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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으로 은혜의 문이 열린다

LNCK 2014. 8. 18. 08:13

◈순종으로 은혜의 문이 열린다            왕하5:1-14                    2013/01/20설교녹취

 

 

▶우리가 한 사람에 대해서 평가를 할 때 많은 이력, 경력들이 따라 붙죠.

본문에 소개되고 있는 나아만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의 인생에 다양한 수식어들이 붙어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는 한 일국의 왕에게 총애를 받는 군대 장관입니다.

그냥 군대 장관이 아니고 전쟁에서 승리를 한 장군, 국가의 영웅이죠.

공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와 권력과 명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소위 우리 시대로 이야기 하면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많은 강점과 가진 것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한 가지 문제가 있었죠.

 

본문 왕하5b절에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결정적인 결함이

그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어떤 부분이지만, 그 부분이 전체를 결정하는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사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허약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행복의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어떤 불행한 조건 하나가 그 많은 행복한 조건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한 순간에 그 결함이 불행을 만들 수 있는 이런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이 참 허약하죠. 쉽게 흔들릴 수 있는,

행복하지만 언제나 그 행복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어떤 사람은 돈은 있지만, 건강이 없고

어떤 분은 돈밖에 있는 것이 없고,

그런데 여러분 건강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어떤 사람은 건강은 너무 좋은데, 쓸 돈이 없어요.

또 세상적으로 성공은 했는데, 가만히 보면 주변에 사람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인기는 많은데, 개인적으로 너무 미칠 정도로 외로운 사람들.

여러분, 사람에게는 늘 한 가지 이상의 결함이 따라다닌다는 것이죠.

 

‘나는 모든 것이 다 있다. 나는 부족함이 없어. 나는 완벽해.’

인간이 그런 순간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한 가지 결함이 지배할 때,

불행은 한 순간에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을 보면 그런 것이죠.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 환자였다. :5b

사실 여러분 이 나아만이라는 사람은, 열왕기하 5장에 길게 스토리가 전개되어 있지만

사실 성경에 언급될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이방의 군대 장관이었어요.

이 당시 아람 왕이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특별히 이 사람은 지금 성공한 사람이에요.

여러분 자기 성공에 도취되어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나아만이 기가 막히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과 연결 고리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찾아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자기 결함이, 하나님과 연결고리가 됩니다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얻을 수 있었던 그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있었는데

그게 뭐냐 하면 그의 인생에 찾아온 한 가지 결함 때문이었습니다.

 

나아만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고리는, 그 한 가지 결함이에요.

그에게 나병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었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한 결함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데

15절을 보면, 나아만이 치유를 받고난 다음 하나님에 대한 대단한 고백을 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

 

여러분 이방의 군대 장관의 입술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이런 선포를 하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이세요.

 

이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영광을 받으시고,

누구를 들어서도, 하나님 되심을 인증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어요.

여기 이방 군대 장관에게 찾아온 한 가지 결함이, 오히려 축복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사람들은 어떤 결함 때문에, 하나님에게 나갑니다.

연약함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잘 나아가지를 않아요.

 

또 하나님이 부르셔도 잘 들리지가 않아요.

문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음성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있는 어떤 결함을 통해서 시작이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고,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잘 나가고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고 정말 그런 세상을 꿈꾸고, 그런 것을 부러워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상태는 인간적으로는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 은혜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데, 누가 하나님을 찾습니까.

여러분, 어떤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결함’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 결함이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의 길로 우리가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도 가만히 보면, 그의 삶 속에 그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에게 간절히 매달리죠.

그 매달림을 통하여, 바울이 마지막까지 승리의 완주를 할 수 있었어요.

바울이 바울되게 했던 힘의 근원이,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매달리다보니, 그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 찾아오는 고난이나 문제들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항상 그래요. 우리들의 연약함, 결함, 문제, 고통, 다 거기에서 은혜가 나와요.

 

▶평소 같으면 나아만이

어린 이스라엘에서 붙잡은 노예, 아주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자, 이 여종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평소에 남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습니다.

