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자아 내려놓고 보화 얻기 1 / 허운석

LNCK 2014. 8. 15. 09:40

◈자아 내려놓고 보화 얻기 1/2       마13:44~48, 딛3:10~11         설교스크랩, 녹취

 

 

 

 

◑자신의 약함이 발견되면, 겸손해지니까 좋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믿고, 제가 아주 사랑했던 성경말씀이 이 말씀입니다.

마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제가 예수 그리스도 그 한 분을 얻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주님에게 드리고 싶었던 마음,

그것을 표현해준 성경 말씀이 이 구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내어 놓을 수 있는데 제일 못 내어놓는 것이 있습니다.

뭔지 아세요? 돈입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다보니까 너무 놀란 것입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 남편의 친구 분이신데, 과거에 남편과 신학교를 같이 다녔으나

중간에 그만 두시고, 지금은 양복점을 하세요.

 

이분이 항상 남편 목사를 만나면, 자신이 목회를 못하는 것에 대한 상당한 아픔이 있으세요.

하루는 제가 그 분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로님, 그렇게 목회 못하신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으시면

선교지에 교회를 하나 지어서 봉헌하십시오.

어차피 목회를 한다고 해도, 교회 하나 정도는 하나님 앞에 봉헌하게 되잖아요.

그러니 그렇게 하십시오.’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몸으로는 헌신하고 싶지만, 인간은 돈은 내기 싫은 거예요.

제가 그게 들키는 겁니다.

 

   그런데 장로님과 제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아무리 선교지 교회 봉헌이라 해도, 작은 돈이 아닌데,

   나보고 그 액수를 또 내라고 하면, 아마 저는, 드리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많이 드렸지만, 또 더 털어서 내라고 하면..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 맞지만, 주저하게 되지요.

   물론 주님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안 하시겠지만, 우리를 시험하실 때도 있잖아요.

 

▲우리는 몸으로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해요.

그런데 돈을 내라고 하면,

저도 지금도 헌금 하라고 하면 이 손이 막 오그라들어요. 속이 거북하고 그래요.

이게 어느 정도 깨져야, 진짜 물질에 대해 완전히 자유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지금 제가, 헌금 얘기를 드리는 게 아닙니다.

 

내가 안 깨지면.. 그게 발견된 기쁨으로.. 만족하시라는 겁니다.

적어도 그것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교만하지 못하고.. 겸손하게 되니까요!

 

이제는,

나의 부족한 모습, 내 덜 깨어진 자아가 발견될 때마다,

그런 내 자체 때문에 감사한 거예요.

 

① 아직 내가, 그 분야에서, 온전하게 된 것은 아니더라도,

내 꼴을 보고, 용서해줄 수 있는 주님이 계신다는 행복이, 제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돌아가셨고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 말이죠.

 

② 그리고, 그런 연약한 모습이 내게 없이는

결단코 우리는 겸손해질 수 없어요. 아시겠습니까.

 

내 꼴이 보여야지만, 남의 꼴을 판단하지 않는 겁니다.

나도 부족한데, 누구를 정죄하겠습니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이제는 내가 어떤 모습이 발견되던지 간에,

이 모습 때문에 내가 겸손해질 수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을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서, 완전히 깨어지는 것은, 주님이 앞으로 깨뜨려주시는 거예요.

주님이 임재 하셔야 만이, 내가 그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아직, 어떤 내 약한 부분에 대해서,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어떤 시험을 만났을 때,

내가 이렇게 반응하나/ 저렇게 반응하나,

부정적으로 반응하나/ 긍정적으로 반응하나.. 버릴 것이 하나 없는 거예요.

 

내가 그 시험/유혹을 이겼으면.. 그로 인한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돼요.

반대로 내가 그 시험에 졌으면.. 낙심이 들지만, 너무 깊고 오래 하지는 마세요.

 

내가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깨어지지 않는 나 때문에, 큰 소리 할 수 없는 나. 낭패스러운 나!

스스로 겸손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너무 감사한 거예요.

이 행복이 커야 되요.

