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1강 1/2 딤후3:13~17 인터넷에서 스크랩, 편역. 영어로만 듣기
*20분~26분까지가 하이라이트입니다.
※주제 요약/ 오늘날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명 설교자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자기 자신은 성경을 읽거나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건 중대한 잘못입니다.
또 “일부” 유명 설교자는, 전혀 성경과 맞지 않는 설교를 할 수도 있는데,
유명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따라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터넷 설교가 판을 치는 시대에.. 여러분은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십시오.
폴 워셔를 따르지 마시고, 성경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유명한 사람”이나 “화려한 설교”가 강조되어선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하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인사 및 서론
▲오늘 이 집회를, 여러분과 함께한 것을, 저의 특권이라 생각합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제가 한국에 오기로 세 번이나 시도한 것 같습니다.
두 번 불발했고, 세 번째, 하나님의 주권적 인도로, 제가 여기 서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의 목회자들 앞에서, 제 폴 워셔가 말씀을 증거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그러나 지금 제게는, 여러분 앞에서 설교하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제가 탄 차가, 이 교회로 들어올 때, 바깥 벽에 걸린 제 사진을 보았습니다.
(현수막 같은 것에 크게) 제 얼굴이 있었습니다.
보니까 본당 천정에도, 제 얼굴이 크게 걸려 있네요. 하하하
이것이 가장 최고로 위험한 것입니다.
폴 워셔가 오늘 이 자리에 온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여기 계시냐는 것입니다.
(회중들) “아멘”
-폴 워셔가 오늘 전하는 설교를 통해서, 주님이 정말 영광을 받으실 것인가.. “아멘”
-성경이 정확하게 해석될 것인가.. “아멘”
-오늘 제가 하는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이 진리 안에서 정말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하지, 폴 워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자세히 연구하고 살핀다면,
여러분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은 한명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가장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가장 연약한 그의 메신저(설교자)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시지만, 그 분을 설교하는 인간은 연약합니다. 저 폴 워셔를 포함해서요)
그런 전제 가운데, 디모데후서3:13~17절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누구에게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니라”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 앞에 왔습니다.
하나님 제 간절한 소원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 안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 존재의 모든 세포와 조직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의와 거룩과 사랑 안에서 살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집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뤄져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도 이뤄지지 못할 것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어여삐 굽어 봐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삶을 통해 역사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과 같이 이런 자리에서, 제가 다른 곳에서도 설교할 때가 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저의 설교를 듣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질문하기 원합니다.
-‘집회에 왜 오셨습니까,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무언가 오락이나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녕 진리 안에서 자라기를 소원하십니까?’
-‘집회 기간 동안, 지식적 즐거움을 추구하려 하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성경 안에서 자랄 말씀을 듣기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여기에 오신 진정한 이유가, 과연 무엇입니까?’
같은 질문을, 오늘 여러분께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새로운 것을 배워서, 이제 수준을 좀 더 높게 하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삶을 번영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몇 가지 성경의 원리들을 배우기 위해 오셨습니까?
만일 그것을 목적으로 여기에 오셨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장소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잘못된 설교를 듣고 계십니다.
제 설교는 그런 주제가 아닙니다.
저는 물질적의 번영(번영 신학)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저의, 훌륭한 자동차에 관해 관심 없습니다.
주택이나 옷에 대해서도 관심 없습니다.
저는 예수 믿어서..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대신에 저는 그리스도를 알기 원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소원합니다.
저는 유익한 하나님의 종이 되길 소원합니다.
▲제가 생각하기는, 여러분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육체적 번영들을 쓰레기/배설물로 여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참된 보화가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참된 보화는..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있습니다.
참된 보화는 ‘내가 무엇이 걸치고 있느냐’가 (외적인 옷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닮아가는 것입니다.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으셨던(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걷는(사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고난당하고 그것 때문에 죽는 일이 생긴다면
그건 기꺼이 감당할 일입니다!
◑13절, 말세에 미혹이 활개칩니다.
▲성경을 봅시다. 사도바울은 딤후3:13절에서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니’
라고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경제적으로 사기 치는 일도 있고, 결혼할 때 속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본문에 사도바울이 말씀하는 ‘속임’의 첫째 의미는 <설교의 속임>입니다.
말세가 될수록,
<설교로 속이는>일이 비일비재할 것이고,
더욱 더 불행한 일은 <사람들이 속는>일입니다.
진리인줄 알고, 따라갔는데,, 아니었던 것이지요.
성경전체를 통해서 사도 바울이 ‘속임’과 ‘속이는 자’들에 대해서
많은 경고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디모데전서 4:1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습니다.
