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4

고난 비례의 법칙 ✝18

LNCK 2014. 1. 29. 12:40

https://www.youtube.com/watch?v=jlMT8d9Udjc 

◈고난 비례의 법칙                요12:24                          십자가 시리즈 18회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외우기도 쉽습니다. 12x2는 24이니까요. 요한복음 12장 24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여기서 ‘진실로’ 라는 말이 두 번 들어갔습니다.

이런 반복 표현은 강조법인데, 진짜 진실이라는 뜻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내용을 말씀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라는 표현으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진실로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판단은 절대 옳으십니다.

 

주변에 보면 고생을 많이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열심히 살았는데

그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열매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 하고 열심히 애를 쓰는데

가시적인 열매가 나타나서

빠른 시간 내에 부흥이 막 일어나는 그런 케이스도 있지만.. 드물고요.

 

그러면 이제 애를 많이 쓰고 십자가고난의 길을 갔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아무런 열매가 드러나지 않을 때에는.. 굉장히 이렇게 낙심하게 되겠지요.

‘이게 뭔가?, 이게 도대체 뭐하는 건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하나님의 판단은 지극히 공평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위 본문, 요12:24절을.. 눈에는 아무 증거 안 보여도..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난 비례의 법칙’

자기가 십자가의 길을 가는 만큼.. 그 열매는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당대에 드러나던지 아니면, 자기 사후에 드러나던지..

 

문제는 우리가 얼마큼 십자가의 길을 순종해서 가느냐.. 거기에 달려있는 것이지,

십자가의 길을 가는데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아무런 가시적인 열매가

자기 당대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스스로 많은 고통을 당하고 낙심하고

그 중간에서 자기 스스로 탈락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12:24절을 안 믿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벙커C유(Bunker Fuel)가, 불이 쉽게 붙지 않습니다.

성냥불을 가져가 대도 불이 잘 안 붙어요.

왜냐하면 기름이 너무 뻑뻑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벙커C油(아파트, 빌딩의 난방 연료)에 불을 붙이려면

거기에 심지를 만들어서, 먼저 심지에 불을 붙여야 됩니다.

 

그래서 그 심지가 타고 들어가면서, 벙커C유가 일단 점화가 되면,

다른 어떠한 석유 종류와 달리, 엄청난 화력을 갖고 타오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벙커C유를 점화시키는

‘심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그냥 ‘심지처럼’ 자기 혼자 타다가 죽어버렸어요.

아무 열매가 없이, 자기는 그냥 혼자서 타다가, 혼자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그는 벙커C유를 점화시키는 심지의 역할을 감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죽거나 순교한 이후에, 그는 한 알의 밀알로 살았기 때문에

요한복음 12장 24절 말씀에 의거해서

많은 열매가 그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 가지 예를 살펴보겠습니다.

 

<한 알의 밀알의.. 3가지 예>

 

1. David Flood 부부의 일화

 

먼저 첫 번째는 1921년경에 있었던, 지금으로부터 약 90년 전에 있었던

데이비드 플러드 부부 이야기입니다.

 

데이비드 플러드와 그의 아내 스비아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아프리카 자이레(벨지움 콩고)에 대한 선교 열정이 불타 올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거기에 갔는데, 가자마자 계속 고통만 당하는 겁니다.

 

자기가 생각했던 것만큼 선교가 되지 않고,

마을 사람들, 즉 현지 주민들은 그 선교사 부부를 아예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에요.

왜냐면 부정 탄다고 그러는 것이죠.

 

그래서 마을 바깥에서 움막집을 짓고 살았는데

아내는 거기서 말라리아에 걸리고, 결국에는 간지 약 1년 정도 지나서

자기 아내가 출산하다가 난산을 합니다.

딸 아이 하나(일화의 주인공)를 낳고, 출산 후 1주일 만에, 아내는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남편 선교사는,

관도 현지인들이 쓰는 것처럼 판자를 얼기설기 엮은 그런 관을 만들어서

자기 집 옆에 그 동산에다가, 자기 아내를 묻었습니다.

 

그때 저쪽 자기가 사는 오두막에서는, 그 아내가 낳은 그 갓난아기가 앵앵 울어댑니다.

