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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

LNCK 2014. 6. 23. 15:14

말씀 묵상 시1:2 - YouTube

◈말씀 묵상             시1:1~2                    인터넷 설교 녹취, 출처 휘발

 

◑서론/ 험한 세상에서, 우아하게 걷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 삿포로 산간 지역에, 아주 작은 크리스천 고등학교가 있었습니다.

매우 오래된 기독교 학교였지만, 사회적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었습니다.

 

지역 주민의 대부분의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아서

학생들을 좋은 명문대에는 보내지 않았지만,

매우 신실한 크리스천 고등학교 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는, 키가 아주 작고 아담한 여 선생님,

마치모토 선생님 한 분이 계셨어요.

 

이 분은 서예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잘 지도하고 사랑으로 대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많이 좋아했습니다.

일상적인 공부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도 잘 가르쳐준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매우 냉혹해서, 대학의 문턱은 매우 높았고

학교측에서 최선을 다 하지만, 학생들은 일류 대학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심겨준 선생님의 사랑과,

학교에서 가르치는 바, <인생에 대한 길>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마치모토 선생님은 체구가 매우 외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는 늘 천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고

이웃과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해서 살았던 멋진 선생님이었습니다.

 

대학 진학시험에 실패해서 어깨를 늘어뜨린 학생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가정이 깨어져서 힘든 사람들에게 상담도 해준, 그런 선생님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이 선생님도 학교에서 은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수많은 세월이 흘렀어요.

어느덧 선생님의 연세도 흰 머리카락 숫자만큼 많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에 대한 사랑만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어느 추운 봄날에, 마을 주민들이

이 마치모토 선생님을 위하여, 생일잔치를 마련해주는 특별한 날이 있었습니다.

 

머리가 흰 노인부터, 새파랗게 젊은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의 백 살 되는 생일잔치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동네 산간에는, 아직도 하얀 눈으로 덮여있었고, 추운 봄날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집은, 저 밑으로 개울이 훤히 보이는, 언덕 양지 밭에 있었습니다.

 

거실 창문으로, 바깥을 내려 보는 광경이 굉장히 좋았고

동네 사람들(선생님의 제자들)이 함께 모여서

선생님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100개의 촛불을 끄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촛불을 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영국 BBC에서 직접 촬영했던 한 다큐멘터리였어요.

그런데 그 다큐를 제작한, 그 영국 기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백세가 되셨군요. 오랜 세월 사셨는데

혹시 지나 온 삶을 표현 하실 때, 어떻게 표현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창문 밖에 낮은 산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이 선생님께서

서예 선생님답게 붓을 들고, 화선지 위에 글자를 썼습니다. 세 글자를 썼습니다.

 

제일 먼저 쓴 한자는 바람 풍. 두 번째 쓴 글자는 길 도.

세 번째 글자는 기도할 때의 기. 風 道 祈.

 

그리고 이런 대답을 합니다.

내 지나간 100년의 삶을, 세 글자로 표현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風 道 祈.

바람이 부는 인생길을 기도하면서 걸어왔습니다.

 

선생님은 자기 인생을 이 세 글자로 표현 했습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이 필름을 다 한 후에 얼마 있지 않아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00년의 크리스천의 삶을, 이 선생님 할머니는

‘온갖 바람 부는 길 위에서, 나는 기도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시편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아마 시편 전체의 모습을 이 세 단어. 風 道 祈.

‘바람이 부는 길을 기도하면서 걸어갑니다.’라고 요약해도 될 것 같아요.

 

시편이.. 주로 다 기도잖아요.

시편의 저자들이 다 ‘바람 부는 길을 기도하며 지었던 기도 詩’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크리스천 라이프를 가리켜서 순례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늘에서 와서 다시 하늘로 돌아가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천성을 향해서 순례의 길을 떠난, 하늘 나그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떠나면서, 우리는, 수많은 바람과 풍랑을 만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 우리는, 두 손을 불끈 쥐고 기도하면서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확신 없이는, 인생이란,

결코 쉽고 평탄하게, 아무 문제없이 걸어갈 수 없는 길이기에

우리의 삶은 원초적으로 매우 취약한 것이에요.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우리의 삶이 매우 불안정하기도 해요.

