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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3편

LNCK 2014. 2. 21. 12:34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3편          마13:47, 22:1~14         설교 녹취, 출처

  *부제: 예복의 참 의미  

 

※너무 길어서, 전반부 녹취를 생략하고, 위 동영상의 26분 11초부터 녹취했습니다.

 

 

믿음과, 그 믿음에 자연적으로 ‘따르는’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입니다.

간혹 위조지폐나, 위조주화가 있습니다. 한 면은 있는데, 반대 면이 백지입니다.

위조지폐 같은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위조’니까요!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십시다.

마지막 심판 때는요, ‘믿음으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심판하지 않으시고요,

하나님은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진정성은, 그 행위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아래에서 7가지 예만 살펴 보겠습니다.

 

물론 7가지만 나오지 않고, 성경 곳곳에 더 많이 나올 것입니다.

나머지는, 여러분 각자 조사해 보세요.

 

◑최후의 심판 때,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는 구절 7가지

 

▲1. 마8:1~13절에 보면 <백부장의 믿음>이 나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중간에, 종말에 관한 내용을 곁들이십니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자 이것은 세상 끝 이야기에요,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지요.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 8:11~12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십니다.’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에요? ↓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그의 믿음은, 들으면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이에요.

 

지금 이 설교의 주제는, 종말의 심판 때는,

믿음+행함으로 심판받는다는 예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믿음이 뭐가 그 자체로 부족해서, 믿음에 행함을 보탠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믿음 자체에, 행함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첫째 예로,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주님이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하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2. 마13:38~42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자 무엇에 관한 이야기에요? 세상 끝에 관한 이야기.

예수님 초림이 아니라, 재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누구를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왜 이들을 풀무 불에 던져져서,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셨어요?

불법을 행했기 때문에.

여기도 보세요. 믿음이 아니라, 행함으로 심판하십니다.

(물론 믿음과 행함은 하나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또 다시 종교 지도자들을 겨냥해서 한 말인데

그들이 하나님을 안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믿었죠.

다만 그 뜻대로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내들이 의인이라고 착각하는.. 그들을 향해서 말한 것입니다.

 

 

▲3. 마13:47~48 <그물에 잡힌 물고기의 비유>

 

47.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하다고 그랬습니다. :48

교회 안에도, 신자가 많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물 속 물고기가, 다 그릇에 담겨졌으면 좋겠는데..

그건 우리의 바램일 뿐이고요,

나쁜 물고기는, 내다 버린다고 그랬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끝에도,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낸다고 했습니다. :49

 

여기서 ‘나쁜 물고기’는, the bad인데,

또 ‘악인’은 the wicked 인데.. 모두 ‘행위’와 관련된 의미입니다.

‘믿거나/ 안 믿거나’의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believe or not 이 아닙니다.

 

▲4. 마22:1~14 <혼인잔치의 비유>

오늘 본문의 우리가 말하는 혼인잔치의 비유. 예복을 입지 않는 그 사람.

그 사람을 바깥 어둠에 내어 던져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성경에서 ‘옷’은, 주로 우리 교인의 ‘행실’을 가리킵니다.

 

계시록 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관련글/ 예복의 참 의미

 

 

▲5. 마24:45~47,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여기에서 말 하는 ‘종’은 누구를 말할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포도원, 이스라엘 백성들을 누구에게 맡겨주셨어요.

종교 지도자들에게 맡겨주셨어요.

 

그런데 48절에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기서 왜 이 악한 종이 슬피 울며 이를 가냐면

1) 주인이 더디 온다고 했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더디 올 것이다.. 라고 믿는 종은 악한 종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 한결같이 ‘주님이 오신다’고 그랬습니다.

그것이 선한 종입니다.

그런데 위 말씀처럼 ‘주인이 더디 온다’ 라고 믿는 종은 무슨 종? ‘악한 종’입니다.

