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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믿음의 방식으로 왕이 되다

LNCK 2013. 11. 20. 11:33

◈다윗, 믿음의 방식으로 왕이 되다              삼하5:1~12            인터넷에서 스크랩

 

 

믿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리십시오.

다윗처럼 우리의 인생과 가정, 공동체가 강대해질 것입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본문에, 다윗은 하나님이 주신 약속대로 드디어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됩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다윗의 비전이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약 2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다윗은 십대시절 자신이 원하거나 기대하지 않았지만,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37세가 될 때까지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시간은 기다림의 시간이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화되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까요?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있는 순수하지만 그의 어린 신앙이, 더욱 성숙되어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뿐만이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2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이 자녀를 주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사라의 마음속에 있는 미성숙한 신앙의 뿌리가, 그만큼 깊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미성숙한 신앙을 거둬내고

참된 믿음을 가질 때까지 하나님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상황만 바뀌면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상황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내면이, 진정 변화되고, 정말 성숙되어,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준비되기를 원하십니다.

 

다윗은 20년 가까이 도망자 생활을 했고,

아둘람 동굴에서 400명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블레셋에서 망명생활도 했습니다.

 

이 모든 기간을 보내는 동안 하나님은

다윗을 참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지도자로 준비 시키셨습니다.

 

▲다윗은 세 번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가장 먼저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고,

-두 번째는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장로들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는, 본문에 나오는 대로, 북쪽 열한 지파 지도자들에게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점진적으로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다윗을 준비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사람들의 선택>을 동시에 받을 때까지,

하나님은 다윗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이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다윗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인생으로 변화되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면 관심을 갖지 않고, 막연하게 기다려야합니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이 이루기 위해 무작정 앞서 나가야합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기다리는 동시에, 그 기다림의 과정에서..

자기의 믿음의 성숙을 이루며, 자기의 성품을 다듬는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그가 왕이 되기까지, 중요한 세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 위한, 그 어떤 정치적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순간순간의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순종하고 충실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하 5장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지만

‘드디어 내 꿈이 이뤄졌다’고 고백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왕위를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향해 달려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고 난 이후 7년 6개월을 또 기다렸습니다.

만약 그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그 기다림의 시간은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고통이 아닌 사명에 충실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둘째, 다윗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회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원수였던 사울이 죽었을 때가 다윗에게는 분명 기회였습니다.

 

보통사람이었다면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두려움과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의 죽자 큰 슬픔에 잠깁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죽음만을 슬퍼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울의 죽음까지도 슬퍼했습니다.

사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고, 백성들에게도 추모노래를 부르게 하면서 슬퍼했습니다.

 

만약 우리도 다윗처럼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살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린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사용하시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윗은 잠시 동안 슬퍼한 것이 아니라 깊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는 헤브론에서 북쪽으로, 이스보셋을 향해 진군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서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초로 자신의 미래를 쌓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슬픔을 나의 일처럼 함께 슬퍼하는 마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북쪽 열한지파를 실제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아브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사촌동생이었던 그는 명목상의 왕이었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허수아비왕으로 세우고 실제적으로 자신이 북쪽 열한지파를 통치했습니다.

 

아브넬은 기회주의자입니다.

자신이 북쪽 열한지파를 통치하기 위해 이스보셋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니 북쪽 열한지파가 망할 것 같고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위치를 보전하기 위해 다윗과 협상을 하려고 합니다.

 

아브넬을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이 살해합니다.

요압은 아브넬이 자신의 형제를 죽인 복수를 한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의 열한지파를 다스리는 실제적인 권력자인 아브넬을,

다윗의 신하, 요압이 죽인 것은, 정치적으로 칭찬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신하를 칭찬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까지도 슬퍼합니다.

다윗의 모습이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다윗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까지도 슬퍼한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복수는 복수로 이어지고, 권력다툼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브넬의 죽음을 깊이 슬퍼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다윗의 남다른 면입니다.

