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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다 고전9:16, 계3:20 출처보기 영어
Why so little Gospel preaching today?
by Dr. R. L. Hymers, Jr. 2014.01.26.
◑왜 오늘날 복음 전파 설교가 거의 없는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6
이 말은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강박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그의 사역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매튜 헨리는, “사역을 맡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파하는 책임이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추가 설명이 필요 없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복음을 복음답게 전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최근 몇 명의 사람들이, 오늘날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가 없다고, 나에게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전체 설교를 들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왜 목사님들이 십자가로 인한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지’ 물어봤습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자들이 거의 없습니까?
나 자신도,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를 못 들은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오늘 설교에서 2가지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1. 첫 번째 이유,
성경은, 마지막 날에 많은 교회들에서, 그리스도께서 실종될 것을 예언합니다.
▲계시록 3:14-22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의 서구 세계의 교회들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J. A. Seiss는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을 누가 자세히 보고,
우리는 아직 라오디게아의 시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1)
John Walvoord도, “오늘날의 교회들은… 슬프게도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주2)
Lehman Strauss는, “말세에 나타날 라오디게아의 교회들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국가 Christendom 라 말하지만, 그 속에 그리스도가
거의 실종되어 있습니다. 대신에 점점 사람의 교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주3)
J. Vernon McGee는, “우리는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근본주의적이며, 보수적인 교회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입니다…”
여기서 ‘라오디게아 교회’는, 어떤 특정한 일부 교회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가 대체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다면, 우리의 교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너무 아프게 한다.. 입술로는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건 입술의 고백일 뿐이다.’
여러분, 우리는 라오디게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래는 이것은 Stanley High가 말한 바,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내가 ‘죽을 죄인’이라고 말해 주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나의 영혼이 구원 받도록 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교회는 나의 죄의 대가, 분명한 지옥,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실패 했습니다. 주4)
▲우리 시대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맞다면,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 3:20에 나와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는, 교회에서 쫓겨나 바깥에 계십니다.
그가 바깥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신 이유는, 교회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Charles C. Ryrie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밖에서 계셔야 하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주5)
계시록 3:2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시고자 하는 것을 뜻할 수도 있지만,
Dr. Ryrie가 지적한 것처럼, 그 분은, 그의 교회에서 쫓겨나시고,
사람의 마음에서도 나오셨습니다. 두 측면으로 다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계시록 3:22절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따라서,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사는 우리는,
지금 마지막 날의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놀라워하면서도) 크게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이 그러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미리 예언하지 않았습니까!
Michael Horton은, Christless Christianity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라는 책의 저자입니다.
그는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대신
“자기 자신을 돕기 위한 메시지”를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영어로 “self-help message”입니다.
그는 여러 교회의 설교제목들을 수집해서, 이런 주장을 증명했습니다.
아래 설교 제목만 보더라도, 복음이 아니라, “self-help message”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자신에 대해 더 만족할 수 있나”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나”
“어떻게 더 성공적이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나”
“어떻게 하면 돈을 더 관리 잘할 수 있나”
“성공적인 가정생활의 비밀들”
“어떻게 스트레스를 극복할수있나,” 등등. 주6)
이렇게 오늘날의 설교자들이,
복음, 즉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즉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그의 보혈의 죄 사함,
그의 부활, 그의 재림.. 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성경의 예언에서 보여지듯, 지금 우리가
마지막 날, 라오디게아 교회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Dr. McGee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의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3:16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신자들이,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그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즉, 토하여 내쳐짐을 당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주7)
▲사도 바울은 딤후4장에서 그의 위대한 예언구절을 말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4:3-5.
바울은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이런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이기에,
“너는 전도인의 일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지금은 마치 19세기의 Spurgeon 이 설교했던 것처럼,
복음적이며, 성경적인 설교가 진정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아, 얼마나 요즘 시대의 사람들이, 이런 설교를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합니까!
성경을 구절 구절 쪼개어, 그 의미와 교훈을 신자들에게 잘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나 Hymers 는,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 선포할 것입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6.
주 예수 넓은 사랑, 그 크신 은혜를,
나 힘써 전파함은, 참 기쁜 일일세
주 예수 복된 말씀, 생명과 진리요;
내 맘의 갈급함을 다 채워주시네,
옛부터 전한 말씀, 주 예수 넓은 사랑,
나 항상 전파 하기 참 좋아 하도다.
by A. Catherine Hankey, 1834-1911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전9:16.
◑2. 오늘날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이유 두 번째로,
“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교가, 필요 없게 만들었습니다.