이 행복이 커야 우리가 진짜 신이 나는 거예요. 주님 앞에서,

 

 

◑정죄의 마귀를 물리치십시오

 

그런데 우리가 시험에 넘어지면,

사단이 우리를 자꾸 정죄로 끌고 가잖아요. ‘너 그랬지?’ 자꾸 그럽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마귀한테 “그래, 내가 그랬다. 어쩔래?”

그랬더니, 정죄의 마귀가 싹 꼬리를 감추더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는, 사탄에게, 어떠한 정죄도 당하면 안 돼요.

여러분도 “그래, 내가 그랬다. 어쩔래?”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그렇게 인정하시고, 긍휼을 구하시면 됩니다.

정죄하는 것은 ‘주님의 몸’을 정죄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돼요.

 

디도서에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딛3: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스스로 정죄하는 것이 이단이라고 그랬어요. 딛3:10

 

나를 정죄하는 것은, '주님의 몸'을 정죄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정죄하면 안 되는 것이죠.

 

이제는 우리가 어떤 연약한 모습이 나타날 때에

바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이 이미 보혈을 흘리셨고, 이미 주님께서 다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믿는 믿음 가운데서 사는 것이죠.

 

 

◑보화를 차지하려면, 다 버려야 합니다.

 

농부가 밭을 갈다가, 보화를 발견했습니다.

상인이 값진 진주를 발견한 비유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보화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잖아요.

보화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이미 발견 했잖아요.

 

그 예수님을 얻기 위해서, 바울사도가 무엇을 하셨는지 아시잖아요.

자기 모든 것을, 배설물을 버리듯이 다 버렸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우리는 항상 경기(쇼크)가 일어나죠.

제가 이제 어디 가서, 본문을 읽으면, 성도들이 안 좋아해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 이 말씀 때문에 다 넘어져가지고 불편해 합니다. 마13:44

 

우리의 ‘소유’라고 하는 이것을 다 판다는 것.

거기에는 물질만 있는 게 아니고요,

 

어떤 분은, 물질은 쉬운데, 자아/자존심이 그런 것을

다 팔고, 버리기 어려워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 자존심을 내려놓아라.. 그래야 보화를 갖게 된단다!’

자존심은, 자기가 왕 되는 성품인데, 바로 마귀의 성품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의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자기 자존심을, 팔아치우지 못해서 그래요!

자 한번 우리가 한 번씩 해봅시다. ‘자존심은 마귀의 왕 같은 성품이다.’

 

우리는 다 신이 되고 싶은 것, 왕처럼 대우 받고 싶어 하는 것,

그래서 천국의 행복을 못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조금 나를 건드리기만 해도

그냥 상대를 쏘아부칩니다.

 

제가 아마존에서 복음 전할 때 그래요.

아마존에 뱀이 정말 많잖아요. 독사부터 여러 종류의 뱀이 정말 많은 곳인데

제가 그래요. ‘여러분, 뱀을 툭 건드리면 어떻게 하지요?’

그러면 원주민들이 ‘콱 문다’고 대답해요.

 

‘그럼 그 뱀 마귀가 어디에 있지요?’

‘우리 속에 있지요.’

너무나 정확하게 잘 표현된 것이죠.

 

이 속에 그 놈이 들어 있어서, 누가 나를 툭 건드리기만 하면, 확 열을 내는 거잖아요.

그걸 고상하게 표현하면 ‘자존심’이잖아요. 사실은 ‘마귀(적 성품)’입니다.

 

▲‘보화’와 바꿀 자기 '소유'에는, 우리의 자존심 말고도,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다 포함되지요.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라고 해도

깊이 들어가 보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그 내려놓는 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집에 사고 터져 보세요. 큰 환란 만나 보세요. 그 소중한 것들이,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주님께

우리는 이 삶을 드리는 것. 마음을 바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주님은, 우리가 마음을 드리는가/ 안 드리는가를 보시는 거잖아요.

 

우리 어렸을 때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하고 놀았잖아요.

우리는 날마다 헌 것을 드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새 것을 주시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무지해서, 내 ‘헌 집’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래서 ‘새 집’을 못 받는 것입니다.

 

사실 드리나 안 드리나 다 주님 것인데,

그리고 언제인가 내가 안 된다고 해도 언젠가 빼앗겨요.

 

그러니까 아주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얼른 얼른 드리는 것이 훨씬 낫죠.