자기는 이제 두 살배기 아들(스웨덴에서 데려갔음)하고, 갓 태어난 딸이 남았는데,

자기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선교하러 왔는데 선교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 하고

마을 사람들은 만나지도 못하고.. 이게 뭡니까..

 

그렇게 데이비드 플러드는, 하나님께 대해서 극도로 시험에 들어버린 것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 하고 자이레로 왔는데

그 삶이 너무 열악할뿐더러, 아무런 선교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랑 같이 파송 받아 온 에릭슨 부부가 있었는데

그 부부는 자기와 함께 6개월 사역하고는.. 자이레의 선교본부로 후퇴해버렸어요.

너무 힘드니까, 떠나버린 겁니다.

 

그래도 자기는 1년가량 버텼는데, 자기 아내까지 죽고 나니까

도저히 뭐 27살의 청년이, 이제 하나님께 시험이 가득 들어서,

자기도 어린 두 자녀를 데리고 철수를 해버린 것이지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자이레 대도시의 선교 본부로 돌아오니까,

자기보다 먼저 철수했던 에릭슨 부부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플러드는, ‘아 나는 이제 더 이상 지긋지긋하다.

하나님께 내가 이렇게 헌신하고자 해서, 나의 일생을 다 바치고 헌신했는데,

하나님은 너무 나를 안 도와주신다. 이런 하나님은 나는 믿지 않겠다.’

 

이래서 자기 아내가 낳은 그 갓 태어난 아기(주인공)를,

에릭슨 부부에게 맡겨버리고.. (27살 남자가 애 젓을 줄 수도 없지요.)

이렇게 하고 자기는, 두 살 된 아들을 데리고, 스웨덴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제 남은 아기, 이 스토리의 주인공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 엄마는 자기를 낳은 후 1주일 만에 죽어버리고,

자기 아버지는 스웨덴으로 돌아가 버리고,

자기 혼자 이렇게 남아서, 완전히 고아가 되어서, 자이레에서

에릭슨 부부의 손에 의해서 한동안 키워지게 됩니다.

 

그러다가 에릭슨 부부도, 얼마 후에 독살을 당해서 죽어버립니다.

원주민이 가져온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을 먹고 부부가 둘 다 죽어버렸어요.

그 정확한 사인은 아닌데, 그런 설이 있습니다. 어쨌든 에릭슨 부부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기는, 계속 자이레에서, 미국인 선교사부부에게 또 넘겨져서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아기를 맡아서 키우게 됩니다.

 

그 미국인 선교사 버거(Buger)부부는, 그 갓난아기를 키우다가

그 아기가 3살쯤 되었을 때, 미국으로 철수를 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아기에게 “애기 Aggie”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애기 Aggie는 4살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게 됩니다.

거기서 학교를 마치고,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Aggie가 결혼한 남자는,

그 미니아폴리스 지역에서 아주 훌륭한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고

노스웨스튼 바이블 칼리지의 학장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Aggie는,

자기 친어머니는 자이레에서 자기를 낳다가 일주일 후에 돌아가시고

자기 아버지가 스웨덴으로 돌아가셨다는.. 그 소문만 어렴풋이 듣고 있었지요.

 

그래서 친아버지를 그렇게 찾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근 40년간 노력을 한 가운데, 나중에 결국에는 스웨덴으로 가서

자기 아버지를 찾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 데이비드 플러드는, 스웨덴으로 돌아와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에 실패하고, 완전히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노년에는 중풍에도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스웨덴에 돌아와서 재혼을 했는데,

그 재혼한 부인과 또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또 새로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Aggie는 근 40년 후에, 마침내 스웨덴에 가서

자기의 배다른 오빠 3명과, 그리고 자기 친 오빠도 한 명 있지요.

(선교지에 따라 갔다가, 아빠와 함께 스웨덴에 되돌아옴)

 

이제 Aggie도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요.

