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경륜1 엡3:8~9, 계21:6 10/11/22 유도순 목사님 설교 녹취, 출처보기 (1~38분)
엡3:8~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비밀의 경륜 과 은혜의 경륜
▶바울은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크게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첫 번째는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 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 마음에 복음의 씨앗이 떨어진 것을, 만일 역으로 추적해 올라간다면,
그 근원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 전해져서, 지금 우리까지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임기응변으로, 즉흥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태초부터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라고 합니다.
‘경륜’이란, 가장 쉽고 짧게 말하자면 ‘경영’입니다.
하나님이, 컴퓨터보다 훨씬 잘 짜여진 어떤 완전한 계획에 의해서,
인간의 구원역사를 태초 이전부터 시작하셨고, 이루어가고 계시고, 마칠 것이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까지의 하나님의 구원 계획(경륜)은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드러내고, 밝히고, 전파하는 것이
바울,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그런 사도바울과 같은 사명감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려는 사명감.. 말입니다.
저는 이번 집회를 통해서,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가>
그것을 드러내는데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이 설교는 지도자를 위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 들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은혜의 경륜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라고 말씀 하는데요. 3:9
그 위에 엡3:2절에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하면서 은혜의 경륜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은혜의 경륜’과 ‘비밀의 경륜’은 조금 다릅니다.
‘비밀의 경륜’은 ‘하나님의 전체적인 구원계획’ 입니다.
'은혜의 경륜’은.. 개인적인 구원의 경륜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여기계신 여러분 한분, 한분에 향한 은혜의 경륜도 주십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을 받아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 받고, 또 이렇게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는데 쓰임 받고,
신약성경 절반 정도를 기록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 이건 참 경이로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울에게 주신 은혜의 경륜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우연히 바울이 뽑혀져서, 쓰임 받은 것이 아니라,
창세전에, 어머니 복중에서 벌써.. 어떤 경륜(치밀한 계획, 섭리적 경영)에 의해서,
바울이 그렇게 놀랍게 쓰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한분, 한분에게도 ‘은혜의 경륜’이 있다는 거죠. 참 놀라운 일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그냥 내가 자원해서 된 것도 아니고, 되고 싶어 된 것도 아니고,
은혜의 경륜가운데 되어 진 것입니다.
▶‘비밀의 경륜, 은혜의 경륜’에 의하지 않는 사역은.. 모래 위에 짓는 집입니다.
갈라디아서에 보면 ‘사람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구분해서 말씀합니다.
갈1: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갈5:16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목회는 말이죠 ‘사람의 일’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일/노력/경영으로도 할 수 있는데.. 그런데 거기에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분명하게 바울은 ‘성령의 열매’와 구분을 지어서 말씀합니다. 갈5:22
그러니까 ‘사람의 일’에 의한 그 목회는, 그 성취는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여금, 성령으로 봉사하여 맺어진 그 열매만이,
하나님 앞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 저녁에 우리가 집회로 모인 것도
제가 임의로 여러분께 오고, 또 뭐 자기 잘난 멋에 이렇게 와서 한다면,
이거는 하나의 부질없는 ‘인간의 일’, 노고에 불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우리들의 만남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의 성령 가운데서,
성령님이 인도 하시고, 동역하시는 가운데 집회를 한다면
이 저녁에 분명히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열매가
분명히 이번 사경회 가운데, 그 열매가 맺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계시록의 완성
▶계시록21:1~7절을 찾겠습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 말씀의 핵심은 “이루었도다”입니다. :6
그러니까 ‘무언가 완성을 했다. 성취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누가” 이루었느냐 하면,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서두에 엡3장에서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 구원의 경륜이.. 계시록에 이르러, 역사의 마지막에 완성되어졌다는 뜻이지요.
(이건 미래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너무 확실한 사실일 때는, 시제를 과거완료로 씁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성경 전체에 “이루었다”는 말씀이 3번이 나옵니다.