한 치 앞길도 내다볼 수 없는 내일을 앞두고 있고,

불확실한 미래 가운데에서 걱정하고 기도하는 사람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지는 못하고 병실에서, 중환자실에서

아니면 사업이 부도가 나서, 결혼이 깨지려고 하는 벼랑 끝에서

 

‘하나님,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십니까, 내가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습니까.

너무 바람이 많이 붑니다. 나로 하여금 어떻게 길을 걸어가게 하시려고

나에게 이런 길을 주셨습니까.’ 라고 하는 기도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묵상하고 생각하려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주제입니다.

시편 1장을 다 읽도록 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암송하실 거예요.

 

시편 1장을 보시면 제일 먼저 ‘복 있는 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우리가 바라는 오복이 아니라, 행복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이, 진짜 복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에 관해서 나와 있는 것이 시편 1장입니다.

 

신앙생활을, 여러분과 저는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지, 저 세상에서 살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에덴동산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에덴의 바깥, 동편에서 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말하기를, 여러분과 제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는 완벽한 세상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에덴의 동편처럼, 반역하고/ 미워하고/ 싸움하고/ 이 세상의 깨어진 동네,

일그러진 세상에서.. 여러분들과 제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교회는 단순히 마취약을 얻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닙니다.

아니면 진통제를 얻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오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 밖의 실전의 삶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의 갈등도 있고, 미움도 있고, 전쟁도 있고,

수많은 어려움들 가운데에서, 여러분들과 제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엄청나게 바람이 많이 부는 길 위에서

어떻게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걸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

바로 신앙의 문제입니다. 매우 공격에 취약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에요. 1:1

악인들이 누구입니까. 길을 걸어가는데 딴지를 거는 사람들,

죄인들, 살짝 밀치는 사람들, 우리를 조롱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가운데서, 참 신앙생활 하기 어려운 가운데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합니까.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들과 제가 알고 있는 이 세상, 얼마나 험악하다는 세상.

조금이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가르침과 인도함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면

언제라도, 누구라도, 그것이 목회자나 직분자라도

누구든지 매우 취약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성경이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르쳐준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바람 부는 세상 가운데에서 기도를 가르쳐 주셨는데,

기도 내용을 잘 들어보시면 분명해집니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고

나라에 임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이렇게 되어있죠?

 

제 류호준 목사는 구약 학자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시를 지을 때 평행법으로 시를 지어요.

따라서 이 주기도문은 원래 이렇게 읽혀져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나님의 이름이 하늘에서 이미 거룩하여졌던 것처럼/ 땅에서도 거룩하여 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던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바라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졌던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지금 듣고 보니 어디에는 문제가 없죠? 하늘에는 문제가 없죠.

그런데 여러분과 저는 천당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뜻이

내 삶 가운데,

우리 교회 가운데에 우리 삶의 터전 가운데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30평 사는데, 50평으로 인도해 줄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죠.

 

우리 아들이 축구선수인데, 매 시합마다 골을 넣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가르쳐주시지 않았죠.

 

'하나님,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일이든 됩니다.'

라고 가르쳐주시지 않았어요.

 

여러분과 내가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기도의 방법을 압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는 세 분,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이 완벽한 상태로 계시기 때문에

그 이름이 높이 들려있고, 그분의 뜻과 통치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세상을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내 집을 봐도, 교회를 봐요, 내 삶을 봐도,

깨어지고 일그러지고 어느 곳에도 하나님의 영광, 다스림, 그 뜻이 이루어지는 구석이 없습니다.

 

주여, 바라건데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와/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라는 것이에요.

이것이 주기도문의 기도입니다.

 

듣고 보니 어디가 문제라고요? 이 세상이 문제라는 거예요. 

따라서 기도라는 것은, 이 세상에 있을 때만 하고, 이 땅에서만 하는 것이고,

현실의 어려운 환경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길을 걸어가야 되는데, 때때로 길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앞이 막막할 때가 있어요. 길이 없는 사막에서 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방황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거예요.