또 무엇인가 성공을 한 사람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에게 찾아온 이 결함이, 어린 여종에게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약한 상태가 축복입니다. 약함이 축복의 통로입니다.

약함이 풍성함으로 가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언제 찾아올까요.

우리가 여기 같이 앉아있어도 내가 약할 때, 이 말씀은 다르게 들려요.

뭔가 꽉 차 있으면, 말씀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겸손해지고 절박해지는 것이죠.

그 때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결함을, 감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약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아만은 이 약함이라고 하는 이 결함의 문제 때문에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던 인생에 고리가 맺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모두가, 아마 하나님에게 나올 수 있게 된 계기는

내 인생에 어떤 결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가족이 아프거나 내 개인적인 어떤 문제나 실패나 어떤 문제들, 어떤 결함이

그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과 나의 인생이 엮이게 되고

그것으로 인하여 결국은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저 이규현 목사 같은 경우에도 그래요.

우리 집안은 기독교와 사돈의 팔촌까지 관계가 전혀 없었던 집안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까지 우리는 절을 소유한 절 집이었죠. 제가 절 집 아이었어요.

동네 지나가면 사람들이 저보고 ‘절 집 아이 지나간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주지였어요. 목탁 소리가 아주 익숙해요.

저는 지금도 신기해요. 제가 이렇게 설교하고 있는 것이 황홀해요.

 

어찌하여 저는 기독교와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그런데 여러분 제게도 그런 어떤 결함이 있었던 것이죠.

 

우리의 삶에 가정에 어떤 실패와 아픔이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가 고리가 되어서, 그 약함이라고 하는 것이 고리가 되어서

하나님에게 걸려지게 되고,

인생 가운데, 가정 가운데 지금은 안 믿는 사람이 없을 정도에요.

 

우리 집안에 목사가 3명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오늘 여러분들의 삶 속에 어떤 연약함들이 있다면,

어떤 문제가 있다면, 결함이 있다면 자세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 곳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져 나옵니다.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나아만은 이 성공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나병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2. 또 하나님의 은혜는, 의외의 통로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3절에 오늘 나아만 장군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한 사람이 나오죠.

그게 누구냐 하면 이스라엘 백성에서 붙잡아 온 어린 소녀.

전쟁을 통하여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요. 영어 성경에 보면 리틀 걸이에요.

이름도 없어요. 성도 없어요. 아주 어린 이스라엘의 노예에요.

 

나아만 장군의 아내의 몸 종 역할을 했습니다.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에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소녀가 이 나아만이라고 하는

주인을 살릴 수 있는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이야기죠.

 

여러분 문제를 푸는 길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답을 어디 멀리서 찾게 하지 않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찾게 하세요.

 

오늘 이 아이가 이 집안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어요.

전쟁포로로 붙잡혀 온 어린 소녀에게서

나아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사실 여러분 겉으로 보면, 누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까.

겉으로 보면 외형적으로는 비교가 안 돼요.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에요.

하나님은 전혀 뜻밖의 사람이나, 방법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면 여러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돼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집니다.

 

1절을 자세히 보면 나아만의 문제가 나오죠. 1절에. 자신이 나병의 문제가 있어요.

그런데 이 문제 안에 해답도 같이 들어있어요.

여기 보면 ‘이는 여호와 앞에서 전前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이스라엘과 아람과의 전쟁에서 아람이 이기게 된 배경이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이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라고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전쟁의 승리로 인해 잡아온 이 소녀 아이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숨어있었다는 것이죠.

 

정말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섭리는, 오묘하고 복잡한 사건들 속에 얽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아만의 가정 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심어 놓고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통로를 통해서 사용하시는데

너무나 가까운 곳에서.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그를 구원해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무시하고, 소홀히 여기고, 깔보고, 때로는 원수일지도 모르지만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어떤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문제를 풀어주실지 모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주변에 모든 관계들 안에 원수를 맺지 마시고

모든, 아주 작은 어린 아이에게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우리 삶의 문제를 풀어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독특한 방법으로,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우리의 문제를 풀어주시고 있다는 사실을 오늘 여기에서 말씀하십니다.

