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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칠도, 복음삼도

LNCK 2014. 4. 7. 00:00

(5) Dec 18, 2011 설교 말씀 - 김명혁 목사 - YouTube

◈인생칠도, 복음삼도          고후12:10, 시16:3, 마27:31         출처보기

  

◑내 인생 막바지에 깨달은 두 가지 진리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배우고 깨닫게 되는 진리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깨달았지만, 나이가 들면서도 깨닫게 되는 것들인데요..

 

바울 사도의 본을 따라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의 고백을 따라,

한경직 목사님, 박의선 목사님의 고백을 따라..

저도 노년에 깨달을 수록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① ‘바로 내가 죄인입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하는 진리입니다.

 

위선만 떨고도, 괜찮은 목사인 줄 착각을 하고,

설교하고 목회하면서,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보시고

십자가의 피로 나의 죄를 모두 소멸시켜 주시고

성령님이 탄식하시면서 도와주신다고 했는데.. 저를 도와주시옵소서.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것을 깨달았어요.

 

② 두 번째는 ‘내가 잘나서 이제까지 살아낸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이 좋고 인격이 좋아서 목사가 된 것도 아니고,

그저 첫 째도 하나님의 은혜, 둘째도 하나님의 은혜, 셋째도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사도바울이 고백한대로 은혜,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말씀한 대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 밖에 없습니다. 그런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또 제가 교수로서, 목사로서, 지금까지 일평생 섬겨 해오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설교가 중요하긴 중요하지만.. 설교는 은이다.

신학이 심오하고 멋지기도 하지만.. 신학은 동이다.

이적. 그것도 대단하고 사모할만한 것이지만.. 이적은 철이다. 그런 깨달음입니다.

 

멋진 프로그램, 한국 교회는, 미국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프로그램에 미쳤어요.

음악 프로그램, 교회 성장 프로그램, 무슨 프로그램,

저는 프로그램은.. 흙이다. 이렇게 봅니다.

 

그럼 ‘금’은 무엇인가요?

예수를 닮으려고 하면, 다 닮을 수는 없지만

온유, 겸손, 용서, 긍휼, 착함, 눈물, 죽음, 희생!

이렇게 주님을 닮으려고 하는 그 삶만이.. 그것이 금이다! 그것도 깨달았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저는 한 동안 설교(은)를 너무 사모했어요. 심오한 신학(동)을 너무 동경했어요.

그리고 이성봉 목사님을 비롯한 수많은 목사님들의 이적(철)도 동경을 했어요.

 

나중에 깨달았지만, 정작 ‘금’은 덜 귀하게 여기고

‘은’, ‘동’, ‘철’에 한때 매달렸던 것이었죠.

 

이적은 자칫 잘못 하면 이단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철’입니다.

제가 뭐 프로그램은 별로 동경은 안했습니다.

프로그램은 언제나 세상 유행을 따라요.

 

미국의 빌 하이벨즈 목사님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몇 년 동안 이런 프로그램 다 해 보고나서, 교회 온 수 만 명을 설문조사 해봤더니

삶이 변화 된 사람이 별로 없더라. 내가 이런 프로그램들에 주력한 것은.. 잘못이었다.’

 

프로그램은 흙입니다. 한때 지나가는 유행일 뿐입니다.

 

참 성 프란시스처럼, 사도 바울처럼,

주님 닮으려고 하는,

‘내가 예수를 본받는 자 된 것처럼 너희도 나를 본받을 수 없느냐.

내 몸 안에서 주님만이 나타나기를 나는 소원하는데,

아니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는데

주님을 닮으려고 하는 삶을 좀 살 수 없을까.’

 

 

◑人生七道

 

그래서 ‘인생은 뭐냐?’

인생은 일곱 가지 길을 걸어가는 <인생 7도>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①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아브라함, 예수님, 모세. 고향 떠나죠. 집을 떠나죠.

이스라엘을 떠나죠. 아 나그네의 삶이 인생이구나.

가인처럼 어느 곳에 성을 쌓고, 거기에 사는 것은 아니구나.

아브라함처럼 이삭처럼, 전국 떠돌아다니는 것이 그것이 신자들의 삶이구나.

 

② 둘째는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모세야, 아브라함아, 사울아. 주님을 만나고 너 저기 가서 누구 만나라.

로마 사람도 만나라.

내가 사마리아에 가서 여인을 만난 것처럼, 너도 거기를 가라. 만남.

