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여, 사도성을 회복하시라 고전12:27~31 출처보기
※각론으로 누가 말꼬리 잡고 늘어질 내용이, 혹시 있을 수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스크랩 합니다. /편.
▲우리가 함께 읽으면서 확인한 열거된 교회 안의 여러 가지 직분들이 있잖아요?
그 직분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내용적으로 선지자다, 교사다.
'선지자'는, 우리가 은사를 얘기할 때 살펴본 것처럼 예언 은사를 가진 자들이에요.
그러니까 교회나 아니면 교인들의 영적인 현재의 위치가
하나님과 어느 정도의 간격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여 교회에 말함으로써
교인들로 하여금 영성적 분발을 일으키는 분들이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지금도 그런 기능을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사도입니다, 사도.
이 사도가 없어요, 이 시대에 사도가 없어요. 희소하다는 뜻입니다.
자! 또한 우리시대에도 지금 사도가 없는데,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분명히 사도는 주님께서 부르셔서 보내신 자들이거든요?
사도라는 말자체가 보낸 받은 자들 아닙니까?
그러면 이 시대는 사도바울처럼 사도로 보냄 받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아예 없다는 얘기일까요?
사도가 없다는 이 현실이 정말 이상한 겁니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을 해 본다는 거예요.
주님께서는 사도로 불렀는데, 사도로 부름 받은 자들 스스로가 자기가 사도라는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사도라는 정체성을 갖지 못하니까
사도로서의 영성도, 사도로서의 권세와 능력도 주어지지를 않고 있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사도의 정체성이 묻혀버리고, 그러므로 사도로서의 능력과 활동이 나타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 아니면 세계교회의 현재 문제가 아니겠나하는 생각까지도 해 본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
다양한 직분을 얘기하는데, 전부 성령님의 은사를 염두에 두고 연결을 시킵니다.
성령님이 나타나시는 것이 은사 아닙니까?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직분을 연결시켰다는 얘기는 뭐냐 하면,
우리가 현재 교회에서 잘못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는 거지요.
요즘도 교회 안에 직분이 있어요.
근데 이 직분이라는 것은 교회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입니다.
성령님이라는 영이신 인격체가 교회를 통일되게 이끌어 가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통일되게 이끌어 가실 때, 그 이끄심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직분이 창출된 것이라는 겁니다.
쉽게 비유를 들면 이런 겁니다.
황무지에서 샘이 터졌습니다. 그러면 샘에서 물이 올라오잖아요?
그리고 그 샘에서 올라온 물이 흘러나가면서, 물이 흘러나감에 따라서 수로가 만들어집니다.
이거는 내용물이 생기면서 수로가 만들어져서 샘 근처에 조직이 형성된 거예요.
샘을 중심으로 하고, 여러 방면의 수로가 만들어진다고 하는 조직이 형성이 된 겁니다.
근데, 포석정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옛날 신라의 임금님이 신하들을 거닐고 노닐던 포석정은 임의로 수로를 만들어 낸 겁니다,
물이 없는 곳에, 그리고 그 물이 없는 수로에다가 물을 갖다 넣은 거예요.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이라는 게 살아계신 성령님의 흘러가시는 통로였는데,
지금은 교회가 성령님의 흘러가심의 통로, 성령님의 나타나심과는 상관없이,
교회조직을 구성하기 위해서 직분이라고 하는 것을 활용하게 되고 정하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바로 교회에서 생명력이 사라지게 되는 이유라는 거지요.
예를 들면 ‘집사님’ 그러면, 요즘은 뭐 1년 지나면 서리집사, 등록한지 3년 지나면
안수집사로서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옛날에 집사님은, 스테반 집사님이라든지 일곱 집사님 뽑을 때는 어떻게 했냐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들, 칭찬 듣는다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이 모든 교인에 의해서 알려진 사람들,
성령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느냐 안 나느냐가 직분을 주느냐 안 주느냐의 기준이 되었었다는 얘기입니다.
참 요즘 현실과 많이 다르지요?
직분이라는 것은 조직을 위한 게 아니라 성령님이 흘러나오는 통로였기 때문에,
직분이 아닌 다른 은사자들과 같이 얘기가 된 거라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통틀어서, 다른 것과 사도라는 직분이 구분이 되는 것은,
사도라는 말은 말씀을 드린 대로 글자의 뜻 자체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보냄을 받은 자.
근데 다른 모~든 직분과 은사자들은 이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의 사도와 구분이 가는 것이,
보냄을 받지 않았다는 거예요.
전부 교회 안에 머물러 있는 상태인 겁니다.
기존의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성령의 통로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교회를 떠나는 자들입니다.
그 말 자체가 보냄을 받은 거라는 거예요.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보내려고 부르신 거예요 보내려고.
사도!
그리고 12제자뿐만이 아니라,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냄이라’ 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된 사울이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사도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도라고 하는 직분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내용이 다양하게 많지만,
사도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부분은 ‘보내어 진다’라고 하는 점인 것을 우리가 알았습니다.
교회로부터 보내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사도들은 보냄을 받아서 구체적으로 뭘 했는가?
