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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자아 내려놓고 보화 얻기 2 / 허운석

LNCK 2014. 8. 16. 08:34

◈자아 내려놓고 보화 얻기 2/2          갈2:20, 요10:7~8, 고후12:9         설교스크랩, 녹취

 

 

 

 

◑자기 연민 깨트리기

 

▶하나님께서 아들과의 마찰로 아픔을 주셔서, 저를 더 바싹 깨뜨려놓으셨지만

그러니까 모든 것이 저에게는 감사하고 기쁠 뿐이에요.

 

처음에 저희가 선교사로서의 삶은, 자녀들을 잘 돌볼 수 없었잖아요.

한참 자라는 아이들인데, 늘 이곳 저곳 옮겨 다녀야 했으니까요. 학교 적응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지금도 저는 그 숙제를 해내고 있어요.

제 목숨이 있는 동안에, 나는 끝없이 그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될 사람이에요.

그리고 저는 끝없이 그들을 위해서, 내 생명을 내놓아야 되는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복음을 몰랐을 때, 그들에게 위로하지 못했던 것이 있어요.

주님의 생명을 흘려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상해진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자기 믿음을 가지고 자유해져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단계라면

그것이 부모들에게 빚을 독촉하는 그런 것으로 행동을 해요.

 

즉 부모에게, 항상 불만이고, 탓하고

무언으로 ‘당신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습니다.’ 라고 하죠.

 

혹시 여러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자녀로부터 듣습니까?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이번에 제 아들이 와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제가 암환자라서, 간병인이 필요한데, 지금 저희 딸이 몇 년 째 저를 돌보고 있어요.

 

우리 아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엄마, 누나가 직장을 다니고 싶어 해요.’

‘그러면 다녀야지.’

 

그렇지만 제 마음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겠어요?

내 마음에는 무슨 마음이 있냐하면 ‘내가 언제 죽는지 모르는데

이 엄마하고 이 시간을 같이 보내주었으면..’ 그런 마음이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저희 딸은 직장에 다니고 싶은 거예요. 다른 여느 젊은 아이들처럼요.

왜 그런 마음이 없겠습니까.

 

그러면 나는 감당할 수 없죠.

내 몸 하나 추스릴 수 없는데, 밥을 내가 스스로 해 먹을 수 없는데..

그렇다고 하면 굉장히 제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어쩌면 그 자기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자기 삶을 찾기 위해서

엄마가 재껴지게 되는 것이잖아요.

 

엄마가 병들었기 때문에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슬픔이 당연히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들이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엄마, 누나 직장 다니게 해주세요.’

 

‘예스. 다녀야지.’

그랬더니 우리 아들이 귀신 같이 눈치를 채요.

‘엄마, 엄마의 말하고 마음하고 다르잖아.’

 

그런데 제 속에서 막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거예요. 내 처지 때문에.

그 설움과 눈물이 그냥 막 눈에 적셔지면서...

 

왜 제가 이것을 여러분들에게 공개하느냐 하면

여러분들에게 영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너무 고통스런 공개이죠.

 

‘엄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데. 엄마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었으면..’

그 요구가 잘못되었다고 할 사람은 없어요.

 

그렇지만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내 유익을 구하는 거잖아요.

이것은 십자가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남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지.

그리고 주님 앞에 온전히 맡겨지지 않은 나를 발견하는 거예요.

 

만약에 딸이 나를 돌보지 않으면,

주님께서 무엇인가를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했어요.

내가 믿는 사람이, 나를 안 도와주더라도 괜찮아야 해요. 완전히 자유 해야 되요.

 

그런데 내 안에 그 자유함이 없는 것을 보는 거예요.

그때 즉시로 잠시만, 그랬습니다.

그 눈물이 막 속에서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들이 딱 눈치 채고 말했던 것이죠.

‘엄마는 속마음하고 말이 다르시잖아요.’

 

그러나 즉시로, 다시 십자가를 붙들었습니다.

‘아냐. 아들, 엄마 말은 진짜야.

