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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하나님의 집

LNCK 2013. 11. 22. 11:12

 

◈다윗과 하나님의 집             삼하7:1~13                      인터넷에서 스크랩

 

그래서 다윗은, 선지자 나단을 찾아갑니다.

(삼하7:1~3)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적으로부터 다윗을 지켜 주셨기 때문에

그는 이제 자기의 왕궁에서 살게 됐습니다. 다윗이 예언자 나단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백향목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장막에 있습니다.’

 

그러자 나단이 왕께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하시니

왕께서 마음에 두신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그대로 하십시오’ ”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특히 자신이 사는 백향목 왕궁과 장막을 비교하면서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다윗의 마음에 있는 숨은 의도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궤가 있는 장막을 이동식이 아닌

온전하고 영구적인 집으로 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단은 감동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하시니

왕께서 마음에 두신 일이 있다면 무엇이든 그대로 하십시오”(3절).

 

▲다윗은 왕이었고, 스스로 기도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지만,

다윗이 선지자 나단을 찾아간 것은, 굉장한 겸손을 보여줍니다.

대개 왕은 자신이 권위가 있으면 선지자를 무시하고

선지자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세시대를 보면 왕과 교황이 서로의 권력과 권위를 다퉜을 때

국가와 교회가 모두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단 선지자를 찾아가 겸손하게 자문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마음에 아직도 겸손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단이 다윗의 그 말을 듣자마자, 자기 마음이 감동이 됩니다.

나단의 처지에서 볼 때는 이것은 하나님께 기도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다윗이 선택하고 했던 일들을 보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나단은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어떤 것인지도 세심하게 묻지 않고, 바로 대답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단은 선지자로서 대답한 것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대답한 것입니다.

 

그 만남이 있었던 후 나단이 밤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책망에 가까운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나단이 빠졌던 오류, 또 다윗이 빠질 수 있었던 오류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빠질지 모릅니다.

 

나의 동기가 순수하고/ 사심이 없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싶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다 받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대개 그 영역까지 들어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이, 이 설교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순수한 헌신은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마음의 계획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화가 나시거나 진노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그 순순한 하나님 중심적인 마음을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하는 것은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도 불순종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이상으로 행하려는 것도 불순종입니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는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이상으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대개 우리가 빠지는 오류가 바로 이것입니다.

내 동기가 하나님의 뜻에 합하고 하나님 중심이라면

내가 택한 방법과 계획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분리시켜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다윗의 갸륵한 생각을 거절하신 이유.

 

다윗의 계획을 거절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계획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당신을, 일정한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는 종교적인 신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삼하7 :5~7)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나 여호와가 말한다.

네가 나를 위해 내가 있을 집을 지어 주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그날부터 오늘까지

나는 집에 있은 적이 없고 장막이나 회막을 거처 삼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내가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옮겨가는 곳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지파 가운데 누구에게든

왜 내게 백향목 집을 지어 주지 않느냐고 말한 적이 있느냐?’”

 

첫째로 하나님은 당신을 일정한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는

종교적인 신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정한 장소가 아닌 백성들이 옮겨 다니는 곳마다 함께 거하신 이유를

깨달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백성들 가운데 함께 임재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는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생각하지 못하는 첫 번째 위험을 지적해 주십니다.

 

다윗이 지금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하면

그가 백향목 궁전보다 더 멋진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어느 집에 갇힌 하나님이 되어버립니다.

자신이 사는 집과 하나님의 집을 비교해서

내 집보다 하나님의 집이 더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런 하나님은 그곳에만 머무시는 하나님으로

모든 백성의 생각이 고정될 위험이 많다는 것입니다.

 

대개 다른 종교들은 어떻게 그들의 신을 섬깁니까?

대부분의 종교는 다 그 신전에 가야지만 신을 만납니다.

그 신은 신전에 거하는 신입니다. 어디에나 계시며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닌 공간에만 머무는 신입니다.

 

그래서 열등한 종교일수록 공간을 화려하게 해놓습니다.

열등한 신, 열등한 종교일수록 공간을 자꾸 신비롭게 꾸밉니다.

 

무당집을 가보십시오. 정말 귀신 나오게 생겼습니다. 공간에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 공간 속에 무엇인가 있는 것처럼, 신이 그 안에만 거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거절의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하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것을 거절하십니다.

 

(삼하7 :8~9절)

“그러니 내 종 다윗에게 말하여라.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했고

네 앞에서 네 모든 원수들을 끊어 내었다.

그러니 이제 내가 이 땅의 위대한 사람들의 이름처럼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겠다.”

 

이 말씀에서 가장 강조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내가’라는 단어의 반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하 7장 전체에서 ‘내가’라는 단어를 23번이나 사용하셨습니다.

왜 이 단어를 반복하십니까? 주어를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가장 큰 위험은 주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억해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어를 바꿔주신 것입니다.

 

‘네가 베들레헴 목동이었을 때에 누가 너를 선택했느냐?