그래서 우리가 이 ‘소유’를 (내 인격 포함 모든 것) 다 파는데, 우리 일생이 걸려요.

죽는 날 까지!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로 시작해서, 십자가로 끝나야 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 (자아의 죽음) 밖에 없어요.

 

오로지 내가 주인 된 것을 내려놓으면,

그 다음에는 주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거예요. 주님께서 창조해 가시는 거예요.

나의 삶을 주님께서 창조해 가시는 거잖아요.

 

그 분의 손에 나를 맡겨드린다는 것 자체가

십자가로 시작해서, 십자가로 끝나는 거잖아요.

그 분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만들어내실지.. 나는 몰라요.

 

그러나 아주 멋지게 만드실 것을 믿어야 하잖아요.

믿는 대로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여기 이제 그 다음에 보니까

마13:46절에 그렇게 여기에서 진주를 구하는 장사,

이 사람도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 그랬습니다.

온전한 보화/진주이신 예수님을 얻게 되었죠.

 

 

◑다 버리면 ‘권세’를 얻습니다.

 

예수님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다 얻은 거예요. 다 얻은 거예요.

여러분들은 그 비밀을 아시는지 모르겠어요.

 

이것은 정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그 분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권세겠어요.

 

다윗 왕에게 주셨던 그 권세. 요셉에게 주셨던 그 권세.

그 모든 권세들이 그에게 있게 되는 것이죠.

자기 소유를 하나님께 다 드린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런 왕권들이 있잖아요.

 

우리가 그것을 나를 위해서 쓰지는 않지만

형제를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겨 가는데 그것을 사용하지만

그 권세가 있잖아요.

 

▲그리고 여기 마13:47절에 보니까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그 심판하는 권세를 볼 수 있어요.

 

마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자기 소유를 다 팔아 보화와 진주를 산 사람들에게는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 심판하는 권세입니다.

※원래 심판하는 권세는 주님이 가지시지만, 성도는 거기에 동참할 수 있죠.

 

▲요한계시록 11;1~2절에도 ‘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는’ 것이 나와요.

하나님의 교회에, 성도에게 그 권세가 주어지게 되요.

 

굉장히 지금 말씀을 깊게 끌고 가고 있는 거예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성전을 측량하는 갈대의 그러한 권세들이에요.

어마어마한 권세입니다.

 

정말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는 일을 처리하실 때

‘내가 내 친구에게 말하지 않고’ 행하는 일이 없으시잖아요.

아브라함에게 그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 다음에 마13:52절에 보니까

천국에 제자 된 서기관으로서의 삶을 우리가 살게 되요.

 

마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우리가 목사님처럼

옛것과 새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이 된다는 것이죠.

말씀의 권세자가 된다! 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볼 때

‘어떻게 저 분들은, 말씀이 저렇게 줄줄 나오는 것이지?

참 신기하다. 왜 우리는 안 나오는데..’

 

그러한 단계를 거쳐진 사람들에 의해서

그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그런 감춰진 것들이, 이렇게 꺼내어지는 거예요.

 

천국을 소유한 사람(서기관)으로부터요.

앞서 그는, 자기 모든 소유를 버리고서, 천국을 얻게 된 자요, 그 권세입니다.

 

굉장히 깊은 말씀이에요.

제가 어디 가서도 이 이야기를 드린 적은 없어요.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러한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집과,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섬기는데 있어서

우리가 이러한 권세 authority를 가지고, 섬겨낸다는 이야기에요. 믿습니까!

 

 

◑십자가가 무겁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하죠. ‘왜 예수님 믿기가 이렇게 어려운거야.’

그런데 성경에는 분명하게 예수님을 믿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움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라 하시니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그러면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시는 분인가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안 믿고, 여러분들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여러분들의 짐이, 더 가벼워지겠습니까?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수님 믿지 않고 내 마음대로 다 살고, 그렇게 살면 팔자가 펴질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더 기가 막혀지는 것이잖아요.

 

여러분들이 너무 지혜로운 거예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

 

여러분들은 정말 그것을 아는 분들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렇죠?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의 짐을 지시는’ 분이라고 했잖아요. 시68:19

 

그런데 사실 우리가, 죽은 놈이 무슨 짐을 지겠어요.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죽음에 들어간 사람이, 무슨 짐의 무거움을 느끼겠어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 짐을 느끼고 있다는 자체가, 아직까지 안식/천국에 안 들어갔다는 이야기죠.

