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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네 팔을 벌리라 ✝24

LNCK 2014. 2. 3. 13:26

https://www.youtube.com/watch?v=dCeUvTmKJw4 

 

◈네 팔을 벌리라                      요21:18~19, 히11:19                  십자가 시리즈 24회

  

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가르키심 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베드로에게 주신 말씀인데요.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걸어가야 될, 그 십자가의 길은 어떤 길인가 하면

<자기 팔을 벌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주제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자기 팔을 벌린다는 건 뭐에요? 항복!

나는 내 힘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이 너에게 띠 띠우고,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모든 주권, 의사결정, 자기 뜻.. 이런 것이 자기에게 없다는 거죠.

완전히 십자가에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 ‘팔 벌린 사람’으로서 사역하는 것이, 올바른 사도의 길이요.

올바른 하나님의 종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1. 팔 벌리는 삶은.. 세상 파워를 가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본능은, 자꾸 뭐 사회에서나 또는 교회에서나

정반대로 파워를, 자기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내가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내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또 특히 한국에서 군대 갔다 온 남자들은 ‘명령, 지시 하달’ 하면

동역자들이 즉각 ‘복창’하고, 그것을 시행하지 않으면

화가 마음속에서 막 일어나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상명하복 식의 군대 문화 때문이죠.

 

그게 쉽게 말하면 굉장히 교만한 마귀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자기 두 팔을 다 벌리고,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내 자아는 없습니다. 내 뜻도 없습니다. 내 의지도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그냥 끌려가는 것.. 그것이 올바른 하나님의 종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파워풀한 리더가 되어야 하겠다'..

이러한 것은 마귀의 유혹이지요.

성경이 가르치는 리더십은,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라, 반대로 섬기는 종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없어요.

‘남이 너에게 띠 띠우고,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다시 말하면 ‘(수동적으로)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무엇으로 주로 영향력을 행사 합니까?

돈으로 제일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죠.

돈에는 파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군사정권 때, 조금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 이렇게 통치자금 내지는 떡값 이런 것을 금고에 쌓아놓고

누가 찾아오면 세배 한번 받고,

 

떡값인가.. 세뱃돈을 주고..

그럼 그 사람들이 그거 받고, 또 그 분을 위해서 충성하고..

이렇게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시대적 문화라고 그럴까요?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통솔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들이, 오늘날에도 이렇게 교회에서도 있을 수가 있는데

좋은 문화전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아랫사람들을 거느리고, 자기 아랫사람들을 리더해 나가는데

항상 <돈의 힘으로> 하는 것이에요.

 

만약 그렇게 해서 돈의 파워에 의해서, 어떤 단체를 이끌고 나가려고 할 적에

그것은 기독교 사역은 아닌 것입니다. 거기는 성령이 떠나신 곳입니다.

 

▶기독교 사역은 ‘내 팔을 벌리는’ 것이에요.

사실 자기가 쥘 수 있는 돈의 권세까지 다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돈으로 사역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사역을 안 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돈으로 사역하려고 할 적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실망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지 않게 돼요.

왜요? 그는 돈을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철저하게 돈이 아닌, 기도의 힘으로, 인격의 힘으로,

사명의 힘으로..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리더가 정말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가운데 롤 모델이 필요한데

‘돈 없이 사역하는 사람’의 롤 모델입니다.

그런 분이 나와서, 모든 사람들에게 본을 좀 보여주었으면 좋겠어요.

돈 없이도, 복음만 갖고도, 얼마든지 사역할 수 있다고요!

 

▶가정에서도 늙을수록, 노인들은 뭐 돈이 없으면 처량하다 그러지요.

그리고 돈 없는 늙은 부모 말을, 자녀들이 손자들이 며느리가 듣지 않는다고 그럽니다.

 

그 말은,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성도들이 해야 될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럼 돈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멸시천대만 받는다는 말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그래서 ‘내 팔을 벌리는’ 노인도, 얼마든지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돈 없는 노인이, 존경받을 수 있느냐 하면

 

자녀/ 손자들을 위해서, 계속적으로 기도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들을 위해서 늘 영적으로 염려하며,

그들에게 올바른 길과 방향을 제시해주시고,

귀한 영적인 멘토, 영적 지도자가 되어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

이런 분들이 자녀/손자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이지요.

 

살아서도 존경 받고, 죽어서도 계속 존경받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꿈이 ‘우리 부모님처럼 살겠다. 우리 할아버지처럼 되겠다’가

그들의 꿈이 됩니다.

