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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왕의 꿈의 역리 ✝23

LNCK 2014. 2. 3. 13:25

https://www.youtube.com/watch?v=ddjNWGD8Dlk&t=303s 

 

◈바로 왕의 꿈의 역리             창41:1~7               십자가 시리즈 23회

‘바로 왕의 꿈의 역리’란, 애굽 바로 왕의 꿈이
<십자가 원리>를 간접적으로 예표하고 있다.. 이런 주제가 되겠습니다.

창세기 41장에 보면 바로왕의 꿈이 나옵니다. 바로 왕이 두 가지 꿈을 꾸는데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어떤 꿈인가 하면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흉악한 파리한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서는
아름답고 살찐 일곱 소를 잡아먹어 버립니다.

원래 살찐 소가 더 힘이 세잖아요.
그런데 파리한 소가, 살찐 소를 잡아먹어 버립니다.

이것은 순리가 아니고 역리이지요.
이 내용이, 십자가의 도를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인데요.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잡아 먹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성도의 삶의 패턴이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그랬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튼튼하게 살이 찐 백성들이
파리한 세상 소들에게 잡아 먹혀 버립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이제 나중에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 바로 왕이 깜짝 놀라서 꿈을 깹니다.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 하고서는 다시 잠을 청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바짝 마르고 동풍에 말라비틀어진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앞서 나온 무성하고 충실한 이삭을 삼켜버립니다.

바로가 또 놀라서 그만 잠이 깨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가 그 꿈의 해석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예전에 감옥에 있다가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장이
자기가 꿈을 잘 해몽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고 해서
이제 요셉이 불려와서,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주게 됩니다.

그래서 7년 풍년 기간 동안에, 장차 닥칠 7년 흉년을 대비해야 한다고 알려줍니다.
이때 바로 왕은, 요셉의 총명을 보고서는 애굽의 총리로 임명해서,
장차 닥칠 기근으로부터 애굽 나라를 지켜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기근에서 해결해주는 것’이, 그 꿈의 주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영적 상태를 말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속사 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맞는 말입니다.
살찐 암소가 갈밭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갈밭은 갈대밭인데,
당시에 성경을 필사하는데 파피루스라는 종이에다가 쓰는데
그건 갈대를 뜯어서 만든 종이지요.

그러니 일곱 암소가 갈밭에서 풀을 뜯는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볼 적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풍성히 먹고 있다’는 그런 말이 되겠습니다.

▶계11장에도 보면, 두 증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팡이 같은 갈대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갈대’도, 영적으로 말씀을 상징합니다. 파피루스.

그러니까 갈밭에서 풀을 뜯는 일곱 암소는 언약 백성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데
그 하나님의 백성들이 결국은 세상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그것이
운명적으로 정해져있다.. 이런 뜻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십자가를 지는 삶을 반드시 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잡아먹히고, 그렇게 패하고, 그렇게 손해보고,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 이후에 악인에게는 심판이요.
그 잡아먹힌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활하게 된다.. 그런 뜻이지요.

▶그런데 언약 백성들이 죽임을 당해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합니까?
말씀을 먹지 못한 육적 신자들에게 죽임을 당해요.

육적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교회를 다니면서도 육신적인 그런 신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육신적인 신자들이, 영적인 신자들을 잡아먹습니다.

그래서 이 바짝 마른 육신적 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하여 패역하고 흉악해요.
그리고 광포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자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 실제로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은 많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심 자체가 없으니까요.

누가 교회를 핍박하고 참 알곡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가 하면
꼭 교인들이 그럽니다.
그러니까 교회 내 ‘육적인 신자’들이 그런다는 것이지요. ‘파리한 암소들’ 말입니다.

▶자 구약 내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언약을 받은 백성들, 또는 남은 자들이
언약을 받지 못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였어요.

요셉을 보세요. 요셉은 언약으로 난 자에요.
그런데 형들에게 버려짐을 당하잖아요.

이러한 흐름이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도, 그대로 이스라엘에 나타났어요.
요셉은 예수님의 모형적인 인물입니다.