※‘죄인의 기도 a sinner’s prayer 란, 짧고 간단한 회개기도. 보통 목회자를 따라서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접, 결단이 포함된 “짧고 간단한” 회개기도. 오늘날의 '영접 기도'
▲만약 당신이 사람들이 “죄인의 기도”만 하게 한다면, 복음을 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현대적인’ 방법의 “죄인의 기도”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복음 설교와 대치되었습니다.
즉, 강력한 양심의 죄책이나, 진정한 회개가 없이,
입술로 피상적으로, 짧고 간단하게, 죄책, 회개, 사죄의 은총까지
다 끝내 버리는 것입니다.
▲1993년에 Jack Hyles 는 중요한 지적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서
영혼은 구원하지 못하고, 그저 복음적인 교회로 차츰 바뀌고 말았습니다.
지금,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와, 그저 ‘복음적 교회’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복음적 교회’는, 즉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는 교회는,
신자들이 나가서, 불신자들을 교회에 데려다 놓으면, (‘인도’를 하면)
설교자는, 그저 교회의 강대상 위에서, 그들에게 설교만 합니다.
그런데 이게 별로 열매가 적습니다. 있기는 하지만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에서는,
목회자/교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서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일대일 전도, 결신시키며)
그들을 교회로 인도해 와서,
그들의 구원에 대한 간증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 하게 합니다.
전자는, 아무도 전도할 줄을 모르지만,
후자는, 목회자나 교인을 막론하고, 누구나
전도를 할 수 있는, 영혼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는, 과거의 그저 ‘복음적 교회’에서
점점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로 바뀌는 것을 봅니다.
(이게 사도행전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주일에 기독교인들에게 설교해서,
신자들이, 주중에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도록..
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주8)
Jack Hyles가 말하는 것은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소위 ‘좋은 교회’들은 더 이상 전도/복음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점점 사도행전적 교회를 추구하는
새로운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 교회 성도들은, 나가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회개 기도”를 고백하게 하고,
그들을 교회로 인도하고, ‘강단 초청해 응해, 복도로 걸어 나가서 결단하게’ 합니다.
그 성도들은, 실제로 영혼을 얻는 전도를 할 줄 아는 신자들입니다.
▲제 Hymers 가 성경을 읽어보니,
사도행전에서는 한 가지만 빼고, 모든 설교가 전도적인 설교였습니다.
한 가지란, 사도행전 20:18-35절이, 그 예외입니다.
이 설교는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교마저도,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전도설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행20:21
사도행전에 나온 다른 모든 설교들은,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를 포함하여, 복음전도주의적인 설교입니다. 행2:14-40
-산헤드린 앞에서의 베드로의 설교 행4:5~12
-스데반의 설교 7:1-53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설교 8:5
-사도바울의 구원 받은 후의 설교 9:20~22
-이방인에게 한 베드로의 설교 10:34~43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바울의 설교 행13:14-41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설교 17:22 등등입니다.
우리는 또한 사도바울이 집집마다 방문해 가면서
복음전도적인 설교를 한 것을 봅니다. 행20:20-21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복음 전도를 위하여
성전에서 또 여러 집에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설교한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는 것을 읽습니다. 행5:42
▲Jack Hyles의 말들 중 아주 흥미로운 것은
“죄인의 기도”가 복음전도주의의 설교를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죄인의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이
복음 설교를 불필요하게 만들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과거의 것이 된 것입니다.
※나 Hymers 는, Jack Hyles 의 책에서,
동의할 수 없는 점들이 몇 가지 있지만,
지금 이 설교에서는, 그가 말한 것 중에 옳은 점들만 인용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죄인의 기도”룰 하게 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그래서 “죄인의 기도”라고 불리는, 그 짧고 간단한 기도가
오늘날 우리 교회들에 복음에 대한 설교를 파괴시킨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짧은 기도를 통해서,
잠시 동안 자기가 기도한 것으로,
자기가 진정한 신자라고 생각(사실은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도/들으려 하지도..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도바울의 말을 해야 합니다,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나는 Thomas Williamson이라는 사람의 글을 읽었는데,
아주 계속 생각나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이 “나를 따라서 기도문을 말하고,
만약 당신이 소리내어 기도하기 창피하면, 그냥 작게 하고,
그래도 영접 기도만 하면, 당신은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건 신약 성경적 방식이 아닙니다. 성경이 과연 그걸 가르치는지..
아니면 내가 혹시 잘못 알고 있는 건지.. 헷갈리네요. 주9)
맞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죄인의 기도”(오늘날의 영접기도)를 통해서, 구원받은 적은 없습니다!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확률은 대단히 낮습니다.