온 동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보람 된 삶입니다.

 

③ 셋째는 진짜 만남이 되려면 나누어야 됩니다.

시간도, 포도주도, 약도, 음식도, 겉옷도, 속옷도, 자기 생명까지..

 

나는 예루살렘 교회는 나눔이 충만했고

나눔이 없는 것은 참 이기적이고 추한 삶이요.

 

다 나누어 주는 것이 충만한 삶입니다.

예수님은 살도 피도 나누어 주셨으니까요.

 

④ 그 다음에 나눔이 진짜 나눔이 되려면, 버려야 됩니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버림!

 

사도 바울은 나는 제물을 버린다. 목숨을 버린다, 해산의 수고를 한다.. 하셨죠.

그래서 성 프랜시스도. 모든 것을 버리죠.

 

참 인생이 뭘까요?

나그네의 삶을 살면서, 만남을 확장 하면서, 나눔을 깊이 하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면, 그러면 따라오는 것이 있는데.. 기쁨입니다.

 

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성도들 때문에 기뻐하고,

한 명 한 명이 변화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환란을 받으면서도 기뻐하고,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약함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후12:10

 

‘내가 주님 안에서 기뻐한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기뻐한다.’ 이 기쁨!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성도들 때문에,

 

시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주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오른 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11

 

주님 때문에, 성도들 때문에, 주님 위해서 수고한 것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⑥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헛됨입니다.

세상에서는 내가 대단한 일을 했는데, 부귀영화를 누렸는데..

하지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인생은 헛되고 헛되구나.

 

목회의 성공도 위태로울 수 있고,

설교자로서 성공은 매우 위태롭고,

은혜를 너무 많이 받는 것도 위태로울 수가 있고,

그래서 우리 선배들은 다윗도 사도 바울도 ‘그건 다 똥이다. 배설물이다.’ 그랬습니다. 

 

‘주님 이외에는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린다. 배설물로 여긴다.’

학문도/ 가문도/ 종교적인 의도/ 내가 이룬 성공도.. 다 헛되다.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하루라도 더 일찍 피부로 깨닫게 되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왜 이랬을까요? 그들이 잘못되었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우리가 너무 세상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설물로 여기는’ 바울의 신앙을,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이 필요하지만, 세상을 너무 좋아하기에

내 교회를 크게 지으려 한다면.. 나중에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장기려 박사님은, 생전에, 웅장한 고딕식 교회당 빌딩을 보면서

‘이것은 <밀턴의 실락원>에 나오는 마귀가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세상의 부귀영화, 신자들이 누리는 부귀영화가

혹시 마귀가 잠깐 가져다 준 것은 아닐까..’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헛됩니다. 인생의 성공도 헛됩니다.

 

⑦ 제가 모토로 삼고 살아가는 <인생 七道>의 마지막은,

<인생은 떠남이다>라는 진리입니다. 일평생 떠남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떠남의 삶을.. 아버지의 집을 떠났죠. 세상을 떠났죠.

바울도 내가 떠날 때가 되었다. 떠남을 준비하라.. 는 것이죠.

 

이것은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인 것이요,

슬픈 것 같지만, 영원으로 향한 소망의 발걸음(떠남)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집. 아브라함이 있고, 주기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가 계신 그 곳.

떠남을 준비하는 것이 참 인생입니다.

 

다 쓰고 빈손으로

재물도, 은사도, 은혜도 다 쓰고 빈손으로 떠나는 것.

그게 오늘 아침에 말씀드린, 제 삶의 철학인 <인생 칠도>입니다.

 

 

◑예수님의 삶의 특징 - 약함, 착함, 주변성 福音三道

 

이제 또 하나 깨달은 것을 말씀드립니다.

제가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삶의 특징이 뭘까. 십자가 복음의 특징이 뭘까?’

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특징이 뭘까. 십자가의 특징이 뭘까?’

그것은 ‘약함과 어리석음이다. 착함이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저 주변으로 땅 끝으로 가는 것이다.’

    

우리는 다 싫어해요. 약한 것 싫어하지요. 어리석은 것 싫어하죠.

다 착한 것.. 막 나누어주고 그런 것 싫어해요. ‘주변’으로 가는 것도 싫어해요.

다 ‘센터’로 진출하는 것을 좋아하죠.

 

그러나 십자가 복음의 특징.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특징은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이구나..