 

2) 그 다음에 동료들을 때려요. 그런데 동료들을 왜 때려요?

‘주님이 더디 온다는데.. 너는 왜 금방 온다고 해?’ 그래서들 때리는 거죠.

자기가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일에, 그들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진짜 술을 먹는다는 뜻이 아니라, 세상에 취해서, 현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산다는 뜻이죠.)

 

그들이 믿음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올 줄.. 믿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믿음의 열매가.. 옳바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6. 마25:26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누군데요?

달란트 하나 받고 땅 속에다가 잘 넣어두었다가

나중에 예수님 오시니까 하나 여기 있습니다. 라고 내놓은 그 종.

 

그 종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약하고 게으른 종아!’ 그러면서

그 종에게 하신 말씀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악하다’는 것도.. 행위요,

‘게으르다’는 것도.. 행위를 보시고 심판하십니다. 믿음이 아니라요!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확실히 회계 결산 account 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경종을 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건강도, 물질도, 은사도, 재능도 내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내가 잠시 빌려서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실 때, 물어보실 것이에요.

‘내가 너에게 이렇게 좋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나게 해주었다.

너는 부모를 잘 만나서 온갖 교육을 다 받게 해주었다.

 

너는 명문 대학을 나왔다. 너는 이런 재능을 내가 주어서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너는 내가 준 것 갖고 뭐했냐?’

 

‘예, 제가 하나도 낭비하지 않고 땅 속에다 고이 그대로 묻어두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이 악한 종아. 이 게으른 종아. 저 바깥 어두운 데로 가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D. L. 무디가 위대한 말을 남겼습니다. *드와이트 레이맨 무디

무디는 수 많은 영혼들이 지옥 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 영혼이라도 천국에 보내려고 밤잠을 자지 않고 기도하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셀 수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한 번은 설교가 끝나고 나니까 시카고 모 교수가

‘무디 목사님 오늘 목사님 설교하는데 영어 문법이 얼마나 많이 틀린 줄 아십니까?’

 

그때 무디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맞아요 교수님 저는 영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문법이 많이 틀려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틀리는 문법 갖고도,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데

교수님은 잘 하는 문법으로 뭘 하십니까?’ (사실이 그렇다면, 악하고 게으른 종인 것이지요)

 

 

▲7. 일곱 번째 눅13:23~28절, <너희>

28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여기서 천국에서 쫓겨난, ‘너희’는 누구인데요?

23절에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구원을 얻는 자가 적습니까.

 

24절에 예수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이 말씀은 전에 자세히 설교했습니다.   애를 써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SKY 대학에 들어가려면.. ‘좁은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들어가길 힘써도, 못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눅13:24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의 문제는

들어가기를, 아예 힘쓰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당연히 ‘SKY’에 들어갈 줄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미혹 때문인 것입니다.

 

25절에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주님, 주님이 저희를 가르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 우리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닙니까? 그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27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이 사람들은 예수님과 먹고 마신 적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불신자들 입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문제가 뭔데요. 좁은길로 안 갔다. 여기까지 보면 울며 이를 갊이 있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행위에 관한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것입니다.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지막 심판에 관련된 구절들을, 개인적으로 다 조사해 보세요.

‘행위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믿음 심판’도 됩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설교의 주제

 

 

▲사도행전 26:20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21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바울은 믿음만을 외친 사람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바울은 뭐라고 말했어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간 다음에

거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내가 이것을 가르치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여러분, 사도바울을 ‘행위구원론자’라고 매도하시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제가 여러분들에게 결정적인 단서를 드리겠습니다.

이 예복이 진짜 칭의에 관한 것이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그 사건을 말 하는 거냐.

아니면 정말 이 예복은 그 이후에 우리의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말하는거냐에 관한

결정적인 단서. 이것은 계시록 19장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은 비유입니다.

마지막 때에 혼인잔치에 있을 일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나 계시록 19장은 실제 사건입니다.