엄마는 언제나 엄마 마음대로 하고 싶지 않아. 이게 내 소원이야.’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해도,

내 뜻/내 소원/내 유익/내 편리를 먼저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여러분들이 보셔야 해요.

 

나의 어떠한 ‘의존’을 끊으시려고, 주님께서 지금 칼을 대고 계신지.

할례를 하기 위해서, 나에게 다가오신 그 분을 느껴야 되는 거예요. 그 순간에!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그래서 제가 그러는 것이죠.

‘주님, 제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는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따르게 하시고, 제발 저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해주세요.

내 뜻대로 하지 말게 하시고, 나를 자유하게 해주세요.

 

나를 이 아담의 생명, 아직까지도 온기가 남아있는 이것을

주님, 제발 이 시간에 없애주시옵소서.’

 

제가 그 기도를 하는 순간에, 우리 아들이 ‘예스, 엄마 땡큐!’

제가 그런 마음을 주님 앞에 원망 없이 드렸을 때

아들도 그게 엄마의 진심임을 알았습니다.

 

▶방금 굉장히 제 속의 깊은 이야기를 나눈 거예요.

그 누구에게도 우리는, 아무 것도, 우리는 바랄 수 없는 사람이에요.

 

바라기는 오직 주님께만 바래야 하는 거예요.

사람에게는, 절대 아무 기대도/의존도/눈치로 라도 부담감을 주지 마세요.

 

선교사님들도 “도와달라는 눈치”도 보여서는 안 좋습니다.

그게 다 부담감을 주는 거잖아요.

 

그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지 않는다는 표시입니다.

만약 선교비가 부족하면, 있는 범위 안에서만 하시면 됩니다.

 

자기가 답답해할 필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이잖아요.

자기가 예산 부족으로, 막 답답해 한다는 것은, 그게 자기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지극한 조그마한 것이라도 여러분들이 남편에게 요구해보세요.

남편이 들어줍니까? 보통은 안 들어줘요.

그래서 또 시험에 듭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남편을 의지하지 마시고, 하나님 한 분만 의지하세요.

하나님이 들어주세요.

만약 하나님이 안 들어주시면,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닌게지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사람이에요.

너무너무 사람을 의지하길 잘 하죠.

 

어떤 사람이, 뭐하나 우리 소원을 몇 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우리는 거기에다가 빨대 꽂아 놓고

그 인생을 다 빨아먹으려 하죠. 그게 아담의 죄성이에요.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영악스럽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거절을 당하게 하신 거예요.

우리 아들에게. 실제로는 우리 딸에게!

 

그래서 만약 여러분도, 가정에서 어떤 거절을 당하시면,

순간적으로 거절감에서 오는 슬픔과 상실감이 있겠지만, 즉시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남편이 나에게 거절해주는 것.

너무나 그것은 크고 놀라운 축복으로 여기셔야 해요.

이것처럼 자기 자아를 깨뜨리고 항복할 좋은 기회가 없어요.

 

우리는 모두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합니다.

왕처럼, 뭐든지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 나라의 온전함과 평화를,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남편이 내 말을 안 들어준다고, 우리는 난리를 치잖아요.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열 받아서, 남편을 멀리 하잖아요.

그러시면 안 돼요. 그게 아담의 속성입니다.

 

 

◑가정에서도 자기 자아/자기 연민이 깨어져야, 천국이 임합니다.

 

▶기도를 드려도, 자기 자아가 죽지 않은 채, 기도하는 신자들이 많아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욕심을 부리면 안 들어주세요.

 

처음에 ‘은혜의 시기’에는, 우리 기도를 조금 응답해 주십니다.

그때는 너무 영적으로 어리니까요. 응석을 받아주시는 거죠.

 

그런데 조금 성장하면, ‘진리의 시기’에 들어가면,

내 육신적인 기도의 제목은.. 거의 다 응답을 안 해 주세요.

만약에 응답을 해 주시면,

우리는 그것 다 따서 먹고 있으면, 곧 싹 잊어버리는 거예요.

 

잊어버리는 것 까지는 좋은데.. 교만해져요.

