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선택과 결단이 나를 바꾼다

LNCK 2014. 8. 12. 14:12

◈선택과 결단이 나를 바꾼다               수24:14-18                 2013/01/13 설교녹취

 

*관련글/ 파종과 수확의 법칙

 

◑서론/ 사람은 언제나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서 마지막, 24장인데요.

백전노장 이스라엘을 요단강을 건너게 하고 가나안을 정복하게 한 여호수아가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하나님 앞에 가기 직전에,

그의 마지막 생애, 고별 설교입니다.

 

누가 하든지, 그가  마지막 하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야 하죠.

이스라엘의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과거와 현재를 다 읽고,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견하면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우쳐주는

아주 귀중한 말씀을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을 가만히 보면 수없는 결단, 선택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이루어집니다.

 

아마 오늘 여러분들이 이 예배에 오신 것도, 선택에 의해서 오신 것입니다.

걸어 올 것인지, 차를 타고 올 것인지,

아예 안 올 것인지.. 이런 선택을 안 하는 것, 가만히 있는 것조차도.. 선택이에요.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선택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면 좋은 인생이 되는 것이고

좋지 못한 선택을 하면, 그것이 불행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지금 내 모습은, 내가 지난 10년 동안 선택하며 살아온 결과로서의.. 지금 내모습입니다.

앞으로 10년 후 내 모습은, 내가 앞으로 10년 동안 선택하며 살아갈 결과로.. 결정될 것입니다.

결코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의 선택 가운데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선택도 있습니다.

옷을 산다던가. 오늘 저녁에 뭘 먹을 것인가.. 등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은, 우리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는, 일생을 결정하는 선택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아주 안 좋은 사람이 한 사람 나오죠.

본디오 빌라도.

이 사람은 역사 속에 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이

온 세상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알려진,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사람. 악인이 되었죠.

 

마르틴 루터가 한 순간의 선택이었지만, 그 어려운 선택으로 한 것에 의해서

이런 역사의 종교 개혁자로 남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잘못된 한 순간의 선택이, 온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갔어요.

한 사람의 어떤 잘못된 선택이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떤 결정은, 우리 인생에 굉장히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뭐냐 하면,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선택의 자유를, 내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서

우리 인생이 전혀 달라지는데요..

 

 

◑여호수아는 고별 설교에서,

<선택과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씀하고 있어요.

 

가나안땅의 문화는, 굉장히 폭력적이고 음란하고 농경문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신이 그 땅을 지배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땅에 존재하는 많은 우상들이 가득하고

특히 물질주의 바알 신이 굉장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도시의 문화 안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갔습니다.

 

그 땅을 정복하게 하셨지만 그 땅의 문화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그 축복을 다시 빼앗길 것인지,

기로에 서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굉장히 비기독교적인 문화죠.

정말 반 하나님 적인, 하나님을 섬기고 신앙생활 하기에 만만치 않은 구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직장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요즘 어떤 경우에는 순교적인 부분도 있어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긴장감이 있고, 대립적 요소가 있어요.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떤 선택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명목을 유지하기 어려운 사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유지하면서

정말 제대로 신앙생활 하고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는, 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들이 신앙생활의 순수성을 계속 해서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입니다.

 

땅은 정복했지만, 실제로 그들의 영혼은, 세상에 의해서 정복을 당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정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기름진 땅에 들어가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그 땅에 보내신 것이 아니고

사실은 그 땅이 하나님의 땅인데,

이 악한 문화로 뒤덮고 있는, 하나님을 거부하는 반역하는 그 땅을,

하나님 백성들에게 맡기셔서, 그 땅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보내신 것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의 문화에 오히려 흡수되어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를 놓쳐버린 것이죠.

 

▶오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 지금 결단을 촉구하는 이 여호수아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느냐 하면

여호수아의 마음속에, 백성들의 공동체를 바라보는 염려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거예요.

 

정말 이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에서 축복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을 따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염려하면서, 선택과 결단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24:14절부터 끝절 까지 쭉 읽어보면, 굉장히 자주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섬기다’ 라는 동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누구를 ‘섬길’ 것인가에 대하여, 분명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운명을 가르는 문제입니다.