1. ‘천지 만물을 다 이룸이라’ 창2:1
그렇게 다 이루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안식하시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에서 이루었다 하는 것은 ‘첫 창조가 이루었다’ 입니다.
2.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선언 하십니다. 요19:30
이것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다 이루어진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3. 또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이루었도다.’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계21:6
계시록에 가서 이루었다는 것은 ‘비밀의 경륜이 이루었다'입니다. *'재창조가 이루었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크게 3번 나오는 “이루었도다”는
각각 하나의 큰 분기점이 되는 “이루었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1:1절에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라는 첫창조에 관한 말씀과
계21: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재창조가, 이렇게 병행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그 땅에서 살게 될 신부들’입니다.
왜 ‘새 하늘과 새 땅’이 필요한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그러면 계21:6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었도다’ 라고 선언하신 것이
무엇을 이루셨다는 것인가요? 그 이루신 내용이 무엇인가요?
계시록21:3절에 ‘함께’ 라는 단어가 3번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하나님의 장막, 즉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사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과 영원토록 함께 계신다는
즉 <함께 사신다는 이것을 이루었도다>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은, 이렇게 함께 사시는 환경을 조성한 거란 말입니다.
첫 창조 때도 엿새 동안 다 이루신 다음에
맨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신 것은
인간이 제일 하찮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조성해놓으신 후에, 인간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계21장에서 다시 병행되는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21:4절에, 눈물, 사망, 애통, 아픔이 없는 세대 .. 이것을 이루신 것이
<하나님과 성도들이 함께 사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말입니다.
바로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엡3장에서 말씀한 ‘비밀의 경륜의 완성’이지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산 때’가 잠시 있었습니다.
창세기 1, 2장에 짧은 순간뿐이었습니다. 타락하기 전입니다.
그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사망과 저주가 오고
그래서 그들이 에덴에서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이것이 깨어지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함께 산 것은 창세기 1, 2장에 아주 짧은 것이었고
창세기 3장부터~ 계시록 끝장 까지는 재창조를 이루시는 역사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그 내용으로 줄거리와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요?
◑하나님은 타락한 교회의 영광을, 다시 회복/완성시키기 원하십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원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원시복음 Primitive gospel’이라고도 함.
그런데 원복음의 구조는, ‘내가 하리라’는 구조입니다.
내가 다시 재창조 하리라. 내가 파괴당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신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적으로, 재창조(타락한 인간의 구속 역사)를 이루시는데요...
▲교회의 영광스러움.
하나님은 ‘재창조를 이루시는데/완성하시는데’
그것은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는 측면을, 위에서 살펴보았죠.)
저는 로마서를 통해서 복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를 통해서 교회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가하는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만났습니다.
모세의 성막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충만한지
‘모세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라고 출애굽기 40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집에 불이 났는데, 방안에서 어린아이가 잠을 자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소방사가 들어가서 구하려고 했는데, 이미 늦었다는 말이예요.
너무 연기가 꽉차버려서, 도저히 들어 갈수가 없었다는 걸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충만하면, 모세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했을 때, 똑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이 영광이, 솔로몬의 성전에 얼마나 충만하였으면
제사장들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에도 그렇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모세의 성막, 또한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의 ‘모형’이라는 말입니다.
계21장에서 ‘이루어질’ 구속사의 완성, 재창조의 완성에 대한 모형입니다.
요1:12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이 말씀은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뜻입니다.
계21장에서 이루어질 완성을.. 미리 예표로 보여주신 것이죠.
이렇게 임마누엘 God with us이.. 구속사의 완성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모세의 성막 → 솔로몬 성전 → 요1:12절 → 계21:6절의 완성으로
하나님은 구원 경륜(계획)을 가지시고, 착착 역사적으로 진행해 오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일을, 주권적으로/주체적으로 이루어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헐어라 그러면 네가 3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
이것은 주님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궁극적으로 원하시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의 성전을 새롭게 일으키셔서,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입니다. 계21:6
▲이런 관점을 깨달은 바울은,
고전3:16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는데 ‘다락방에 성령이 얼마나 충만한지
120명 제자들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락방에 모인 120명 각사람 머리위에 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입니다.