그래서 ‘너는 기도 응답 못 받았지? 나는 받았어.’ 그렇게까지 나가요.

그러니 어떻게 되겠어요.

 

차라리 응답 못 받고

‘아이고 주님 감사합니다.

아주 그냥 나 같은 것은 응답도 못 받아야 쌉니다(마땅합니다).’

 

그래야 내가 주님 자신을 요구 할 터이니까요. 그렇잖아요.

기도는, 우리가 세상 것을 달라는 것을 구하기보다는,

먼저 주님이 나에게 오시는 것을, 구해야 하는 겁니다.

 

주님이 주시는 부스러기/사은품이 아니라,

주님 자신을 완벽하게 만나셔야죠.

 

▶그래서 하나님이, 삶의 환경들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실 때

얼마나 섬세하게 가르치시는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나 같은 시험을 만났어요.

병든 어머니를 놔두고, 간병하던 딸이 자기는 직장 간다고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이 들 것 같아요?

 

그것이 자기 연민, 자기 애, 아담의 죄성의 마지막 숨통을 끊는 것이

바로 자기 연민과, 자기애 라고 하는 덫이에요.

 

우리가, 만약 여기까지 여러분이 나갔다고 하면,

엄청난 수준에 올라가는 거예요. ‘자기 연민의 극복’ 수준 말입니다.

 

욥기에 보면, 욥의 맨 마지막에 끊어지는 것이, 바로 자기 연민자기애에요.

 

그래서 자기애 라는 것은, ‘자기를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잖아요.

자기를 계속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처럼 이 덫에서 못 빠져나와요.

 

믿는 집안에서도 보면요,

남편은, 남편 입장에서 자기를 불쌍히 여겨요.

아내는, 아내 입장에서 자기가 가련하다고 생각해요.

연로하신 부모는, 부모 입장에서 늘 시험에 듭니다. 자녀가 잘 못 해준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사실은, 천국이 거기에 임하지 않는 겁니다.

 

다 자기 연민에서 나오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는 체험을 하지 않는 한,

계속에서 우리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거예요.

거기에 진정한 천국은 임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자녀와, 배우자와 다투고, 언성을 높이고 그럽니다.

그렇게 ‘자기 연민’으로 갈 때, 그 열매가 뭐예요?

 

남을 비난하는 거예요. 남이 아니라, 사실은 사랑하는 가족이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가정에 문제가 있을 때

자기 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옹호하고

그 다음에 그 사람에 대해서 옳지 않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죠.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에요.

 

여러분들의 삶 속에 변명이 있습니까?

그러면 십자가를 모르는 거예요. 잊어버린 거예요.

 

나도 다툴 때, 언성을 높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너무 놀라죠.

 

그런데 그것 때문에 더 기뻐요. 이게 믿음이 커진 거예요.

실수 하는 것 때문에 더 기뻐지는 것. 이게 믿음이 성장한 거예요.

 

옛날 같으면, 그냥 절망해 버렸을 텐데..

옛날 같으면, 그게 내 문제인지도 모르고, 가족을 비난만 했는데..

이제는 그게 내 문제임을 깨달은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죠.

이제는 내가 실수를 할 때 마다, 더 큰 실수를 할 때 마다,

이것 때문에 겸손해지고, 주님의 십자가를 더욱 간절히 의지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 아주 커지고 있다는 증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때요? 여러분이 집에서, 막 언성을 높이고 싸움을 했어요.

그랬을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때요?

기뻐요?

왜 기뻐해야 하느냐 하면, 내 속의 악이 탄로 난 것에 대한 기쁨.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 라고 깨닫게 되는 그 기쁨. 그것이 너무 커야 돼요.

그것이 내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내 연약한 부분이 드러날 때마다

여러분들이 더 깊이 회개하고 ‘정말 내가 정말 이 정도 밖에 안 되는구나.’

하셔야 돼요.

독사처럼, 즉시 고개를 쳐들고 반격하지 마시고요.