그는 스웨덴에 가서, 친오빠도 다 만나보았는데

다들 예수를 안 믿고, 신앙이 엉망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빠들이 아버지(과거에 자이레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플러드)를 다 싫어하고,

아버지도, 자녀들에게, 자기 앞에서는 하나님의 ‘하’字도 자기에게 꺼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가 너무나도 하나님께 실망을 했다는 것이지요.

 

자기는 그렇게 하나님께 헌신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은 자기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Aggie는 자기 아버지를 찾는 중에

기독교계의 소식, 선교계 소식을 늘 많이 듣고 있었는데,

한 번은 자이레에서 놀랍게 사역하고 있는, 어떤 현지인 흑인 목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와 연락을 해서, 자기 아빠를 찾기 위해서,

애기 Aggie는 ‘당신은 해서 자이레 사람이니까, 그러면 당신은

자이레에서 선교했던 데이비드 플러드, 그의 아내 스비지에 대해서 들어 본적이 있습니까?’

 

Aggie는 자기 아빠를 찾고 있었으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하고 다닌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흑인 목사는, ‘내가 데이비드 플러드, 그의 아내 스비지를 잘 알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재차 물어보니까, 자기가 아주 꼬마였을 적에

자기 마을 바깥에, 데이비드 플러드 부부가 움막을 짓고 살았는데

거기에 음식을 팔러 다녔다는 것이지요.

과일이라든지 채소라든지.. 그런 것들을 팔러 그 움막집에 정기적으로 갔는데,

 

거기에서 스비지 (Aggie의 엄마)가, 그 행상하는 소년에게 계속 전도를 하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가 커서 나중에 목사가 되었고,

이제는 자이레에서 아주 영향력을 미치는, 그런 기독교 지도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Aggie의 엄마 스비지는,

마을 사람들이, 절대 선교사는 마을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니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아이 한명이었다는 것이지요. 흑인 아이 한명.

 

그 아이가 채소하고 과일을 팔러, 그 마을 밖의 움막집으로 정기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정기적으로 찾아온 그 흑인아이 한 명을

스비지가 계속 교제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렇게 전도/양육한 것이, 그 흑인 소년의 마음에 큰 감화와 감동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는 자이레 나라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는

훌륭한 목회자 중 한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ggie는 그런 소식을 다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Aggie가 친아버지 데이비드 플러드를, 스웨덴에 찾아가서 만났을 때,

그 자이레 목회자 이야기를 다 전달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이레 선교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때 아버지는 허름한 아파트에서, 술병이 나뒹구는 그러한 집안 구석에서

병들어 간이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아버지 제가 딸이에요 아버지가 저를 놔두고, 스웨덴으로 돌아가셨잖아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키워주셨습니다.”

 

그러자 73세가 된 아버지 데이비드 플러드는, 처음에 고함을 버럭 지르면서

“내 앞에서 하나님의 ‘하’字도 꺼내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아무것도 해 주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괴롭히신 분이야.” 라고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딸 Aggie는 말합니다.

“아버지 그렇지 않아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자이레에서 약 1년간 선교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 우리 집에 과일을 팔러왔다는 그 흑인 아이가

나중에 커서 훌륭한 목사가 되어서,

그 마을, 선교사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그 마을 사람 90명이 모조리 다 예수를 믿었고

 

그는 그 마을만 전도한 것이 아니라, 자이레 전역에서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이루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 목사는, 자기 입으로, 엄마 스비지로부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런 놀라운 은혜와 영적인 감화와 감동을 받았었다고, 양육을 받았었다고

그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자 이 스토리의 주제가 뭔가 하면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의 판단은 반드시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시기 때문에,

그 열매가 즉시 나타난다면 시험에 들 일이 없죠.

 

그러나 열매가 즉시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마 90%는,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즉시 나타나지 않아요.

 

성경 말씀에도 그랬잖아요. 한 알의 밀이 떨어져 ‘죽으면’.

문자적으로 해적하면.. 정말 내가 죽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되는 ‘이 고생 후에, 내 열매가 얼마나 될 것인가?’

이런 것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왜요? 열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신다니까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고,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고난 비례의 법칙. 그가 당하는 십자가의 고난에 비례해서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젊은 26살 경에 데이비드 플러드라는 남자가

자기 아내를 데리고 자이레로 가서

밀림 가운데서 말라리아에 걸려서, 현지인들도 못 만나고.. 아내는 죽고..