구약은, 장소에 임했다면..
신약은, 성도들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구약엔, 건물이 하나님의 성전이었으나
신약엔, 성도 각자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오순절 성령도, 각 사람의 머리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다락방이나, 헤롯 성전이 아니라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성전 휘장을 찢으시고,
‘우리의 마음이,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6:19절에서는 또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전3:16에서 ‘너희’라고 한 것은 ‘교회공동체’를 가리켜 말합니다.
고전6:19에서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어떤 교회가 정말 훌륭한 교회인가요?
예배당이 크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몸이 성전이 되고, 성령을 모신사람들이 연결해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 - 이것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라는 건
정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그런 가운데,
이것이 교회의 영광스러움이라는 것입니다.
계21:6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완성하기 원하시고,
나중에 결국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이루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루었도다’하면서, 미래에 되어질 일을, ‘이미 이루어진 과거 시제’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3대 명제
▲그런데, 그런 작정과는 달리, 현실은 왜 이리 부정적인가요?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십시오.
그런데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교회의 현실은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상과.. 너무 닮지 않았다는 겁니다.
무슨 소설 제목처럼 너무도 ‘일그러진 자화상’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목회자로서, 크리스천으로서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유도순아,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하나님의 이 재창조의 역사는
마치 네가 이루는 것인 양, 네가 온 세상의 짐은 혼자 다 맡은 것처럼,
네가 어떻게 근심하고 걱정하느냐?
이건 내가 하는 것이니라,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는 거다.’
▲창세기를 한번 다시 보십시오.
‘내가 한다’는 말씀이 굉장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5장, 17장 같은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세워주시는 장면들을 보시면,
“내가, 내가”, “내가 한다”는 표현이 여러 번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원복음이라고 말하는 창세기 3장 15절도
“내가 하리라” 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합니다. 계속 우리가 붙잡고 있어야 될 말씀인데요)
▲1.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두 부류로 갈라지게> 역사하십니다.
창3장에서 시작된 이 갈라짐은, 성경을 보면 계속 됩니다.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이 갈라지고요,
리브가의 태속에서부터 야곱과 에서가 갈라집니다.
‘두 국민, 두 민족이 네 (태)안에서부터 나누이리라’.. 바로 이것의 연속입니다.
'남은 자'와 '그 바깥의 자'들로 갈라집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이 지구상에 무슨 수백 개의 나라가 있고, 많은 민족이 있지만
영적 논리로 하면, ‘은혜의 왕국’과 ‘사망의 왕국’ 이 두나라가 있고
모든 사람은, 이 두 나라 중 어느 한편에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한 편에만 속해 있는 거예요. 두 나라에 동시에 속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아무데도 속하지 않았다.. 이런 중립지대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이것을 인정을 하던지 / 하지 않든지.. 자기가 알던지/ 모르던지
이제 우리는, 두 진영 중 어느 하나에 소속이 되어있습니다.
이점을 주님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둠의 나라’에 속해 있다가, ‘생명의 나라’로 옮겨졌다는 말입니다.
▲2. 이 두 나라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싸움이 있습니다.
그 적대감을 피할 길이 없어요.
(이것이 구속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허락하십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한쪽 나라가 망해야 되는 거죠.
어느 나라든 한쪽이 망해야 되니까.. 거기엔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전도하는 것도, 그 사망에 속해 있는 자들을, 생명으로 옮겨 오는
선한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행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요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이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싸움도, 바로 이 싸움을 싸운 것이고,
여러분들도 지금, 바로 이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3. 이 영적 전쟁은, 택한 자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본문 계시록 21:6에서 “이루었도다” 하는 것입니다.