 

그런데 계속 우리가 주님께 항복하지 않으면,

아주 그 끝까지 가는데

그래서 더 절망할 것이 없을 만큼 끝장을 봐야.. 우리가 찍 소리 못해요.

그렇게 끝까지 가는 것보다는, 빨리 항복하는 것이.. 고생을 덜합니다.

 

이게 율법으로 가지 아니하고

우리가 복음으로 간 사람이에요.

 

그러니 가정에서 무슨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겨도,

그게 무엇이던지

기뻐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어지는 거예요. 그렇죠?

 

 

◑‘육신의 질병’을 통해서, ‘영혼의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날 너무 너무 통증이 심했는데, 한 순간에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다 고쳐주실 수 있고, 통증을 안 느끼게 해 주실 수 있는데..’

 

이 생각이 1초 만에 떠올랐다가 지나가는 그 깜짝하는 순간에,

제 속에서 악이 나오는데, 예수님이 너무 실망스럽죠. 정말 믿기가 싫죠.

 

그 분노! 제가 너무 너무 깜짝 놀랐어요.

여러분도 한 번 제 입장이 되어보시면, 저를 이해하실 겁니다.

 

그래서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예수님, 진짜 큰 것을 알았네요. 세상에, 주님 또 땡큐. 너무 감사해요.’

세상에 이제 이 정도로 고통을 받았으니까, 어느 정도 청소가 되었을 줄 알았는데..

신앙의 길이, 믿음의 길이.. 정말 쉽지 않는 것입니다.

눈물이 이렇게 흐르네요, 세상에!

 

▶예수님이 그렇게 제 곁에서 너무너무 사랑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시면.. 좀 안 아프게 해주시면 좋을 텐데..

 

여전히 제 마음을 두드려 보시는 거겠죠. 뭐가 또 나오려나..

‘뱀 나와라 뚝딱!’ 해서 또 나오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너무 너무 이상한 사건들을 이렇게 보내셔서

제 내면을 드러내게 하시고, 회개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터무니없는 사건이 올 때, 놀라시면 안 돼요.

‘아, 또 내 죄성이 들키는구나.’

 

내 마음 속에,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키워졌던, 그 쌓이고 쌓인 그것들.

우리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겠죠.

그런 것들이 우리 몸에 다 들어있는 거잖아요.

 

세상에 죽는 날까지,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끝까지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 추함을 보고, 저는 아무 말도 못하는 거예요.

‘주님, 당신의 인자로, 자비로.. 나는 구원을 받았을 뿐입니다.’

 

▶제가 2006년도에 폐암 수술하고, 항암치료 받고

2007년도 겨울인가 운전을 하고 갔어요. 제가 성질이 보통인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정말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이에요.

예수님한테 잠시 실례하고 속력도 잘 내고

큰 차가 내 앞에 있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에요. 속이 답답해서.

 

그리고 항상 시험 드는 것이 있어요.

고속도로에서 운전 못하는 사람이 1차선으로 가는 것.

그것만 보면 저는 시험 드는 거예요. 그런 아주 안 좋은 부분이 저한테 있어요.

 

그런데 제가 항암치료를 받고 운전을 했으니, 얼마나 몸이 안 좋아졌겠어요.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면, 온 몸이 굉장히 피곤해집니다.

그런데 이제 차를 운전하는데, 누가 제 차의 백미러를 팍 치고 갔어요.

열이 확 나서 경적을 확 울리면서 서라고, 사과하고 가라고 막 소리를 질렀어요.

 

그런데 제 언니가 옆에 앉았는데

선교사가 이제 저렇게 덕스럽게 하지 않는 것에, 시험이 들어가지고 창밖을 쳐다보고 앉았어요.

 

그런데 제가 경적을 누르는 바람에, 제 차 속도가 느려져서, 차가 한 대 더 끼어들었어요.

더 열 받았어요. 더 경적을 울리면서, 서울 한복판에서,

제 백미러를 치고 간 차를 막 쫓아가면서, 서라고!

제 정신이 아니죠. 어떻게 그 짓을 하겠어요. 제가 봐도 제가 희한한 것이죠.