완전히 얼마나 그 상황이 열악했으면 시험에 들어서

그 이후로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난리를 쳤지만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그가 일 년 동안 자이레에서 자기 아내를 잃어버리고 많은 고난을 겪은 그 열매는

그래도 살아있다.. 라는 것입니다.

 

그 한 알의 밀알 같은 열매는 ‘반드시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더라’ 라는 것입니다. 요12:24

 

자기 아내가 죽어서 거기서 관에서 누워서 장례를 치렀을 적에

갓 태어난 그 아이는 자기 집에서 앵앵 울고 있고,

두 살배기 남자 하나 데리고.. 아프리카에서

그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아팠을까요.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삿대질을 하게 되고

하나님을 향해서 시험에 드는 것이..

어떻게 보면 충분히 이해가 될 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우여곡절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흘린 땀과 수고와 십자가의 고난의 열매는 없어지지 않았다. 라는 것이지요.

죄송한 표현이지만 개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꼭 죽음으로서 뿐만 아니라, 살아서 헌신한, 우리의 모든 수고와 헌신은

반드시 한 알의 밀알로서 열매를 맺게 되어있으니까

‘열매 맺는 것은 관심을 꺼라’는 것이지요.

 

왜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에요.

그러니까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면

<고난 비례의 법칙>으로 반드시 열매가 나타날 것을, 믿고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꾀가 많고 약아서

작은 투자를 하고 많은 열매를 기대합니다.

뭐 하나님을 위해서는 크게 헌신하지 않고 ‘아 열매가 왜 이렇게 적습니까?’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주여 이게 뭡니까?’ 이게 인간의 죄성 이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 비례의 법칙>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열매는 그냥 주님께 맡기고

반드시 공의롭고 공평하신 하나님이, 내가 흘린 땀과 내가 흘린 눈물과

내가 수고한 그 수고만큼, 반드시 열매를 갚아주실 것이니까

 

적어도 자기가 조금 수고하고 조금 애쓰고,

하나님께 원망하면서 “왜 이렇게 나를 열매도 없이 하십니까?” 라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데이비드 플러드라는 젊은 청년이, 자이레로 가서 선교하고

하나님께 완전히 시험에 들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와서

스웨덴에서 이후에 사업을 하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자기 자녀들에게 절대로 내 앞에서 하나님에 ‘하’자도 꺼내지 말라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쳤지만

 

나중에 40여년이 지난 이후에, 자기 딸을 만나서 보니까

정말 자기 선교의 열매가 헛되지 않았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막판에 그는 회심하고 주께로 돌아와서, 편안히 눈을 감았다는

그러한 이야기가 실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애기라는 여자는 40대 중반에 책을 썼습니다.

그 책 제목이 영어로 <Aggie, 애기>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저는 인터넷에서 요약 된 것을 읽어보았는데

여러분께서도 한번 찾아서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2. 이번에는 마틴 번햄 선교사 부부의 일화입니다.

 

2001년도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들이 필리핀 팔라완 섬에서 납치가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바닷가 숙소에 있는데, 어떤 통통배가 한 척 오더니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에 근거지를 둔 회교도들이 배에서 내려서,

총을 들이대고, 이 선교사 부부를 납치해서

 

거기서 한 4~500km 남부 (자기들 근거지 고향)로 내려가서

민다나오 섬 근처의 작은 섬들을, 추적을 피해 옮겨다니면서

이 납치한 부부의 몸값으로 300만 달러를 요구를 했는데

 

미국 사람들의 원칙은 ‘테러리스트와 절대로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론 몸값을 주지 않았고, 1년이 넘게 376일 동안

납치범들과 함께 쫓고 쫓기는 그러한 추격전이 벌어졌는데요.

 

 

안타깝게도 맨 마지막에, 남편 선교사, 마틴 번햄이

추격군인 정부군의 총탄을 가슴에 맞아 숨졌고,

아내 선교사 그레시아 번햄은 총탄이 다리를 관통했으나, 다행히 목숨은 건졌습니다.