위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때, 무언가 상당히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생 동안, 우리 주위에 늘 ‘속이는 자’와 ‘속임’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여기 서 있는 폴 워셔가, ‘속이는 자’가 아니라고, 여러분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유튜브 에서 많이 설교를 한 것 때문에, 여러분은 제가 참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유명세, 광범위한 인지도.. 그것이 그가, 참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증명해 줍니까?
어떤 사람이 엄청나게 큰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사람 임을 증명해 줍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인정해야 할 사실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와~ 그 사람의 설교는 인터넷에 수많이 있습니다.
또 교회 크기를 봐, 엄청난 크기를 보니, 그는 분명 하나님의 설교자야!’
말세에 속는 일과 속이는 자가 횡횡 하리라는 말씀을 앞서 읽었는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속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가 성경을 바라보면, 그게 우리가 속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어떻게 분변할 수 있습니까?>
▲1.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를 알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마7:20
여기서 ‘열매’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여러분은 그의 여러 전체적인 (복수의) 삶을 통해서 그를 판단해야합니다.
또한 나를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입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가.. 그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인지 증명해 줍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이전에, 우리 각자 자신을 보면서, 한 번 점검해 봅시다.
-나는 아내를 진정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신 것 같이,
나는 아내를 위해 자기 몸을 주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내가 내 자녀를 사랑하고 있는가,
-내가 정말 섬기는 종인가,
-나는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기 원하는가,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기 원하는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인격적 열매로 아는 것입니다.
그 삶의 열매입니다. 어떤 나타난 외모/외형이 아니라요.
이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중대한 사실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아주 설교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그가 큰 목회를 하고 있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 사람이 물질적으로 부유해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 밝히기를 ‘나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큰 목회를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길거리에서 설교하고, 가정교회에서 목회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물질적으로 번영한 사람이 아닙니다.
대신에 그가 번창했던 것은, 아래 것들입니다.
그는 얼마나 많이 돌에 맞았습니까,
그가 얼마나 많은 경우에, 죽음의 위협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많이 주리고 금식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속적 잣대로 판단하는 법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의롭게, 판단하는 법을 배우셔야합니다
▲2.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성경 말씀과 일치합니까?
즉, 성경의 전체 주제에 합당한, 구원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중요시여기지 않고) 예언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보다는, 자기의 개인적 체험인 꿈이나 비전을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이상한 개인적 체험들을, 말씀보다 앞세워, 설교하곤 합니다.
신자들에게, 그런 목회자의 자기 개인적 체험들이,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회중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강해되어지고, 설명되어지는 것입니다.
회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설교자가 사라지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자가, 자꾸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체험의 진위 여부도 문제이지만, 만약에 진짜 그게 성령이 주신 체험이라 하더라도,
그 자기 체험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위의 권위를 갖지도 않는데.. 그러면 안 되죠.
그리고 그 체험을 자랑함으로써, 또한 자기 은근히 자신을 높이는 잘못이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제기해 봅시다.
“도대체 설교/설교자의 권위 Authority 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이 자기 외적인 인격(목사 같은 친절)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No!
그것이 그의 목회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No!
그가 수십 년의 목회를 했다고 해서, 그 관록으로 증명되는 것입니까? No!
혹자는, 자기에게는 권위가 있는데,
그건 “성령님께서 자기에게 특별한 기름 부어 주심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설교/설교자의 권위 Authority 는 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그 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설교자의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과연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비성경적이거나, 성경 주변적인 주제를.. 마치 그게 전부인양 잘못 가르칠 수도 있거든요)
또한 설교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외식하지 않고 순종해서 사느냐.. 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순간순간 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삶을 사는 것 ..
그것이 바로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설교자, 권위 있는 주의 종’이라는 증거입니다.
아주 많은 설교자들은, 자신이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아예 접어두고서,
이 성경을 다루기를, 축복을 주는 ‘마술책’ 다루듯 합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열심히 찾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고, 주어진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성경을 연구하십시오.)
그런데 그 축복이라고 하는 것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실 물질적인 축복외의 다른 어떤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의 목적은 그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성경책의 목적은, 하나님을 계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리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참된 믿음과 회개를 가져오기 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정결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는 우리 자신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룩은, 사랑 안에서 나타나야 됩니다.
▲여러분이 정말 진실하게 회심했는지/안 했는지
그걸 진단하는 많은 질문들을, 이 시간에 하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가장 중요한 질문, 단 한 가지만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 한 가지만 살펴보면, 여러분이 진정 회심했는지/안 했는지.. 판가름 납니다.
(매우 엄숙한 목소리로)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원하고 계십니까?,
무엇을 진정 갈망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좀 더 주님을 알아가고, 더 그리스도 닮기를 갈망하고 계십니까?