이 선택과 결단에 따라서 이스라엘 운명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 환경 속에 여호수아는, 자신의 선택과 결단을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15b절에 뭐라고 말 합니까.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은혜를 그냥 주시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택하고 결단할 때, 거기에 부으시는 은혜가 커요.

 

지금이 연초인데, 금년에도

우리가 뭔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선택하고 결정을 할 때

거기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어요.

 

아무 것도 안 하는데.. 그냥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어떤 면에서 이 선택과 결정은, 우리의 마음에 태도라고 볼 수 있어요.

그 결단 위에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에 보면 ‘오직 나와 내 집은’

여러분 여호수아가 떠나기 직전에 백성들에게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냐.

절대적 기준이라는 거예요. ‘오직’이라는 표현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타협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적 신앙. 절대적 순종. 중간 지점은 용납이 되지 않는!

 

여러분 우리 인생을 누구를 섬기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모든 줄기가 나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도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삶에 모든 결정과 선택은

내가 누구를 섬기는가.. 이 중요한 기준에서 파생되는 문제입니다.

 

정확한 기준점.

여기에는 YES, NO 라고 하는 양 갈래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수24:19절에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오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다른 것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신들과 철저히 구분되는 신입니다. 백성들에게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하고자 하는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고

타협의 길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수아를 읽으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요. 언제나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를 언제든지 축복하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쉽게 변질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 늘 발견 되요. 너무 빨리 변질 되요.

너무 빨리 세상에 영향을 받고, 말씀의 기준을 떠나 변질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뭐냐 하면

‘너희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냐?’

여호수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선택과 결단’에서 중요한 3가지를 살펴보면..

 

 

 

1. 선택의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일수록, 우리가 함부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결혼. 얼마나 중요한 선택입니까.

대상에 대한 확신이 와야 하잖아요.

 

내가 믿는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이 결단을 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가 값 비싼 물건을 살 때에는 꼼꼼히 챙겨보잖아요.

충분하게 그 상품에 대해서 이해를 한 다음에, 충분히 분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 여호수아가 여러 신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있어요.

‘너희들이 한 번 따져봐라’ 라는 것이죠.

 

너희 조상들이 섬기던 우상 신들이나,

너희가 그렇게 좋아하는 아모리 족속의 신이던지

너희가 섬길 자를, 그 대상을 자세히 살펴보랍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 않아 보이거든, 그 우상을 섬기던지.

이것은 뭐예요? 분별하라는 것이죠.

 

여호수아가 왜 이렇게 백성들에게 촉구를 하고 있을까요?

이미 백성들 안에 이방신들에 대해서

유혹을 받고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이런 여호수아의 결단에 촉구에 대한, 백성들의 1차적인 반응을 보면 매우 긍정적입니다.

16절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겠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굳은 결단을 했습니다. 아주 반가운 화답이죠.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백성들이 이 여호와의 결단 앞에 선택을 촉구했을 때

우리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여호와만을 섬기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여호수아 24장에서 한 장만 넘기면 사사기가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에

이 고령의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향하여, 결단을 확인하고

여호수아가 이제 역사의 현장에서 물러나요.

 

그런데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은, 바로 그 다음 세대에서

아주 빠르게 영적인 어둠에 휩싸이고 맙니다.

 

여호수아 앞에서 그들이 했던 결단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요.

그리고 이스라엘에 무엇이 찾아왔나요. 영적 혼란기가 찾아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원인이 여러 가지 있었겠지만,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그 당시의 각오는 순수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이, 그저 순수한 각오는..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어떤 신앙의 확신을 가질 때에도, 감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믿고자 하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결단은 했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분명한 자기의 결단이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이해 속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선택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모르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배교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특별히 가나안이라고 하는 기름진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의 "땅"에 관심을 갖다가

정작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놓쳐버리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 날 우리에게도 굉장히 많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 때문에,

하나님 그 분에 대한 관심 보다는, 선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

여호수아는 백성들의 그런 분위기를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도 있고, 예배도 드리지만,

정작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지 않으면

배교의 위험성이 오늘도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우리의 선택과 결단은 확고해지죠.