 

필리핀 정부군은 납치범들을 향해 총을 쏘았는데, 그들 무리가운데 있었던

그 납치되었던 선교사 부부도 같이 피습을 당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376일 동안 이들에게 납치되어서

이들이 정부군의 추적을 피해서 도망 다닐 적에 같이 도망을 다니는데

그 376일 동안 고생한 내용을, (남편은 순교를 했고)

아내인 그레시아 번햄이 책으로 써서 남겼는데,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납치 후 376일. 죽음의 사선을 넘어> 라는 제목입니다.

 

▶그 책을 제가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는데요.

정말 그 376일 동안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더라고요.

 

왜냐하면 뭐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납치되어서 그 납치범들이 도망 다니는 그 산길을 ‘같이’ 다녀야 했는데

납치범들이 뭐 편하게 해주겠습니까.

또 자기들이 가지고다니던 총탄, 식량, 이런 것들을 다 같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막 너무 몸이 야위어져서, 수갑을 채워도 그 수갑이 팔에서 헐거워 빠질 정도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정말 말도 못할 고생이었지요.

 

그런데 지금 이 설교의 주제는

첫 번째 예화를 통해서 스웨덴 자이레 선교사 부부,

<고난 비례 법칙>으로

고난을 당한 만큼 열매가 있었다는 것이고

 

이 필리핀 선교사, 마틴 번햄 선교사 부부의 예화의 주제는

<고난을 당한 만큼 영광이 있다> 앞에는 열매, 지금은 영광.. 약간 차이가 있죠?

 

이렇게 이제 한 분은 안타깝게 먼저 천국에 가셨지만

그 남은 그레시아 번햄 선교사가 엄청난 “영광”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제가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그 잔당들이 소탕이 되었고

남편은 총탄에 안타깝게 맞아 순교하긴 했지만.

그 민다나오 서쪽에 잠보앙가라는 그 회교 거점 도시가 있습니다.

 

그 잠보앙가 공항에서, 이제 마닐라로 먼저 이송이 되었다가

마닐라에서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잠보앙가 현지에서, 그 미국 장성이 그 공항에 나와서

다리에 총탄을 맞은 그레시아 번햄, 그 아내 선교사를 향해서 거수경례를 하더니만

자기 어깨에서 자기의 별을 떼어서, 그 선교사의 손에 꽉 쥐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존경한다’는 그러한 표시가 되겠지요.

그리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는 그러한 표시도 되겠습니다.

 

또 자기 남편이 그렇게 죽은 것에 대해,

진압 작전의 책임자였던 자기도, 좀 미안한 표시도 되겠지요.

 

    

 

▶어쨌든 이 그레시아 번햄은 그 이후로 엄청난 영광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천국의 영광이 이와 같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다나오 잠보앙가 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는데

마닐라(필리핀 수도) 공항에 벌써 여러 보도진과 미국대사가 나와서 환영을 했으며

 

미국 대사관에 머무는 동안에

필리핀 아로요 대통령이 내방을 해서, 또 손을 잡고 격려해주고,

 

같은 시간에 미국의 번햄 (남편 시댁) 집에서는

친구와 친척이 다 모여 있는 장면이 CNN을 통해 생중계 보도되었고,

 

언론 매체들은, 마닐라 미국 대사관 필리핀에 있는 아내, 그레시아 번햄을 찍고

같은 시간 미국 시댁에 있는 그 부모들을 취재해서 방송에 내보내고

다른 언론 매체들도 미국의 집 마당을 가득 장악하고 앞 다투어 취재에 열을 올렸습니다.

 

마침내 그녀가 미국에 도착하고, 남편의 운구도 미국에 도착해서 장례를 치를 때

기독교계의 요인들이 대거 참석하고

장례 차가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묘지로 가는데

일면식도 없었던 백화점 직원들, 시민들이 다 길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서

순교한 마틴 번햄 선교사에 대해 조의를 표시하고, 격려를 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들을,

너무 이렇게 온 미국에 다 방송이 되어서,

선교사 부부를 환영하고, 조의를 표하고, 뜨겁게 환영해준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건 376일 동안 그들이 너무나 많은 <고난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고난 비례의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다. 십자가 길을 가면서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 뒤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에서 일어나는 우리가 받을 장차 영광에 비하면

너무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십자가 길을 못가서 그렇지,

그 고난의 길을 가기만 하면

천국에서 ‘현재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는 말씀처럼,

그 고난에 비례해서, 천국에 놀라운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남편 마틴 번햄이 살이 빠지고 얼마나 고생스럽겠어요.