 

결국 그 사람이 이제 길에서 차를 세웠어요.

‘사람이 그렇게 쳤으면, 잘못했다고 그래야지요.’ 그랬어요.

 

그렇게 헤어졌는데, 제가 또 저를 보고, 스스로 실망하는 것이죠.

‘주님, 내 폐를 자르고 항암 치료를 했으면, 이 못된 성질을 고쳐주셨어야지요.’

제가 폐를 잘라내고, 항암치료까지 했으면

좀 변화가 좀 있어야 하지 않는가요..

성숙은 있지만, 아주 그 속도가 더딘 것 같아요.

 

▶우리가 금식하고 나면 기대하는 것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주님, 제 못된 성격 좀 고쳐주세요’

주님이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 같았어요. ‘나는 안 고쳐준다.’

그래서 제가 더 화가 났어요.

기도할 때 더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어요.

 

‘주님, 제가 일생동안 내 소원은, 내 성질 한 번 고쳐보고 죽는 거예요.’

소리 소리를 예수님한테 질렀더니

 

‘안 고쳐준다. 네 꼴이나 보고 남 판단이나 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라.’

그게 제가 받은 응답이었습니다.

 

제가 어디 가서 이 이야기를 하니까, 성도님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우리는 정말이에요. 여러분들 변화될 기대하지 마세요.

 

물론 변화되면 좋지만,

주님이 ‘사탄의 가시’를 박아놓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실 때도 있어요. 고후12:9

사도바울의 간절한 세 번 기도도, 안 들어주셨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저 내 이 흉한 몰골, 변화되지 않은 이 내 모습.

 

그래도 주님을 소망을 삼으시고,

그래도 내가 예쁘다고 내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것에 감사하시고,

 

그리고 겸손과 온유라는 것은, 어디에서 태어나는 것이냐 하면

그 ‘나의 가시’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실패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겸손해지는 거예요.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감사한 거예요. 기쁜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께

‘내 멍에가 무겁지 않다고 그러셨잖아요. 마11:30

그런데 주님은 불의하시다고.. 왜 내게 주님 믿는 것이 이렇게 어렵냐고’

그렇게 주님께, 우리가 굉장히 나쁘게 대들잖아요.

 

‘내 계명들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렇습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내가 완고하고 고집스럽고, 내 자아가 살아있는 것이죠.

갈2:20절처럼, 내가 아직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은 증거입니다.

 

▶제가 아마존에서 선교사를 해보니까, 제가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어요.

걍팍한 것이 무섭다는 겁니다.

인간이 걍팍한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짓는 죄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자아잖아요. 그렇죠?

어떤 죄를 한 번 지으면, 보혈로 용서되잖아요. 또 안 그러면 됩니다.

 

그런데 이 자아라는 것은, 자아의 걍팍이라는 것은,

내 자아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다 반대하고,

하나님의 뜻을 꺾어버리려고 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이 자아요, 걍팍입니다.

 

그러니까 이 자아라는 것은, 마땅히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주님께서 죽여 버리신 거잖아요. already not yet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죽노라. 매 순간마다 죽노라.’

이렇게 죽었음을 선포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끈질기게 우리를 훈련하시고, 징계하시고, 연단하시고

그래서 자아의 죽음 이후에,

그리스도를 얻게 하시려고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스도를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얻는 거잖아요. 그 권세까지요!

 

 

◑자아가 죽고 나면, 물질에도 자유함이 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벼락부자가 되요.

그러면 돈 때문에 그리스도를 잊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얻게 하신 다음에 무엇을 주셔요?

물질도.

 

그런데 우리는 그냥 돈 먼저 내놓으라고, 먹고 죽겠다고, 타락하겠다고,

‘주님, 염려는 붙들어 매시고 한 번 믿어보시라니까요.’

 

그리고는 ‘주세요’ 하면서, 죽자사자 매달립니다.

그게 다 지금 복음의 변절됨이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모든 것(고난)을 이끄셔서

나를, 아담의 죄성으로 부터 끊으려고 하시는 거예요.

