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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

LNCK 2014. 6. 29. 09:28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 - YouTube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민족            롬3:1-8, 살전2:3~4                 2014.05.14.설교녹취, 출처

 

할렐루야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 로마서 3장 1-8절까지 말씀이 되겠습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내용은 저도 최근에 깨달은 것입니다.

지난 주일 3부 예배시간에 기도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서구 유럽은 지난 1500 년동안, 기독교 신앙을 수호하고 세계 전달할 사명을 맡았지요.

기독교가 다른 곳에도 퍼져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시에

기독교 신앙을 발전시키고 전파할 사명을 맡은 지역이 서구 유럽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의 심장부인 바티칸이 어디있습니까? 로마에 있습니다.

종교 개혁이 독일에서 일어나고, 개신교가 유럽에서 탄생했고

기독교 교육과 신학이 유럽에서 발전했습니다.

 

유럽에서 탄생한 모든 대학들은, 원래 성직자를 교육할 목적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을 맡는다는 말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문 롬3:1~2절에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맡았다 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너무 평범한 단어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합니다.

 

‘맡았다’ 라는 말은 ‘위임을 받다. 위탁을 맡다. 믿고 맡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악성경에서 이말은 사도 바울만이 사용하고, 개인에게 적용합니다.

 

자신이 복음을 ‘맡았다’ 라는 말을 사용하고,

디모데에게 네가 ‘맡은’ 사명이라고 말하고, 디도에게도 이 말을 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오늘 본문에서는 개인이 아닌 유대인이라는 한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한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이라는 한 민족에게

당신의 말씀을 맡기셔서, 그것을 보존하고 전하고

세상을 가르칠 책임을 주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선민이 된것이고,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이고

이스라엘에서 선지자들이 나온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혈통으로 오신 것이고,

그리고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이 다 유대인들이고 사도들이 유대인 출신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복음을 맡은 사명을 상실했습니다. 어떻게 상실했느냐,

(그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이 설교의 주요 논지입니다.)

 

▶1. 유대인의 초대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첫 그리스도인들은 다 유대인들이고, 사도들도 유대인들이였지만,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할 즈음에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주후 70년경에 유대인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그때부터 유대교 와 기독교는, 다른 종교가 되고,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을까,

그래서 그가 나중에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심이 없다’고 말한 이유가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말한 겁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의 후회함이 없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 사명을 유대인들이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1500년동안 기독교 신앙을 건사하고

그것을 보존하고 세상에 전할 책임을 이방인인 서구 유럽이 맡았습니다.

 

▶2. 유럽의 기독교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서구 유럽도 그 사명을 상실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게 바로 2차대전 중의 유태인 600만 학살 사건 때문입니다.

그것은 나치 독일이 한 짓입니다.

유럽인들이 어느 정도 동조하고 동참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핍박하고 박해한 것으로 보게 된 것이죠.

그들이 유럽의 기독교를 볼 때, 유대인을 6백만 명 학살한 문명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유대인 민족에게,

서구 유럽이 기독교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걸림돌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민족이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어서, 결정적인 걸림돌이 발생하면

그 거리낌을 베푸는 주는 민족은

이제 더 이상, 복음을 맡을 수 있는 사명을 간수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유럽의 기독교인들을 유태인들이 볼 때마다,

과거의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를 6백만 명이나 잡아서 죽인 문명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들이 전달하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 걸림돌이 발생하는 한, 유럽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유럽의 기독교가 급속도로 쇠퇴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봅니다.

사명을 상실하니까, 이제는 능력도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명이 없는데 은사가 왜 필요하고, 능력이 왜 필요합니까,

사명을 상실하게 되니까 더 이상 능력을 소유하지 못한 것입니다.

 

최근에 들어서 서구 유럽에 유명한 설교자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단 2명을 들어봤는데 한명은 존 스토트 목사님, 영국의 성공의 목사님.

두 번째는 독일 출신의 라인하드 본케 라는 분,

그러나 그분은 유럽에서는 사역하지 않고 주로 아프리카에서 사역을 합니다.

 

그 두분 외에는 유명한 설교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과 비교했을 때 더 현저하게 들어나는가.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들의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비교했을 때, 유럽도 인구가 많고 만만치 않은 큰 대륙임에도 불구하고

그 온 대륙에 세계적으로 이름이 난 설교자의 이름이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은,

실제로 거의 없기 때문이 그런 것입니다. 그만큼 신앙의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왜 신앙의 능력을 상실했느냐?

사명을 잃어버리면, 능력은 자동적으로 떠나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인류의 중요한 한 민족(유대인)에게

이제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거리낌을 주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거리낌을 준다는 것이 그만큼 위험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복음을 맡을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일본은 기독교의 교세가 작기도 하지만,

과거에 이웃나라들에게 하도 잘못을 했기 때문에

일본이 복음을 들고 전한다면 누가 그것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적어도 독일은 과거를 회개라도 했지요 사과라도 했지요.