그 짧은 영접 기도를 따라하고, 소수는,
나중에 구원의 성숙과 완성 단계로 나아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방법입니다 –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위험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설교하지/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우리는 많은 교회에서 이것을 봅니다!
▲나는 Joel Osteen의 설교를 컴퓨터로 한 번 보았습니다.
그는 간단한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2번 정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단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단어도, 주님의 보혈과 대속적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 끝에, Joel Ostee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예수님을 당신의 삶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 없이
이 방송을 마감할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기도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따라서 말하십시오,
“주님 예수님,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나의 마음으로 와주세요.
나는 당신을 나의 주인으로 구주로 모십니다.”
“여러분, 당신이 이렇게 간단한 기도를 하면,
우리는 당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그는 아마도 “다시 태어났다고” 믿을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런 기도로 통해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도!
이 기도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Joel Osteen은 그리스도 없는 설교와, “죄인의 기도”를 말하고,
복음의 언급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그 대가를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죄를 씻겨주시는 보혈의 언급이 없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신 언급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복음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짧은 기도의 거짓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Osteen은 사도바울이 말한 “다른 복음”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갈1:6, 7.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 전서 9:16).
주 예수 넓은 사랑, 그 크신 은혜를,
나 힘써 전파함은, 참 기쁜 일일세
주 예수 복된 말씀, 생명과 진리요;
내 맘의 갈급함을 다 채워주시네,
옛부터 전한 말씀, 주 예수 넓은 사랑,
나 항상 전파 하기 참 좋아 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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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초청.
모든 인류는 죄의 쇠사슬에 묶여있고, 사탄의 통제 하에,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아래에 있습니다. 엡2:2
모든 사람들은 죄 아래 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2:12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딤전1:15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죄 없이 사셨습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러나 아주 끔찍한 밤 겟세마네 동산의 어둠을 지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죄를 “그 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벧전2:24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죄의 무게로 힘들어 하셔서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눅22:44
성전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거짓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그들의 대제사장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그의 눈을 가리고 얼굴을 때리고
다른 사람들을 그의 수염의 뿌리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그를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그의 병사들에게, 예수님이 반쯤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하고,
땀과 피범벅이 되게 했습니다.
그들의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때리고 머리를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십자가를 끌고 거리로 나오게 하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못 박을 장소에 왔을 때,
그들은 그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고, 십자가에서 벌거벗기고,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6시간의 고통이 끝난 후, 그는 외쳤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셨습니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지고 가서 세마포로 싸고
자기 무덤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은 큰 돌을 무덤 앞에 놓았고,
문을 막고 로마 병사들이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나의 친구,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죄로 벌을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고통을 다하고 당신대신 돌아가셨습니다.
성경은 당신이 예수님이 당신의 죄로 돌아가셨고,
그것을 믿는 길이, 오로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피를 당신을 위해서 흘리셨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당신에게 영원한 삶을 주십니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하셔서, 벌써 당신의 고통과 아픔을 대신 당하였습니다!
예수님께로 오십시요! 그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구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남아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이 죄를 회개하고, 그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당신의 죄로부터, 무덤에서,
그리고 지옥에서 다 구원받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는 당신의 그의 보혈로 깨끗이 죄에서 씻겨주실 것입니다!
...................................
주1)
J. A. Seiss, The Apocalypse, Zondervan Publishing House, n.d., p.85.
주2)
John F. Walvoord,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Moody Press, 1966, p. 95.
주3)
Lehman Strauss, D.D., The Book of Revelation, Loizeaux Brothers, 1982 edition, pp. 104, 105.
주4)
J. Vernon McGee, Throu호 the Bible, 1983, Thomas Nelson Publishers, volume V, pp. 922, 923, 925, 924; notes on Revelation 3:14-19; Stanley H. High was a senior editor of The Reader’s Digest and a Christian author. The above statement by Mr. High appeared in August, 1947 in Time Magazine.
주5)
Charles C. Ryrie, The Ryrie Study Bible, Moody Press, 1978 edition, p. 1900; note on Revelation 3:20.
주6)
Michael Horton, Christless Christianity: The Alternative
Gospel of the American Church, Baker Books, 2008, p.49.
주7)
McGee, Ibid., p.926.
주8)
Jack Hyles, Enemies of Soul Winning, Hyles-Anderson Publishers, 1993, pp. 140, 141.
주9)
Thomas Williamson, “Northern Landmark Missionary Baptist,” December, 2013, 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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