저는 이 새해에 여러분들이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결단들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내가 예수 믿는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 주변에 찾아오는 굉장히 강력한 이교도적 문화가

우리를 집어 삼키면, 그냥 눈이 돌아가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로 빠지고, 타협하고, 변절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럴 때는

그 말들은 정확한 말이에요.

 

그러나 그들이 정확하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이런 노력이 없었을 때

그들은 한 시대가 가기도 전에, 이미 옆으로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예배하는 이 시간도

   내가 어떤 동기를 갖고 있는지, 늘 확인해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어떤 것들이 주어지면

   그 주어진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정작 그 분에 대한 관심은 놓쳐버려요.

 

사실 어떤 것이 주어졌을 때에는, 여기에 대한 주어진 것보다

관심은, 그 주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알아가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성품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쳐다보지는 않고, 받은 것에만 감사를 합니다.

일례로, 돈이 생기면, 돈을 쳐다보고 기뻐하지, 돈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마치 아내가 남편이 준 돈으로, 다른 남자를 사귈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고마워..

이것과 똑같은 거예요. 돈 자체가 고마운 거예요.

돈을 준 남편에 대한 관심이 어디 갔냐는 거예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많은 것들이

하나님에 대한 관심보다, 우리 주변에 일어난 일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질 때

가나안의 문화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입니다.

 

이미 그들에게 주어진 젖과 꿀이 흐르는 이 엄청난 축복 안에

그런 일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정작 사라지고

주신 것에 빠져들면서, 그들은 가나안의 문화에 빠져들면서

그들은 가나안의 문화에 익숙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이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섣부른 신앙고백을 하고,

뭐 예수 믿습니다. 너무 섣부른 신앙의 고백들.

그런 것으로는 미래의 신앙을 담보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은 굉장히 반 하나님적인 그런 문화, 아주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무신론적 문화가 일반서적에서부터 우리 일상에 굉장히 빠르게 밀고오고 있고

 

하나님에 대하여 영적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우리의 신앙을 빼앗길 수 있는 위기의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의 마음에 드는 신들이 널려져 있어요.

권력이라던가, 돈이나, 성이라던가

그런 것들을 통해서 밀고 들어오는 순간의 만족,

내 개인의 만족을 추구하게 하는 그런 우상/신들이 널려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위해서 공부해야 되요. 노력해야 됩니다.

 

 

◑2. 선택은, 뚜렷한 ‘행동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선택은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는 겁니다.

하나님을 선택한다는 말은, 다른 신들에 대해서 등을 돌린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선택은 언제나 포기를 가져오는 것이죠.

 

여호와를 선택한다는 것은, 수많은 신들의 유혹을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때로는 여기에 아모리 신들이 섬기는 신들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여호수아가 무엇을 보느냐 하면

이미 이스라엘 안으로 밀고 들어온 이방종교 문화가 아주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선택과 결단은, 이전 것과의 다른 구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과 결혼을 염두해 두고 사귀고 있다면

   그동안에 다른 이성적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에요.

새로운 출발은, 과거와 깨끗한 결별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 일부도

가나안으로 들어올 때, 끌고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의 전력이라는 것이 참 무서운 거예요.

과거의 전력이 오늘의 현실에서 미래로 가지 못하도록, 내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때가 참 많아요.

 

여러분 우리가 새해가 되었지만 그것도 마찬가지잖아요.

새해가 되려면 과거에 2012년 까지 나를 붙들고 있는 족쇄들이 분명히 있단 말이에요.

이것을 분명히 행동하는, 결별 하는 우리의 선택이 일어나지 않는 한

2013년에도 똑같은 거예요.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 안에 슬그머니 우상이 생깁니다. 우상이에요.

이것이 그냥 매일 생겨요.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 집중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것들로 흩트려 놓는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얼마나 이런 것들이 많아요.

부부간에도 서로에 대한 신실함을 날마다 확인하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틈이 생기게 되어있어요.

 

하나님만을 섬기려고 하면

끊임없이 우리 안에 있는 이방 신들을, 구체적으로 내려놓는 작업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아차, 하는 순간에 변질이 찾아오고, 충성심이 희미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신은 공존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마음이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용납하지 않아요.

