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뗄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36

LNCK 2014. 1. 10. 11:22

 

https://www.youtube.com/watch?v=U2c_XUSSvPU 

 

 

◈뗄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막8:6          십자가 설교 37회

 

‘떡을 뗄 때, 역사가 나타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떡이 깨어질 때, 부서질 때, 역사가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즉 ‘십자가는 깨어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서론 / 십자가 신앙을 붙들지 않으면.. 소중한 자기 인생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십자가 신앙을 놓치고 신앙생활하고 있다 그러면

뭔가 본질에서 벗어난,

다시 말해서 아무 의미 없는, 공허한 자기인생을,

그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본질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니까

그저 허송세월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 신앙이 무엇인가’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 십자가 신앙에 가장 근접한 삶을 살려고 노력 할 적에,

나의 이 하나뿐인 인생을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게 후회 없이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십자가 신앙’을 잘 살펴보고 가르치고, 또한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현대와 같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고, 또 성공주의가 득세하는 시기에 

복음이 그런 세속적 사상과 혼합되어.. 무늬만 복음이고 속 알맹이는 세속주의 일때,

결국은 자기 인생을 헛 살게 되는 것이고, 인생 막바지에 처절하게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서울의 조용하던 어느 상가 건물에

갑자기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들락거리기에 한번 가봤더니,

온 사방에 자기계발서적과, 자기계발 메시지,

그것을 마치 교회처럼, 카세트테이프, 시디로 제작해서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제목들은 한결같이 ‘부자되는 비결, 성공하는 지름길’ 이런 것들이지요.

 

갑자기 조용하던 상가가 막 살아나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나?’ 알고 봤더니만

거기에 ‘성공하는 길, 부자 되는 길’ 이런 주제로 계속 세미나를 하고

계속 책을 팔고, 시디와 카세트테이프를 팔고 이러니까

거기에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 기독교도, 과거 한 때, 그런 세상적 분위기에 동화되어서

십자가 신앙을 버리고, 기독교를 믿는다 하면서도,

엉뚱한 신앙(성공주의, 자기계발, 기복주의)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의 하나뿐인 인생을, 허비하게 되고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거 열심히 좇아가봐야..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기복주의, 성공주의는.. 우상이요, 신기루를 좇는 것입니다.

우상은요.. 실체가 없습니다. 미혹일 뿐입니다.

 

무언가 그 신기루, 무지개를 좇아서 가봤는데

나중에 뒤돌아보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이에요. 실체가 원래 없습니다.

 

과거에 ♬무지개를 따라 다니시나요, 돌고 도는 생활 하시나요?♪

그런 복음성가가 있었는데,

무지개를 따라 가보는데.. 그 무지개를 손으로 쥘 수 있겠습니까?

애를 써서 좇아가 봐도.. 결국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우리는 <십자가 신앙>을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십자가 신앙>을 붙들지 않고, 목회를 하거나, 자기 삶을 살아간다면,

그거 10년, 20년 후에 뒤돌아보면.. 헛되이 산 것입니다.

아주 귀중한 자기 인생을 허비한 것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명한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구약도 십자가로 해석하라.’

맞는 말입니다.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위 구절에서 ‘성경’은, 구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구약도 십자가로 해석하라’는 말은, 맞습니다.

 

눅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위 구절에서 말씀한 ‘모든 성경’도 .. 구약을 말씀합니다.

당시에 아직 신약성경은, 기록되지 않았으니까요.

모든 구약은.. ‘예수님께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한 증거인 것입니다.

 

창세기만 보더라도, 창세기에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 그것이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을 적에 짐승을 죽여서, 각을 뜨고 번제를 태워서 바치는 그런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 짐승은, 장차 대속 제물로 오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친 것도, 십자가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바친 아브라함의 헌신'이 그 포커스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포커스를 맞추어서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치고 또 배워야지

뭐 가는 곳마다 ‘제단을 잘 쌓았더니,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더라.’

이런 것은 완전히 성경의 본질을 벗어난 엉뚱한 해석이고, 엉뚱한 기독교입니다.

 

출애굽기에도 ‘십자가’가 잘 나타나 있죠. 뭐죠?

유월절에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 바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한 것입니다.

 

사사기에 모든 사사들은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러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 마찬가지고요. 다윗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사야서에는, 얼마나 많은 예언들이, 십자가와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우리가 <십자가 중심>의 성경해석을 하고

십자가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굉장히 올바른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지개를 좇는 것이요

뒤돌아보면 자기가 5년 10년 세월 허비하고 낭비하는, 그러한 통탄할만한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론 / 뗄 때, 깨어질 때,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래 내용은,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책 <현실, 하나님의 세계> 364쪽부터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를 가지시고, 오천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일으키시고

또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는데,

그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병이어 때 사용된 '동사 4가지'가 

성찬 때 사용된 '동사 4가지'와.. 헬라어 동사가 그대로 일치합니다. 똑같은 동사를 쓰고 있습니다.