 

물론 자기에게 여유가 있어서,

손자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면 ..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형편이 못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돈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친척들 가운데도 보세요.

가난한 고모, 이모이지만.. 그 집안의 ‘영적인 지도자’인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기도로써, 자기 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고.. 그래서 존경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지도자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다 보면.. 돈 안주면, 사람들이 뒤돌아서는 것이죠.

그 사람에게서 돈 받는 것이 끝나면, 완전히 이제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특히 이러한 일이 국내에서도 일어나지만, 해외에서는 더 많이 일어납니다.

선교사역 하는 중에, 제3세계 빈곤한 국가에서, 한국 신자들이 보여줄 만한 것이

돈의 힘밖에 없다.. 그건 굉장히 좀 서글픈 현실입니다.

 

건물 지어서 힘을 과시하는 것 밖에는,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으면..

차라리 돈이 없는 것이 ‘주님의 은총’입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돈의 힘으로 뭘 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그냥 빈손/빈 지갑으로 하는 것입니다. '전대'를 가지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예산이 적으면, 대개의 경우

그 적은 예산 안에서 일을 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괜히 돈의 힘으로 집을 짓는 것은,

결국은 허물어져 버릴, 모래 위에 짓는 집이 되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가운데, 자기 팔을 벌리고

빈손으로 가난하게 뭘 잘해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사역이 일어나고.. 그 지역주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그러한 예가 참 드물어요.

 

간혹 있기는 있습니다. 저는 딱 한 번인가 기사를 읽었는데

어떤 자매가,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에 가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많이 있을 겁니다.

 

돈으로 사역을 한 게 아니라, 그 현지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그 사람들과 동병상련 같이 아파해주고, 같이 슬퍼해주고,

돈으로 군림하는 보스가 아니라, 정말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또한 그들과 같이 가난하게 사는..

 

그런 가운데서 그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 인격으로 나타내고

이게 사역의 본질인데.. 이게 이론은 쉬운데, 실제 실천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하는 방식이.. 돈으로 그냥 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네 팔을 벌리라”

나는 돈이 없습니다. 나는 돈을 가지지 않습니다.

나는 돈이 없어도..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습니다.. 라는

그러한 롤 모델을, 오늘 우리가 찾는 일이 굉장히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백해무익한 것이다 돈을 멀리 해야 한다.’ 그런 뜻이 아니고요

‘돈을 앞세우면 안 된다’는 것이죠.

 

복음을 앞세우고,

문제에 부딪히면, 기도를 앞세우고,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형상을 보여주어서 사역을 해야죠.

 

무슨 사업가처럼, 돈 가지고 가서 무조건 건물 짓고,

돈 가지고 거기서 사람들 고용해서 하는 것은..

적어도 “팔 벌리는 삶”은 아니고, 반대로 “팔을 휘두르는 삶”이 되는 거죠.

 

어쨌거나 완벽한 사람이 없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한 점이 있어도, 은혜로 이끌어 가십니다만

우리 스스로가

‘내가 돈으로 뭘 해야 되겠다. 돈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라는

그러한 마귀적인 생각, 맘몬이 주는 생각에서, 우리가 자유로워져야 하겠습니다.

 

모세가 정말 지팡이 하나만 가지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두 팔을 벌리고)

2백만 백성을 출애굽을 시켰던, 그러한 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팔을 벌린다’는 것이 <돈을 가지지 않는다> 그런 뜻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뜻이 많이 내포되어 있지만,

이 시간에는, 돈 문제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돈을 휘두르며 돈의 힘으로 (물질의 파워로)

사역을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력을 휘두르려 합니다. 자기 직위에서 나오는 힘!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런 권력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권력자들이 아니니까, 무엇으로 권력과 파워를 가지는지 보니까,

돈으로 권력과 파워를 삼아서,

지도자들이 돈의 힘을 휘두르는 유혹에 늘 빠지는 것입니다.

 

이건 ‘네 팔을 벌리라’는 본문의 말씀과 180도 정반대의 방향이고요,

예수님이 가르치신, 지도자의 길/십자가의 길이라고 볼 수 없는 겁니다.

 

▶우리는 어떤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까?

앞서 ‘집에서 존경 받는 노인’의 예를 들었지만,

 

내게 돈이 없어도, 사람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고,

나를 보고 싶어 하고, 나랑 대화하고 싶어 하고,

나를 만나고 싶어 하고.. 그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닙니다.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사람들은 반드시 그러한 영적인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자 그러므로 첫 번째로 ‘팔 벌리는 삶’은.. 세상 힘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라는 내용을 살펴보았고요.