 

그러나 아마 지금 심각한 가정의 문제 때문에, 혹은 재정의 문제 때문에,

결혼의 문제 때문에, 풀어지지 않는 숙제 때문에,

하나님, 정말로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라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성경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멋진 말이 바로 "길"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시편 1장은 바로 여러분과 저에게 길에 관해서 이야기 합니다.

 

이 길을 걸어가면서 엄청난 바람이 불고

도저히 해치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거예요.

 

▶중요한 사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에서 불러서 홍해 바다를 건너게 하신 후에

마른 땅같이 건넜지만 아마 옷이 조금 젖었을 거예요.

그래도 바다를 건너왔기 때문에요. 물이 조금은 튀었을 것이에요.

 

그 다음에 광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뜻은 '옷이 젖어있다'는 뜻입니다.

세례와 침례의 뜻이 무엇이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것. 옷이 젖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죽음으로 세례 의미를 아는 사람들은

지금 홍해 바다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옷이 젖었을 것이에요. 그 은혜로.

 

그런데 놀랍게도,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던 영적 어린 아이들을. 세례 후에

하나님께서 다른 곳이 아니라 광야로 데리고 가서, 걸음마를 가르친다는 거예요.

 

어디에서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다른 곳이 아니라

광야에 들어가서 걸음마를 배웠습니다.

 

우리 어린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쳤을 때,

제일 먼저 가르치는 것이 똑바로 걷는 법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누누이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으면

우리의 몸이 날마다 촉촉이 젖어야 할 것이고 (늘 구원의 은혜 가운데 살아야 할 것이고)

 

그리고 젖은 어린아이와 같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을 붙잡으시고

무엇을 가르쳐줘요? 걸음마를 가르쳐줘요.

그럴 때 좌로, 우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걷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악취미 가운데에 하나가, 사람들 걷는 모습을 잘 관찰해요.

보통은, 자기가 어떻게 걷는가 생각도 안 하고 걸을 텐데

다른 사람 걷는 것을 가만히 보면,

팔자걸음을 걷는 사람도 있고.. 별별 사람 다 있어요.

 

그런데 신앙의 길을 걷는 모습도 똑같습니다.

-어느 사람은 갈지자 걸음을 걸어요. 한 잔 했기 때문에. 왜 한 잔 했습니까?

세상에는 여러분과 저를 취하게 하는 수많은 영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돈일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여러분들과 나로 하여금 똑바로 걷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수많은 귀신의,

섞인 물을 마시게끔 하여서

람들을 보면 이렇게 걷기도 하고 저렇게 걷기도 하고..

 

그러나 여러분들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진정으로

세례의 의미를 알고 새로운 신생의 의미를 안다고 하면

하나님과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걷는 일에 대해서 관심을 쓰십시다.

똑바로 걷는 일이에요.

 

/////////////////////////////////////// 여기까지만 녹음합니다 //////////////////////////////////////////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잘 걸으면, 멋지게 걸어야 합니다.

똑바로 걷고, 우아한 걸음도 좋지요.

 

왜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치 걷는 것과 같다는 것이에요.

 

 

 

세상에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좌로나 우로나 왔다 갔다 하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숙한 신앙인은, 똑바로 걸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우아하게 걷는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 우리 주위에 간혹 가다가 있습니다.

 

앞서 서두에 말씀드린 일본 선생님도 그렇고요.

 

 

 

풍랑 때문에, 시험 때문에 너무 어려워요.

 

재산을 잃기도 하고, 건강을 잃기도 하고, 참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어떻게 저 사람은 감옥 속에서도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어떻게 인생을 다 파산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힘든 가운데에서도

 

신앙의 길을 꼿꼿이 걷되 더 훌륭한 것은 우아하게 걸을 수 있을까.

 

 

오늘 날 현대 그리스도인들, 여러분들과 저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강인한 그리스도인들이 필요할 때에요.

 

 

 

엄마가 아빠가 자녀를 키우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인생길이 힘들지만 똑바로 길을 걷게 하는 것.