 

성찬을 구성하는 4개의 동사

성경이 말하는 성찬 식사와,

그 후로 교회에서 계속 실천되어 온 성찬 식사는

모두 4중 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취하다 take

-축복/감사하다 bless/thank

-떼다 break

-주다 give

 

 

 4형식 최후의 만찬

5병2어기적

7병2어기적

헬라어
동사
엠마오

바울서신
성찬식
 take 먹을 것을
가지사
5병2어를
가지사
떡 7개를
가지사
labon 떡을
가지사
떡을
가지사
 bless/
 thank 
축복하시고 우러러
축사하시고
축사하시고 eulogesas 축사
하시고
축사
하시고
 break 떼어 떡을 떼어 떼어 eklasen 떼어 떼어
`give 제자들에게
주시며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게
edoken 그들에게
주시니
‘주다’
안 나옴.
그러나
암시됨

 

 

위 표를 통해서 볼 때,

5병2어의 기적은.. 고린도전서 11장의 성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왜냐면 오병이어의 기적 때 쓰인 4가지 주요 동사가,

떡을 가지사 take, 축사하시고 bless, 떼어 break, 그들에게 주시니 give

고린도전서 11장의 성찬에 쓰인 4 동사와 헬라어로 똑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굶주린 사람을 먹이는 것이, 그 일차적 목표가 아니라

성찬식, 즉 십자가를 예표해서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떡을 떼신 게, 구제 사업을 하신 게 아니고

본래 목적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와 구원이, 그냥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보다 만배로 더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후에

연이어서 설교를 하시면서,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며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라며 그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적용

 

자 그런데 유진 피터슨 목사님이 그 책에서 강조하신 것은 무엇인가하면

이 4가지 동사가 다 필요하다는 것이죠.

 

-첫 번째 동사 ‘가지사’ -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져야 됩니다. 붙잡혀야 합니다.

-두 번째 ‘축사하시고’ -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도 해야 됩니다. 십자가를 질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4가지 동사중에 가장 중요한 동사는,

-세 번째 ‘떼어서’입니다. - 즉, 깨어지는 것, break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어지지 않으셨다면, 만약 break되지 않으셨다면,

십자가의 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류를 구원한 역사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네 번째 동사 ‘나누어주다’는 -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십자가의 혜택이, 그 결과가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 살기를 원할 때,

무언가 우리가 깨어지는 삶, 자기 자신이 이렇게 찢어지는 삶,

떡이 떼어지듯이, 자기 자신이 깨어지는/부서지는/ break 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이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이 깨어지셔서 구원의 모든 도리를 다 이루시고

우리에게 그 구원의 혜택을 주셨으니까

‘우리는 그 혜택만 받으면 되지, 뭐 나까지 십자가에서 깨어질 필요가 있느냐?’ 라고

이렇게 말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깨어지신 그것을 진짜 믿는 사람은,

자기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나서

자기도 그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자원해서 뒤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기려 장로님의 삶에 크게 감동을 받은 후배 의사들은

장기려 장로님이 걸어가셨던 그런 의사의 길을, 자원해서 걷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돌아가신 부모님의 삶에 큰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아 나도 우리 부모님처럼 살아야 되겠다.’ 라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 스스로 그렇게 결심하고

자기 스스로, 자기 부모님을 본받아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십자가는 뭐라고요?

십자가는 break, 떡이 찢어지듯이, 찢어지는 것이고, 깨어지는 것입니다.

 

내 삶이 찢어지지 않고, 내 삶이 깨어지지 않는다면,

거기에 아무런 어떠한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영광, 역사, 열매

그러한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점은 2013년 12월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2013년 한 해 동안에, 어떠한 주님의 역사를 이루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후회 없는 값진 삶을 살았다.. 는 생각이 들 것이고,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뭐 특별한 일 없이 밋밋하게 살았다.. 라는 판단이 들 것입니다.

 

후회 없는 값진 삶을 살려면,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살았느냐? 

즉 ‘내가 얼마만큼 깨어졌느냐, 내가 얼마만큼 break되어졌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본능은, 절대로 이런 것을 싫어하죠.

여기서 ‘깨어진다, 떼어진다’는 말을, 지금 우리가 쓰는 말로 바꾸면

‘손해 본다, 희생한다’가 되겠습니다.

내 기도를, 내 시간을, 내 관심을, 내 물질을.. 손해보고 희생해야..