그러면 비유와 실제 사건을 보면 그것이 매치가 될까요, 안 될까요?

물론 정확하게 매치 되지요.

 

그러면 계시록 19:7절을 소리내어 읽겠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였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이 말씀은 혼인잔치에 관한 실제 상황입니다. 자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실제 상황을 사도 요한이 미리 보았습니다.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준비되었다. 신부가 준비 되었다.’

그런데 그 신부에게 무엇을 입히셨다고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무엇을 입으셨다고요?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이 세마포는 그냥 세마포가 아니라 빛나고 깨끗함입니다.

그런데 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가 뭐냐. 성경이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믿음이다? 아니잖아요. 뭐라 그랬어요?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자 그러면 여러분에게 심각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이 세상 끝 날. 저와 여러분은 이 혼인잔치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

우리 영혼을 결정할 운명의 순간에 그 순간에

그 혼인잔치에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믿음 입니까. 행함입니까?

 

진짜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있다는 것이에요.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세마포는요. 두 가지 중요한 묘사가 있는데

하나는 빛나는 세마포,

또 하나는 깨끗한 세마포. 깨끗하다는 말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다는 것이에요.

정결하다는 이야기에요.

 

빛난다는 이야기는 착한 행실을 말합니다. 거룩한 삶을 말합니다.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저는 여러분들에게, 3차례의 설교를 통해, 3가지 비유를 말씀드렸습니다.

마21장 22장에서 두 아들의 비유,

마21장 포도원 농부의 비유,

본문 마22:1~14의 혼인잔치의 비유.

 

이 세 가지를 통하여서 예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고 싶으셨냐면,

예수님은 무엇을 지금 말씀하시려고 이렇게 공을 들이셨냐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느냐. 누가 천국에 들어가는가.

 

첫 번째로 두 아들중에 내가 아들이라고 해서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그 아들이 천국에 들어간다.

 

두 번째, 내가 아들이라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그렇게 떠들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자가 들어간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

 

세 번째로 혼인잔치의 비유. 예복을 입는 자가 들어간다.

 

이 세 비유는 모두 똑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들은, 정말 빛의 자녀들은 회개하고 믿어 순종하는 자들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들이다. 정결하고 거룩한 삶의 예복을 입는 자들이다.

이들이 천국에 들어간다.

 

우리는 이미 천국의 비밀을 통해서 이미 임한 천국에 대해서 말씀 들었어요.

이미 이 땅에 임한 천국. 그 천국이 내 마음 안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천국은 나하고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미 이 땅에 임한 천국을 받아들이고 누리며 살지 않는다면

어떻게 장차 임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중요한 교리사의 흐름 파악하기

16세기에 하나님은 루터를 들어 쓰셨어요.

루터를 통해서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이 없는 행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믿음이 있고 그 다음에 행위니까

그래서 그 믿음을 회복하는 놀라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200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은 웨슬리를 높이 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뭐에요. 믿음만 강조하다가 삶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에요. 믿었으면 그 다음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된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웨슬리를 쓰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약 200년이 지나서, 20세기에 성령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믿음도 그렇고 거룩한 삶도 그렇고 내 힘으로 되지 않는 것이에요.

내 힘으로 되요 안되요. 안되기 때문에 성령을 주신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이룰 수가 없어요 거룩한 삶을.

저와 여러분이 무슨 수로 거룩한 삶을 살아요.

오직 성령님 만이 내 안에서 그 일을 하실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오직 성령의 소욕을 쫓아 행하는 그에게 율법의 유업을 이루신다고 한 것 아니에요?

 

2013년 우리는 정결한 마음, 내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정말 나는 불행한 것입니다.

거룩한 삶. 우리 한 번 몸부림 쳐봐요. 하나님은 도와주실 것입니다.

 

2013년을 우리가 마감할 때에는 우리가 다시 한 번

하나님 우리가 일 년 동안 정말 정결한 마음, 거룩한 삶을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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