구약 역사 대대로 보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의 이렇게 약했어요.
뭐 강했던 시기(다윗 왕 때)도 잠시 있었지만,
그러나 대부분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언약의 백성들을 약하게 만드십니다.

모세도 보면 ‘내가 너희를 택한 것이 수효가 많아서,
너희 숫자가 많아서 택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작은 민족이다.’ 그랬어요. 신7:7

역사적으로 보면, 항상 이스라엘 남쪽에 애굽이 있었지요.
북쪽에 아람이 있었고, 아람 이후에 앗수르가 있었고, 그 이후에 바벨론 등
강대국이 항상 있었습니다. 늘 아래 위로 압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주변에는 뭐 모압, 에돈, 암몬, 또 블레셋,
이런 나라들은 작은 나라였습니다만, 남과 북의 큰 나라들이 있어서
크고 작은 나라들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계속 공격을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어서,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는 그러한 패턴이

즉 본문의 <일곱 이삭, 또 일곱 소와 비슷한 패턴>이 구약 내내 일어났고
또 예수님의 십자가 당시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라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함 받은 백성의 역사/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은
그 바로왕의 꿈처럼
정말 하나님의 참 언약의 백성들이

이 세상 사람들, 또는 육적인 신자들에게 잡아먹히고 핍박을 당하게 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정하신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성도들은, 너무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잘 가고 있다는 것이에요.

진리에 속한 자들이,
비 진리에 속한 자들로부터 핍박과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하나님의 선한 백성들이,
믿지 않는 악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곳이, 바로 세상인 것입니다.

의인이 악인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바로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그러잖아요.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 그 공의로우신 분이
의인이 죄인들로부터, 악인들로부터 핍박을 받고 죽임당하는 것을
내버려두실 수 있느냐. 방치하실 수 있느냐..

그러면 하나님이 ‘불의하신 하나님’이 되시지요.
하나님의 속성이 공의인데, 하나님 보좌의 바탕이 ‘공의’라고 그랬잖아요.

‘시편97:2,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구약에 그런 구절이 얼마나 많이 나옵니까. 시89:14 등

그 공의의 하나님이
의인이 악인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는 것을 내버려 두신다니까요.
공의롭지 못하시게, 불의하시게..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요.
왜요?

십자가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기 위해서,
악인들을 처벌하고, 악인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이 악인들에게 고통과 핍박을,
또는 죽음을 당하는 것을.. 잠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41장 본문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 성도들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세상 사람들에게, 핍박과 조롱과 멸시와 천대와 버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잡히셨는데
그 모든 과정이 “밤에” 일어났습니다.

보통 재판은 낮에 하지, 밤에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잡히실 때부터 “밤에” 잡히시고,
모든 심문 과정이 “밤에” 일어났고
빌라도의 법정에서 그 사형언도도 “새벽에” 이루어졌습니다.

새벽에 사람들이 다 자는 시간인데, 그럴 때에는 재판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아침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 사형 언도는 적어도 새벽 5~6시 경, 새벽에 내려졌어요.
잠자는 빌라도를 깨워서, 유대인들이 난리를 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한 밤중에 잡아서 재판을 합니까.
뭐가 그리 급해서인지 증인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가요.

이 예수를 빨리 처단을 해야, 자기들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면, 자기들에게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시라도 빨리, 예수님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이렇게 밤에 모든 재판 과정을 막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어쨌든 “밤”이라는 시간은 영적인 의미가 있고
상징적인 의미가 거기에 들어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만큼 세상이 어두워지고
‘이제는 너희의 때’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지만
악인들이 득세하여 의인을 잡아 죽이는 때,
그 어둠의 때, 밤의 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잠시 허락해주시는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또 육적인 신자들은,
자기가 죄인인 줄을 모르니까

항상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또는 의인들을
이렇게 심판하고 잡아서 해를 끼치고자, 죽이고자 하는 일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제 그 피해를 당하는 어떤 의인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그러한 길이 되는 것이지요.
<십자가를 지게 되는 길을, 억지로라도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후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십자가를 진, 핍박을 당한 의인들은.. 영광중에 부활하게 되고

하나님의 의인들을 핍박한 세상 사람들은.. 영원히 영벌의 심판을,
마귀와 함께 그 심판을 받게 되고요.

