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고통 이전에 사랑입니다 - YouTube
◈십자가는 고통 이전에, 사랑입니다 롬 5:5 십자가 시리즈 10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십자가는 ‘사랑’
▲십자가는 고난 이전에, 사랑
우리는 십자가를 고난으로 이해합니다.
몇 년 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감상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주제로 한 영화로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엄청난 고통과 저주로 묘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영화는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는 장면,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을 당하시는 장면,
예수님께서 저주의 고난을 받으시는 장면들을 클로즈업 시켰습니다.
그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는 고난이요, 저주요,
고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생각할 때마다, 괴로워하는 예수님을 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요, 수고요,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의 중심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고난’을 먼저 생각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고난과 수고와 희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의 가슴 속에는 고난과 수고와 아픔과 희생보다
더 큰 것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뜨거운 사랑입니다. 진정한 십자가는 뜨거운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뜨거운 사랑이 모든 수고를 기쁨과 감격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7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29:20
라반을 섬겼다는 말은, 라반의 머슴이 되어서 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은 자기가 사랑하는 라헬을 자기의 아내로 얻기 위하여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습니다.
그것은 라헬을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 가슴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머슴살이의 고난과 고통을 달게 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이 뜨거우면 뜨거울수록, 수고와 고난을 즐겁게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24번 거절을 당해도 25번째, 교도소로 다시 찾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슴 속에는 우리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처참한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저주와 고난이기 이전에
우리를 사랑하는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초인적 사랑이 어디서 나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사랑, 성령님의 사랑과 은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일종의 모형이죠. 이 부모님의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어렴풋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고 힘들게 일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찬밥 한 덩이로 부뚜막에서 대충 끼니를 때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한 겨울 냇가에서 맨손 빨래 방망이질을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옵니까?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이 있는 동안에는
식구들을 다 먹이고 자기는 굶을 수도 있으며
손톱을 깎을 수조차 없도록 문드러지게 일할 수도 있으며
아버지가 화를 내고 자녀들이 속을 썩여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한 밤 중에 깨어 일어나 울면서도...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가슴을 가득 채우면
우리는 어떤 십자가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우리 다 같이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웁시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둘째 아들은 자기 몫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며 다 허비하고 돼지를 치는 자가 되었고
하도 배가 고파서 아버지 집의 품군이 되고자 돌아온 아들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해야 마땅한 탕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탕자를 받아들이는 일을 <잔치>로 이해합니다.
아버지는 이런 놈이 돌아올 때에, 상거가 먼데도 달려가서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잔치했습니다.
돌팔매질을 받아 마땅한 놈, 더러운 냄새가 나는 자를 껴안고
입 맞추고, 그런 놈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들과 소중한 것들을 아낌없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가슴 속에 가득한, 아들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 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더럽고 냄새나는 아들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고 가장 좋은 것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주어도 아깝지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거운 것입니다.
◑불행한 삶을 사는 이유 - 사랑을 못 느끼기 때문이지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인천 방직 공장에서 엄마가 일을 하면서, 아기를 낮에 공장 숙직실에 두고 키웠습니다.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젖을 물리며 키우는데, 하루는 숙직실에 그만 불이 났습니다.
모든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엄마는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아이를 구해냈습니다.
그러나 그 일로 말미암아 화상을 입어, 엄마 얼굴은 흉하게 곰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아이가 점점 자라 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친구들에게 종종 따돌림을 당합니다.
"너네 엄마 곰보지?"라고 놀리면, 아이는 꼼짝없이 바보가 됩니다.
그래서 집에 와서 "왜 엄마는 곰보야?"라며 울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어느 날 아이는 엄마의 옛날 사진을 꺼내보았더니, 꽤 괜찮은 얼굴이었습니다.
그 사연을 물었더니, 마침내 엄마 얼굴이 곰보가 된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론, 곰보 된 엄마 얼굴을 바라 볼 때마다,
자기의 현재의 모든 일(좋은 일, 나쁜 일)이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엔 가난한 것, 어려운 환경, 엄마의 흉한 얼굴 등 모든 것이 불평거리였는데,
곰보가 되면서까지 나를 구해내신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자기 마음에 은혜가 생겼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삶을 삽니다.
사랑 받지 못하고 사는 것, 사랑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것은 - 일평생 불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지도 못합니다.
자기가 그것을 체험하지 못했고, 실제로 무엇인지 몰라서 못 베풉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남들에게 베풉니다.
베풂을 통해서.. 그 사람은, 그 사랑의 능력을 다시 느끼고, 또 다시 행복해집니다.
요약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납을 받음으로써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베풀어줌으로써, 또 다시 한 번 행복을 느끼고 그 깊이를 더 깨닫게 됩니다.
‘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이, 서로 선순환을 이루어서,
서로 더 깊이 알도록 발전해 가는 것이지요.
▲현재 불만이 가득찬 사람 - 사실은 사랑에 불만족인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사랑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맙시다. '사랑을 나는 못 받았다'는 말도 하지 맙시다.
지금 나의 처한 환경,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가, 모든 것이 은혜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일평생 불평하며 절망 속에 살지만,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자기에게 소망이 되고, 생명력이 됩니다.
우리 주변 환경이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소망만 있으면 살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은 어디서 오는가요?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사랑에서 옵니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고 살면서, 속에서 솟아나고 우러나오는 사랑을
남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렇게 나누어줌으로써, 또 다시 한 번 그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변을 보면, 그 증거가 잘 나타납니다.
자기 경제적 형편에 관계 없이, 늘 베풀어 주고 나누어 주는, 그런 개인/공동체/민족이 있습니다.