참된 신자는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요, 그 신자의 온 마음은 이렇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오락을 원치 않습니다. 즉, 재미와 흥미로,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교회에서, 자기 삶이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 self-development 적 메시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더 알기 원합니다. 그는 그분을 더 많이 만나 뵙기 원합니다.
이것이 거듭난 신자의 진정한 관심인 것입니다.
나는 성경말씀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 성경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확실히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평생 목표는,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내 구원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14절, 디모데야, 나 바울을 따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라
딤후3:14절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 데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서 13절은,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14절은, 13절의 그 ‘악한 자들 속이는 자들’과 대조적으로, ‘신자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지금, 디모데를 포함해서, 모든 신자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13절의, 속이는 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위선적인 삶으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오직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되, 자기 삶의 신실함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십시오.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데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리라’
그대는 어떤 사람들에게서, 그 진리를 배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공동번역)
because you know those from whom you learned it,
※‘뉘게서 배운 것을’ .. 바울에게서만 배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서 진리를 배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데 거하라.’
즉, 계속해서 진리 안에서 자라나라.
네가 배우고 가르침 받았던 그 진리 안에서 성장해가라!
그런데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고 ..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보십시오.
바울도 사람입니다. 바울은 지금 영원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배운 것’을 열심히 공부해라.. 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진리를, 즉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라는 식으로.. 권면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향해 말합니다.
‘디모데야, 나를 봐라, 이제까지 나를 따라오고 쫒지 않았느냐
내가 한 가지 중대한 것을 말하고 싶다.’
내가 너에게, 나의 말을 들어라 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교훈을 들어라’ 라고 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나 바울은, 그럴 권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리라’
다른 사도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즉 진리/ 성경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이것을 강조하기 원합니다.★
▲저는 정말,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권위로 말하는 것에, 넌더리가 났습니다.
그가 큰 목회를 하던지 그가 웅변적인 설교를 하던지
그가 그의 목회가 번창하든 상관없이.. 그들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말을 들어라’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평생 여러분을 성경 말씀으로 이끌어갑니다.
‘나의 말을 들으라’고 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들으십시오!’ 라고 합니다.
바울이 본문에서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리라’
다른 사도들로부터, 진리를 배운 것을, 꼭 붙들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오늘은 성경이 완성되어 있으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권면합니다.
‘이것이 성경말씀입니다.’ 라고 전합니다!
‘나의 말’을 마치 성경인 것처럼 전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1:1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이것은 우리가 권위의 대해 말할 때 중대한 사항입니다.
두 사람이 나오는데요, 사도 바울과 디모데 였습니다.
디모데는 정말이지 훌륭한 ‘형제’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디모데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종된 증거를 잘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디모데는 바울에게도 신임과 인정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도바울과 함께 걸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디모데’같이 신실한 사람과 동행한다면
그의 말을 듣기 원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디모데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디모데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바울은 ‘사도’이고요, 디모데의 그저 ‘형제’입니다.
얼마나 디모데가 훌륭한 사람입니까 정말 신실했습니다. 신실한 주의 동역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도적 권위 Apostolic Authority를 받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형제 brother’였습니다.
이것 이 왜 중요합니까?
여러분 가운데 혹자가, 저에게 와서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유튜브를 통해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설교하는 권위가 부여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에 대해 권위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설교자가 가지는 공통된 규칙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설교자의 권위’는 ‘제도적 권위’를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설교 전체의 문맥을 들어보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권위’를 뜻합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느냐.. 그는 권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하고, 성경을 읽고 나서 ‘자기 말’을 한다면
그는 ‘설교의 권위’를, 하늘로부터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분의 설교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출석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모든 교회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설교자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은 아닙니다.
기억하십시요. 많은 ‘속이는 자’가 있다는 것 말입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과 지성으로부터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의 권위로부터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초해서 말하고 있는지 봐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 인용한다고.. 다 성경적 설교가 아닙니다.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식의 해석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로 해석해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설교자는,
자기 자신부터, 그 말씀대로, 하나님을 진정 뜨겁게 사랑합니다.
자기가 그렇게 살고, 회중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야 합니다.’ 라고 설교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이 뭘 말씀하고 있는지.. 성경 전체의 주제가 무엇인지.. (구원이요, 구원의 완성입니다.)
그 흐름에 합당하게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자가.. ‘권위 있는 설교자’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사도의 권위를 전수하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디모데와 같이 성장하고 있다면
사도적 권위를 지닌 바울의 말씀을, 잘 배우고 그대로 지켜야합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성경이, 바로 그런 사도적 권위를 받은 분들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을 가지고, 구원과 구원의 완성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다르게 해석해서, 다른 방향으로 전달한다면.. 그건 ‘사도적 권위’가 없는 설교입니다.