내가 너를 선택해서 불렀고, 내가 너를 훈련했고, 내가 너에게 번영을 주었고

내가 너를 안전하게 했다.

지금의 너를 있게 한 것은 누구냐? 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주권, 섭리는 다 잊어버리고

이제부터는 자신이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주어가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본문에서 ‘내가 너를 선택했고, 내가 너를 불렀고

내가 너를 복 주었고, 내가 너를 존귀하게 했다’고 말씀하십니까?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미 위대해. 내가 너를 위대하게 하는 존재야. 제발 주어를 바꾸지 마!’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할 때 빠질 수 있는 위험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짓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지어주시겠다는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10절부터 14절에 나옵니다.

 

“그리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곳을 정해 그들이 뿌리박을 터전을 주고

그들이 다시는 옮겨 다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한 전처럼 악한 사람들이 그들을 더 이상 해치지 못하게 하며

내가 사사들을 세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했던 때와는 같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또 너를 네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할 것이다.

나 여호와가 직접 너를 위해 왕조를 세울 것을 선포한다.

네 날들이 끝나고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잠들 때

내가 네 몸에서 나올 네 자손을 일으켜 네 뒤를 잇게 하고,

내가 그의 나라를 든든히 세울 것이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해 집을 세울 것이고, 나는 그 나라의 보좌를 영원히 세워 줄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삼하7 :10~14).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히브리말로 ‘집’이라는 단어는 ‘왕조’라는 단어와 같이 쓰입니다.

 

어떤 때는 집이라고 쓰고 어떤 때는 왕조라고 씁니다.

그래서 번역을 할 때에도 집이라고 해도 되고 왕조라고 해도 됩니다.

 

다윗이 생각한 것은 물리적인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생각하신 집은 왕조였습니다.

혈통적인 왕조가 아닌 다윗의 후손을 통해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말입니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14절).

여기에서 나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의 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다윗의 아들인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의 후손인 솔로몬이 보이는 집은 지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겠다는 집은 보이는 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성령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리 안에 영원히 살아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당을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성전이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실수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신학적 오류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흔히 서빙고 성전, 양재 성전이라고 하는데 절대 성전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집이요. 우리가 성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말의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으셔서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 나라의 계획을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엘하 7장은 너무나 중요한 본문입니다.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늘 기억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교만했던 마음 모두 내려놓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갑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싶었던 그 순수한 마음은 받으시되

 

그러나 거기에 빠져있는 모든 위험과 모든 잘못된 마음들을

철저히 경계하시며 교훈하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 마음속에도 하나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빠져드는 많은 교만과 위험을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 위험에 빠지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시고

교만하지 않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전략한 부분>......................

 

 

더 많은 책임을 갖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은 더 큰 위험을 가진다 말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교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권위와 힘을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게 될 위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서론, 축복된 환경, 위험한 환경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까지 20여 년 동안 광야에서

사울의 위협을 통해 훈련하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 되었을 때 힘과 권위를 자신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힘과 권위를 줘도 그 권위를

하나님의 영광과 백성들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참된 종의 마음을 가진 지도자를 만들기 위해

다윗을 가혹할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하셨습니다.

 

다윗이 통치했던 그 기간은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번영과 평화를 누렸던 시대였습니다.

 

다윗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모시고

예루살렘을 예배의 도시로 만들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주변의 모든 대적을 정복하고

참된 안전과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평화와 안전은 좋은 것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대개 우리가 평화와 번영 속에서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둘람 동굴에서 400여 명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했습니다.

팔레스틴의 동굴은 크고 넓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굴 속에서 400여 명이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었을까요.

 

그런데 이제 백향목의 은은한 향기가 진동하는 아름다운 궁궐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환경의 변화는 정말 좋은 일이고 축복이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그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축복과 번영과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던 것은 궁핍한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단, 한 가지 금지 명령을 제외하고서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축복과 번영이 주어질수록

영적으로는 더욱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환경이 좋아질수록, 사는 집의 평수가 넓어질수록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며

‘이제 내가 영적으로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있구나!’ 하고 기억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다행히도 다윗은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의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가, 오늘 본문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7장에 보면 다윗이 사방의 모든 대적으로부터 하나님이 지켜주셨던

바로 그때에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사방의 모든 대적으로부터 하나님이 지켜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변의 모든 대적을 다 제압하셨고

이스라엘에 평화와 안전을 주셨고 경제적인 번영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주변의 어떤 민족과 나라도 이스라엘을 쉽게 넘보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워하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는 가장 위험에 처해 있을 바로 그때에

다윗은 교만해지지 않았고 허영과 방심에 처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는 하나님 중심의 태도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언약궤가 놓여있는 장막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백향목 왕궁에 누웠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광야를 다닐 때에 옮겨 다니는 장막에 거하고 있구나.’

그것이 다윗의 마음에 걸렸고, 그의 잠자리가 불편해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종 다윗의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다윗의 영성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한 증거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풍요롭게 하시고 번영하게 하시고 안전하게 하실수록

우리의 마음속에 이러한 불편함이 살아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