에게 날마다, 매 시간마다, 때때마다 너에게 말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믿느냐?”
이때 우리의 반응은, 다윗의 반응과도 같아야 합니다.
그 경건한 사람은 그가 주님에 관해 다음과 같은 선언을 했을 때, 모든 지옥을 흔들었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매 그것이 이루어졌으며 명령하시매 그것이 굳게 섰음이라”(시편33:9)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모든 세대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 있습니다.
“주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분의 마음의 생각들은 모든 세대에 이르리로다”(33:11)
우주의 창조주께서 그분의 모든 생각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확실히 말해줍니다.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바로 마지막 때까지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더욱 중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오늘 당신의 문제에 관해, 당신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해, 경건한 친구를 통해
또는 성령의 잠잠하고 작은 음성을 통해서
이렇게 속삭이실 것입니다. “이것이 길이다. 이 길을 걸으라”
그러나 그분께서 어떠한 통로를 쓰시던지, 당신은 그분의 음성을 인식할 것입니다.
양은 그 목자의 음성을 압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신실하게
“자신의 성도들의 혼을 보존하시며 사악한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지십니다”(시편9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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