설교라고.. 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유튜브에서, 유명 목회자의 설교를 배워서, 청년들이 가르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분명히 ‘사도적 전통’ 위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이는 자가 많고, 속는 자들도 많은데.. 여러분은 거기에 포함되지 마십시오!
◑디모데후서 3장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떠오르는 진솔한 대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여러분은,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으로 살았습니까?’
두 번째, ‘당신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깊이 아십니까?’
한 번 이렇게 가정해 봅시다. 그가 신자가 된지 5년이 됐다고 합시다.
그 사람에게 질문합니다.
‘성결한 삶이 무엇인지, 그게 왜 중요한지.. 설명해 주십시오.’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잘 모릅니다.)
‘갈보리의 예수의 속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잘 모릅니다.)
‘신자의 변화된 새로운 본성 new nature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실래요?’
(우리는 잘 모릅니다. 교회만 다녔지, 성경을 그만큼 깊이 있게 모른다는 뜻입니다.)
결혼하신 분들에게 질문 드립니다.
‘성경이, 남편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대부분 신자들은,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성경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연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함부로 ‘나는 성경을 믿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성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믿는다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설교 몇 번 듣는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진리들을 연구하고 탐독해야 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청년들이 예수님에 대해 흥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데는.. 정말 열정과 근신이 필요합니다.
저는 2년 전에, 큰 수련회를 열었습니다.
아마도 청년들 위주로 4천 명 정도 모인 것 같습니다.
그 주제는, 선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많은 청년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폴 목사님, 저는 선교지에 당장 달려가고 싶습니다.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할 곳으로, 제가 거기에 달려가겠습니다.’
저는 일단, 그런 열정이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답할 시간을 3분 드리겠습니다.’
‘속죄/대속 atonement 이 무엇입니까?’
그 젊은 친구들은 단 한명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화목 사역 propitiation 이 도대체 무엇 입니까?’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게 바로 ‘화목 사역 propitiation’의 의미입니다.)
청년들은, 그 젊은 열정으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하고 싶다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적은 사람들만이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을 알아야 되고, 그것을 올바로 해석해야 된다고.. 제가 말씀드리고 있는데요.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조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인간의 머리로.. 성경을 올바르게 깨달을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조명’을 카메라 플래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카메라) 플래시는 사진 찍을 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짝 하고 비추는 빛은, 성경말씀을 연구하는데도 요긴하게 쓰이는데,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공부할 때,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플래시는.. 대표 기도할 때, 그 분을 찍기 위해서 사진기자 빛을 비추는데요,
그러나 진정한 성령의 플래시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에 비춰져야 합니다.
성경을 연구할 때도, 물론이고요. 성령의 플래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합니다.
질문하나 더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것입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해 동안 ‘하나님의 속성 attribute of God’ 에 대해 공부하셨습니까?‘
이게 중요한데, 성령의 조명 없이 연구하고, 가르치니까.. 지루한 거지요.
이 주제를 갖고 연구하는데도, 몇 년이상 걸릴 것입니다.
‘폴목사님, 저는 그것을 그렇게 오래 동안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몇 년은 아니더라도, 몇 달 동안이라도 공부한 적은 있으십니까?’
여러분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단 몇 달 동안이라도,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폴목사님, 저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이 한국강단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얼마나 자주 얘기를 들었습니까?
글쎄요, 들었나요. 말았나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몇 번은 들은 것 같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요점이 무엇입니까
교회 안에서 너무 많은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설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설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에 관한 것이고, 사람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것들입니다.
만약 그렇게 우리가 엉뚱한 설교를 하고/듣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기독교가 어떻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 기독교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여러분 한국 기독교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 배우신 것들도 있습니다.
번영에 대해서, 축복에 대해, 물질적인 것에 대해 설교하는 미국 목사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에 대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그런 설교를 듣고서,
신자가 어떻게, 거룩 안에서, 참 진리 안에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참된 회심입니까?’
이런 주제들을, 우리가 바로 진정 알아야/들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한다면 말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vZuvOlPJcMA&feature=youtu.be 18분35초까지 정리! 편역.
'분류 없음 > 201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잃어버린 진리, 중생 / Washer (0) | 2014.10.09 |
---|---|
폴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1강 2 (0) | 2014.10.08 |
하나님의 눈물 / Wilkerson (0) | 2014.10.06 |
묵상글 모음 10 (0) | 2014.10.05 |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 / Wilkerson (0) | 2014.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