 

주님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시는 것은,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물질이 자기 사명인 사람에게는, 물질을 풍부하게 주시겠죠.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이, 돈을 준다고 타락하고 있어요?

아니요, 그 사람에게 돈을 주면, 형제와 나누겠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여러분들이 물질을 나누지 않잖아요.

이 돈이라는 것은 신이잖아요.

이 세상에는 신이 딱 두 개에요. 돈 신하고 하나님 신.

 

그래서 마귀의 강력한 무기가 돈이잖아요.

그래서 부한 사람들은 상당수가 어리석음에 빠지고, 하나님을 버리게 되죠.

 

그런데 이 돈을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그 돈을 자기 집 사는데 쓰겠어요?

그것은 자기 것이 아니니까, 주님이 쓰라는 곳에 쓰겠죠.

주님이 사라고 하면 사고, 사지 말라고 하면 안 사고.

저렇게 하라고 하면 저렇게 하고, 이게 자유함이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알면서도 우리가 물질에 자유하지 않다..

그러면 굉장히 좋지 않아요. 부지런히 나누셔야 되요.

여러분들이 물질에 자유롭지 않으면, 여러분들에게 존귀와 영광은 없어요.

 

제가 장로님들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잘 해요.

과거에 가난했는데,

이제 하나님한테 축복 받아서, 물질이 많이 생기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요.

‘장로님, 집사님, 그 물질 하나님 사업에 다 쓰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장로님 집사님의 그 물질을 자손 만대로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욕심이 생겨서,

내가 가지면 당대에 그 물질이 떠납니다. 당대에 없어지고 맙니다.’

 

왜요? 거기에는 욕심이 개입하기 때문에, 사단이 그 틈을 타고 들어와서

결국 그의 인생을 파멸로 끌고 가죠.

 

그러니까 우리가 부지런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여쭈어봐서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많은 것으로 주셔서,

‘내가 통치자로서 다스리는 자로서의 권세를 주신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가 그것을 못 받는 것이 뭐냐면

아직까지도 내가 욕심이 많고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주님의 생명이 거기까지 못 미치게 하는, 내 자아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가난해지는 거예요. 물질이 열려지지가 않는 것이죠.

(아니면 물질의 사명 말고, 다른 사명이 있는 분들도 있죠.)

 

▶제가 그런 이야기 많이 해요.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그러면

 

‘먼저 당신 자식을 위해서 하지 마시고

다른 자녀들, 도움이 필요한 다른 자녀들을 먼저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청하십시오.’ 라고 대답합니다.

그게 맞는 이야기에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에게는 새끼(자녀)가 똑같을 것 아니에요.

긍휼을 베푸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잖아요.

 

그런데 나는 하나도 긍휼을 안 베풀고, 맨날 달라고만 하면, 주님이 주시겠어요?

꼴 보기 싫겠죠.

 

▶어느 교회가 주차장을 확보하려고 하는데,

굉장히 많은 돈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교회 사모님께 이야기를 드렸어요.

‘다른 선교지라던가, 다른 교회에 필요한 것을 먼저 채워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이 주차장을 주시면, 받으십시오.’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은 찢어내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우리는 거저먹겠다고 덤벼드는 것이잖아요.

 

기도, 그 기도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어디에 내 긍휼이 있고, 내 용서가 있고, 내 화평이 있는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게 하나도 없으면서

그저 내 것 내놓으라고,

새벽에 와서 금식하면서 철야하면서..

그게 와 지겠어요?

 

 

◑특별히 기도할 때, 조심하세요!

 

▶안 와지니까 분통이 터지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뭐야, 나처럼 원한만 쌓이는 거예요. 기도를 너무 많이 해서,

 

원한이 너무 많아가지고, 속병이 생겨서, 제가 그 원한을 푸는데 혼났어요.

그러면서 하나님한테 화를 내는 거예요.

 

‘나 잘 먹고 잘 살자고, 내가 기도 했어요?’

아마존 식구들 먹여 살릴라고 선교비 달라고 했는데, 그렇게 안 주시고..