 

 

◑3. 그런데 오늘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뛰어넘어 순종할 때, 찾아온다는 것이에요.

 

소녀 아이가 전해둔 말을 믿고 나아만은 이스라엘로 떠납니다.

아람 왕의 총애를 입을 사람답게 자기가 낫게 될 것을 생각하고

이스라엘의 어마어마한 답례품을 싣고 거창한 행차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 도착했는데 선지자는 보이지 않고, 대신에 사람을 보내서

‘당신은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어라.’ 종을 통해서 메시지만 전달되고 있습니다.

 

나아만이 버럭 화를 내죠. 자기가 오면 온 국가적인 환대를 해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고, 그냥 종 한 사람 보내서 말만 전하고

선지자는 보이지가 않는 것입니다.

 

오늘 11절을 보면 나아만의 반응이 나오죠.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 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와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손을 그의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자 이것은 자기 생각이에요. 아람 왕이 나아만을 위해 보내온

은, 금과 옷을 싣고 의기양양해 왔을 때에는

모두가 환영하고 선지자가 나와서 직접 손을 얻고 안수기도 하고

그렇게 해줄 줄 알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명색이 이스라엘 국가의 영향을 줄 수 있는

상대 나라의 최고 군대 장군이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어디를 가나 환대를 받고 무시할 수 없는, 주목을 받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지금 완전히 묵살을 당하고, 자기의 존재 가치가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는 거예요.

나병이 걸렸지만 자존심은 죽지 않았어요.

 

▶여러분 이런 나아만의 모습은

사실 우리 주변에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에요.

 

자신의 치명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엇인가에 꽉 차있는 모습.

죽고 사느냐의 문제 앞에 서 있지만, 여전히 인간의 체면이 그를 붙들고 있는 모습.

 

여러분 인간의 교만이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죠.

나아만 장군이 분노하면서 그곳을 떠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이죠.

 

지금 사실 이 나아만에게 중요한 것은 나병을 치유해줄 수 있는 선지자가

전해주는 메시지에요. 나아만은 그 이야기만 따르면 됩니다.

그 다음에 낫고/ 안 낫고는 그 다음의 문제에요.

 

그런데 지금 자신에 대해서 환대 하느냐/ 하지 않느냐로 화가 나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핵심적인 주제가 아닙니다.

 

▶사실 여러분, ‘메신저가 누구인가’보다, ‘메시지가 무엇인가’가 중요해요.

여러분 설교할 때 이 메신저. 설교를 전하는 사람도 중요하겠죠.

그러나 메신저가 어떻게 했던 메시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 처음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메시지입니다.

예배에 왔을 때 정말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정말 이것이 핵심이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에 와서, 다른 문제로 열 받고 귀를 딱 닫고

분노하며 집에 돌아갈 수 있어요.

 

특별 새벽기도를 하는데, 어떤 분에게 주차안내를 했더니,

안내를 안 따르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교통 안내하는 분이 ‘여기에 차를 대지 마시고, 다른 곳에 대라’고 하니까

그냥 휭 집에 돌아가 버리는 거예요.

그 분은 지금 자기가 그래도 좀 ‘있는’ 사람인데 홀대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나아만은 자기가 누구인가를 잊고 있는 거예요. 목적을 잊어버렸어요.

왜 왔냐는 거예요. 나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왔어요.

그런데 환대가 없다고 해서 지금 돌아가려고 하는 거예요.

자기 생각과 다른 어떤 분위기에 지금 열이 받은 거예요.

 

여러분 지금 선지자는 정확하게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아만을 아람 군대의 군대 장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환자로 취급하는 거예요.

 

나아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는 지금 환자예요. 환자로 왔어요.

이 나병이 낫기 위해서 소식을 듣고 온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멋있는 의전이 아니라, 병을 낫게 하는 실제적 치료 행위가 중요한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무엇이냐면 교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교만이 무엇인가 하면,

이 교만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모르게 하는 것이 교만이에요.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의 삶에 나병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 교만이라고 하는 병이에요.

이 교만에 빠져있으면 치료할 약이 없어요.