 

▶그래서 여러분 신앙을 보세요. 하나님이 ‘너 뭐 알아서 섬기고, 알아서 해.’

그런 것이 없어요. 하나님은 딱 하나에요. 일편단심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편단심을 요구하세요.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해서 일편단심이에요.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은 당신들의 백성들을 향하여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린 적이 없어요.

끊임없이 오직 한 마음을 가지고, 일편단심으로 그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동일하게 요구하시는 것이 뭐냐 하면

나만을 사랑하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오늘 여기에 선택과 결단의 이 부분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하겠다고 하는 이 표현은

세상의 모든 신들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모두 등을 돌리고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겠다는, 의도적 행위가 구체적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부분에 있어서는 중간 지점이 없어요. 둘 다 가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촉구할 때가 있었죠.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분명히 해야지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적당주의는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해요.

‘강 저편에 섬기던 신이던지 너희가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던지

너희가 섬길 신을 선택하라.’

 

비굴한 삶은 애매한 선택이에요.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아요. 그러면 눈치를 보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안 좋아하시는 온도. 미지근한 거예요.

계시록에 미지근한 상태는 토하여 내치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한 말씀이죠.

여러분 신앙은 중립을 허락하지 않아요. 정확한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선택은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은 변질로 가게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신앙의 선택과 결단을 할 때마다 매섭게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정확하게 돌이키는 한 해의 출발 지점이 되시기를 바라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올곧은 선택을 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한 해를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3. 특별히 이 선택은 ‘시간’과 연관이 있는데요.

너희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고 했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 택하라. 이것은 시급성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선택을 미루지 마라. 매우 시급하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있는데

지금 이 중요한 결단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어떤 인생의 축복들을 가만히 보면

그 어떤 시점에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그 특별한 순간이 주어졌을 때, 놓치지 않고 특별한 선택을 할 때,

내 인생은 완전히 뒤집어지고, 다른 역사를 써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2013년에 여러분들의 인생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카이로스라고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나님이 특별한 시간을 주실 때, 그 길을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특별한 선택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아무리 하나님이 특별한 것을 주셔도, 특별한 선택이 없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카이로스 라고 하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이 구원의 사건이 <시간>의 문제에요.

이스라엘 공동체에 지금 촉구하는 이유는, 여호수아가 지금 떠나기도 하겠지만

 

지금 이스라엘 안에 스며들어오고 있는 악의 무리들이, 이 이교도의 문화가,

이 우상숭배의 타락한 가나안의 문화가, 폭력적이고 음란한 문화들이

이스라엘의 백성들을 옥죄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긴박성을 느끼고 여호수아가 지금 빨리 선택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구원의 사건은 시간의 문제에요.

 

하나님의 심판도 어느 역사의 시간을 잘라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것을 말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을 보면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축복의 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은, 결단의 순간을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을 놓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이 뭐냐 하면, 그 때를 감지해요.

여러분 이 영적인 감각이죠. 깨어있는 영혼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어떤 시간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러면 만사를 재치고 반응하는 것입니다.

 

영이 깨어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어떤 지시를, 사인들은 깨닫는 것이죠.

‘아 지금 기도해야 될 때구나. 내가 뭔가 해야 될 때구나.’ 느낌이 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선택의 시급성. 특별히 중요한 결정일수록, 미루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잘 쓰는 전법 중에 하나가 뭡니까?

‘내일 해. 다음 번에 해!’ 하며 자꾸 뒤로 미루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내일,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그 마음이 생길지 그 환경이 될지. 결국 미루면 결국 못하게 되는 거예요.

미루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지 몰라요.

 

그러니까 자꾸 ‘내일 보자’는 사람, 하나도 겁 안나요.

자신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오늘 결단 하세요. 지금의 선택이에요.

지금 돌이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 인생 가운데 예수를 믿게 된 순간도 마찬가지에요.

어떤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을 시점이 다가왔을 때 반응 하는 거예요.

그게 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2013년의 해가 밝아 왔습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결단해야 될 영적인 반응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점거하셔야 합니다.

 

성경 읽기로 했으면 지금 시작하시고. 뭐 자꾸 미루면 안 되는 거예요.