아직까지도 자기 짐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버스 탔는데 짐 안 내려놓고, 머리에 이고 있는 사람과 똑같은 상태겠죠.

 

그 다음에 요한1서에도 보면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그랬습니다. 요일5:3~4

 

 

◑은혜의 단계에서 - 진리의 단계로

 

▲은혜의 단계

처음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어떠함을 생각하지 아니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서, 이제 그 우리가 은혜를 받잖아요. 그리고 은사도 받아요.

 

▲진리의 단계

은혜의 단계에서, 진리의 단계로 성숙하는데,

그전에 반드시 회개의 아픔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한참 그 은혜에서 즐겁게 살다가

(그게 몇 년, 몇 십 년 계속되기도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느껴지는 것이 뭐냐면, 율법으로 가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너무너무 고통 하잖아요. 굉장히 고통하고 힘겨워하죠.

 

그래서 은혜를 받을 때, 은혜를 받고 나서 우리가 주님과 연합된 삶,

어떤 진리의 삶, 진리의 세계로 갈 때에는

먼저 죄의 징계를 종종 받는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고요!

 

그게 여러분들이 너무나 많이 배우셨죠.

‘책망을 받는 것 마다 빛으로 나타나나니..’ 엡5:13

 

고전11:32절에도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를 이렇게 키워 가실 때, 한창 말씀을 읽고 기도생활을 하고

그리고 찬양하고 금식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막 더 받으려고 할 때에는,

즉 처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내버려두세요.

 

그러다가 우리가 진리로 가야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고/ 심판을 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뭐냐면

아담의 생명을 끊으시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담의 생명을 끊으시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하시려고 하신다는 것.

이게 진리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 은혜를 받았을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악된 본성을 건드리시지는 않으세요.

그러나 진리로 갈 때는, 내 죄의 본성을 건드리셔서, 날마다 터져나오게 하세요.

 

무덤은 예쁘잖아요. 그게 내 모습이잖아요.

그러나 그 속을 파헤쳐 보면, 예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은혜에 시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본성을 터치하지 않으시고

그냥 은혜를 채워주시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님께로 갈 때, 우리가 엎어져서 죽어 버릴까 봐서,

그 연단이 너무 세고, 너무 힘이 드니까, 도저히 못 갑니다. 나는 못갑니다.

그렇게 할까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로, 우리를 이렇게 하늘에 속한 것으로

너무나 좋은 것으로 주시는 거예요. 처음에는요!

 

그 다음에 이제야 나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네.

이것이우리가 그 사랑에 흠뻑 빠진 뒤에

하나님께서 '비로소 얘가 어느 정도 믿을만 하구나..' 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로,

그리스도에 연합하는 것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거예요.

 

▲제 경험을 나누면,

제가 예수님 처음 믿고 얼마나 뜨거웠는지 몰라요.

나도 <은혜>를 받고나서

정말 주님 제일 많이 사랑하는 사람

끓는 물에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갈 정도로, 그런 열심을 가졌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정말 예수님 믿고 은혜 받고

아마 지금까지 고난의 시간들이 계속 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리의 단계>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자녀를 생각해서라도, 내가 회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내 죄성을, 후손들에게 유전시키지 말아야지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만,

우리가 아담의 원죄, 조상들의 범죄,

우리 부모님들의 죄성이 얼마나 쌓여있겠어요.

어쩔 수 없이 그걸 타고 나는 겁니다. 부모를 닮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모든 부분들까지, 주께서 새롭게 하실 때 까지 말이죠.

그래서 정말로 그들이 그러한 부분까지도 새로워지는데 까지는

 

가족중에서 처음 믿는 사람들이

아주 많은 헌신(회개)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

그런 것도 여러분들이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정말 우리만 그저 예수님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자녀들에게 그러한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때,

내가 처리해주지 못한 것(죄성)이

그 자녀 세대와 그 후손에게 내려갈 것 아니에요.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가족 구원'이에요. 이런 측면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정과 갈렙의 가정이 함께 헌신하잖아요.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정말로 내 가정이 하나님의 거듭난 가정으로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세워지도록, 부모 세대가 정말 헌신 하셔야 되요.