 

나아만은 지금 나병이 나을 수 있는 치료 직전에 와 있습니다.

요단강에 일곱 번 목욕만 하면 분명히 낫습니다. 신약으로 말하면, 복음입니다.

 

그런데 죽을병에서 다시 나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말만 들으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런데 교만한 마음이 지금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세상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없어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고, 교만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게 아니에요. 얼마든지 있어요. 그런데 교만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요.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나아만이 요단강에 들어가 목욕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목욕을 하려고 하면 옷을 벗고 들어가는 거예요.

화려한 계급장과 훈장이 있는 옷을 벗어야 됩니다.

 

여러분 나아만이 국가 공신이니까 얼마나 훈장이 많았겠어요.

얼마나 자기 자랑이 많았겠어요. 일생동안 쌓아왔던 자존심들.

이것이 훈장들이에요.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죠.

 

여러분 교회 와서도 진짜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옷을 벗어야 되요.

훈장을 떼어내야 되요. 내가 어떤 사람인데. 내가 이래 뵈도. 왕년에.

 

교회를 옮길 때도 마찬가지에요. 직분 의식을 가지고 옮기면 안 돼요.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아주 처음 그냥 예수 믿는 것처럼

옛날에 직분을 가지고 온 분들은 신앙생활이 어려워요.

 

보니까 목사님 옛날에 있었던 교회의 오른팔 했다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소용 없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려고 하면 세상의 자랑들을 내려놓아야 됩니다.

 

▶여러분 십자가 앞에 선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내가 벌거벗는 것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없는 그냥 허물과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죄인 됨을 고백하는 거예요.

자존심이 완전히 깨져야 되요. 자존심을 세우고 복음을 받을 수는 없어요.

 

십자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뭐예요. 나는 구제불능입니다. 나는 소망이 없습니다.

나는 의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어떤 자랑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도, 그냥 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흠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 나는 끔찍한 죄인입니다.

이 고백이에요. 이것이 십자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십자가도 받아들이고, 내 자존심도 살리고.. 그런 길은 없어요.

그토록 아무리 나를 포장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간판이나 계급이나 세상의 명예로움이 아무 의미가 없어요.

 

세상은 인간이 자존심을 기가 막히게 세워주죠.

산업주의. 오늘 현대 상업주의. VIP. 멤버쉽. 이런 것을 만들어서

얼마나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요.

 

오늘 나아만 장군이 지금 이스라엘로 왔었는데

현대로 치면 세단이 쫙 들어왔는데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거예요.

발렛파킹도 해주지 않는 거예요. 지정석도 하나 안 만들어 놓았어요.

피켓도 하나도 안 들고 있고, 안내 요원도 없어요. 뭐 이런 것이죠.

 

▶여러분. 오늘 나아만에게 필요한 것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일곱 번 요단강에 가서 목욕을 해라. 그것 외에 아무 것도 소용없어요.

여러분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한 번은 확실히 나의 죄인 됨을 솔직하게 정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을 드러내야 되요.

 

내가 자랑하던 의의 옷을 벗어 던져야 되요.

인간적으로 자랑하던 모든 자랑을 다 내려놓고, 나의 자존심이 완전히 깨어지는,

그래서 나의 부끄러움과 수치를 한 번은 당해야 되요.

그것이 십자가 앞에 서는 거예요.

 

그냥 내가 인간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그런 화려함들을 가지고

그냥 살다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붙들고 있던 옷들을 과감히 버리고

부끄럽지만 자기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살던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나아만이 계급장에 그 주렁주렁 달린 옷을 입고 아람에게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자존심이 상하지만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경청하여 다시 살던지.

 

▶사실 여러분 우리가 설교를 듣는 자세에도, 그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23편과 같이 우리에게 참 은혜롭고 소망을 주고 힘을 주고

그런 설교를 들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굉장히 우리의 자존심을 걸고 넘어지는, 기분이 상하는 설교도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보는 것이 뭐냐 하면

나아만이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감정에 파묻혀서 자기의 자존심이 깨어지지 않는,

움켜쥐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 찰랑찰랑 넘치려고 하고 있는데

이것을 지금 받느냐 못 받느냐. 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당신의 은혜를 주실 때에는 다소 거칠게 몰아서 올 때가 있다는 거예요.