그때가서 싸움은 종식 되고, 끝나게 되고, 다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서로 싸우게 되는 이것이
어느 편의 승리로 끝나게 되느냐.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창3:15절의 예언이, 계21:6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뱀은 여자의 후손의 발뒤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서라도 발악을 하는 거죠. 순순히 백기를 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발악을 하고, 발뒤꿈치를 물어뜯는 다는 거죠.
사탄의 후손들이 공격은 하지만.. 치명적이진 않고, 약간의 피해(발뒤꿈치)만을 입힙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 및 그 택한 자들은.. 사탄의 머리를 밟아 뭉갭니다.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고, 결국은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원복음은 세 마디로 되어 있습니다. (위 ▲1 ~ ▲3)
그런데 이것을 ‘내가 하리라’ 하나님이 이 일을 시작을 하셨다 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3장 15절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원복음’인 창3:15절을, 문맥을 보면,
‘뱀을 향해’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이 사탄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그러니까 사탄은, 자기가 여자의 후손에게서 멸망을 당하게 될 거라는 것을
창3:15절에서 이미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건 또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사탄이 선고를 받았으면, 어떻게 반응을 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여자의 후손이 탄생하지 못하도록’ 대적을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은, 그런 대적의 역사로 이루어 져있습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려면, 제가 지은 <구속사의 맥을 잡아라> 하는 책을 보세요.
그 책은 505문제와 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문제와 답을 공부하시면, 여러분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맥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제가 중국에 가서도, 그 책을 교재로 해서 일주일간 강의합니다.
중문(중국어)으로 번역도 되었고요, 한글 책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필요하시면 다운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나면, 성경을 보는 안목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여자의 후손이 오실 것이다’가 예언되어 있고,
신약은 ‘언약대로, 여자의 후손이 오셨다’가 증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을 보면,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신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게 됩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을 보면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된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천하 만민이 이방들에게 까지도 (천하만민이)
다 복을 받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은 벌써 아브라함 때부터 언약을 세워주십니다.
삼하7:12절에 보면, ‘네 몸에서 날 자식을 세워서, 그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그러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이어) 또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잠깐 사도행전을 한번 보고서 넘어 가겠습니다.
사도행전 2: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미리 보는 고로’ .. 다윗이 미리 알았다는 겁니다.
이렇게 이제 다윗은, 자기 자손 중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실걸 알고 미리 보았습니다.
정리하면,
창3:15절에서 (원복음에서) 여자의 후손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도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는데’ 예언이 되어 있고,
그분은 다윗의 위(보좌)에 앉아서, 영원토록 다스리게 되신다는 것이
벌써 구약을 통해서 다 예언이 되어있는 바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 1절에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예수가 누구냐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셨던 그리스도시라
서두에 엡3:9절에서 ‘비밀(구원)의 경륜’을 언급했었는데,
그것이 바로 창3:15절의 원복음.. 아브라함 언약.. 다윗 언약.. 이사야 예언.. 마1:1
이렇게 맥으로 유유히 내려온 것입니다.
(큰 맥만 짚었는데, 그 중간에 작은 맥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또한 신앙생활을 할 때
이런 ‘하나님의 구원 경륜’, ‘구속사’, ‘원복음의 예언과 그 성취’ 이런 것을 다 무시하고
오직 ‘자기 개인 유익을 위한 말씀’으로, 또는 ‘축복을 얻기 위한 말씀’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건 잠시 자기에게 유익이 있을지 모르나(실제로 있지도 않습니다.)
영원의 관점으로 볼 때는, 어리석은 일이요, 나중에 크게 후회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허락하신 ‘은혜의 경륜’도 깨닫지 못하고서 살아가니까요.
또한 자기가 ‘사탄의 나라’와 전쟁 상태에 있다는 사실도..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셔서
이 시대에,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시는데’ 요긴한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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