 

그래서 저는 그것을 <福音三道>라고 제가 이름을 지었어요.

    

▶1. 약함

예수는 그래서 사신 삶이 약함의 삶. 그렇게 약한 사람이 없죠.

 

태어나실 때부터 연약한 아기,

천사쯤으로 오실 수도 있는데,

어른으로 오실 수 있는데 아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또 약해서 애굽으로 피난가시죠.

목수 일을 하시죠.

공생애 3년 동안에도 얼마나 약하셨어요.

뭐 집이 있나요, 먹을 것이 있나요. 때리면 맞죠. 침 뱉으면 뱉음을 받죠.

그렇게 약하신 분이 어디 있어요?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그래요?

죽으라면 죽죠. 이렇게 약한 분이 있을까요.

이렇게 어리석어질 분이 있을까요.

 

베드로가 칼을 뽑으려고 하는데 안 된다고 그랬어요.

이사야 53장 1절. ‘멸시를 받아요.’

약하니까 멸시를 받지요. 부자는 멸시를 안 받아요.

 

‘싫어 버림을 당해요.’ 사53:3

그게 주님의 모습이고 십자가의 모습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정 반대로 나가요. 교회가 너무 힘이 세져요.

강해져요. 부자가 되요. 뭐든지 다 해요.

정치가들도 큰 교회 목사들 앞에 와서, 잘 보이려 할 때가 있어요.

 

한 번은 정진경 목사님이 그 자리에 있다가 ‘참 저건 아닌데, 저러면 안 되는데..’

그러시더라고요.

또한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죠. 목사님들이.

 

라오디게아 교회보고 ‘너 부자라고 하는데, 사실 너 알거지다.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궁핍, 고난이 있지만, 이 교회는 내가 칭찬한다.’ 하셨지요.

 

약함.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당한 후에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아 끌고 가니라.. 마27:31

 

예수님의 본은, 약한 모습이에요.

 

▶사도바울은 약함을 예찬하는 예찬자가 되요.

‘나는 약함을 기뻐한다. 약함을 자랑한다.’

 

고린도전서 1장부터 ‘십자가는 약한 것이다.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다.’

그래요. 십자가는 약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인들도, 헬라인들도, 유대인들도 다 싫어합니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메시아가 저렇게 약하냐. 어떻게 저렇게 어리석으냐.

저것은 메시아가 아니다. 그랬죠.

 

헬라인도, 아 헬라의 신들은 아주 지혜롭고 그런데 어떻게 저게 신이냐.

멸시를 당하죠. 그런데 바울이 그것을 알았어요.

'십자가는 약한 것이다. 어리석은 것이다.'

약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기독교의 본래의 모습입니다. 본래의 특징입니다.

 

▶초대교회도 약했어요. 조선 교회는 약했어요.

그때 조선만큼 약하고 소망이 없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약한 사람들에게, 후에 하나님의 축복의 손이 임했습니다.

약하고 어리석고 멸시를 받을 때.. 그래야 하나님 일하실 곳이 있죠.

 

다 지혜롭고 강한데,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겠어요.

 

오늘 날 한국 교회 문제는 너무 강해진 것이 아닐까. 너무 지혜로워진 것이 아닐까.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정치도 하고, 경제력도 있고

뭐 문화도 하고 음악도 하고 예술도 하고 프로그램도 하고 다 해요.

조금 바보가 될 수는 없을까요..

 

제가 몇 곳에 가서, 금년에도 한국 교회 지도자들 모이는데, 거기서 말합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바보가 될 수는 없습니까.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우리 선배들이 그런 지혜가 있었습니까.

프로그램을 뭘 알았습니까.’

 

▶방지일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요새는 음악과 각종 프로그램으로 성령을 지배하려고 대듭니다.’

그때는 무릎 꿇고 성령의 지배를 받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각종 음악과 프로그램으로 성령을 지배하려고 대듭니다.’

 

방 목사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요.

그 분은, 길선주 목사님 손을 잡고 부흥회 따라다니시던 분이예요.

 

그래서 조용히 ‘내 손으로 내 입을 가립니다.’ 욥이 그랬죠. 욥40:4

 

솔로몬도 그랬죠. ‘입을 가린다.’

너무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조금 문제에요.

 

전도서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그래서 침묵이라는 것이

중세 수도원에서 그렇게 예찬을 했어요. 침묵!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