 

그러기까지 그 대가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럴지라도 여러분들이, 그 길을 여러분들이 선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우리 가정에 흘러 내려오는, 그러한 죄의 유전들이 있잖아요.

그 저주들도 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이 얽혀져 있겠어요.

 

제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그것이 흘러가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간구하면서, 정말로 제가 깨어지기를 원했었어요.

 

   제가 주님의 복음을 잘 몰랐을 때도,

   제가 하나님께 그렇게 많은 것을 심기를 원했던 이유는 무엇이냐면

   나(부모)로부터, 내 자녀들에게 흘러간 나쁜 것들이, 다 사라지고 없어지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무엇을 심는 것. 여러분,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의 자녀들 속에 있는 그런 것들이

여러분들이 해결(고난을 통해 회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아셔야 되요.

 

▲그래서 제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이야기 하는 것이 있어요.

‘자식을 위해서는 그러지 말아. 그렇게 하지 말아라.’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 자식도 그것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낫지, 내 자식이 지불하는 것이 좋겠냐.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않겠냐. 내가 주님께 맞는 것이 낫지, 내 자식이 맞는 것이 낫겠냐...

 

그것은 사실이에요.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해요.

여러분들이 오늘 순종하고 싶지 않더라도

내 더러운 이 죄성을 내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다고 하는,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도

 

‘하나님 제발 제가 순종하고, 이 걍팍한 마음과 이 완고한 마음,

이 고집스러운 마음이 깨지게 해주세요.’

그래서 주님 정말 나를 깨뜨려 주십시오.. 하면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셨어요.

‘내가 복과 저주와 생명과 화를 내 앞에 두노니

너는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신30:19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24:15

 

이 말씀이 보통 말씀이 아니세요.

그러니까 그 사망과 저주와 화를, 내가 택할 때,

 

즉 내 마음을 이미 완고한대로 내버려두는 것. 고집스러운 대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

이것처럼 무서운 것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그게 자손 세대까지 다 내려간다니까요. 자식이 아비를 쏙 빼 닮는다니까요.

 

여러분들의 삶 속에는 어떠세요? 순간, 순간 그런 것들이 올 때,

여러분들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나, 남편,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서 가족이라고 하는 그 테두리 안에 날마다 살아하게 하실 때

우리 자식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여지잖아요.

 

여러분들은 이제 아담 과가 아니라

그리스도 과科에 여러분들이 입학 하신 줄로 믿습니다.

 

아담 과科는 날마다 남탓 하는 거잖아요.

‘저 신랑 때문에 못살아. 저 아내 때문에 못살아. 내 자식 때문에 못살아.’

그런 것으로 항상 우리 마음이 되어 있잖아요.

아직까지 그런 마음이 있습니까?

 

‘오늘도 내가 이런 것은 저 사람 탓이야. 저 사람 때문에 나는 항상 시험 들어.’

그런 말 하시는 마음이 아직도 여러분들에게 있으세요?

 

예수님 안에 성큼 들어온 사람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 안에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저 사람들이 아직 고통당하고 있는 것에 대한 그 마음 때문에 아파서

주님 앞에서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그러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잘 잊어버리지만, 그러나 곧장 기억해 내야 되요.

‘하나님, 저 사람이 아직까지도 주님을 잘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저 사람이 저런 상태에 있는 것은

아직까지 주님 제가 주님 안에 잘 세워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제 탓입니다.’ 라고 나를 깨뜨리고 뒤돌아봐야 해요.

 

이런 섬세한 확인이 없이는, 우리는 주님과 교제하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주 큰 찔림을 받아야 되요.

 

그러나 우리는 맨날 뭐라고 해요.

‘저 마누라 때문에, 저 남편 때문에, 저 자식 때문에, 내 마음이 힘들고 어려워.

나는 못 살겠어.’

 

그런 마음이 든다고 하면 조금 주님 앞에 용기를 내고, 분발을 하셔야 해요.

‘아 그래서 내가 심히 변화되어야겠구나. 깨져야 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제가 우리 아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 까지 많은 대가를 지불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대가를 많이 지불을 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