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눈물 Sharing The Grief Of God 암6:1~6 출처 영어 타자
데이빗 윌커슨
<한글 듣기>
▶하나님께서 그 분의 심장을, 즉 마음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 심장의 한 부분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신자들 안에 있는
죄에 대한 슬픔입니다.
즉 교회의 죄, 세상의 죄로 인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전에는,
우리의 ‘마음의 죄, 교회의 죄, 세상의 죄’에 대해 슬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는 그런 죄에 대한 슬픔이 없습니다.
그런 죄에 대해서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아픔을, 우리가 쉐어링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개인적인 실패에 대한 슬픔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죄에 대해
슬퍼하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쉐어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성령님은, 하나님의 집(교회)의 죄에 대해서 슬퍼하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누구나 교회 바깥에 있는 죄에 대해서 슬퍼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동성애, 마약중독, 살인 죄에 대해서 슬퍼할 수 잇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에 대하여 슬퍼해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교회 바깥 말고, 교회 안
즉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을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아모스 6장을 보십시오.
아모스는 곧 멸망할 사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심판이 곧 하나님의 집에 임할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곧 교회를 다루려 하고 계셨습니다.
모든 지도자들, 모든 종교지도자들,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들은 상아 상에 누우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노래하고,
새로운 오락거리들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아모스 6:1-6)
그것은 분명히 ‘혼합주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세속주의가 혼합된 것입니다.
이때 아모스는 말합니다.
‘너희는 슬퍼하고 있어야만 한다.
심판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너희는 울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너희 가운데 일어나는 일로 울고 있지 않다.
슬퍼하고 있지 않다.
너희는 즐기고 놀기만 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만지심을 잃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암6:6
라고 아모스는 부르짖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너희는 죄로 인해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요셉(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슬퍼하지 않는다.’
요셉(즉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악은
다름아닌 ‘내면의 죄악’. ‘세속주의와 타협’
즉 교회 안에 있는 혼합주의였습니다.
‘나는 슬퍼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찾을 수 없다.’
‘모두가 흥청대며 즐기고 있다.’
‘왜 너희는 슬퍼하지 않느냐?’
‘왜 너희는 울지 않느냐?’
▶오늘날 교회에, 그 모든 것이 타협하고, 연합합니다.
교리를 타협하고, 모든 것을 타협합니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것을 ‘사랑을 가장한 덫’ 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5년 간 미국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겠습니까?
번영의 복음이 어디에서 들어왔습니까?
교회는 복음의 순수성을 버리고, 세속주의적 번영의 복음과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죄에 대한 찔림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모임을 하지 않고, 주님의 얼굴, 즉, 임재를 구하지도 않습니다.
죄에서 떠나라고 설교 하지 않습니다.
이제 교회는 하나됨을 위해서 ‘타협’합니다.
‘번영의 복음’과 ‘행복한 삶’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번영의 복음과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는 복음이, 거의 미국의 문화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슬퍼한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해, 슬퍼하신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죄에 대해 슬퍼하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 복음에 대한 타협과, 혼합주의가 있을 뿐입니다.
▶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악한 일을 안 지라.
그들은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 뜰에 방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가슴을 아프고 슬프게 했습니다. (느헤미야13:8)
그것이 느헤미야의 마음을 찢어 놓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슬픔을 쉐어링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주의적인 충동으로, 죄를 정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다 보실 때, 그는 하나님의 슬픔을, 자기도 똑같이 느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이 교회를 내려다보실 때
그 속의 어리석음, 사악함,
그분의 종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섬기는것,
눈물과 깨어짐이 없는 것을 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슬퍼하십니다.
주의 종들은, 죄에 대한 경각심이 없이, 어떤 특권의식에만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것이 느헤미야를 역겹게 했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슬픔을 쉐어링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골방에서 하나님과 교제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심장에서 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슬픔을 느꼈습니다.
▶사도바울도 그런 사역을 했습니다.
내가 여러 번..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빌립보3:18)
여기 ‘눈물을 흘린다’는 단어는, 슬픔으로 크게 흐느껴 우는 것을 말합니다.
찢겨진 심장으로, 가슴을 찌르는 듯한 슬픔으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내가 찢겨진 심장으로 말하고, 여러분께 부르짖습니다.’
뭘요? 아래 내용입니다.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지라 (빌립보3:19)
그들은 더 이상 전처럼, 주님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 바울은 교회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나는 가슴을 찌르는 부르짖음으로 소리쳤습니다!
▶‘한나’라는 경건한 여인이 있었습니다.(삼상1)
그녀는 실로의 성전에서 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전환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새로운 일은, 통곡의 기도 가운데서 탄생됩니다.
매 시대마다 항상 한나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한나의 통곡이 있습니다.
그는 제단 앞에서 통곡하며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운동을 해산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울며 부르짖는 이 여인의 모태로부터 그것을 탄생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중요한 일을, 교회에 일으키시려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울고 있는 교회’라는 모태로부터 탄생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용서하소서' 라고 우는 사람들의 모임.. 말입니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의 죄와, 우리의 삶에 있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당신의 심장을 제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
▶다니엘서 9장에 보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구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예언된 때인
70년이 곧 차리라는 것을, 성경을 읽다가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사람이, 말씀을 통해서, 시대를 바로 읽게 됩니다.
홀로 하나님과 함께 말씀 안에 잠기지 않고서는, 시대를 분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당신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 날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의 사람을 만들어가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믿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영’이 성령으로부터 임하게 됩니다.
기도의 영은, 말씀을 읽고 홀로 하나님과 교제 할 때 임합니다.
다니엘은 이 기도이 영을 통해, 신령한 지식을 얻었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다니엘은 그 구절을 읽은 후에
‘나는 내 얼굴을 주 하나님께 고정 시켰고, 기도와 탄원, 금식과 베옷, 재로 간구했다’ 라고 했습니다. (단9:3)
‘지옥을 흔드는 기도의 사람’에게, 하나님은 교회의 상태를 보여 주십니다.
그는 자신을 겸비케 하고, 교회의 상태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그는 교회의 상태를, 자신의 상태로 여깁니다.
그래서 애통하며, 금식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축복하시려는 때를 발견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봤을 때 하나님은 축복하기를 원하셨지만
교회는 아직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시대 교회의 슬픈 상태를 보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슬픔의 심장’을 다니엘에게 주었다고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회복되고 다시 살아나길 원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열망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이혼하고, 죄에 빠져있고, 마음은 부패해졌습니다.
그 결과 우리 각 가정 역시 무너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신자들, 여러분의 가족을, 회복시키시고,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것들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 세상적인 흐름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악이 관영 하는 이세상에 휩쓸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 눈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이 죄악 된 흐름에 참여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기도는 하지 않아도.. 저 윌커슨은 기도할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읽지 않아도.. 저 윌커슨은 계속 읽을 것입니다.
저는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우리는 한 세대를 잃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안에서 조차도요!
하나님, 기도하는 목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기도하는 목소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기도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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