일본은 사과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복음을 맡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3. 미국의 기독교

그런데 서구 유럽 대신에

기독교 신앙을 발전시키고 전할 사명을 맡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의 역사가 240년 정도 되는데, 과거 200년 동안 미국은 유럽을 대신하여,

기독교신앙을 발전하고 신학을 발전시키고,

그리고 신앙을 세계에 전하는 사명을 맡았습니다.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 선교사 수가 제일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말 21세기 초에 결정적으로 미국이

이 사명을 잃을 수 밖에 없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게 바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게 왜 결정적으로 그들로 하여금 사명을 잃는 결과를 낳느냐,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교도들에게, 미국은 이슬람을 쳐들어오는 나라로 인식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4/1~ 3/1을 차지하는 그 거대한 문명(이슬람)이

미국을 어떤 세력으로 보느냐, 자기들을 쳐들어오는 침공하는 세력으로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믿는 기독교, 미국이 전하는 기독교에 대해서

자동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젠 미국도 인류의 상당부분에 대하여 거리낌을 느끼게 만드는 나라가 되어버렸어요.

 

아마 조지 W.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계획할 때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다수 보수 기독교인들도 이것을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미국은 강한 국가요, 군사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강한 국가요.

그 강한 힘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문명으로서 전 세계적으로

어떤 책임과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땅 끝가지 드러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 땅 끝이 이슬람 문명이에요. 전부 이슬람 문명, 국가입니다.

 

복음이 아직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인류의 3/1을 차지하는 거대한 문명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미국을 바라볼 때, 미국은 이슬람 국가를 쳐들어오는 서구 국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서구 유럽은 유태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어렵게 되었고,

미국은 이슬람 문명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그러나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유대 민족이 민족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어느 한 민족이나 문명에게 말씀을 맡기실 때가 있는데

서구 유럽에게 1500년 동안 맡기셨지만, 이제 그 사명을 잃어 버렸고

미국에게 지난 2백 년 동안 맡기게 되었는데, 미국도 잃게 되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맡는 자는 어떤 자격이 있어야 하는가요?

데살로니가 전서 2장 3절4절을 찾아봅시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3-4절 낭독.

: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여기에도, ‘복음전할 부탁을 받았다’ 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복음을 위임 받았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셨습니까,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었다’ 그랬습니다.

 

옳게 여겨 주셔야 복음 전할 부탁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이던 민족이던, 아무나 자기가 원한다고 자원한다고 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옳게 여겨주셔야 사명을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옳게 여겨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산상수훈에 나오는 사람의 모습일 거라고 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옳게 여기실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바로 여기에 등장하는 아홉 가지 속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마태 5장 3절부터~12절까지 낭독)

 

이제 9가지 복이 있는 사람이 나오는데,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이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예수님을 인하여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저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하는 사람.

 

이것이 9가지 복을 받은 사람인데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덕목이기도 하지만

복음을 맡은 자가 가져야 될 덕목이기도 합니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

이러한 덕목을 가진 사람에게 신빙성이 있고,

이러한 덕목을 가진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듣습니다.

 

이와 같은 덕목을 가진 사람,

즉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예수님을 인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

 

여기 어디에도, 그들의 국가가 부강해서 떵떵 거린다던가

국수주의자가 돼서 자기 민족만이 잘랐다고 자랑한다던가,

자기 소유, 부유함을 자랑하며 교만하다 던지

이런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고,

 

하나같이 연약함 중의 자기의 약함을 알고 애통을 해본 적이 있고,

심령이 가난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사람을 화목하게 할 줄 알고, 의로 인해서 핍박을 받아본 적이 있고,

예수님으로 인해 고난을 당해본 적이 있는,

 

그런 민족, 그런 나라,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복음을 들고 올 때

거리낌이 되지 않고, 마음을 열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힘에 의존하기 보다는,

힘 없는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고

힘을 과시하는 자에 대해서 분하게 여길 줄 아는 그런 정서,

그런 정서가 9복에 포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민족이 없습니까?

대국으로서 떵떵거리는 민족보다는, 정이 많고/ 잘 울고/ 긍휼이 여길 줄 알고/

온유하고/ 다른 민족에게 경계심을 갖지 않는 민족.

그런 민족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마음의 빗장을 내리고 경계심을 갖지 않고.

누구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바로 우리가 우리민족의 단점이요, 우리 민족정서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했던 면이

반드시 단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의에 주리고, 약한 자와 같이 긍휼하게 여길 줄 알고..

이런 정서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민족도

미국이나 중국처럼 대국 정서를 가지고 떵떵거리고 담대하고 냉철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건 인간적인 욕심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말씀을 맡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옳게 여겨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을 맡는다’는 말은, 그저 신앙이 부흥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맡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을 놓고 있으면 안 되는 이유는,

우리보다도 온유하고 더 심령이 가난한 민족이 세상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또는 남아메리카의 나라들은..

아르헨티나 사람이 로마 교황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닐 수 있어요.

남아메리카 그들은 단 한 번도 떵떵거린 적이 없고

우리보다도 더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벌써 많이 세련되어가고, 우리는 가진 것에 익숙하고

자랑하고 성미가 급하고 교만한 그런 민족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세상에는 온유하고 겸손한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을 잃지 않도록 힘써야 하며,

어떤 덕목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지를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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