 

두 번째로, 팔 벌리는 사람은

‘자기 의지가 없고, 자기 자아가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혀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어디든지 가겠다..’ 는 사람입니다.

 

 

◑2. 팔 벌리는 삶은.. 버렸다가 다시 되찾는 사람

 

웬만큼 신앙이 성숙해도, 자녀만큼은 버릴 수 없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팔 벌리는 삶을 보십시오.

 

백세에 낳은 아들을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께 드렸는데요.

그렇게 드렸을 적에 이렇게 히11:19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드렸더니,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물질을 내려놓고, 권세를 내려놓지만,

자녀를 내려놓지 못하는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자녀는 내 자녀니까, 내가 끼고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성경적은 아니지요

 

두 팔을 벌리는 사람은, 자녀까지도 다 이렇게 내 버리는 것입니다.

팔을 벌리면, 아무 것도 쥘 수 없잖아요!

 

실제로 아브라함이 백세 때 얻은 자기 독생자, 자기 독자 외아들을 내어버렸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돌려주셨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되돌려 받았다’고 했습니다. ↑

 

그렇게 해서 다시 돌려받는 것은 괜찮아요.

자기가 완전히 자유한 가운데서,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마땅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녀가 우상이 되어서, 늘 그냥 24시간 자기 초점/ 신경/ 시선/ 모든 감각기관이

자녀에게 향해있는 사람은.. 그것은 우상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그런 우상들은, 하나님께서 오히려 떼어 놓아버려요.

 

자녀 끼고 있다가, 사명 감당에 차질이 생기고, 심지어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 같으니까

오히려 하나님은 그 ‘우상’을, 더 빨리 내게서 빼앗아 가 버리시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내 소유,

내가 움켜지고 싶어하고,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모든 것들마저도

내 팔을 벌리고,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드릴 수 있는 그러한 삶!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인데, 그렇게 해서 다 내어버리고 어떻게 사느냐?

하나님이 다시 되돌려 주신다니까요!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십자가에서 내 정과 욕심을 못 박은 후에,

다시 되돌려 받는 것입니다.

 

물질도 다시 주실 것이고, 자녀도 새롭게 주실 것이고,

부활된 물질입니다. 부활한 자녀입니다.

 

과거에는 물질이 몇 천 만원이 들어오면

자기가 흥청망청 다 썼지만

이제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과한 사람은

 

물질이 일백 만원 들어올 때 쓰는 생활수준하고

물질이 일천 만원 들어올 때 쓰는 생활수준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요? 그 물질 자체에 관해서 별로 큰 관심이 없으니까요. 자기가 죽었으니까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하고, 거기에 자기 초점이 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고

자기 의지대로 하려고 하고, 자기 생각대로 관철시키려고 하는 사람들은,

내 팔을 벌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면서

자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은 꼭 가져야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꼭 성취해야 되고,

 

자기가 그렇게 하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자기 자녀에게까지, 자기 동역자에게까지 그것을 강요해가지고

‘너는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돼.’

 

이런 식으로 해서, 부모로서/지도자로서 존경심을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지도자는 그냥 자기 두 팔을 벌리고..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되기를 원합니다.’

 

혹시 아랫사람들이 안 따라줘도

‘그것도 하나님의 뜻일 줄 모른다’ 하고.. 그때는 천천히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감동해서, 그를 돌이켜 주시기까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게 무리해서, 카리스마로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어쩌면 훨씬 더 빠르고, 평안한 길입니다.

 

▶여러분, 마4장에, 마귀가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한 것을 보면

마귀는 ‘세상이 요구하는 리더십의 모습을 가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세상적 파워를 가진, 파워풀한 지도자가 되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마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보면

‘십자가의 길을 가는 지도자’요, ‘팔을 벌리는 지도자’의 모습이셨습니다.

 

두 모습이, 극명하게 잘 대비됩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이 돌을 변하여 떡을 만들어먹어라’ 이렇게 유혹했습니다.

정말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능한 지도자가 되라’는 것이지요.

그런 ‘물질적인 힘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유혹은

    ‘인기를 받는, 남들이 추앙하고 우러름을 당하는 그런 유명한 사람이 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절로 되는 것은 괜찮아요.

    그러나 그걸 추구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은 아닌 것입니다.

 

세 번째, ‘나에게 절하면 내가 이 세상 천하만국의 영광을 너에게 다 줄 것이다.’

