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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의 인생

LNCK 2014. 7. 30. 09:31

◈그러므로의 인생         롬12:1~2          인터넷 설교 스크랩, 녹취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복음을 믿은 사람은, ‘그러므로의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의 인생’은, 이 설교 제목인데,

롬12:1절이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것에 착안해서,

롬1~8장까지 복음의 원리를 충분히 습득한 후에, (9~11장은 이스라엘의 구원이고)

롬12장부터 복음을 믿는 ‘삶’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성경말씀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또 듣고.. 기독교 핵심의 진리기 때문에

우리 신앙의 밑자리에 다 깔아 놔야 돼요.

 

언제나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힘은 복음에 있거든요.

이 구원의 놀라운 도를 가리켜주신 이것을, 내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깨닫고, 붙잡고, 사로잡혀있을 때 ‘그러므로의 생애’가 시작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복음의 사실들이

정말 믿음으로 받아들여져지고,

정말 오랜 세월동안 수없는 백성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몸부림을 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하는 기가 막힌 깨달음!

 

※롬1:17절의 ‘믿음’은, 합2:4에서 따온 것인데,

그 의미는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견딤’이란 뜻입니다. -클릭-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이것을 깨달은 순간에

온 영혼이 전율하는..

 

오늘도 수없는 사람들이 그 성당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며, 피를 철철 흘리면서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조금이라도 선을 행하고, 포인트로 쌓아가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율법의 의를 위해서 애쓰는 시대의 참담함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복음에서 멀어진 저주스러운 삶인지 깨닫게 되고,

 

마침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이

섬광처럼 자기의 영혼에 비출 때.. 빛을 본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당신의아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다 해놓으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다 해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케 하시고,

그 안에 놀라운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그 복음을,

 

 

우리 삶의 밑자리에 깔고 있으면

그 감동이 날마다 파도처럼 나의 영혼을 흔들면서

내 안의 새로운 삶으로 변화가 일어나 게 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가 성경공부를 할 때,

정말 이 진리를 복음을 정확하게 내 삶에 셋업(장착)을 시키고,

그래서 오늘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삶에 변화로 나타나야 하는 거죠.

 

오늘날 우리의 최대 화두중 하나는 우리의 <삶>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의 삶’ (롬12:1~2절을 뜻함) 이 따라오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산 위에서 돌을 닦는 수행종교가 아니에요.

혼자서 기이한 것을 깨달아서 해롱해롱 하면서

그저 공허한 도를 말하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은.. 구체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를 정확하게 듣고 깨닫게 되면.. 삶이 이어지게 돼 있어요.

 

‘그러므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복음이..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둘을 무리하게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연결된다니까요.

 

▶그래서 마태복음 7장24절에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다 끝내시고 제자들을 향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같다..’

 

여러분 여기에 보면 ‘내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랬어요.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하나님의 진리를 듣고 행함으로 구체적으로 삶이 들어나는 그때

'자기 인생의 집을 반석위에 지은 사람'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의 신앙’이란,

복음을 경험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정확하게 경험한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이 터닝 포인트가 일어나요.

new life,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2:1절부터는, <구원, 그 이후의 삶>이라는 거죠.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가야 하는가,

그 이전의 삶과 구분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의 터닝 포인트, 과거와 현재를 정확히 구분 지을 수 있는,

‘정확하게 내 인생에 그때부터 변화가 일어났어요!’하는 그 때,

여러분 어때요, 그런 경험하셨습니까?

그건 틀림없이 복음이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정확하게 경험하면, 그 순간부터 새로운 형태로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거듭난 삶이다', '회심의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사건이다'.. 등등 여러 가지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롬12:2절에 있는 말씀처럼

그때부터 우리는 비로소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새로운 삶이 new life 가 시작되는 거예요.

 

복음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허공 치는, 의미 없는 그런 단어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복음 안에서 변화된 내가, 어떤 존재인지 깨달으면

우리의 삶에 존귀함을 깨닫게 되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 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면,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면, 변화가 오게 될 수밖에 없어요.

터닝 포인트가 생기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애매모호 하게 변하는 게 아니에요. 확연하게 변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모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해석이 달라지고

자신의 내면의 심령의 변화가 오게 되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되고

우리의 생각이, 영의 생각으로 바뀌는.. 그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 신앙의 위기를 맞게 될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뭐냐면,

믿는다고는 하는데 믿음의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뭘까요?

 

실제적으로 우리가 믿는 게 아닐 수 도 있어요.