 

그게 한 알의 밀알의 삶이 되는 것이요 그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아니면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 라는 말씀이 내게 응하게 되지요.

 

   떡을 뗄 때, 예수님의 살이 찢어질 때,

   즉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내 자신이 그렇게 깨어질 때 break 일어나는데

   그건 아픈 일입니다. 사실 처절한 일입니다.

   그러나 cross가 없는 삶에는, crown도 없습니다.

 

▶사람의 본능은, 절대로 자기가 손해를 안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무슨 물건을 살 때에도, 500원 1000원을 가지고 깎고 흥정합니다.

그 이유가 뭔가요? 자기가 손해 보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지는 삶’은 뭐냐? 깨어지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자기가 손해를 보는’ 삶입니다.

 

-자기가 금전적으로 손해를 봐야 .. 십자가를 질 수 있고

-시간적으로 손해를 봐야 ..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자기 인생이 허비되는 것 같고, 낭비되어야 ..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소중한 자기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허드렛일에,

-정말 누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좋은 가문에 태어나서, 온갖 좋은 교육을 다 받은 사람이

‘이러한 허드렛일에, 내가 봉사를 해야 하나?’ 라는

그러한 자격지심인지, 자존심인지.. 그런 것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그러한 손해 보는 일이 없는 경우에는,

어떠한 십자가의 역사도, 부활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경우만 봐도

옥합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은 아무소용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것을 “깨어서” 예수님께 드렸을 적에

정말 그 여인이 행한 일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기념하게 되리라 하신

그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 옥합을 깨뜨린 일 역시,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비하는,

예수님의 몸에 기름을 미리 바르는.. 그러한 아름다운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후회 없는 값진 삶을 살려면' 이란 폴 브랜드 박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분인데, 부모도 인도 선교사로, 자기도 의사가 되어서 인도 의료선교사로 섬겼죠.

 

그런데 이 분이 은퇴해서, 연세가 70이 지나서 되돌아보니

자기 의사 동기들.. 이제 다 은퇴해서 어디론가 가서 살겠지요.

폴 브랜드 박사가 그 병원에 찾아가보니, 

현직의 후배 의사, 간호사들이, 하나도 선배, (자기 동기) 의사들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냥 벽에 액자 사진 하나 걸려 있더라는 것이죠. 과거에 이런 의사가 여기 병원에서 근무했다고!

 

그런데 폴 브랜드 의사는, 평생 인도에서 의료선교사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았는데

은퇴 후에도, 인도 현지 사람들이 자기를 기억해주고

자기 마을로 다시 찾아와 주기를 기다려주고

그들을 만나면 박사의 손을 붙잡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시해주고..

 

그게 후회 없는 값진 삶이요,

천국에 가서도 엄청난 보상을 받을 것이지만

지금 현실에서도 많은 보상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늙어서 은퇴한 자기에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표시해 주는 그것이,

사실 어마어마한 큰 보상인 셈이지요.

 

▶그러므로 이 메시지의 주제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십자가, 십자가’ 찬송을 부르고,

십자가 설교를 많이 듣고,

심지어는 성찬식에 실제로 내가 떡과 피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내 삶에 있어서 “내 삶이 깨어져서”

다른 사람에게 드려지는

즉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가 손해 보는 삶, 내가 희생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내 ‘십자가 신앙’은 .. 입에 발린 십자가 신앙이요,

이론적이고 공허한 십자가 신앙일 뿐이지

실제적인 십자가 신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돌이켜봤을 적에, 후회스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것은

오늘 내가 괴롭고 힘들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길을 내가 뒤따라가는 것입니다.

깨어지는 것입니다. 손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각자가, 주님이 지어주시는 ‘자기 십자가’가 있을 것이며,

주님이 부르시는 ‘자기 십자가의 길’로의 부르심이 반드시 있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될 사명, 내가 손해 봐야 될 시간, 내가 희생해야할 물질,

내가 흘려야될 땀과 고난이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을 통해서

그 ‘십자가로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할 적에

주님이 주시는 그 계속적인 인도하심과 그 신호를 우리가 무시하게 되고,

 

자기가 손해 안 보는 길, 자기 편한 길로만 가보면,

좋고 괜찮을 것 같은데..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하루하루를

십자가를 지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한 해를, 십자가를 지고, 그렇게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즉 보람된 삶을 살고,

 

앞으로 5년 10년을 십자가 지는 삶, 내가 깨어지는 삶을 살아서,

정말 후에, 내 인생을 돌이켜볼 적에

 

전혀 후회함이 없을뿐더러,

(오병이어처럼) 많은 사람들의 영의 양식으로 먹이게 되는

그러한 놀라운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