 

다윗은, 이런 저런 이유로, ‘하나님의 나라’가 허물어져 가는 것 같은 마음에

슬픔을 감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모습을 본 백성들은,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나중에는 다윗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온 백성들이 나와서 다윗에게 아직 낮이니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해지기 전에 빵이든지 뭐든지 입에 댄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심한 벌을 내리고 또 내리셔도 좋다.’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 모두 좋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왕이 하는 일마다 모두 좋게 여겼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모든 백성들과 온 이스라엘은 왕이, 아브넬을 죽일 의도가 없었음을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삼하 3:35~37).

 

만약 다윗이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그가 정치적인 의도로 아브넬을 죽이라고 시키지 않았는지를 오해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정치적인 의도나 전략적으로 슬퍼한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북쪽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스리던 권력자중 한 사람인

아브넬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전체 이스라엘을, 전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순수함을 백성들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로부터 더 큰 신뢰와 존경을 받게 됩니다.

 

▲셋째, 다윗은 자신의 왕위를 이용해서, 욕심을 얻으려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에서 죽었을 때

 

사울이 죽은 모습을 발견한 아말렉 사람이

다윗에게 사울의 면류관과 팔찌 등을 가지고 와서 거짓말을 합니다.

전쟁 중에 사울이 중상을 입어서, 자신에게 죽여 달라고 해서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은, 다윗에게 인정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진노합니다. 감히 기름부음을 받은 하나님의 종을 죽였으니

너는 죽어 마땅하다하다며 그 아말렉 사람을 죽입니다.

 

북쪽 열한지파를 다스리고 있던 명목상의 왕, 이스보셋을

그의 신하 레갑과 바아나가 암살하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잘라서

다윗에게 가져와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들은 다윗을 위해 이스보셋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왕이었다면 보상을 하고, 칭찬을 해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두 사람을 용납하지 않고 징벌을 내립니다.

 

그들이 이스보셋을 죽인 것보다 더 큰 징벌을 내립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충성하겠다고 찾아 온 사람들에게 냉정합니다.

심지어 아브넬을 죽인 자신의 군대장관 요압도 저주했습니다.

 

다윗은 충성을 가장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약속을 기다리는 다윗의 모습이었습니다.

 

다윗은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에게,

참된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악한 자들은 서로를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한 편에 섰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과정 가운데 다윗은 피를 흘리지 않았지만,

악한 사람들은 서로 죽이고 죽이는 권력다툼과 세력다툼을 하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악이 필요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선한 마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

원수의 죽음까지도 슬퍼하는 마음, 하나님의 권위를 끝까지 인정하는 마음,

왕위에 오르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은 마음,

불의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않는 순전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악한 자들은 서로를 멸망케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드디어 온 이스라엘 지파의 장로들이 헤브론으로 찾아와 다윗에게 기름 붓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으로 와서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왕의 혈족입니다. 전에 사울이 우리 왕이었을 때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어

내기도 하고 다시 데리고 들어오기도 한 분은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왕께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이스라엘 장로들의 말을 들어보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왕위를 약속하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7년 6개월 동안이나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을까요?

자신의 이익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계획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움직이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 편에 붙었던 것입니다.)

 

이스보셋과 아브넬이 죽어서 북쪽 이스라엘 지파가 위기에 처하니까

그제야 굴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굴복시킨 것입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복종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굴복한 것입니다.

뒤늦게라도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강대해 지십시오.

 

“그는 점점 강대해졌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10절).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다윗이 점점 강대해진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하시도록 기다렸기 때문에 강대해진 것입니다.

 

믿음의 강함은 고집과 다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고집은 점점 다툼과 분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다릅니다.

고집은 겉으로 믿음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상처와 분열, 다툼을 만듭니다.

그러나 믿음은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나 되고 평화롭게 만듭니다.

 

믿음이 강해진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주장이 옳기 때문에 믿음이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확신이요, 자기 의입니다. 자기 주관일 뿐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강대해지십시오.

내 생각과 의지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믿음의 강대함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도록 만듭니다.

어느 누구도 소외되거나 제외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통치하는 온 이스라엘을 주변의 모든 국가들이 두려워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강대해질 때 세상은 교회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리십시오.

다윗이 강대해진 것처럼 우리의 인생과 가정, 교회가 강대해질 것입니다.

 

강대함은 우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수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강대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우리를 다스려주옵소서.

약속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참된 믿음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다윗을 사용하시듯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믿음의 사람으로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