정말 우리가 믿는다면, 그 믿음의 사실이, 우리의 실제 삶에 나타나야 되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경우, 신앙이 어떤 형태로 흐르기 쉬운가 하면

신앙이 관념화 되는 겁니다. 추상적인 신앙이 되는 거예요.

 

죄로부터 건짐을 분명히 받았는데,

죄를 이기려는 구체적인 경험을 갖지 못한 채,

그냥 의식적으로 교회만 다니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것을, 머리로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는 것을 머리로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사랑의 하나님이

오늘의 내 현실의 삶과 깊은 연관을 맺는, 그런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되요.

 

여러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오늘도 매일의 일상 속에서, 인격적으로 경험해야 해요.

추상적이지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 사는 것이 분리 되지 않아요.

말과 행동이 분리 되어있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생명 없는 목석이나, 돌 형상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나에게 매일매일 다가오지 않으시면,

우리는 개념으로서의 신으로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은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그러므로의 신앙’, 즉 ‘크리스천의 삶’의 문제는

내가 억지로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인격적으로 찾아오신 그분이.. 내 삶에 변화를 일으키시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그 복음에 우리가 접속을 당하면

심장을 멎는 듯한,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건 관념이 아니죠. 구원은 이론이 아니에요.

 

정말 내 삶의 모든 과거의 무거운 죄 짐으로부터 벗겨주시고

구체적으로 내 삶의 내면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셔서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도 여러분 껍데기의 변화가 아니에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영어로 change 가 아니에요. transform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transform를 받아

완전한 변형을 일으키는, 그런 변화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져다주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모양의 변화는, 속사람의 변화로부터 기인합니다.

▶그래서 ‘그러므로의 생애’란 내가 신자가 된 분명한 이유를 발견하고

그 복음을 경험하면,

인격적인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 안의 변화를 일으키는 역사가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은

‘내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가, 복음의 합당한 삶이 내 안에 일어나고 잇는가?’

라는 질문들을 스스로 던져 봐야 되요.

 

복음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만나 뵐 때

우리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사,

구체적인 ‘그러므로의 생애’를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 ‘그러므로의 신앙’은, 오늘 12장부터는 <실제 헌신>을 말하는 거죠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하신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예배니라’

아주 유명한 말씀이죠.

 

사실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하나의 요절이

롬12장 1절과 2절이에요.

 

근데 특별히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로 드리라,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무언가를 섬기게 되어있어요.

돈에 한번 꽂힌 사람은 돈을 섬기고,

돈 버는 시간이 아까워, 가족을 돌보지 않고, 희생시키면서 까지 헌신하잖아요.

 

어떤 사람은 여자에게 꽂히면, 거기에 헌신하잖아요.

우리가 무엇이던/ 어디에든 헌신하게 되는데

그 헌신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복음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만난사람은.. 헌신의대상이 한분이죠.

 

여러분 누구에게 헌신 하냐. 무엇에 헌신할 것인가가 결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헌신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무언가 끌리니까, 가는 것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내 삶을 바칠 것인가,

여기에 인생의 질이 결정됩니다. 헌신한다고 다 같은 것은 아니죠.

 

하나님에 대해 헌신하게 만들고, 그 헌신도 다 달라요.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그 은혜에, 내가 깊이 사로잡히느냐에 따라서

헌신의 질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헌신을 해도, 때로는 내 감정에 의해서 체질적으로 열심인 분 들이 있어요.

자기 인간의 혈기,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또는 스스로의 만족에 의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헌신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바울을 보면, 그는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죽을 때까지 고난의연속이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게 진짜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헌신의 뿌리입니다. 그 헌신의 뿌리가 어디에서부터 나올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고 하는 뿌리,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해,

그 받은 구원의 은혜와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의 사로잡혀있는.. 그 뿌리에서 나온 헌신이에요.

 

저는 우리의 헌신이 겉모양이 아니고

속에서 나온,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후의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이 나올 때, 이 헌신은 자발적인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늘 주시는 건 뭐냐면요. 은혜를 주세요.

그리고 그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 헌신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헌신을 요구하기보다 사랑을 주세요. 은혜를 주세요.

그래서 그것을 받고 깨달은 사람이, 깨달은 만큼,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이 깊으신 분들은, 어떤 시련과 고난과 유혹이 와도

누가 어떤 소리를 해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 헌신의 뿌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 너무 크니까,

만삭 되지못하여 난 자 같은 나를 괴수인 나를 구원해 내신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수없는 불이익과, 억울함과 환란과 고난이 찾아와도

그가 멈출 수 없이 그의 헌신이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 은혜의 한가운데는 복음이요.