그렇게 해서 살아서 귀환했으면 다행일 것인데, 마지막 376일째에 죽었단 말이에요.

순교했단 말이에요.

 

본인들 두 사람이 간절히 기도했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에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또 전 세계의 사람들이,

(그 방송이 계속 CNN으로 나가고 있었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해서 기도를 했겠어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고

좀 빨리 일(피랍 기간)을 끝내지 않으셨는가요?

 

뭐 제 짧은 생각인데요,

일이 뭐 5일 만에, 3일 만에 해결되었다.. 만약 그랬으면 영광도 작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뜻과 섭리에 의해서

피랍일이 376일간이나 질질 끌었고,

또 남편 번햄이 순교하는 그러한 고난을 당했지만

 

만약 그런 고난이 없었더라면.. 그들 부부는 결코 영웅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 부부는 결코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각자가 다 이렇게 천국에서 천국에 갈 터인데,

천국에 가서 누가 이렇게 천사가 나와서 또는 뭐 베드로 사도가 나와서

자기 머리에 면류관을 딱 벗어서 우리에게 씌워 주고.. 이럴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잠보앙가 공항에서, 미군 장성이, 아내 선교사에게 자기 어깨 견장의 별을 떼서 주듯이요)

 

천국에 아직 안 가봐서 모릅니다만,

우리 각자가 대접 받는 것이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보았을 때에는, ‘저것이 개죽음인 것 같고, 개고생인 것 같고,

저게 뭐하는 것이냐?’ 사람들 입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나오고

 

자기가 자신을 보기에도 완전히 생고생이고,

자기가 자기를 보기에도 흠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천국에 가면 ‘고난 비례의 법칙’으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이 세상에서 고생한 것만큼

더 영광스러운 극진한 대우를 영원토록 받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도 미안하신 것이 없으시다.’ .. 그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극심한 고난을 주시지만

하나도 미안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조금 불평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조금 불평을 줄이고 조금 이를 악물고, 조금 이렇게 고생스러운 이 길이지만

이 길을 계속 갔을 적에, 결국 천국에 가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실 것입니다. “내가 맞았지?”

 

 

◑3. 시몬 조 이야기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일화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일화는 중국의 크리스천 시몬 조. (중국 발음은 차오)

 

▶시몬 조는 1940년에서 43년경에, 자기가 젊은 신학생 때에

동료 중국 신학생들과 함께 신학교에서 기도를 하는 가운데

갑자기 그들에게 모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하면서

“중국 서쪽으로 복음을 전하러 가라. 예루살렘까지 복음을 전하라.” 라는

강력한 성령의 감동감화가 일어나서,

 

모두들 그 음성에 순종해서, 정말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 전대도 가지지 않고, 옷도 가지지 않고,

그냥 자기들이 입은 옷 그대로, 오직 믿음으로 서쪽을 향해서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동안,

중국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중간에 잡히고, 국경에서 다 잡히고 말앗는데,

그 가운데 시몬 조라는 사람은, 결국 그도 잡혀서 31년간이나 투옥이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는 1950년대 경인데

(1949년부터 중국에 공산주의가 활발히 일어났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서쪽까지 가기는 갔어요.

그런데 맨 마지막 서쪽 국경도시인 카시가르에서 그는 체포가 되었고

그때부터 투옥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몇 달간,

그 다음에는 교도소에서 생활을 하고 했는데

결국 합쳐서 31년간이나 투옥이 되었던 것입니다.

탄광과 수용소를 전전하며 막 이렇게, 오랜 고난의 세월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예루살렘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 하라는 강한 마음의 확신을 갖고 갔는데

이건 뭐 전부 중간에서 다 투옥되고, 잡히고, 그래서 자기는 감옥에서 31년을 있었어요.

