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계보와 동정녀 탄생 마1:17~25 인터넷설교녹취, 편집
※아래 예수님의 계보까지 보세요.
◑복음서의 저자들은 왜 복음서를 쓰고자 했을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이 시키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시키셨을지언정, 왜 그 시점에 이 내용을,
글로 남길 필요를 느꼈을까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초기에는 증인들이 아직 생존해 있었고
증인들의 입을 통하여 예수님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굳이 글로 남길 필요가 없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증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증언을 후세를 위하여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아마 첫 세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죽기 전에 예수님이 재림하시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인자가 오리라’ 이런 말씀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이 지체되고, 이들 증인들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두로 듣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이후의 세대에게 남기기 위하여, 문서로 쓸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복음서를 쓸 필요를 느꼈던 이유는, 이단의 출현 때문입니다.
이단은 21세기만의 현상이 아니고, 교회 역사상 항상 이단이 있었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도 이단이 많이 출현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한 많은 그릇된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셨고,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셨고,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가장 권위 있는 것은 사도들의 증언입니다.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복음을 증언했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음서가 신뢰할 수 있는 증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도들의 도장을 찍듯이, 사도들의 경험, 사도들의 증언을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이런, 저런 말을 했고, 사도들의 기록에 의한 것이고,
사도들이 보고 목격한 것이다..
이것을 가장 신빙성 있는, 확인할 수 있는 증거로 본 것입니다.
3)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역사성이라는 것은 기독교만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 그 부분입니다.
역사성 historicity 이것은 전설이 아니고, 신화가 아니고,
또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확인할 수 있는, 인간의 역사 속에 분명히 일어난 사건에 기초한 것이다.
이것이 역사성이에요.
만일 예수님의 탄생에 역사성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에 역사성이 없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공생에든 예수님의 교훈이 역사성이 없다면
우리가 굳이 그것을 따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우리가 어떤 것을 말하기 전에, 제일 먼저 확인해야하는 것 중에 하나가
‘이것이 진짜 일어난 일이냐, 이것이 정말 역사성이 있는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책은 복음서가 아니고,
바울 서신이 제일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바울 서신중에도 데살로니가전서가 제일 먼저 기록된 책이라고 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잘 정의했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무엇을 생략했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삶에 대한 기록을 생략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고,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사도바울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아마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직접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또 사도바울이 판단하기를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다.. 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가 직접 목격하지 않은, 예수님의 삶과 교훈을 생략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서신만 읽어서는,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가르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공생애를 목격한 사람이
그것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서가 기록된 시점은
예수님이 승천하신 시점으로부터 시간적으로 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주전 4년에 태어나셨다고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신 시점이 주후 30년 경이 됩니다.
그런데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이 주후 50년에서 6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본다면
예수님의 승천으로부터 마가복음이 기록될 때까지 몇 년의 갭이 있었습니까.
20년에서 30년의 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세월이 아닙니다.
여러분, 20년~ 30년 전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 않습니까.
20년 금방 지나갑니다. 88올림픽이 엊그제 일 같아요.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때, 그 때에 사람들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공생에는 그렇게 먼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수 백년이 지나서 썼습니다. 그래서 신빙성이 낮습니다.
그것이 왜 중요 하냐.. 이것을 중요시 강조하는 이유는
아직 기억이 생생했을 때에 복음서를 썼기 때문에
복음서의 내용을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다른 역사적인 기록은 그 갭이 훨씬 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이라던가
‘삼국사기’라던가, 타종교의 경전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타종교의 경전은 그 기록한 사건이 생겼을 때와, 처음 기록했을 그 사이에
수백 년이 지나간 그런 종교도 있습니다.
거기에 비교하면 신약성경은 상당히 신뢰할만한, 그런 문서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마태복음을 마태가 썼다고 보는 이유가 무엇이냐?
제목이 마태복음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닙니다.