나이스하게, 기분 좋게, 내 기분에 맞춰서 그런 것들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 들어가기 직전에는, 하나님이 거칠게 몰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온전히 순종하며 무릎 꿇는

그 사건을 가져야 주의 은혜가 임한다는 거예요.

 

▶진짜 이것이 선지자 엘리사는 멋져요.

이 일국의 나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력자가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는 거예요.

대단한 거예요. ‘그냥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고 가라고 전하세요’

 

여러분 오늘 여기에 보면 엘리사가 일곱 번 강물에 씻으라고 해요.

한 번만 해도 나을 수 있잖아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는 것인데

한 번 하나 일곱 번 하나 똑같은데. 아니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요.

말만해도 되죠. 그런데 일곱 번 씻으라는 것이에요.

 

이 말은 뭐냐 하면, 간단한 형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의례적인 어떤 것으로 주어져서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죽음을 말해요.

완전히 죽으라는 거예요. 자아를 죽으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일곱 번까지 한다는 말은

웬만해서는 우리 인간의 자아가 죽지를 않아요.

인간의 고집이 얼마나 센가를 보여주는 것이, 일곱 번 목욕하는 거예요.

 

나아만이 지금 자신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왔지만

자기 안에 있는 자존심과 고집과 자기의 생각과. 여기 표현 보세요.

‘내 생각에는 (이럴 줄 알았다)’ 자기 생각이 중요한 거예요.

중요한 것은 일곱 번 씻으라고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여리고성을 돌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루에 한 바퀴씩 돌아라.

마지막 날은 일곱 바퀴를 돌아라.

여러분 일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일곱은 완전수잖아요.

이 일곱은 하나님을 뜻하기도 해요. 완전한 하나님의 사역이다.

라는 의미가 일곱 안에 있어요.

 

이 일곱은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어떤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거부하는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인간의 생각을 집어넣으면 안 되고

자기의 마음대로 적용해서도 안 되고, 완전한 순종 외에는 길이 없다.

이것이 일곱이에요.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의 실패는 종종 어디에서 왔느냐 하면

순종은 했어요. 그런데 부분적 순종이에요.

 

부분적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불순종이에요.

일곱 번 목욕하라는 말은 완전한 순종!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굉장히 중요한 교훈은 뭐냐 하면

나아만은 결국 엘리사의 전해진 말대로 순종을 합니다.

자기의 감정과 생각과 모든 것들을 벗고 순종합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사람들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물에 몸을 담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 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4절에 말씀을 보면 너무 간단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람이 했더니 되었더라.’

아주 간단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과정까지 오는 것이 어려운 거예요.

이 말대로 했더니 되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의 사람이 말대로 했더니 나았다는 거예요.

굉장히 간단한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14절까지 오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하는, 거부하는

내 안에 있는 불순종. 내 안에 있는 교만, 자만심, 하나님을 가로막는 자기의 고집과 생각들..

순종의 자리만 가면 역사는 일어나는데, 가기까지가 어려운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복잡하게 자꾸 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어요.

자기 생각이 많아요. 자아가 죽지 않았어요.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거예요.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해요. 순종만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한다. 이것이에요.

 

▶여러분 성경 창세기부터 전체가 다 그 이야기입니다. 간단합니다.

설교도 복잡하지가 않아요. 사실은. 순종하면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뭐예요. 순종의 텍스트만 통과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에요.

 

인생의 해답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적 순종으로 가지지 않아요.

우리의 삶의 문제를 내가 어설프게 자신이 풀려고 하다가 꼬이는 거예요.

 

성경에 일어난 기적들을 보면 다 동일합니다. 아주 간단해요.

문제는 여러분 우리가 풀지 못하는 거예요. 못 푸니까 문제죠.

그 문제는 하나님이 푸시는데 그 푸시는 방식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서입니다.

 

여리고 마찬가지잖아요. 오늘 요단강 들어가는 것.