우리는 뭐 아파트 한 동만 줘도 다 좋을 것 같은데...

 

어쨌거나 예수님은 그러한 세상적인 물질의 힘/ 인기의 힘/ 권세의 힘

이런 것을 다 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준다고 해도 거절하셨어요.

 

왜요? 그게 십자가의 길이 아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본문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네 팔을 벌리라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우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네 자아가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고

또 자아만 못 박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돈의 힘으로, 권세의 힘으로 일을 하려고 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라.. 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자기 자녀들 자기가 핸들하고 싶어 하고

그 외 자기가 취하고 싶어하고, 자기가 손으로 놓지 못하는 모든 것들을

다 내어버리라.. 이것이 팔 벌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더 움켜쥐는 삶이 아닙니다.

 

그런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삶’ 가운데서

예수그리스도의 형상과 인격이 나타나고, 부활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오늘 날에, 이런 사역자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봅니다. '돈 없이 사역하는 사람' 말입니다. 

다 주의 종이고, 다 십자가의 길을 간다고 말을 하는데,

다 인간적인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어서

‘돈 없이 어떻게 하나?’ 말합니다.

신앙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사역이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옛날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집안에 사업하는 사람 한 사람 있으면, 온 집안 식구가 고통 당한다’고요.

왜냐하면 사업하는 삼촌이, 아버지/이모/고모/형제 할 것 없이 다 돈 빌리고

손을 내밀고.. 그렇게 해가지고

‘사업하는 사람 한 사람 있으면, 온 집안 식구들이 고통당한다’고 그랬는데

 

요즘(2000년경) 에는 ‘집안에 목회자 한 명 있으면, 온 집안 식구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 같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일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목회자가 '돈 없으면 목회를 못한다'는 생각에

온 사방에 손을 내미는 것이죠. 자기 가족들에게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왜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나를 도와주지 않는 너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다.

너는 사탄의 자녀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런 식의 어떠한 <자기중심적, 세상적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잘못 된 거죠.

 

‘돈이 백해무익한 것이다. 돈이 필요 없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돈이 자연적으로 생기면, 그것을 받아서 좋은 일에 많이 쓰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의 힘으로, 어떠한 사역을 일으키고 건축하는 것은

모래 위에 짓는 집이요,

그런 과정에서 그 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술수와 술책이 동원되는 이러한 것들이.. 다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돈의 힘으로 사역을 한 것이 아니고

사도바울도, 베드로도 마찬가지고

자기 두 팔을 벌리고, 빈손으로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가운데서 사역을 했는데

 

오늘 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가운데서 사역을 잘 하는 사람을

참 찾아보기 힘든 그러한 시대가 된 것이

오늘 기독교가 세속화된 큰 원인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사역의 본질은 '돈 없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격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저와 여러분이 ‘네 팔을 벌리리라’ 이러한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가 뭘 가지고 싶을 때도.. 내 팔을 벌려버리고.. 놔버리는 것이죠.

 

    구약시대에 보더라도 대부분 그 하나님은 크게 물질 안 주셔요.

    왜 안주시는가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겁니다.

 

    신약시대도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내일은 또 새롭게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라는 것이에요.

 

    물질만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권세도 안 주세요.

    왜 권세를 안 주세요?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겁니다.

 

그레서 하나님은, 우리를 확 낮춰가지고

오직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

그게 은총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난하면.. ‘하나님을 더 의지하라는 거구나’

권세가 없으면.. ‘아, 내가 하나님을 더 의지해야 되겠구나.’

그러면서 그 사람이 진짜 강한사람이 되는 거죠.

모세와 같이 지팡이 하나만 갖고도, 천하를 휘두르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뭐 얼마 되지 않은 물질의 파워로 휘두르고,

얼마 되지 않는 권세로,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결집해서, 힘을 휘둘러서 하는 것은

뭐 세상 힘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주님주시는 ‘성령의 권세와 능력’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체질화가 되어서

내 몸에서 우러나오는.. 그러한 설교자, 영적 지도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제 당신이 왜 가난한지 아셨죠?

하나님이 당신을 왜 가난하고, 비천하게 만드셨는지.. 아셨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십시다.

 

오늘날 주님이 간절히 찾아보기 원하시는 종은,

많은 물질의 힘을 휘둘러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모세처럼, 사도바울처럼,

아무 물질이 없어도.. 주님의 사명을 놀랍게 감당하는 사람이고,

또한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롤 모델이 간절히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너무 찾아보기 힘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