 

치우치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말씀 묵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주제

 

 

 

 

 

◑본론/ 우아하게 걸으려면,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1~2

 

 

 

▶오늘 본문에 독특한 말씀이 있는데 "묵상"에 관한 것입니다.

 

 

그 전에 개를 키워본 일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개들이 마루에 이제 어른들이 식사를 하다가

 

오랜만에 고기를 먹고 뼈를 던져주면, 개가 얼마나 좋아합니까.

 

 

 

개가 주인을 가만히 쳐다봐요. 쳐다보다가 한 줌 안주나 하다가 던져주면

 

그것을 가지고 꼬랑지를 치고 너무 좋아해요. 그리고 마루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니면 저 마당 한복판에서 그 뼈를 놓고

 

자기 앞발을 가지고 앞으로 뒤쳤다 하다가, 씹기도 하고 핥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성경에서 ‘묵상’이라는 말이 바로 그 뜻입니다.

 

 

 

그런데 그 광경을 가만히 보면, 개가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몰라요.

 

얼마나 좋은지 꼬랑지를 치면서 정말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 개에게 있어서, 먹는 일이 심각한 일이죠.

 

단순히 장난삼아서 하는 것이 아니고, 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먹되.. 먹는 일, 이것이 없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즐기죠.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즐거움 + 진지함을 가지고

 

개가 ‘내가 이것(뼈, 식량)이 없으면 죽는다’ 하는 거예요.

 

이것이 내 인생에 가장 귀중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먹으면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것.

 

오늘 성경에서 시편 1장에서 말하는 주야로 주의 말씀을 ‘묵상’한다 했을 때,

 

그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성경 가운데에 또 달리 나와요.

 

이사야서 38:14절을 보면.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같이 슬피웁니다’ 할 때

 

‘구구구 슬피운다’눈 말이 히브리말로 묵상이라는 뜻의 ‘하가’라는 말입니다.

 

 

 

*개가 뼈다귀를 단순히 (노래하는 심정으로) 즐거워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게 없으면, 내가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즐거운 소리를 낸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내는데,

 

즐거움과 +  슬픔과 절박함이 동시에 묻어나오는.. 그런 ‘발성(히. 하가)’인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지금 너무 어렵습니다. 내가 너무 힘이 듭니다. 하나님 나를 돕는 자가 되어 주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할 때, 기도하는 모습.

 

하나님의 인도함을 간절히 사모하는 모습을 비유할 때

 

비둘기가 들판에서 구구구구 웁니다. 그 때 사용하는 말이 히브리 말로 ‘하가’.

 

(즉, 절박하면서도, 즐거운 울음소리입니다.)

 

 

 

아까 개가 뼈를 먹고 핥고 하는 히브리어로 ‘하가’도 그런 의미이죠. 시1:2

 

 

 

▶또 이사야31:4절을 보시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그 식물을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사자가 먹잇감을 앞에다 놓고 씹어대며서 입맛을 다시면서 으르렁거릴 때에도

 

히브리말로 ‘하가’라고 이야기해요.

 

 

 

 

제일 처음에 개, 그 다음 비둘기, 그 다음 사자. 공통점이 있을 거예요.

 

 

개나 사자나 비둘기나

 

그 먹이를 앞에 놓고, 울음소리를 발하고(하가) 있는데,

 

-그건 즐거운 소리임과 동시에

 

-나는 죽습니다. 라는 아주 심각한 울음소리인 것입니다.

 

음식을 찾았기 망정이지, 그 음식을 못 찾았으면.. 죽을 것이니까요.

 

 

 

▶시1:2절에서

 

주의 가르침, 주의 말씀을 내가 이렇게 ‘묵상’합니다. 할 때, 그런 뜻이라는 거예요.

 

 

 

그저 단순히 앉아서 큐티하는 것이 아니라,

 

묵상이란.. 심각한 + 즐거움입니다. 합쳐서 심각한 놀이.

 

 

 

개가 앞에 뼈다귀를 놓고 이것이 없으면 나는 죽는다. 하는..

 

그러면서 가장 즐겁게 먹는 것처럼

 

심각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 자체가

 

 

 

하나님, 하나님의 가르침이 없이는 나는 죽습니다.