물질적으로, 인격적으로.. 늘 이웃을 걱정해 주고, 염려해줍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남을 돕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사랑이, 그 개인/공동체 속에 차고,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십자가 사랑을, 그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자기 밖에 모릅니다.
절대 이웃을 향해, 도움의 손을 내밀지 못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십자가를 지식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구원 못 받을 수 있습니다.)
◑죄인을 향한 무조건적 사랑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롬 5:8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롬 5:10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결혼을 앞둔 한 자매가, 유명 의대를 나온 청년과 같은 교회에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교회 봉사를 같이 하면서, 교제를 나누고 혼담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 이야기가 나온 후부터, 남자 쪽에서 요구가 나왔습니다.
신부 쪽에서는 그래도 의사 신랑을 맞이한다는 이유로, 신혼집을 꾸밀 수
있는 스물대여섯 평 정도의 아파트는 마련하겠다고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도 쉽지 않고 역부족이어서,
신부 측 가족들은 밤잠을 자지 못하면서 궁리하며 고심했습니다.
그런데 신랑 측 가족들은 노골적으로 요구를 해 왔는데
아파트는 50평 이상이 되어야 하며, 병원 개업할 건물까지 운운했습니다.
우리 아들은 의사이며, 그것도 명문 의대를 졸업한 의사인데
그 정도는 해 와야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했습니다. (모든 의대 졸업생이 이런 것은 결코 아님.)
그 자매는 그 형제를 진심으로 좋아했습니다.
의사가 될 사람이어서, 그 득을 보려고 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인격으로 그 형제를 사랑했지만,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큰 아파트와 병원 개업할 건물을 마련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참 씁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돈이 없으면... 깨어지는 사랑입니다.
병이 들면... 내 던져버릴 사랑입니다.
실패하면... 가차 없이 내어 버릴 사랑입니다.
요즘은 아예 서로 스펙을 맞추어서,
서로 조건을 보고 결혼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그런 세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더욱 잘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조건적 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 나서, 많이 배워서 등
사랑 받을만한 조건이 있어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교회에 큰 공헌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심도 아닙니다.
내가 도무지 용납 받을 수 없는 추한 사람으로 있을 때
도무지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악 가운데서 서성거리고 있던 그 때에도
주님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아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그 때에도,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롬 5:8
“우리가 아직 원수 되었을 때에” 롬 5:10
(최근에 나에게 사기를 치고 막대한 피해를 입힌 원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원수를 미워해야 할 그 때,
반드시 벌하시고 멸해야할 그 때,
감옥을 보내도 시원찮은 그 때,
도리어 그 죄 값을 원수 대신 지불하시고,
그 죄 값을 당신 아들이 대신 치르게 하셨습니다.
▲가정의 위기가, 사랑을 더욱 돈독케 합니다.
18살인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는데, 제(설교자)게 이런 기특한 이메일을 보내 왔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빠에게,
오늘 아침에 연락을 드렸는데도 벌써 엄마 아빠가 그립네요.
얼른 방학이 되어서 한국에 가서, 엄마가 해 주신 밥과 된장국을 먹고 싶어요.
이곳에 제 혼자 떨어져 있으니
얼마나 부모님이 저를 사랑하시는지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엄마 아빠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암 투병하는 엄마는 빨리 이겨버리세요.
아빠는 건강 좀 신경 쓰시면서 일 하세요.
이사 날짜가, 제가 귀국한 이후가 되어서 참 다행이네요.
두 분께만 맡길 수 없잖아요?
아들이 가서 세 명 몫을 제 혼자서 다 할 터이니,
이삿짐은 챙기지 말고, 그대로 남겨 놓으세요... (후략)
어느 집, 어느 가정에 주신 아들이 이렇게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제 아들 자랑을 하니까, 제가 푼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아들을 가진 부모는 누구나 다 자랑하고 싶습니다.
아들이 뭘 대단하게 이루어서 자랑하기 보다는, 내 아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돼지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악취가 풍겨서 사람들이 멀리 피해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깊은 고민 끝에, 주인은 돼지들을 사랑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더럽고 추하고 오물 가운데 뒤범벅이 되어 사는 돼지들을!
돼지들을 구원하기로 작정하고 큰 결심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랑 너랑 우리가 저 불쌍한 돼지들을 좀 구원해 보자.
이제 너는 돼지가 되어라!
저 오물로 뒤범벅되어 있는, 돼지 움막 속으로 들어가거라!
돼지들과 함께 살아라.
거기에다 한 술 더 떠
돼지들에 의해, 돼지들의 발에 짓밟혀서 죽어라!
그렇게 해서 돼지들을 구원하자.
아빠인 저는, 죽어도 우리 아들을, 돼지 움막으로 못 보냅니다.
돼지를 죽이면 죽였지, 제 아들을 죽여서 돼지들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돼지는 키우면 돈이라도 벌지요...
돼지는 키우면 고기라도 얻지요...
어떻게 보면, 돼지보다도 더 죄가 많아서 더럽고
돼지보다도 더 쓸모없는 인간들을 위해서
그들을 사랑하기로 작정하시고, 구원하기로 결심하셨습니다.
미국에 있는 아들이, 돼지우리에 들어가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미국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의 보좌에 계시던 아들을
이 죄악에 오염된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당신은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는가요?
당신 아들 여럿 중, 한 명을 내 놓을 수 없는데,
하나님은 하나뿐인 독생자를 내어 놓으셨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이야기
영광스런 천국떠난 사랑,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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