 

나 스스로 내 속을 이렇게 애태우고 썩이다가,

결국 원한이 사무쳐가지고..

제가 암에 걸린 이유가, 거기에도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막 반항하는 겁니다.

‘그래요. 내가 죽어볼게요.’

그러니까 이제 응답이 안 오니까, 열 받아서, 원한에 사무쳐가지고

그래가지고 혼자 자폭을 하는 거예요. 자폭을 해가지고 죽어버리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사역을 하고 기쁘면서도, 집에만 오면 죽고 싶은 생각,

살기도 싫고. 그것이 내 심령 속에 너무 강력한 거예요.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꺾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제가, 암을 얻어가지고, 꺾이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투병생활을 하면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것은,

‘네가 나에게 대놓고 욕은 못하겠고, 너 혼자 가슴앓이 하고 했잖아’

주님은, 우리 기를 살려서, 잘못되게 내버려 두시는 것 보다는

우리의 기를 꺾어서라도, 천국에 데려가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도는 자기 마음대로 해놓고,

또 그게 응답되지 않는다고, 자기가 시험에 들고

자기가 혼자.. 우리는 정말 별짓 다해요.

 

아주 주님 앞에서 오만 짓 다 하는 거예요.

지 스타일로 기도했다가, 지 스타일로 벌 받고.. 혼자 그렇게 난리치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난 다음에

‘이게 안 속은 것이 없구나. 세상에 다 속은 것이구나.’

 

우리는 뭐 결사적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기도하면.. 다 된다.. 이렇게 배웠잖아요.

그러나 아버지의 뜻에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겁니다.

세상에 주님의 뜻대로 해야지, 제 마음대로 기도하고 하다가,

이제는 응답도 안 되고 해서.. 원망만 자기 마음속에 꽉 차 가지고..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지.. 그러니까 뭔지도 모르고

그냥 목에서 쇳소리만 나오면 되는 줄 알고.. 그냥 낭패를 본 것이죠.

 

그러니까 이 속이 다 타버리고, 병들고 상하고.

저도 그래서 이렇게 병들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참 감사한 것은,

여러분은 저를 보시고, 반면교사로 삼으셔서

여러분은,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 할 때도, 무엇을 구할 때도

‘하나님, 내가 이것을 구해야 할까요. 말까요.’ 묻고 기도해야죠.

‘주님 내가 이것을 기도 하는 것이 맞나요?’

그렇게 묻고 기도해야죠.

 

내 마음대로 다 했다가, 자기 혼자 시험 들고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을 무너뜨리는 것이잖아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이에요.

 

그러니까 얼마나 우리가 주님 앞에 ‘주님, 어디를 기도해야 할까요?’

 

제가 성숙한 후에는

항상 눈물 흘리면서 기도 할 때도 내 마음대로 기도 안 해요.

‘하나님, 그를 위해서 어떻게 기도할까요?’

 

그때 내 안에서 성령님께서 탄식하시며, 그를 위해서 기도해야 될 마음자리를

하나님께서 준비시켜주실 것 아니에요.

그렇게 하지 않고, 우리는 자기 뜻으로

얼마나 간절하게 ‘정말 해산할 수고’로

자기 뜻의 기도를, 간절히 올리느냐는 말이에요.

 

거기에서 주님께서 성령의 떡을 내리시면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잖아요.

응답도 주시고 하시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냥 내 영을 써가면서 기도하면서

뭐가 될 것처럼 하잖아요.

 

먼저 하나님은, ‘주님’을 주시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이, 진정한 기도 응답이에요.

 

주님이 먼저 오셔서 만지고 난 후에, 기도 응답을 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그냥 기도의 응답이 오면.. 그것 때문에 망해요.

반드시 그 비밀을 아셔야 되요.

 

그래서 하나님은 주님을 통하지 아니하시고서는

아무것도 먼저 오는 것은 강도에요. 요10:7~8

 

반드시 주님이. 주님이 먼저, 주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서

오는 기도의 응답이, 진짜 응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