성경을 보니까 사도들이 교회를 세웠더라고요.
12사도는 말할 것도 없이 이 세상에서 교회라고 하는 것 자체가 없을 때에,
그들과 함께 교회가 시작이 되었던 그런 사람들이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사방에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직분들과 확연히 구분되지 않습니까?
다른 직분들은 기존에 세워져 있는 교회 안에서 역할을 감당을 하는데,
사도들은 기존의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 내용적으로 보면, 대체 어디서 어디로 보냄을 받았는가라는 걸
좀 깊이 알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셔서 보내심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심과 같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보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3년 동안 동고동락 하시다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의 마음은 예수님과 함께 하늘나라로 올라가 버렸습니다.
이건 하늘나라가 이 제자들의 본부요, 마음을 둔 고향이요, 마음을 채울 기업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은 하늘나라 주님 따라 가버렸는데,
몸은 여기 있기 때문에 이 몸이 바로 보내진 것이 돼 버렸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 하늘로 가시는 바람에, 마음이 하늘로 따라 올라간 그 사람들로서는,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이 되어버린 겁니다.
근데 그들이 발로 딛고 서 있는 이 땅은 어떤 땅이냐 하면, 자기네 12명과 예수님을 추종하던 자들,
그 서클 말고는 모두가 다 불신앙인들의 세계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는 사람이 없어요. 자기네 서클 말고는 예수 믿는 사람이 없는 불신앙의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어디로 보내진 겁니까?
이 불신앙의 세계로 보내진 겁니다.
이게 바로 사도라는 거예요.
▲그리고 안디옥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보냅니다.
어디로 보냅니까? 그 당시 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안디옥교회를 제외하고는,
지금 안디옥교회 서쪽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 영적인 신앙의 황무지를 향해서 보낸 거예요.
그래서 그 신앙의 황무지에, 영적 황무지에다가 복음 하나 들고 가서 교회를 세운 겁니다.
이게 바로 사도라는 거예요.
천지사방에 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로 차 있는 상황에서, 12사도가 사도로써의 직임을 수행하기 시작하면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고, 그리고 예루살렘교회가 핍박 받아서 안디옥교회가 세워졌을 때,
안디옥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함으로써 교회가 세워져서,
이들이 바로 교회를 세우는 자들로 사도들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으로 말하면 누가 사도입니까?
불신앙 세계를 찾아 떠난 선교사님들이 사도이고,
교회를 개척하시겠다고 맨땅에 헤딩하신 분들이, 그런 분들이 바로 사도라는 거예요.
이 시대의 사도라는 겁니다.
맨땅에 헤딩했다는 얘기는 무슨 얘기냐 하면, 요즘은 개척도 예를 들어
이미 기존교회에서 굉장히 유명해진 목사님이 나와서 개척을 한다니까 믿는 사람들이 와! 몰려들어 버려요.
이건 개척이 아니에요.
그냥 나쁘게 볼 필요도 없고, 교회의 세포분열이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섭리적인 차원에서 말하면, 그 목사님이 개척을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포분열을 일으켜야 돼서, 다른 곳에서 교회를 시작해야 될 교인들을 위해서
그 목사님을 교사로 정하신 거지요. 그러니까 청빙된 거예요, 청빙된 거.
보냄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교회로 부름을 받은 거예요.
▲사도는,
맨땅에 헤딩하는 사람입니다.
교단의 배경도 희미하고, 스폰서도 희미하고,
그러나 불신자들을 향해서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우려고,
맨땅에 헤딩하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오늘날의 사도들이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한국교회의 현실은 지금, 사도가 묻혀버린 거예요.
개척교회 목사님들 당신 자신들조차도 사도로서의 정체성이 없어요.
사도로서의 정체성이 없으니까, 사도로서의 영성도 지니지를 못하는 거예요.
사도바울은 분명히 자기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라고 표현을 합니다.
자기가 만물의 찌꺼기라고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도성을 옹호하고 변호하고, 자기의 사도성을 주장함에 있어서는 거침이 없습니다.
사도성은 감추는 게 겸허한 것이 아니에요.
주님이 허락하신 사도성은 드러내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지금 불신앙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보냄을 받은 사도들인데,
당신 자신들이 사도권을 계승하고 있는 분이라는 걸 모르는 거예요.
한국교회 현실을 우리가 지금 생각해 보면 사도들이 없는 게 제일 문제인데,
이 현실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냐하면, 이런 게 있습니다.
▲제가 영락교회에서 3년을 섬기다 보니까 영락교회를 많이 알 수밖에 없죠?
여러분 그 점을 이해해 주시고 영락교회를 헐뜯는다든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서 필요한 사실들을 참고삼거나 또 비유적으로 생각하면서, 신앙의 덕을 도모하는 것이지요.
성경공부반이 있어요, 한 20여 개가 되는 성경공부반이 있는데,
부목사님들이 하나씩 맡아서 성경공부를 진행을 합니다, 학기별로.
그래서 저도 성경공부반 하나 맡아서 하기도 했고, 성경공부반 전체를 통괄하는 직무를 수행하기도 했었습니다,
장년 성경공부반이다 이래 갖고.