그 복음은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 이었다는 말이죠.

 

▶여러분 이런 사람들이 하는 사역은 눈빛이 달라요.

여러분 이 바울의 헌신과 구분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율법주의자들이에요.

율법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굉장히 부담스럽죠.

 

뭔가 하나님께 '포인트'를 얻기 위해 애를 쓰는 거예요.

그래서 율법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나, 그 모든 게 부담스러운 거예요.

 

하기는 해요. 그런데 기쁨과 자원함이 나오지 않아요.

강요함에 의해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자발성이 없는 거죠.

 

여러분, 은혜를 체험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해요.

은혜를 체험하면, 신바람이 나요. 너무 신이나고 행복하죠.

 

그 일만 생각해도 행복해지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와 분리된 헌신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12장 이후의 살펴볼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하고 살아야 될 삶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에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12장이후의 다양한 말씀(계명)들을, 소화해낼 길이 없어요.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어떻게 이걸 순종하겠습니까.

 

오늘 12장 이후 수없이 펼쳐질 하나님의 말씀들이 부담으로 온다면

아직 율법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 '부지런히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주를 섬기라',

한마디, 한마디 모든 것들이 율법 안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은혜 안에서 주어지는 말씀들이고

이런 말씀들이 은혜 안에 있을 때는, 넉넉하게 감당하고, 부담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오늘 또 교회를 다니지만, 은혜 아래서 그 은혜를 깊이 체험한사람들은

어떤 것도 부담스럽지 않아요. 기꺼이 즐거이 섬길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신약에는 안식일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죠,

구약의 개념은 하루의 개념이지만, 신약은 주7일이 전부 주의 날이에요.

주님의 날이, 안식일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십일조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의 것이라고 얘기해요.

그러나 신약으로 오면 더 발전 되요.

이것은 구약시대에는 억지로 10에 1조를 억지로 드리는 거예요.

아니 율법적으로 드리는 거예요. 신약에오면 십의 십이 다 하나님 거예요.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나의 주가 되시면, lordship 이 되시면,

우리의 모든 영역, 내 모든 가진 게, 모두 주님의 것이에요.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기꺼이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 삶은

내가 어떤 것을 주장하지 않고, 그분을 주인으로 삶고 온전히 순종할 때

주님의 통치아래서, 내 삶이 천국으로 변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오늘 이 바울이 경험한 복음을 우리가 경험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그 때에 우리는 ‘그러므로의 인생’이 시작되는 거예요.

 

앞부분 롬1~8장에는, 하나님과의 만남, 깊은 복음에 절여지고 담금질되는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의 빛, 구원의 빛을 발견하고

나를 구원하신 놀라운 은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그 놀라운 복음의 은혜 아래에 완전히 사로잡혀있을 때

바울은 이 은혜에 완전히 사로잡혀있었기 때문에

그 소수, 지극히 소수라 할지라도

 

전체적인 로마의 대다수의 사람들에 비해서 미미했던, 

그 소수의 숨겨진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두나미스가 된다고.

자랑스럽게 외친 거죠.

 

그러면서 1장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이 구원은

우리의 삶을 바꾸고도 남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죠.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진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믿는 이 진리에 대해서, 구원의 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것이야말로 내 삶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영혼을 결정하는 확고한 유일한 복음이라는 사실을 붙잡는..

 

그래서 이세상과의 어떤 것과도 양보할 수 없고, 타협할 수 없는

절대적 구원의 진리를 여러분의 것으로 받아서,

오늘도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라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흘러나오는 내 삶이, 날마다 새 삶으로 변화되고,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만 내 인생을

온전히 기쁨으로 섬기겠다고 하는 결단이 일어날 때

우리는 가장 멋진 인생, 위대한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래된 삶, 옛 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니고, 세상에 허망한 것을 좇는 인생이 아니라,

유일한 우리의 구원자 되신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기꺼이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서, 그분을 위해 살아가기로 결단하는 새로운 삶,

 

그 삶이 어떤 삶인가에 대해선 우리가 다음 주일부터 살펴보기 로하고,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분명히 알고

그리고 그 믿는 것을 따라

내 삶에 분명히 믿음의 믿는 사실이 삶으로 증명될 때

우리의 삶을 통하여 수없는 사람들이

'진리가 사실'인 것을 확인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