 

하나님, 이 입맛. 하나님이 없으면 내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주여, 내가 주의 가르침을 이렇게 생각하오니

 

나에게 오셔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의미라고요? 그게 묵상의 원래 뜻입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내가 이 뼈를 핥기도 하고, 갉아먹기도 하고, 씹기도 하면서..

 

개들을 보면 하루 아침에 하지는 않죠.

 

한 번 먹고, 누웠다가 또 와서, 뼈를 앞으로 뒤로 재쳤다가 하면서

 

며칠 지나면, 그 큰 뼈가 씨도 보이지 않게 다 먹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사는 방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라는 거예요.

 

성경에서 이렇게 하가라는 말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길을 걸어가면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씹어 먹는 사람들!  즐거우면서도 + 절박하게!

 

 

 

그런데 주위에는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있다는 거예요.

 

결국 이 신앙의 장소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할 수 있는 수많은 어려움 가운데에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이것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은 인생 최고의 즐거움으로 이것을 삼는다.. 라는 거예요.

 

 

 

그는 여호와의 가르침, 여호와의 가르침을 인생 최대의 즐거움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해요.

 

그것 먹는 재미요. 다른 재미가 아니라.

 

 

 

▶본문 시1:1절이 말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은

 

천당/에덴에서의 행복도 아니고

 

에덴의 동쪽, 지독히 어려운 현실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걷되

 

우아하게 걷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과 저는 모두 다 하나님에 의해서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가 걷는데, 과거 내 인생 가운데에 한 80%는

 

취해서 좌로나 우로나 갈지자로 걸었습니다.. 하는 사람들 한 번 손 들어보세요.

 

 

 

그 길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는 거예요.

 

그런데 바람이 부는 것도 보아도, 내 가장 가까이에서 부는 바람이 가장 강합니다.

 

 

 

욥을 보아도 욥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로 하여금 마지막 순간에 넘어가도록 하는 유혹은 어디로부터 왔죠?

 

자기 아내로부터 왔습니다.

 

항상 바람은 바깥에서부터 부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불어요.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유혹의 소리일 수 있다는 거예요.

 

욥의 아내가 뭐라고 하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십시오.’

 

 

 

사실상 그 이야기를 들어보면 욥의 아내가 정말 나쁜 여자였을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자기 남편이 너무 힘든데

 

차라리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나는 것이 훨씬 낫지

 

그 고통하는 그것을 내가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달콤한 유혹의 소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요.

 

 

 

그 때 그가 그것을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신실함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정말 여러분과 저의 삶 가운데에, 가장 신실하다는 것을 믿고,

 

그가 걸음마를 가르쳐주시고, 나를 똑바로 걷게 하실 것이고

 

광야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내시고

 

나에게 길을 보여주시는 분이 하나님 외에 없다..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시선은 한 길로 오래 가야 합니다.

 

 

 

▶유진 피터슨이 그가 쓴 책에서 멋지게 말한 것이 이것입니다.

 

 

 

“ ‘똑같은 방향으로 오랫동안 순종하는 것’을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잃고 있습니다.

 

옆에 사람이 5년 후에도 동일한 신앙의 똑바른 길을 가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 흔치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10년 후에도 여러분이, 어제처럼 한결 같이 똑바른 길로

 

올곧게 천성을 향해서 길을 떠난 하늘 나그네처럼

 

똑바로 걷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십니까.

 

 

 

(5년, 10년 지나면, 똑바로 걷던 사람도,

 

다 치우쳐 곁길로 빠진다는 작금의 현상을.. 유진 피터슨이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똑바로 걷게 하는 하나의 방편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을

 

개가 뼈를 씹고 핥고 삼키고 먹고 즐거워하고,

 

 

 

주위에 많은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이 수많은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똑바로 걷되 우아하게 걷는 길은.. 바로 묵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행복이란 것은 돈이나 명예나 학벌에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읊조리고 씹어 먹고 삼킴으로써

 

영양을 충분하게 받을 뿐만 아니라

 

 

 

자기 마음이. 즉 여러분과 저의 온 삶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 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서두에 설명한, 그 일본 여선생님 처럼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