올 한 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결단을 하세요.

섬기는 삶을 어떻게 할 것인지. 여러분, 어중간한 상태. 머뭇거리면 안 돼요.

영적 결단이 중요한 거예요.

 

여러분 가나안의 이 악습과 문화들, 이방의 신들이 살아서 있습니다.

애굽에 섬겼던 신들이 일부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풍요의 문화는 이스라엘의 백성들의 영혼을 위협하기에 충분한 거예요.

여호수아는 그것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머뭇거리고 온전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그 땅에서 고난을 받게 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가 가나안의 문화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비슷해요.

 

단단하게 영적 결단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마음을 약간이라도 느슨하게 하면

세상과 얽히게 되고, 얽히게 되면 돌이키기 어려워요. 빠져나오기 어려워요.

 

여러분 오늘 신앙의 세속화가 어느 시대 때보다 강한 시대입니다.

 

한국 교회의 사활이 달려있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는 세속화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신앙을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의 차이가 모호해진 것이에요.

 

 

이미 굉장히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고

이미 그 안에 들어가서 너무도 빠르게 가나안의 문화에 휩쓸려서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렸을 때

하나님이 그 땅에 백성들을 남겨두지 않았어요. 쫓겨나든지, 포로로 잡혀가든지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얼마든지 열려 있어요.

문제는 축복을 받은 후에,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전부로 알고, 빠져들 때 세속화가 일어나게 되고

그 세속화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운명이 됩니다.

 

여러분 오늘 무엇보다 나의 선택이 참 중요합니다.

어떻게 신앙생활 할 것인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믿음 생활을 할 것인지.

여러분 이것이 분명한, 선명한 기준을 잡아줘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 혼탁한 문화 안에, 이교도의 문화 안에,

끝없는 우상들이 즐비한 가운데 여호와를 정확하게 바라보면서

여호와의 신앙이 이 백성들 안에 온전하게 심겨지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여러분 나의 선택이 필요해요.

내 신앙, 내 선택, 선택은 언제나 개인적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순종할 것인지는

분명히 개인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쟁입니다. 이미 예수 믿기로 작정하고 들어오신 분이라면

우리 매일 전쟁을 치루고 있는 거예요.

‘전쟁’이라는 말은,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협을 받고 타협하게 하는 유혹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삶의 관심을 다시 한 번 하나님에게로 정조준 하는

이런 연초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면, 최고의 선물은 사실 사람 자체죠.

선물에 따라 마음이 자꾸 변화되면 안 되는 거예요.

 

선물에 따라 변심을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더 좋은 것을 갖게 되면, 마음을 바꾼다는 말이에요. 그게 우상숭배인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어요.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들 안에서 그들이 온전한 분별력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의 신앙은 사라져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단단한 결단을 하시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시기를 바라고

타협의 여지가 없는, 하나님 앞에서의 그 마음을 유지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넘어지고 타협하고 흔들리고 있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도 좋고 돈도 좋은 것이 아니에요.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에요.

 

오직 나는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여러 신중에 하나가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선택은 오직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최상은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유지하시고

내 마음 속에 서서히 파고들어오는, 이 마음의 변절/세속화를 경계하면서

단호한 태도로 하나님 여호와의 신앙을 지켜나갈 때

 

하나님도 우리의 삶을 유지해주시고 축복을 유지해주시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빼앗기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쓰임 받는 도구로서, 우리 일생을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선명한 기준,

‘오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 라고 하는 이 절대적 순수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세속화에서 승리하셔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가정 속에

넘쳐흐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냉수한그릇>에서 지금까지,

 

‘하나님의 주권, 은혜’ 관점의 설교를 많이 소개했었는데,

 

위의 ‘인간의 책임’ 관점의 설교도, 스크랩했습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특별 은총’과 아울러 ‘일반 은총, 자연법칙 적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늘 기도만 하고, 건강관리를 안 하는 신자보다

 

전혀 기도를 안 하지만, 건강관리가 철저한 불신자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사는 면도 있습니다.

 

물질관리도 마찬가지고요.. 일반은총적 영역도 무시 못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