원래 원문에는 제목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후에 성경을 사람들이 사용하게 되면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원본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누가 썼느냐 하는 기록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첫 번째 복음서를 마태가 썼다고 보는 근거가 무엇인가 하면,
1) 모든 교회 교부들이 그렇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부’란,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기독교에 지도자 역할을 했던 아버지와 같은 인물이다. 해서 교부라고 부릅니다.
많은 교부들이 있었습니다.
파피아스라는 교부가 쓴 책을 보면, ‘마태가 자기가 아는 데로 썼다’ 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을 일컫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마태가 누굽니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요,
마태가 원래 무슨 직업 출신입니까. 세리출신이에요.
그런데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실 때
‘레위’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막2:14, 눅5:27
그런데 정작 마9:9절을 보면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쫓으라하시니 일어나 쫓으니라’
그러니까 똑같은 인물에 대하여, 마가와 누가는 레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마태복음에만 마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마태가 이 복음서는 제가 썼습니다. 라는 말을 간접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마태의 흔적이 여기에 나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보
▲자 그러면 이제 마태복음 1장으로 돌아가서 오늘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1절부터 17절까지는 예수님의 족보를 말하고 있습니다. 계보라고 하지요.
예수님의 족보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그리스도까지
그런데 마가와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족보가 나오지 않는 것뿐만이 아니고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는가하는 사연이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신 것,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
이런 것들이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전혀 나오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탄절에 쓸 성경구절이 전부 다 마태와 누가복음에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 마가와 요한은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적어도 마가의 입장을 추측해보건대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하셨는가를 아는 것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것에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군가를 세상에 소개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이 어떻게 탄생하셨는가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마가는 예수님의 탄생사건을 제외시키고 복음서를 쓴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넘었지요.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합니다.
케네디하면 생각하는 것이 그 부인 재클린, 또 케네디의 외모 이런 것입니다.
그런데 뭐니, 뭐니 해도 케네디하면 사람들이 제일 기억하는 것이 뭡니까.
그의 죽음이죠. 그가 어떻게 암살당했을까.
정말 오스왈드가 혼자 행한 일일까. 아니면 배후에 음모가 있었을까.
케네디하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생각하고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이
그의 죽음이에요.
그래서 케네디의 유족들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케네디가 어떻게 죽었는가 하는 것 보다는
어떻게 살았는가를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 일리 있는 말 아닙니까.
그의 생애만으로도 충분히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는데
왜 사람들은 케네디의 죽음만을 생각하려고 하느냐라는 말인데요..
아마 마가가 예수님의 탄생스토리를 마가복음에서 생략한 이유도
예수님이 어떻게 태어났느냐하는 것보다는
예수님이 어떻게 사시고 무엇을 하시고 어떻게 죽으시고 부활하셨는가를 알기를 원합니다..
라는 뜻이 담겨져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그것은 마가의 이야기이고
마태는 예수님의 계보와 예수님의 탄생스토리를 자세히 기록을 했습니다.
▲1. 요셉의 가정에서 태어나신 이유
그런데 마태복음 1장을 꼼꼼이 읽으신 분들은 궁금증을 가지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에요.
본문 마1:18절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러니까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것이지
요셉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왜 1절부터 17절까지, 예수님의 계보를 말하는데
그러니까 1절부터 16절까지는 요셉의 족보를 말하는 것이고
그러나 요셉은 예수님의 친아버지가 아닌데
왜 이 복음서의 서두부터 어차피 예수님의 친부가 아닌 요셉까지 이어지는 족보를
그렇게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 여러분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 다윗의 왕통을 계승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함입니다.
소위 ‘다윗 언약’(삼하7:12~16)에는, 다윗의 왕권과 그 나라가
영영히 계속될 것을 예언하고 있고,
실제로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야도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고,
명분상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입니다. 주1)
메시아라는 말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다윗의 혈통을 쫓아 태어나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가 되셨지만
법적인 아버지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쫓아 태어났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법적인 정당성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하자가 있어서는 안돼요.