근데 이게 재미있는 거예요.
영락교인이라는 울타리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울타리가 정해져 있으므로 성경공부반에 들어가는 숫자도 정해져 있는 거예요.
22개의 성경공부반에 들어가는 숫자가 정해져 있어요.
근데 뭐가 재미있냐 하면, 목사님들끼리도 은근히 신경이 쓰입니다.
이 정해져 있는 영락교인이라는 숫자 중에서, 어느 성경공부반에 많은 교인이 들어오느냐라는 것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그러나 목사님들은 내놓고 표현하지는 못해요.
근데 문제는, 성경공부반마다 반장이 있고, 총무가 있고 부반장이 있고,
지도 권사님이 계시고, 회계가 있고 그렇습니다.
이분들이 아주 재미있는 거예요.
가까이에 있는 빵집에서 빵을 단체로 두 개씩 넣은 곰보빵하고 단팥빵하고 막 두세 개씩 넣은 봉지에다가
어느 성경공부반 지도, 어느 목사님 이름을 써 가지고 막 교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오라고.
하하!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 현상 자체가.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몰린 성경공부반에 권사님들은 어깨에 힘이 딱 들어갑니다.
아~! 이게 참 재미있는 현상이에요.
정해져 있는 영락교인들 중에서, 22개의 성경공부반 중에 어디로 많이 들어가느냐의 경쟁,
▲이 영락교회의 성경공부반을 조금 늘여서 대한민국교회의 판도로 보면 아주 정확합니다.
지금 교단을 총망라해서 대한민국교회가 20년 가까이 교인이 정체상태에서 감소상태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새로 생기긴 생기는데, 성경공부반이 영락교회 울타리 안에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쪽 교회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고,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수평이동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교인 수는 정해져 있고, 나이 들면서 나이든 장로님과 권사님들과 은퇴한 집사님들이 돌아가시면서
교인 수는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해져 있는 숫자들이 어느 교회에 많이 몰려가느냐,
이거 갖고 지금 씨름을 하고 싸우고 있는 거예요.
그 중에 간혹 끼어서 새신자들이 생기기는 하지요, 물론.
그러나 전체적으로 감소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래요, 사도가.
한국교회에 ‘사도성’이 사라져 버렸어요.
불신자를 전도해서 신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교회 부흥은 차제의 이야기이고요)
보냄 받은 자들로서의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정신을 차려야 돼요.
그곳에서 한국교회를 살릴 수 있는 힘이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이제는 그 바깥으로 나가려는 자들이 없는 거예요.
그 세계 바깥의 불신앙세계로 나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덩치 커진 교회 안에서 생활이 충분한 겁니다.
만남과 교제와 뭐 취미와 오~죽 많은 프로그램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많은 프로그램을 하면서 평생,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도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도가 없어져 버린 거예요.
사도는 불신앙세계와의 만남을 통해서 존재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덩치가 커지다 보니까, 교회 안에 묻혀 사는 바람에 사도가 없어져 버렸어요.
불신앙인들과의 만남이 없어져 버렸어요.
목사님들은, 당신들은 불신앙인들과 만나지 않으면서,
계~속 교인들에게 교인들 데리고 오라고만 얘기하고 있는 거예요, 교회 안에서.
그러니까 여러 말할 것 없이, 한국교회의 맨땅에 헤딩하고 계시는 개척교회 목사님들이,
내가 사도라고 하는 사도바울이 자기의 사도성을 교인들에게 주장하고 변호하고 지키려 했던 것처럼,
내가 지금 어쨌든 개척교회를 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장사 1년 2년 하다가 안 되면 다 때려치웁니다.
근데, 1년 2년 하는데도 교인이 안 옴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척교회를 붙들고 있다 그러면,
당신은 진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님입니다.
그 장사 안 되는 교회를 왜 붙들고 있는 거예요?
장사가 아니니까 붙들고 있는 거예요.
장사라면 붙들고 있지 못해요, 돈 버는 비즈니스라면.
비즈니스가 아니니까 2년 3년 지나도 교인이 하나도 안 오는데 붙들고 있는 거 아닙니까?
바로 사도에요.
▲사도의 정체성을 찾으세요. 어떻게 찾느냐?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다음에 바울이 아라비아로 들어가 버리고 3년을 머뭅니다.
그 3년을 머무는 동안에,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구약의 지식을 십자가 사건과 연결 지어서 해석을 하면서
영성을 재정립한 겁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교인 안 오고 있는 그 개척교회 안에서, 시간 많잖아요?
그 많은 시간을, 십자가로 성경을 보고, 십자가로 기도하면서 내 마음이 완전히 하늘나라에 정착해서,
내 몸이 이 땅에 있다는 것 자체가 진짜로 보냄 받은 자인 상태가 될 때까지,
기도하고 성경보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겁니다.
사도성을 확립하는 거에요.
그래서 불신앙인들을 목표로 나가는 겁니다.
개척교회 목사님 한 분이 이렇게 사도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한국교회 미래는 없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 시대에도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도들이 나타나게 해주시옵소서.
개척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사도로 부르신 자들이 있다는 것을 확증해 주시는 현상임을 저희가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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