뭐 그 중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은
바울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오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들이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패턴을 우리가 알고, 깨닫고 갈 적에,
우리가, 몰라서 어렵게 가기 쉬운 이 길을, 알면 쉽게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은, 뱀이 뒤에서 사주하고, 사탄이 뒤에서 조정한 일입니다.
뱀은 예수님을 죽이면, 다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 힘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 힘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죽이도록 뒤에서 사주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지혜요, 뱀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지혜가 바로 어둠의 지혜이지요.

이 어둠의 지혜를, 예수님께서 부끄럽게 하시고 이기시는 길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정하신 모든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죽게 하시도록 내버려두셨는데

뱀은 그것을 꿈에도 모르고, 그것이 오히려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결국은 자기 무덤을 파는 길인 것이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참 이게, 오늘 우리 삶에 있어서도 큰 도전이요 딜레마인 것입니다.
바로 성도가 필연적으로 가게 되는, ‘십자가의 길’이지요.

세상 사람들, 또는 육적인 신자들은
하나님 백성들을 계속 이기려 합니다.

힘으로 이기려 하고, 모략으로 이기려 하고,
어떠한 궤계를 써서라도 이기려고
온갖 불법과 권모술수를 다 동원해서 기필코 이기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지혜는 뭔가 하면, 그것을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너는 져라, 저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라.’

그렇게 해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또는 육신적 신자들에게, 밥이 되어주는 것!

이 파리하고 쇠약한 그러한 소들에게, 살찐 소가 밥이 되어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구속사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
▶십자가의 반전
그런데 보십시오, 야곱 가문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7년 풍년 때가 아니라, 7년 흉년 때에 일어났습니다.

그 흉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흉년 때 애굽에서 요셉을 만나게 되고
흉년 때 야곱의 가문이 애굽으로 이사를 오게 되지요.

70명이 이사를 와서, 고센 땅에 살면서
거기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7년 풍년 때 일어난 것이 아니고, 7년 흉년 때 일어났다니까요.

마귀는 흉년을 통해서 주의 백성들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남은 자’들을 공격 하지만, 그래서 세상을 괴롭게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흉년을 통해서
그 마귀의 역사를 통해서도, 합력하여 다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야곱의 가정이 애굽으로 내려올 적에,
먹을 것이 없어서 벌써 내려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겠습니까.
적어도 1, 2년은 버티고 버티다가.. 내려왔을 것이에요.

그러나 그러한 흉년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들이
그 ‘흉년의 날’을 살아갈 적에, 지나가고 통과할 적에

쇠약한 그 마른 소들에게 잡아먹히는 듯한 그러한 역사가 일어날 적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적에, 핍박을 당하고 괴로움과 어려움을 당할 때에,

악인들은 온갖 권모술수와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자행하지만,
의인들이 그 어려운 일을 묵묵히 당하고 통과할 적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 십자가의 역사는, 거기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냥 자기 백성들에게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통과 하도록
묵묵히 내버려 두신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일어나는 일을 한 마디로 간단하게 설명 하자면
‘성도들의 부활의 영광’과 ‘악인들에 대한 심판’인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과한 그 의인들은, 부활의 영광으로,
뭐 천국에서 부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그러한 부활의 영광을 주실 것이에요.

그것이 이제 고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수백만으로 늘어난 것이.. 그때 당시의 부활의 영광이었지요.

그리고 의인을 핍박한 악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마귀를 심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에요?
예수님을 잡아 죽였기 때문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악인들을 심판하는 근거가 무엇이에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의인들을 괴롭혔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으로서의, 그 심판이 거기서 드러나는 것이지요.

▶마치는 말.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어떠한 일의 패턴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패턴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면
창세기 41장 ‘바로 왕이 꾼 꿈’이 그 패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그 패턴의 길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즉 십자가의 길입니다.

알아도 가고, 몰라도 이 길을 가게 되어있지만,
조금 그래도 뭔가 과정을 알면, 어차피 가게 되는 이 길을, 쉽게 갈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