사실 겉으로 보면, 물에 들어가는 것과 나병이 낫는 것과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모든 것을 뛰어 넘어서 그 말씀에 순종했더니.. 간단한 것이잖아요.

 

일곱 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간단하잖아요. 머리 쓰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이큐 낮아도 되잖아요. 여러분 성경에 나타나는 것은

그 사람의 실력이나 재능을 요구하는 것 하나도 없어요. 순종만 하라는 거예요.

 

여리고를 도는데 하루에 한 바퀴만 돌라고 하는 거예요.

철옹성 앞에서도 하루에 한 바퀴만 돌라. 그런데 한 바퀴씩만 돌아라.

마지막 날 일곱 바퀴 완전 수 도니까 무너지잖아요.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이 그것이지 않습니까.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

마리아가 뭐라고 합니까. 주께서 뭐라고 하시던지 그대로 하라.

예수님이 물을 아귀까지 채우라고 하니까 채웠더니 포도주가 되었어요.

 

베드로가 누가복음 5장 5절에 그물을 싣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말씀에 의지하여 내렸더니 고기가 두 배가 채워 잠기게 되었더라.

 

다른 아무 것도 없어요.

거기에 비밀을 발견하려고 심하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그물을 내리라고 해서 내렸더니..

 

지금 나아만에게 요단강도 마찬가지예요. 요단강에 들어가는데

복잡하게 뭐 수온이 몇 도 일 때 내려가야 된다.

그리고 1미터를 절대로 넘으면 안 된다. 재봐라. 그리고 다리를 하나 들어라.

내가 고개를 흔들면서 뭐 암송을 해야 된다. 아무 생각 없어요.

그냥 일곱 번 들어갔다가 나오면 돼요.

 

▶여러분 모든 길은 순종을 통해서 열립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순종하고. 가장 쉬운 길이 순종의 길입니다.

 

삶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은데 아니에요. 잘 들으세요.

삶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은데 아니에요.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면, 그 인생이 가장 쉬운 인생이에요.

 

여러분 인생을 쉽게 살아가는 방식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는 것.

가라고 하시면 가고, 하라고 하시면 하고, 서라면 서고.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완벽하게 로드맵을 주시고

우리에게 순종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하라고 하면 사랑하는 거예요.

어떨 때는 미워 죽겠는데, 이를 악물면서 사랑하는 거예요. 순종하는 거예요.

감정은 따라오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 순종하면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사랑하는 영도 부어 주시고..

순종하려고 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이 다 하신다니까요.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뭐냐 하면 진리는 어렵지 않아요.

순종의 과정까지 가는 것이 어려운 거예요.

 

어려운 이유는 말씀이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내가 어려운 거예요.

내 자아, 내 고집, 내 생각, 내 이론, 내 자랑.

이것이 십자가 앞에서 깨지면 말랑말랑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장 지혜로운 삶은 순종입니다. 가장 능력 있는 삶이 순종입니다.

가장 빠른 길이 순종의 길입니다.

 

▶마치는 말. 오늘 설교는 참 쉽죠.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결함이 주어질 때

여러분 그것을 거부하지 마세요. 하나님과 얽히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의외의 일들을 통하여 의외의 만남을 통하여 뜻밖의 은혜를 주세요.

그래서 우리 삶에 어떤 것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됩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고. 여러분 원수를 맺으면 안 돼요.

그 사람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요.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길로 누구를 통하여 역사하실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의 삶에 모든 일들을 통하여

상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우리 삶의 진지함을 의미하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내가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지만

내 삶에 거추장스러운,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의 세계에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순종하지 못하게 만드는 나의 아집과 고집을 십자가 앞에 날마다 꺾고

주님 앞에 온전히 순종할 때, 오늘도 하나님은 기적을 베푸시고

오늘도 하나님은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첫째도 순종, 둘째도 순종, 셋째도 순종,

2013년을 열어가는 우리의 인생에

위대한 하나님의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축복을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가 순종으로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에게 가장 쉬운 삶이 순종입니다.

순종만 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기적을

매일 매일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