영적인 하자나 도덕적인 하자나 법적인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장관을 임명하기 위해서도 철저한 청문회를 하지 않습니까.
장관이 되기 위해서도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
인류의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어떠한 하자도 있어서는 안돼요.
율법에 관점에서든/ 영적인 관점에서든/ 심지어 신체적으로도
예수님의 몸에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되었어요.
그 이유는, 구약성경에 하나님에게 제물을 바칠 때, 장애가 있는 짐승을 바치면 안됐죠.
눈이 없다던가 뭐 다리가 없다던가. 이런 장애가 있는 양이나 염소를 바치면
하나님이 안 받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하자가 있어서는 안 되지만
신체적으로도 하자가 있는 분이면 안 되는 굉장히 까다로운 과정,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다 이루신 것이고, 그 요구를 다 충족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구세주가 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2. 마리아의 몸을 통해 태어나신 이유
그러면 이 다윗과 아브라함의 왕통을 쫓아 태어나신 것은 그렇다하더라도
그러면 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셨느냐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동정녀마리아에게 태어나신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른 말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나심으로
원죄를 타고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는 부계를 통해서 이어집니다.
아버지를 통해서 원죄가 이어집니다. 하와도 타락을 했지만
그럼에도 원죄는 아담으로부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육신의 아버지가 없이, 성령을 통해 잉태되심으로써
원죄의 혈통으로부터 배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는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자범죄도 없어야 하고 원죄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태어나셨어요.
이것은 창3:15절의 ‘여인의 후손’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예수님은, 혈통적으로 다윗의 후손입니다.
눅1장의 족보를 보면, 그 계보가 다윗, 아브라함까지 올라갑니다.
눅1장은, 모계사회적 족보이고
마1장은, 부계적 족보입니다.
※모계사회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데, 먼저 모계사회의 특성을 공부하시면, 쉽게 이해됩니다.
문화인류학의 연구에 의하면, 모계사회에서, 집에서 아버지 역할을 하는 사람은 ‘삼촌’입니다.
아브라함 시대가 모계사회였고, 그래서 삼촌 라반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21세기 지금까지도, 유대인은, 모계사회적 특성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엄마가 아주 중요합니다.
마1장의 계보는 실제로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명분적 왕통) *부계사회 혈통
눅1장의 계보는 마리아를 통해.. 내려온 것입니다. *모계사회 혈통
실제 핏줄 상으로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걸 밝혀주는 것이 눅1장의 족보입니다. 모계사회 족보로, 다윗의 핏줄이 예수님까지 전달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예수님은
명분적으로, 마1장 족보를 통해, 다윗 왕통의 명분적 계승자이며,
핏줄적으로, 눅1장 족보를 통해, 마리아까지 이어지는 실제적인 다윗의 후손인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이 모든 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것 시험에 나와요?
그러나 신앙을 논증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무지해서는 안돼요. 세상 사람들이 물어볼 겁니다...
.........................
주1)
법적인 명분, 이것은 21세기를 사는 이방인인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결론으로 가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 결론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법적인 명분이 있어야 되었어요.
그 법적인 명분이 없이 애초부터 사람들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일생을 보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법적인 정당성을 위하여 해야 했던 일들이 있습니다.
법적인 명분을 얻기 위하여 예수님이 하셔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 대표적인 것이 세례입니다. 예수님이 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마3장에 보시면
‘이 때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절이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예수님은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어요.
만일 세례를 한다면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정당할 정도에요.
왜냐하면 더 위에 계신 분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 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느냐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의를 이룬다는 말은 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킨다. 라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은 백 프로 충족시켜야 될 필요가 있었어요.
그래야 메시아로서 정통성을 가지실 수가 있었어요.
우리 입장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으로 족하지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어야 하고
다윗의 자손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메시아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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