 

그 추운데서 온갖 고생을 다 당하고.. 이게 뭡니까?

도대체 선교는 해보지도 못하고..

그럼, ‘예루살렘까지 가라는.. 그 감동은.. 잘못 받았던 것일까요?’

 

그런데 이제 31년 만에, 이 시몬 조가 석방이 되었는데, 31년이 지났으니까

이제는 거의 할아버지가 된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소천하기 전까지 20년간이나 사역을 했는데

그가 이제 1981년에 시몬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 중국은 완전히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분은 그때서부터 약 20년간 사역을 하다가, 2001년에 소천을 하셨는데

중국 사방에 초청을 받았고,

중국의 그 처소 교회들, 중국의 그 많은 중국 교회들의 영적인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어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장례식이 있었는데,

마치 넬슨 만델라 대통령처럼 된 것이지요. 중국의 영적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 이분이 한 역할이 그것이라는 겁니다.

(이 설교 서두에 나온바) ‘벙커C유를 태우는 심지 역할’을 한 것입니다.

 

자기는 예루살렘으로 가라는 그러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갔는데

예루살렘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중간에 감옥살이만 31년을 했어요.

 

그런데 그가 나중에 석방이 되어서

20년간 한 사역은

자기 혼자 했던 사역의 몇 백배를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왜요? 자기가 심지가 되어서 벙커C유 같은

전 중국을 불붙이는, 점화시키는 그러한 산 증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자기혼자 가서 혼자 전도하고, 자기가 선교하고 이렇게 하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감옥에 넣으시고 31년 후에,

1981년경에 그가 출소했을 적에

 

온 중국 교회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가 전국을 다니면서 설교를 통해서

‘예루살렘까지 복음화의 그 사명’을 전파했을 적에

자기 한 사람의 비전이, 전 중국 교회로 삽시간에 점화되어서

‘전 중국 교회가 예루살렘까지 가자는 선교의 열정’이

마치 벙커C유처럼 활활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심지의 역할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몬 조, 자기 개인적으로 보았을 적에는 완전히 개고생이요,

한 알의 밀알 이었습니다만,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그 고난에 상응하는 열매를 하나님께서 맺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오늘 가는 길에 고난이 동반될 때.. 너무 낙심하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공평한 열매는 우리 눈에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이라고 했어요.

열매는 죽고 나면 태어나는 것입니다.

아니면 죽을 고생을 한 다음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난 비례의 법칙> 고난이 없는 곳에는 열매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큰 고생을 하지 않고도 (그런 분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만약에 있다고 칩시다.)

큰 고생하지 않았는데도 뭔가 사역이 그럴듯하게 된다면,

그러나 거기에 실제적인 열매는 없다는 것이지요.

 

가시적으로 무언가 되는 것 같지만, 실제적인 열매는 없는 것이에요.

왜요? 열매는 반드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은 다음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는 말

우린 세 가지 예를 살펴보았습니다.

-자이레의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플러드의 예를 통해서

그 고난을 통해서 반드시 비례적으로 열매가 생긴다는 것,

 

-필리핀 선교사였던 마틴 번햄, 그레시아 번햄 부부의 예를 통해서

고난에는 거기에 비례해서 영광이 따른다는 것을 살펴보았고

 

-세 번째로 중국 시몬 조의 예를 통해서

선교의 비전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생각하신, 하나님이 인도하신 그 길은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시몬 조를 심지와 같이 사용하셔서..

중국 전체 교회의 벙커C유에 불을 지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십자가의 고난의 길로 인도하실 적에

이 세 경우 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예는..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인도를 이렇게 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길을, 모르지만 묵묵히 따라갔을 적에

이들에게 놀라운 열매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내 주위에서 어떠한 열매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열매가 생기지 않더라도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갈 적에

묵묵히 바보처럼 갈 적에

 

거기에는 정말 시몬 조와 같은, 또는 마틴, 그레시아 번햄 부부와 같은

그러한 놀라운 열매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우리가 꼭 명심하고

이 길을 인내하며 가시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